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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95화 (9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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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 095화

모든 몬스터의 몸에 마력독이 있는 건 아니었다. 소수지만 마력독을 갖고 있지 않는 몬스터도 있었다.

줄무늬 칼날 멧돼지가 그중 하나였다. 그걸 소로브 산맥의 드워프들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소로브 산맥의 드워프들은 줄무늬 칼날 멧돼지를 주식 중 하나로 삼고 있었다.

마력독이 없을 뿐 그걸 빼면 길들일 수 없는 몬스터기에 잡아 기를 순 없지만, 소로브 산맥 중턱 일대에 넓게 서식하고 있고 번식 속도도 빨라 사냥만으로도 충분히 주식으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반년 전쯤부터 문제가 생겼다. 줄무늬 칼날 멧돼지의 몸에서도 독이 나오기 시작한 것.

독에 대한 지식이 그리 깊지 않은 드워프들로선 그저 독인지 마력독인지 까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드워프들이 독충이나 독사 등에 물렸을 때 쓰는 해독제는 전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독을 갖고 있던 줄무늬 칼날 멧돼지가 낳은 새끼의 몸속에서도 독이 나왔다.

소로브 산맥의 드워프들이 줄무늬 칼날 멧돼지의 고기만 먹고 사는 건 아니지만, 그 고기가 식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그래서였다. 드워프 마이만이 부르간 성에 오게 된 것은.

"저희 시켄들 상단과 거래를 하지 않겠습니까?"

석 달 전쯤부터 그런 말을 하며 접근해 거래를 제안하는 인간 상인들이 있었고, 처음엔 거절했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그 상단과의 거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시켄들 상단의 상인과 대화가 오갔고, 결국 다섯 장로가 시켄들 상단과 병장기와 식량을 교환하는 거래를 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단, 시켄들 상단이 정말 제대로 된, 신용할 수 있는 상단이란 확인이 됐을 때의 이야기였다.

"……이곳이 시켄들 상단."

손에 들고 있는 명함과 건물 간판에 걸린 글자를 비교한 젊은 드워프 마이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상단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이만은 상단 건물 주변을 돌아다녔다.

분위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정말 제대로 건실하게 장사를 하는 상단인지, 또 손님들이 많이 드나드는지.

물론 밖에서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그걸 다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어떤 자들이 드나드는지를 본다면 그것도 이 상단이 어떤 상단인지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크긴 정말 크네……."

3층 건물이었고, 북쪽 성문을 통해 들어와 이곳까지 오며 본 건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들도 많이 드나들었고,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확실히 건실히 장사를 하는 상단으로 보였다. 일단 겉모습은.

마이만도 물론 인간들을 신용하지 않았다.

줄무늬 칼날 멧돼지의 몸에 독이 생기고, 버티고 버티다 심각하게 식량 문제가 일기 시작했을 즈음에 딱 맞추기라도 한 듯 나타나 거래 제안을 한 것도 영 수상했다.

'그게 정말 우연일까.'

그러나 줄무늬 칼날 멧돼지들에게 독을 먹이 거나 주입한 거라면 새끼들에게도 독이 있을 순 없고, 더욱이 그 새끼의 새끼에게도 독이 있는 건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정문 쪽으로 돌아온 마이만이 이번엔 정문으로 갔다.

"무슨 용무십니까?"

"……이걸 주면 된다 했습니다."

"예?"

마이만은 로브를 입었고 머리엔 로브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 그저 키가 좀 작고 덩치는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마이만이 건넨 명함을 본 상인은 마이만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아직 거래를 하겠다 결정한 건 아닙니다."

"물론입니다. 충분히, 원하시는 만큼 저희 상단을 둘러봐 주시고 결정을 내리시면 됩니다."

상인이 깍듯한 태도로 말하곤 미소 지었다. 마이만이 조금 주저하다 상인의 뒤를 따라갔다.

그 모습을 상단 건물 밖,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용후가 보고 있었다.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쓴 상태로.

* * *

"상단주님! 왔습니다!"

그 보고에 상단주 롤브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씩 웃었다.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확신이 있었기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줄무늬 칼날 멧돼지들에게 쓴 독은 누구도 해독할 수 없는 독이었다.

