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기적의 스킬 자판기 082화
결계 안.
"좀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저도 느꼈습니다."
"용후 님이 성공하신 듯합니다."
모두가 느꼈다. 악마의 기운이 조금 전보다 약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악마는 여전히 강했다.
전혀 상황은 좋아졌다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싸울 수 있는 건 6명뿐. 4명이 죽은 건 아니지만, 전투 불능 상태였다.
그때였다.
"……아악!"
파빈의 비명이었다. 악마가 휘두른 다리 중 하나에 허벅지를 베이고 만 것이었다.
상당히 깊고 길게 찢어진 허벅지에서 피가 쏟아지고 상처가 검게 물들었다.
동시에 오러홀의 회전 속도가 느려졌다.
결계까지 오며 구울과 스켈레톤, 듀라한과 데스나이트들에게까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오러홀을 돌리지 못할 정도의 데미지를 입진 않았다.
그러나 악마의 공격, 정확히는 악마가 쓰는 암흑마력의 수준이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본신의 힘을 반밖에 갖고 오지 못했고 용후가 계약자인 벨베른을 죽이면서 더욱 힘이 약화됐지만, 그럼에도 파빈의 몸속으로 파고든 악마의 암흑마력은 금세 파빈을 완전히 전투 불능 상태에 빠트렸다.
사제 둘이 파빈을 향해 힐을 썼지만, 상처는 역시 다 아물지 못하고 이내 다시 벌어져 버렸다.
"……크윽! 틀렸습니다."
"파빈 님!"
"더는 무리입니다! 결계에서 나가야 됩니다! 결계에서 나가면 저 악마는 쫓아오지 못할 겁니다!"
악마에게 달려들려다 말고 파빈의 비명을 듣고 멈춰선 성기사가 외쳤다. 얼굴에 공포심이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불경한! 악마를 앞에 두고 도망치겠다는 겁니까!"
발렌티의 매서운 외침에 성기사가 반박을 못하고 입을 닫았다. 그러나 얼굴엔 여전히 공포만이 차 있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걸 발렌티도 느꼈다.
저 성기사만이 아니다. 파빈까지 당하자, 파티원들의 얼굴에서 사기가 싹 사라졌다.
그러나 발렌티는 결계에서 나갈 생각이 없었다. 단지, 악마를 앞에 두고 도망갈 수 없단 신념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용후가 벨베른을 잡은 건 틀림없다. 그리고 김용후가 결계를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악마의 힘이 약화됐다.
먼 거리까지 가지 않았단 뜻이다. 다만 하나 걱정되는 건 김용후가 언데드 떼를 뚫고 얼마나 빨리 결계로 돌아올 수 있느냐였다.
'온다고 했으니, 온다.'
10분 안에.
겪어본 김용후는 그런 자였다.
"여신의 신벌!"
발렌티가 최대한 권능들을 쓰지 않고 끌어 모아둔 신성력을 오른손에 쥐고 있는 메이스에 전부 쏟아 부으며 권능을 시전했다.
콰릉!
성물인 메이스가 신성력을 더욱 증폭시키며 빛을 냈고, 직후 악마의 머리 위에서 번개가 치며 뇌전이 떨어졌다.
파지지직!
머리로 떨어지는 뇌전을 눈치채고 악마가 재빨리 움직였지만 아무리 육체 능력이 초월적이라 해도 머리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피하긴 힘들었다.
더구나 힘이 더 약화된 상태, 악마가 발렌티의 뇌전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어깨에 맞았다.
왼쪽에 달린 4개의 팔이 전부 뇌전에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 절단면으로 뇌전이 파고들어 절단면을 새까맣게 태우고 악마의 핵까지 공격했다.
"크허어어어어엉!"
전신이 뇌전에 휩싸인 악마가 고개를 쳐들고 고통에 찬 비명을 터뜨렸다.
마법이었다면 막강한 항마력에 의해 그리 큰 데미지를 입진 않았겠지만, 강력한 신성력이 담긴 뇌전, 거기다 핵까지 공격당했기에 악마는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다.
기사와 성기사들이 달려들어 추가 공격을 날렸다면 더 큰 데미지를 입히며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 상황을 반전시키긴 힘들었다.
"허! 벌써 재생을!"
"보이는 것과 달리 데미지도 그리 들어가지 않았어요!"
"발렌티 님!"
급기야 사제들까지 발렌티를 재촉했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발렌티의 눈치를 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리 악마를 앞에 두고 사제와 성기사인 자신들이 도망을 가는 게 이단이 될 수 있다지만, 무조건 목숨까지 던져 싸워야 한단 교리는 없었다.
그러나 발렌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혼자 메이스와 방패를 치켜들고 악마를 향해 돌진했다.
"저런 무모한!"
"발렌티 님!"
"돕지 않으면 죽고 말 겁니다!"
