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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90화 (90/153)

# 90

기적의 스킬 자판기 090화

용후에게 딸을 치료하는 퀘스트를 준 홀더러스 남작은 바로 자신의 성으로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 피엔느를 데리고 다시 김용후가 있는 파칼 숲 끝자락의 천막으로 돌아왔다.

홀더러스 남작의 머릿속에 영지 전쟁에 대한 생각, 그리고 광산에 대한 욕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치료를 부탁하네."

바퀴 달린 의자에 딸 피엔느를 태우고, 그 의자를 직접 끌며 다가온 홀더러스 남작이 말했다.

얼굴에 걱정과 불안, 기대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제아무리 기적의 스킬을 쓴다지만, 교황청의 대사제도 마탑주도 풀지 못한 저주.

퀘스트까지 줬으나, 수작이었을 가능성을 여전히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용후가 홀더러스 남작의 딸에게 다가갔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과 누르스름한 눈동자, 바짝 말라붙은 입술에 용후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상태가 나빴다.

"주…… 주어어 주으으세…… 으으……."

힘겹게 고개를 든 피엔느가 용후를 올려다보며 말이 되지 못하는 웅얼거림을 냈다.

그러나 입모양으로, 용후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었다.

죽여주세요.

오히려 용후는 미간을 풀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피엔느의 깡마르고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손을 양손으로 가볍게 쥐었다.

홀더러스 남작이 놀라 한 발 앞으로 나섰으나 이내 다시 뒤로 물러섰다.

김용후의 얼굴에서 안쓰러워하는 듯한 감정이 보여서였다.

홀더러스 남작은 그제야 확신했다. 정말 김용후에게 딸 피엔느의 저주를 풀 수 있는 힘이, 스킬이 있다는 것을. 거짓말이 아니었다.

홀더러스 남작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신이시여…….'

그때, 용후의 양손이 돌연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

"오오!"

"영주님!"

"피, 피엔느 님! 보이십니까?!"

기사들이 낸 탄성에 홀더러스 남작이 의자 손잡이에서 손을 놓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곤 무너지듯 털썩 무릎을 꿇곤 피엔느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눈동자가 달라져 있었다.

노랗던 눈이 원래 색으로, 푸른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피엔느!"

홀더러스 남작이 눈물을 주륵 흘리며 피엔느를 끌어안았다.

"아……버……님?"

"피엔느!"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아기의 옹알이 같은, 말이 되지 못하는 말이 아니었다.

확실히 아버님이라 말했다.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뿐만 아니라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저주를 이렇게 간단히 풀어버리다니!'

다 사실이었다. 소문이 아니었다. 정말이다!

김용후는 기적을 일으키는 스킬을 쓰는 자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은 지키는 자였다.

약았단 김용후에 대한 평가가 홀더러스 남자의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 그 땅을 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귀도 들리느냐?"

"예…… 들려요……! 어떻게……! 어떻게 된 건가요?"

홀더러스 남작이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인사드리거라. 널 고쳐주신 은인이시다."

피엔느가 의자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오!

다시 기사들이 탄성을 내고, 홀더러스 남작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또 신을 찾았다.

엉거주춤했지만 자신의 두 발로 선 피엔느가 용후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든 피엔느가 눈물을 주륵 흘렸다. 그리고 홀더러스 남작을 돌아봤다.

이름을 알고 싶단 뜻임을 알아챈 홀더러스 남작이 얼른 말했다.

"유저 김용후 님이시다."

"용후 님……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매일매일 죽고 싶었던 그 끔찍한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이 기쁨과 행복,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고통 없이 단 하루만이라도, 단 몇 시간이라도 살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10년 동안 매일 했다.

피엔느는 이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 생각했다.

"아직 인사를 받긴 이릅니다. 호전됐을 뿐, 완치가 된 것은 아니니. 충분한 시간을 두고 몇 번 더 치료를 해야 됩니다. 하지만 약속드립니다. 틀림없이 완치될 것입니다."

저주 각인을 한 번에 지우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용후는 쓰다듬으면 다 고쳐 스킬을 쓰자, 몸속에 생겨난 미증유의 힘을 반만 짜내 저주 각인을 반만 지웠다.

이대로 두면 저주 각인은 다시 복구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쓰다듬으면 다 고쳐 스킬로 완벽히 지워낼 수 있다.

급할 게 없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홀더러스 남작과 딸 피엔느가, 그리고 기사들까지도 용후를 향해 허리를 숙여 또 인사를 했다. 동시에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1,000 오릅니다

완치가 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의 명성이라니. 완치를 시키고 나면 못해도 2배는 더 많은 명성이 추가로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럼 전쟁이 끝나면 다시 뵙겠습니다."