인간들을 신용하지 않는, 배척까지 하는 드워프들이기에 그 독을 풀기 위해 마탑이나 연금술사 길드에 찾아갈 일도 없고, 찾아간다 해도 연금술사 드리안이 만든 독을 해독할 수 있는 해독제는 마탑에도 연금술사 길드에도 없었다.

'새끼에, 그 새끼가 낳은 새끼에게도 이어지는 독이라니…….'

5~6대에 걸쳐 독의 효과가 계속 이어질 거란 말까진 믿지 않았지만, 정말 사실이었던 것이다.

과연 현자의 연금술사란 별명을 얻을 만했다.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었지만, 돈값을 아주 톡톡히 했다.

드워프들이 만든 병장기는 노멀 등급이라 해도 부르는 게 값이었다.

옵션이 전혀 붙어 있지 않아도 내구력과 공격력, 방어력이 에픽 등급 이상이었다.

거기다 상태창으론 설명되지 않는 특별함이 있었다. 특히 검은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균형이 완벽했고, 드워프의 검을 쓴 자들은 손에 착착 감기며 10년 이상 써온 듯한 느낌이 든단 평들을 하곤 했다.

물론 검뿐만 아니라 창과 도끼, 갑옷과 방패도 하나같이 명품이었다.

그런 드워프들의 병장기를 취급할 수 있다면, 상단의 수익이 두 배 가까이 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드워프들의 가격은 그 이상이고, 흐흐."

드워프를 노예로 만들어 부리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손에 넣는 거나 다듬었었다. 그랬기에 드워프를 노예 경매로 팔면 성 한 채를 살 돈을 벌 수 있단 말도 있었다.

롤브는 엘프를 팔아본 적은 있지만 드워프를 팔아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높은 항마력을 가진 엘프들에게도 노예 각인을 새겨 넣었는데 드워프라 해서 못할 건 없었고, 어디서 어떻게 구했든, 드워프기만 하면 사려고 하는 귀족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그 드워프는 지금 어딨지?"

"1층 물류 창고를 둘러보고 있습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고 철을 두드리는 것밖에 없는 무식한 놈들이, 상단을 직접 들러봤자지."

롤브가 코웃음을 쳤다. 드워프가 아니라 작정하고 시켄들 상단의 구린 구석을 털어보러 온 정보 길드의 정보원이라 해도 자신들의 비밀은 절대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시켄들 상단은 안 좋은 이미지라곤 없는, 겉으론 아주 번듯하고 건실한 상단.

누구누구와 거래를 하고 어디서 물건을 떼 오는지 등이 실린 거래 장부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 정보 길드의 길드원이 잠입해 올 순 있지만, 구린 구석을 캐내러 들어올 일은 없었다.

그러나, 시켄들 상단의 주요 수입원은 따로 있었다. 장물 거래, 마약 판매, 노예 경매.

왕국법으로 금지돼 있는 이 세 장사를 시켄들 상단은 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부르간 성안에서 버젓이.

물론 영주가 그걸 허용해주고 있기에 할 수 있고, 또 들키지 않고 번듯한 상단인 척할 수 있는 것이었다.

대신 영주에게 막대한 뒷돈을 상납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이 세 장사로 얻는 수입은 번듯한 장사로 버는 수입의 3~4배, 많게는 5배가 넘는 때도 있었다.

특히 엘프나 드워프, 수인족 등을 손에 넣게 됐을 때가 그랬다.

"그 드워프가 충분히 상단을 둘러볼 수 있도록 도와줘. 원하면 거래 내역도 보여 주고. 확실히 신뢰를 얻어."

"그 완고한 드워프 장로들이 상단으로 드워프를 보낸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 이상 넘어온 거 아니겠습니까."

드워프 일을 진행해온 상인이 확신이 담긴 얼굴로 웃었고, 상단주 롤브도 기대에 찬 얼굴로 미소 지었다.

드워프들의 병장기 판매와 드워프 노예 경매. 그야말로 떼돈을 벌 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의 머리 위엔 지금 상태창이 아주 길게 펼쳐져 떠 있었다.

