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기적의 스킬 자판기 086화
비리마 성에서 단체 퀘스트를 만든 뒤 용후는 교회로 갔다. 교회 부지로 들어가자마자 용후를 알아본 한 사제가 다가와 인사를 해왔다.
팰린 대주교로부터 김용후가 방문하면 깍듯이 대하고 자신에게 알리란 말을 들었고, 무려 이단심문관 발렌티와도 각별한 사이가 됐단 소문도 돌고 있었다. 사제는 긴장까지 하며 용후를 대했다.
"팰린 대주교님을 만나 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약속을 하고 온 건 아닙니다. 지금 만남을 청하면, 언제쯤 만나 뵐 수 있을까요?"
"팰린 대주교님은 대주교실에 계십니다. 지금 용후 형제님의 방문을 전한다면, 바로 만나 뵐 수 있으실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의자에 앉아 기다릴 수 있는 곳으로 용후를 안내한 사제가 바로 그 방을 나와 대주교실로 올라갔다. 그러곤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지금 뵙겠다 하십니다."
하급 사제가 앞장을 섰고 용후가 뒤를 따랐다. 대주교실로 들어가자,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대주교 팰린이 활짝 웃으며 용후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성호를 긋고 세히브교식의 인사를 아주 정중하게 했다. 용후도 인사를 했다.
하급 사제는 대주교실을 나가고, 팰린이 용후에게 방 중앙에 있는 소파를 권했다.
"또 뵙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흑마법사 벨베른과 악마교를 토벌하신 이야길 듣고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이단심문관 발렌티 님께서 감사를 전했겠지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과찬이십니다. 비리마 남작님과 교회가 절 믿고 큰 힘을 보태준 덕분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겸손하시군요, 용후 형제님이 이끈 토벌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들 하더군요.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팰린 대주교가 용후의 얼굴에 계속 금칠을 해줬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도 자커스 도적단 소탕을 통해 큰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지금은 김용후의 이름이 왕도와 교황청에서도 퍼지고 있었다.
김용후의 이름값이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심지어 비리마 남작이 김용후를 사위로 들이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그 이유도 더해, 팰린 대주교는 김용후와의 인맥을 보다 더 깊게 다지고 싶었다.
갑자기 비리마 성으로 올라와 교회에 들린 건 자신에게 부탁할 게 있단 뜻, 팰린 주교는 그 부탁이 무엇이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늘 교회에 들른 건 교회의 도움으로 큰일을 해냈고 그 덕분에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었던 만큼 기부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부탁드리고 싶은 일도 있어서입니다."
그렇게 말한 용후가 인벤토리에서 500골드가 든 금화 주머니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팰린 대주교의 눈이 커지고 입가의 미소가 커졌다. 하하! 500골드라니. 통이 얼마나 큰 자인가.
아무리 S등급 퀘스트를 연달아 클리어하며 돈도 많이 벌었겠지만, 그래도 생각지 못한 고액이었다.
부탁이 뭐길래 이렇게나 기부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그건 제쳐 두고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부하신 돈은 단 1골드도 허투루 쓰이는 일 없이 교회를 위한 일에 쓰일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이라면 힘이 닿는 한 힘껏 돕겠습니다."
"우선, 이번 토벌 중에 암흑마력에 부상을 입은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를 지금처럼 계속, 완치가 될 때까지 해주셨으면 합니다."
용후는 자신의 퀘스트를 하며 부상을 입은 자들을 다 완치시켜주고 싶었다.
물론 계산도 있었다. 그래야 또 비리마 성의 퀘스트를 하게 된다면 유저들을 또 쉽게 모을 수 있게 될 테니.
쓰다듬으면 다 고쳐 스킬은 지금은 외상만 치료할 수 있었다. 상태 이상과 질병 치료는 되지 않았다.
암흑마력은 일종에 상태 이상, 그러니 암흑마력에 의한 상처도 치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킬 레벨이 오르면 상태 이상도 질병 치료도, 어쩌면 기억 소실까지도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진 교회의 힐을 사용한 치료가 계속되어야 했다.
그걸 지금처럼 계속 무상으로 해달라 부탁한 것이었다. 부상자들이 치료비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용후는 쓰다듬으면 다 고쳐 스킬의 스킬 레벨을 올리는 걸 최우선으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 만큼 상태 이상과 질병 치료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지만, 팰린 대주교로서는 그걸 알 수 없으니, 이 부탁만으로도 500골드는 결코 큰 기부금이 아니었다.