용후가 천막을 나갔다. 그리고 천막 앞에 대기하고 있던 박정석의 마차를 타고 군영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모든 부상자가 치료됐을 테고, 빌로도 성으로 다시 진군할 준비가 끝나 있을 것이다.

확실한 명분과 증거까지 있는 만큼, 용후는 빌로도 성은 적당히 땅을 좀 먹고 끝낼 생각이 없었다.

* * *

"이런 빌어먹을! 감히 날 배신해!"

둘 다 똑같이 자신의 영지로 들어오는 길목에 부대를 멈춰 세우곤 반나절 동안이나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었다.

전령도 두 번이나 보냈으나 홀더러스 남작은 답을 보내지도 않고 무시, 베킨 남작은 홀더러스 남작이 부대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움직일 수 없단 대답을 보내왔다.

"머저리들! 한 부대만 와도 김용후의 부대를 쓸어버릴 수 있는데 무슨 병신 짓거릴 하는 것이야!"

김용후의 유저 용병 부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합지졸이었다. 레벨도 50도 안 되는 용병들이 대부분.

그런 만큼 두 남작의 부대가 다 올 것도 없이, 한 부대만 와도 충분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김용후를 잡는 게 문제긴 하지만, 기사 여럿이 김용후에게 달려들어 근접전을 하면 못 잡을 건 없었다.

그러나 김용후가 기사들에게 둘러싸이는 상황을 만들려면 성벽 위에서뿐 아니라, 성 밖에서도 병사와 기사들이 김용후의 부대를 정신을 못 차리게 몰아붙여야 했다.

김용후가 바보가 아니니 접근해 오는 기사 여럿을 보고만 있진 않을 테니.

가장 확실히 김용후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베킨 남작의 부대가 와 좌우에서 김용후의 용병 부대를 쳐 정신을 쏙 빼놓고, 기사단장 트린과 베킨 남작의 기사단장인 히겔이 함께 김용후를 몰아 협공하는 것이었다.

위험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김용후를 잡고 김용후의 용병 부대를 일망타진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베킨 남작이 연맹을 맺은 사실을 없던 걸로 만들 생각인 듯합니다."

김용후가 보여 준 스판폰 속 영상엔 홀더러스 남작과 베킨 남작도 언급이 돼 있지만, 공성전을 돕지 않고 첩자의 모함이다 우긴다면 빠져나갈 구멍은 충분히 있었다.

"홀더러스 남작은 딸을 데리고 파칼 숲 끝자락의 영지 경계선으로 간 게 확인되었습니다. 김용후와 만난 듯합니다."

쾅! 빌로도 남작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병X 머저리 놈! 교황청의 대사제도 루물 마탑의 마탑주도 못 푼 저주를 유저 놈이 무슨 수로 푼다는 거야!"

"기적의 스킬을 쓴단 소문과 사제들도 치료하지 못한 부상자들을 치료했단 보고에 혹한 듯합니다."

"김용후는?"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유저 용병들의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2차 공격을 준비 중인 듯합니다."

빌로도 남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사 셋이 잡히긴 했으나 기사단이 건재한 이상 김용후에게 성이 함락당하지 않는단 확신은 있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더 피해를 입게 될 것인가.

"기사를 더 잃어선 안 돼!"

"하나, 기사들을 운용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아무리 오합지졸들이라 하나 두 배가 넘는 병력을 성안에서만 싸워 막기란 어렵습니다."

"방법을 찾아내! 그게 네놈이 하는 일이 아니더냐!"

빌로도 남작이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깨를 움츠린 책사가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하면, 기사전을 하는 건 어떨는지요?"

"기사단장 트린으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김용후가 권총을 쓰지 않고 검과 방패만으로 기사전을 하려 하겠는가?"

"권총을 쓴다 해도 근접전투에선 권총은 제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트린이 권총에 당하진 않을 것입니다."

"파므리엘이 권총에 맞아 허리가 잘려 죽었다."

"기사단장 트린은 강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또한, 방패에 오러를 집중시켜 막아낸다면 총알에 즉사 당하거나 전투 불능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총알 한 발을 막았을 때의 이야기. 여러 발을 쏜다면 아무리 오러를 방패에 집중시킨다 해도 즉사를 당하고 말리라.

그러나, 근접전에선 총알이 아닌 총구를 피하면 되니 애초에 능숙한 익스퍼트급 기사인 트린이라면 결코 총에 맞지 않을 것이었다.