그러나 기사도 성기사들도 주춤거릴 뿐, 발렌티의 뒤를 따르지 못했다.
벌써 잘린 팔의 재생을 끝낸 악마가 8개의 다리에 암흑마력으로 만든 강기를 휘감고, 머리 위엔 5개나 되는 마법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살아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허어……!"
발렌티가 쏟아지는 다크볼과 다크 스피어를 메이스로 깨부수고 방패로 막아 터뜨리며 계속 돌진했다.
기사도 성기사들도 탄성을 넘어 질린 표정들을 지었다. 무모하지만, 강했다.
그저 무모하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의 강함에 자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 악마를 상대할 순 없었다.
쩌엉!
"……크흑!"
수많은 다크볼과 다크 스피어를 막아내며 녹아내린 방패가, 악마의 다리 공격을 막지 못하고 뚫렸다.
악마의 다리가 발렌티의 견갑까지 뚫고 어깨에 박혔다. 이어 또 다른 다리가 발렌티의 왼쪽 허벅지를 뚫었다.
"발렌티 님!"
"보고만 있을 겁니까!"
"트, 틀렸습니다! 틀렸단 말입니다!"
악마가 금속성의 괴성을 터뜨리며 입을 쩍 벌렸다. 그 입속으로 발렌티가 흘린 피가 후두둑 쏟아졌다.
그 피를 악마가 긴 혀를 날름거리며 받아먹었다. 그리고 그때, 또 다른 다리가 발렌티의 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후웅!
갑자기 결계가 흔들렸다.
모두가, 그리고 악마까지도 결계를 뒤흔든 진원지를 바라봤다. 결계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뛰어들어 오며 불꽃과 굉음을 터뜨렸다.
투아아앙!
용후가 악마를 향해 리볼버(+4)의 총알 6발을 전부 쏴 갈긴 것이었다.
"……키헤에에에엑!"
5,500이 넘는 데미지! 악마가 괴성을 터뜨리며 휘청였다.
그 직후, 발렌티의 몸을 꿰뚫고 있던 악마의 다리가 잘려나갔다. 악마가 더 큰 비명을 터뜨렸다.
그저 잘린 게 아니라 빛의 검에 담긴 강력한 신성력이 절단면으로 파고들어서였다.
용후가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허공에서 포션과 총알들이 나타났다. 결계로 들어오자마자 자동사냥(+3) 스킬을 시전한 상태, 염력 스킬로 인벤토리에서 빼낸 것이었다.
포션병의 코르크마개가 저절로 뽑히고 거꾸로 뒤집힌 포션병이 발렌티의 상처 부위로 쏟아졌다.
그리고 총알 6발은 자동으로 열린 리볼버(+4)의 탄창으로 속속 들어갔다.
용후의 몸이 다시 리볼버(+4)에 장전된 총알 6발을 전부 쏘며 악마를 향해 달렸다.
* * *
'강하다.'
용후는 살짝 기가 질렸다.
리볼버(+4)로도 빛의 검으로도 정말 많은 공격을 성공시켰다. 게다가 발렌티의 뇌전 권능도 간간이 떨어져 악마의 어깨를 자르고, 몸속을 진탕시켰다.
머리로 떨어져 머리를 산산조각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악마는 쓰러지지 않았다. 금방 재생을 해버렸고, 그렇게 하고 있는 데도 기운은 거의 약화되지 않았다.
더 높은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공격이 필요했다.
방법이 있었다.
용후가 염력을 사용해 인벤토리 안에서 현자의 강화석을 꺼냈다. 그리고 빛의 검을 강화시켰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악마의 핵에 균열을 만들 수 있는, 유효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게 빛의 검이었다.
훙!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빛의 검이 빛의 검(+1)이 됩니다
용후의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은 그게 다였다. 특별한 효과가 생겨나진 않았다.
그러나 느낄 수 있었다. 빛의 검이 더 완전한 형태의 오러 블레이드가 됐다는걸.
그리고 그 오러 블레이드 속에 더 많은 신성력이 담기게 됐다는 걸.
"빛의 검!"
쿨타임이 리셋됐기에 용후가 빛의 검을 새로 썼다.
유지 시간이 거의 다 돼 흐릿해져 있던 빛의 검이 유리조각처럼 깨져나가고, 새로운 빛줄기들이 생겨나 무아지경의 검을 휘감았다.
조금 전보다 더 긴, 그리고 더 밝은 빛으로 이루어진 검신이 만들어졌다.
"발렌티 님 물러서세요! 엄호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용후의 검에 둘린 마법 같기도 하고 권능 같기도 한 묘한 스킬의 기운이 달라진 걸 느낀 발렌티가 용후의 말에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곤 자신의 몸, 갑옷과 메이스, 방패에 걸려 있는 권능들까지 전부 풀어 신성력으로 되돌리곤 몸속에 쌓았다.