"물론입니다. 교회의 일을 돕다 부상을 입은 자들입니다. 교회가 책임지고 그들을 완치시킬 것입니다. 교황청이 반드시 암흑마력에 의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만들어낼 테고, 그때까진 저희 교회가 부상자들의 상처를 돌볼 것입니다."
그러나, 팰린 대주교의 표정에 확신은 별로 담겨 있지 않았다.
교황청이 마인들에 맞서기 위해 신약을 만들었듯 암흑마력에 의한 상처를 치료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긴 하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일 터다.
그러나 계속 부상자들을 무상으로 치료해주겠다 했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다른 하나는, 치료 권능을 쓸 수 있는 사제 20명을 보름간 팔켄 마을로 파견해 주셨으면 합니다."
비리마 성 교회에 있는 사제 수는 50여 명, 그중 힐을 쓸 수 있는 사제는 40명 정도였다.
그러니 사제 반을 파견해 달란 부탁은 무리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용후는 팰린 대주교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흐음…… 그렇게나 많은 사제를 무슨 연유로 필요로 하시는지요?"
팰린 주교의 표정이 조금 무거워졌다.
"영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영지 전쟁……이라니요?!"
"벨베른의 토벌 퀘스트를 하던 중 베킨 남작님의 첩자 한 명을 잡아냈고, 그 첩자를 통해 알아낸 정보입니다. 파견된 사제님들이 위험에 처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안전한 곳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일만 부탁드릴 겁니다."
"……."
팰린 대주교가 대답을 못 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영지 전쟁에 교회의 사제를 파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쟁이 끝난 뒤라면 가능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라도 그렇게 많은 사제를 파견하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지만, 팰린 대주교는 무리를 해서라도 그건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또 하나, 이 부탁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이번 토벌 퀘스트의 보상으로 비리마 남작님께 파칼 숲을 받은 걸 알고 계실 겁니다. 용병들을 고용해 그 파칼 숲의 몬스터들을 정리할까 합니다. 그때 사제님들이 토벌 중에 다친 용병들을 치료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아…….
파칼 숲의 몬스터 토벌은 그저 명목상의 이유라는 걸 팰린 대주교는 바로 눈치를 챘다.
파칼 숲은 그렇게나 많은 사제가 필요할 정도로 몬스터 토벌이 어렵고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베킨 남작과의 전쟁, 즉 눈 가리고 아웅을 해달란 말이었다.
그러나 막무가내의 부탁이 아니었다. 파칼 숲의 몬스터 토벌. 나름 스무 명이나 되는 사제들을 파견한 명분이 돼 줄 수 있었다.
교황청의 골칫거리였던 흑마법사 벨베른과 악마교를 소탕한 김용후에겐.
교황청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해도 자신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눈 가리고 아웅을 해주면 김용후와 자신은 더 깊은 관계가 될 수 있다.
또, 만에 하나 김용후가 영지 전쟁에서 패배한다 해도 베킨 남작도 세히브교를 믿는 자, 후방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데만 쓴다면 사제들이 위험해질 일은 없었다.
"그렇군요……팔켄 마을은 초보 유저들이 활동하는 마을, 정말 영지 전쟁이 일어난다면 무고한 많은 자이 제때 마을을 피하지 못하고 휩쓸려 다칠 위험이 많겠군요. 또한, 파칼 숲에서 대대적인 몬스터 토벌을 하신다면 힘을 보태는 게 응당 교회가 할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기사와 병사 없이, 용병들만으로 숲의 몬스터 토벌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으실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제 스무 명을 파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용후가 웃었다.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지금쯤이면 팔켄 마을로 용병들이 모여들고 있단 소식이 세 귀족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세 귀족이 병력을 다 모아 움직이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유저들에게 퀘스트를 뿌리고 조금이라도 더 용병들이 팔켄 마을로 모여들게 해야 한다.
세 귀족이 쉽게 수작을 걸고 공격해오지 못하도록.
교회를 나온 용후가 박정석의 마차를 타고 바로 비리마 성을 나가 또 다른 마을로 향했다.
* * *
"이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제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팔켄 마을에 1,200명이 넘는 유저들이 모여 있다고 합니다. 그 중 유저가 아닌 일반 용병들의 수도 100명이 넘습니다."
"허…… 대체 뭐가 어찌 된 건지……."
서로의 정보원들이 모아온 정보를 나누며 1시간 2시간 대화를 나눠 봐도 김용후가 뭘 어떻게 한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시간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파칼 숲을 노리고 있단 사실을 벨베른 퀘스트를 하던 도중에 알게 됐다 해도.