"좋다. 트린을 보내라. 영웅 소리를 듣는 놈인 만큼 자존심도 높을 터. 일단, 권총을 뺀 검과 방패만으로 하는 기사전을 제안해라."

* * *

"김용후에게 기사전을 신청한다! 검과 방패로 당당히 겨뤄보자!"

"난 기사가 아니다! 검과 방패로만 싸우지 않는다. 나와 일대일로 싸우고 싶다면 말에서 내려라. 그럼 받아준다."

기마전이 아니라면 용후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 기사전을 통해 빌로도 남작의 기사단장을 잡는다면 얻는 게 상당했다.

일단, 이기면 유저들의 사기를 보다 더 올릴 수 있고, 부기사단장에 기사단장까지 사라진 빌로도 기사단은 첫 전투 때와 같은 일사불란하고 손발이 딱딱 맞는 전술을 펼칠 수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사기가 완전히 바닥을 치며 개개인의 전투력도 급감할 터. 훨씬 적은 피해로, 훨씬 빠르게 이 영지 전쟁을 끝낼 수 있다.

무엇보다, 트린을 잡으면 막대한 명성도 얻게 될 터. 수치상의 명성과 함께 자신의 이름값도 더더욱 드높아질 것이었다.

아쉬운 건 트린 쪽. 트린이 용후의 제안을 받아들여 말에서 내렸고, 용후가 앞으로 나갔다.

"시작해도 되겠나?"

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장 트린이 검과 방패를 가슴 앞으로 바짝 들어 올려 공격 자세를 취했다.

용후는 리볼버(+4)만 들어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트린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직후 트린이 옆으로 달렸다.

투앙투앙!

투앙!

총알 3발이 다 허공을 갈랐다. 총알을 보고 피해낸 건 아니었다. 총구를 보고 총알이 발사되기 전에 피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초인적인 반사신경과 신체 능력이 있어야 했다.

용후가 다시 트린을 겨냥했다. 트린의 몸이 푸른빛을 아지랑이처럼 피어 올렸다.

그리고 검날엔 푸른빛이 휘감기며 오러 블레이드가 만들어졌다. 방패도 푸른 기운을 머금었다.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오러가 소모되고 있을 테지만, 트린의 표정은 차분했다.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 듯한 모습. 확실히 첫 전투 때 잡은 기사보다 신체 능력뿐 아니라 오러의 양과 질이 몇 수 더 높았다.

"총은 내겐 통하지 않는다."

"글쎄, 어떨까."

용후가 트린을 향해 리볼버(+4)를 마저 더 쐈다. 그러나 이번에도 트린은 말한 대로 총알 3발을 다 피해냈다.

대단했다. 하지만 아주 정직히 쏜 총이었다. 급박한 전투 중엔 1초 간격으로 쏘아져 나가는 총알을 다 피해내지 못할 것이다.

총알은 얼마든지 있고, 이젠 자동사냥 중에도 총알을, 게다가 아주 빠르게 장전할 수 있다.

트린이 지면을 박차며 용후를 향해 돌진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강기가 불꽃처럼 변해 사납게 치솟고, 롱소드의 오러 블레이드가 순간 더 쭉 길어졌다.

"빛의 검(+1)! 자동사냥(+3)! 염력!"

연달아 시전된 3개의 스킬이 만들어낸 빛과 성검 벨베른에 빛줄기들이 휘감기며 생겨난 빛까지 더해져 용후의 몸이, 순간 트린의 시야를 뺏을 정도로 밝은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때 리볼버(+4)의 탄창이 저절로 열리고 허공에서 총알 20여 발이 나타나 허공에 둥둥 떴다.

그중 6발이 용후의 등을 따라나선 모양으로 회전하더니 옆으로 젖혀져 있는 리볼버(+4)의 탄창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그리고 탄창이 또 저절로 닫혔다.

'저건 뭐야!'

총알이 스스로 날아 정확히 권총 속으로 들어간다? 듣지 못한 기묘한 술법에 트린의 눈이 커졌다. 직후 용후의 몸이 가속하며 트린을 향해 마주 달렸다.

"놈!"

쩌엉!

트린이 휘두른 오러 블레이드와 용후의 빛의 검이 충돌해 푸르고 흰빛의 파편들이 튀어 오르고, 사나운 검풍이 생겨나 그 파편들을 사방으로 훅 흩뿌렸다.

빌로도 성 쪽에서도 용후의 부대 쪽에서도 동시에 탄성과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때 투아아아앙! 대포가 터진 것 같은 굉음이 그 함성들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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