그걸 이 둘은 몰랐다. 용후의 눈에만 보이는 상태창이기에, 고개를 든다 해도 이 둘의 눈엔 물론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 * *

"……드워프가 악명이 3천이 넘는 자가 상단주로 있는 상단과 뭘 하려는 거지?"

드워프의 상태창은 상단 곳곳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건을 사러 왔거나, 뭔가 거래를 하기 위해 온 모습으론 보이지 않았다.

마치 상단을 살펴보는 듯한 움직임. 뭔가를 찾거나 알아내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들어간 것 같지도 않다. 드워프는 쭉 상인 둘과 같이 움직였다.

드워프가 인간의 성에 들어온 것도 이상한데, 상단의 상인들과 함께 상단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는 이유가 뭘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있었다. 저 상단이 제대로 된 상단이 아니라는 거.

'시켄들 상단이라…… 나름 인지도가 있는 상단인데 상단주 상태창이 왜 저 모양이지?'

대륙 전역에서 활동하는 대상단까진 아니지만, 다른 영지인 팔켄 마을에서도 가끔 이름이 들릴 정도니 어중이떠중이 상단은 아니었다.

건물 규모만 봐도 중급 상단 정도는 된단 거였다. 그런데 그런 상단의 상단주의 상태창에 적혀 있는 내용은 이런 악당이 없었다.

높은 악명 스탯도 스탯이지만 소개란엔 장물이니 마약이니, 노예 경매니 하는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상단주만이 아니라, 상단 건물 곳곳에 높은 악명 스탯을 가진 상인들이 많이 보였다.

도적 소굴이라 해도 될 정도. 반면 드워프는 악명 스탯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 드워프가 시켄들 상단과 뒤가 구린 거래를 하고 있거나, 뭔가를 꾸미고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시켄들 상단이 저 드워프를 꿰고 있단 거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는 게 드워프들이니.

'당하게 놔둘 순 없지.'

용후가 걸음을 떼 시켄들 상단 건물로 갔다. 드워프에게 부탁할 것도 있고, 드워프들과 거래를 트려는 목적도 있는 만큼 저 드워프가 상단, 그것도 도적 소굴 같은 상단과 거래를 트게 둘 순 없었다.

"마이만 씨, 이 상단하고 거래를 하면 안 됩니다."

물류 창고 앞에 선 용후가 큰 소리로 말했다. 큰 수레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나르고 있던 상인들과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드워프 마이만, 그리고 그 옆에 함께 서 있던 높은 악명 스탯을 가진 상인 둘이 용후 쪽으로 거의 동시에 몸을 돌리거나 고개를 돌렸다.

"……예?!"

갑자기 이름을 불리자 놀란 마이만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상인으론 보이지 않는 자, 인간의 성에서, 상단 사람이 아닌 다른 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 순 없었다.

아니, 상단의 사람 중에도 장로님들의 이름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이름을 아는 자는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너 뭐야!"

"뭐하는 새끼야!"

상인 둘이 마이만의 앞으로 나서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랑곳하지 않고 용후가 재차 말했다.

"장물, 마약, 노예 경매. 이 상단은 뒤가 구린 장사를 아주 많이 하는 상단입니다!"

두 상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어떻게?!

"겉만 번지르르하지 제대로 된 상단이 아닙니다. 거래하시면 안 됩니다!"

이 드워프가 이 상단과 거래를 하려는 건지, 뭘 하려는 건지까진 모른다.

그러나 시켄들 상단이 드워프를 꿰려 하는 이유는 뻔했다. 드워프들의 병장기, 또는 드워프들의 광산에 있는 철광석이나 마석.

그걸 얻어내려는 것일 터였다. 또는 노예로 만들어 팔거나.

'근데 인간을 믿지 않고 배척까지 하는 드워프를 어떻게 상단으로까지 오게 한 걸까.'

"이런 미X 새끼가!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 거야!"

"저리 안 꺼져! 계속 우리 시켄들 상단을 모욕하면 가만 안 둬!"

그러나 이번에도 용후는 상인 둘의 말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마이만 씨."

그때였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시는 거죠?"

마이만이 앞을 막아선 상인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상인들의 얼굴이 더 구겨졌고, 용후는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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