"그 기적의 스킬이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그러나 그 스킬이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움직이지 말고 기다립시다. 그 많은 용병을 고용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겠습니까. 김용후가 아무리 두 S등급 퀘스트를 클리어해 큰돈을 벌었다 해도, 1천 명이 넘는 용병들을 계속 데리고 있을 순 없습니다. 용병들과의 계약일이 끝나 흩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입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헨슬런 백작이 우리를 이용해 김용후를 잡으려 한다면, 지금 팔켄 마을의 상황을 알고 있을 테고,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헨슬런 백작은 우리들의 생각을 충분히 짐작할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 비리마 남작을 경계해 주겠지요.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하지만……."
홀더러스 남작의 표정은 여전히 좀 어두웠다.
"S등급 퀘스트를 연달아 클리어한 자입니다. 아무리 그 기적의 스킬이란 게 대단해도 머리를 쓸 줄 아는 자일 겁니다. 그런 자가 이 정도 생각도 못 하고 그 많은 용병을 고용했을는지요……."
그 말에 두 남작의 표정도 다시 좀 굳었다. 그러나 이내 빌로도 남작이 콧방귀를 뀌며 큰 소리를 냈다.
"근본도 없는 천하지 천한 검은 머리의 유저 놈이 머리를 굴려 봤자지요. 그 유저 놈이 1천이 넘는 유저들을 보름이고 한 달이고 데리고 있을 수 있는 돈이 없단 건 확실합니다. 아무리 S등급 퀘스트를 3개나 연달아 클리어했다 해도, 김용후가 보상으로 받은 건 팔켄 마을과 파칼 숲입니다. 아무리 S등급 퀘스트였다 해도 마을과 숲을 그냥 줬을 리가요. 팔았겠지요. 그러니 절대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 말에 동의하는 표정들은 아니었지만 베킨 남작과 홀더로스 남작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곤 반박을 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좋은 방법이 기다리는 것임은 분명하기에. 정말 용병들이 흩어진다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팔켄 마을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세 귀족은 모은 병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팔켄 마을을 주시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빌로도 남작의 영지로 김용후의 용병 부대가 진군을 시작한 것이었다.
* * *
"이런 미X놈을 봤나!"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아직 자신들은 파칼 숲으로 병력을 넣어 내 땅 네 땅거리며 시비를 걸지조차 않았다.
그런데 뭘 했다고 자신의 영지로 군대를 몰고 온단 말인가!
김용후는 유저 태생이라 해도 지금은 귀족. 명분 없이 영지 전쟁을 거는 건 도적단이 되겠단 거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고작 준남작, 아무리 김용후의 명성이 높아졌다 해도 영지 전쟁을 하려면 적당히 짜 맞춘 명분이 아닌 제대로 된 명분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벨베른 퀘스트와 악마교 퀘스트에 첩자를 넣어 토벌을 방해하고, 파칼 숲을 빼앗으려 계획하고 실행한 걸 영지 전쟁의 이유라 밝혀왔습니다."
"뭐라!"
비서의 이어진 보고에 빌로도 남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첩자를 넣은 것도, 파칼 숲을 빼앗으려 계획하고 실행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고작 심증이 명분이 될 순 없었다.
"……저희 쪽 첩자의 증언을 갖고 있답니다."
"무슨 헛소릴! 증언을 무슨 수로 갖고 있어!"
"김용후가 이계템인 스판폰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빌로도 남작의 입이 벌어졌다. 그런 빌로도 남작의 반응에 몸을 떨며 비서가 보고를 이어갔다.
"……첩자가 갖고 있던 빛나는 증표를 사용해, 그 스판폰 안에 증언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다른 때라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보고에 책상 위의 물건이 비서의 얼굴로 날아갔겠지만, 너무 당황해서인지 빌로도 남작은 몸을 부르르 떨곤 눈을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다.
그 말은, 김용후가 이미 벨베른 퀘스트를 수행하던 중에 자신들이 파칼 숲을 뺏으려 한단 걸 알고 있었단 뜻이었다.
그렇다면, 파칼 숲 안에 광산이 있단 것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빌어먹을……!'
빌로도 남작의 병력 규모는 약 700. 반면, 빌로도 남작령으로 향하고 있는 김용후의 병력은 1,500에 육박했다.
아무리 기사단이 있고, 병사들의 전투력이 레벨이 50이 안 되는 유저들 정돈 간단히 잡을 수 있다 해도 2배가 넘는 병력, 자신의 병력만으론 막아낼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인접해 있는 영지들이라 해도, 두 귀족들에게 전령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고 두 귀족의 병력을 성까지 오게 하는 데는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걸릴 터였다.
빌로도 남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빌어먹을! 서둘러라! 가장 빠른 말을 보내 지원 요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