여신의 신벌을 더 빨리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허공에 펼쳐진 마법진들에서 쏟아지는 마법들을 바람처럼 달리며 피하고 빛의 검으로 잘라 흩어낸 용후가, 몸을 가속시키며 악마의 허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자자자작!
암흑마력이 강기처럼 휘감겨 있는 악마의 팔이 무 썰리듯 썰려 나가고, 옆구리까지 길게 베이며 엄청난 양의 검은피가 쏟아졌다.
악마가 고개를 쳐들며 고통이 담긴 비명을 터뜨렸다.
'통한다!'
조금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엔 강기가 둘려 있는 악마의 팔을 베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도 간단히 팔을 자른 건 물론, 잘린 팔의 절단면이 재생되지 않고 연기를 피워 올리며 계속 피를 쏟았다.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았지만, 아주 얇은 빛줄기들이 절단면에 휘감겨 있었다.
그 빛줄기가, 그 빛줄기 속에 담긴 높은 신성력이 상처 부위를 계속 태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몸속 깊숙이 들어가 핵에까지 데미지를 입혔다.
"크허어어어엉!"
포효를 터뜨린 악마가 용후를 향해 남은 팔을 휘둘렀다. 자동사냥의 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느려졌지만, 핵에까지 데미지를 입어 균형을 잃은 악마의 공격을 피하기엔 충분히 빨랐다.
용후의 몸이 검술 스텝을 밟으며 악마의 몸 곳곳에 빛의 검을 휘둘러 상처를 늘려갔다.
공격을 한 번 성공시킬 때마다 악마의 핵에 데미지가 들어가며 핵에 쩍쩍 금이 갔다.
"오오! 악마가 내뿜는 기운이 약해졌습니다!"
"암흑마력의 농도도 옅어졌어요!"
"이길 수 있을지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였다.
콰쾅!
악마의 머리 위에서 번개가 쳤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굵어진 뇌전이 악마의 머리로 떨어졌다.
더 굵어진 것만이 아니라 더 빨라져 있기까지 했다.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핵에 균열까지 가 있는 상태, 암흑마력의 농도가 옅어지며 반대로 본래 힘을 거의 되찾은 여신의 신벌을 악마가 정수리에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파지지지직!
"……크허어어어엉!"
악마의 머리를 터뜨린 뇌전이 몸을 반으로 가르며 바닥에 꽂혔다. 수십 줄기로 나뉜 낙뢰 줄기들이 이번엔 악마의 다리를 타고 다시 위로 솟구쳤다.
그러면서 용후가 만들어놓은 상처들로 파고들어 핵을 향해 내달렸다. 악마의 몸이 부들부들 떨다 결국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때 용후의 자동사냥 스킬이 풀렸다. 용후가 스스로 달렸다. 벌써 악마의 몸이 재생되고 있었다.
지금 잡아내야만 한다. 자동사냥 스킬이 풀렸고, 빛의 검의 유지 시간도 곧 풀린다.
스킬 레벨업도 없을 테고, 현자의 강화석도 없다. 아무리 핵에 큰 균열을 만들어 놨다 해도 핵마저도 금방 복구를 해버릴 것이다.
용후가 이를 악물고 더 속도를 냈다. 그새 머리를 반쯤 재생시킨 악마가 한쪽 눈으로 용후를 보며 남은 팔 2개를 휘둘렀다.
빨랐다.
자동사냥 없이 직접 저 공격을 막거나 피해낸 뒤 핵이 있는 왼쪽 가슴에 검을 찔러 넣진 못할 것이다.
"흐아아앗!"
용후가 악마의 팔 공격을 무시하고 계속 돌진했다. 그리고 뇌전들이 유독 많이 뭉쳐져 있는 부위를 빛의 검으로 찔렀다.
그곳이 핵이 있는 곳이다! 동시에 악마의 팔 하나가 용후의 옆구리로 쇄도했다.
쩌엉!
'됐다!'
악마의 핵은 형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용후는 핵을 꿰뚫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다 재생되지 못한 머리의 절단면과 몸 곳곳의 상처들로 검은 연기 같은 암흑마력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악마의 몸에 불이 붙었다.
화르르륵!
악마의 몸이 빠르게 재로 변해갔다. 용후가 뒤로 물러났다. 악마의 손이 용후의 옆구리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져 타들어 갔다.
옆구리에서 검게 변한 피가 쏟아졌다. 그러나 용후에겐 암흑마력 저항력과 재생력이 있었다.
죽지 않는다.
"……해냈다."
그때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암흑 저항력 스탯이 100 오릅니다
-신성력 스탯이 개방됩니다
-신성력이 300 오릅니다
-생명력 스탯이 50 오릅니다
-대성수 100개를 얻었습니다
-백금화 100닢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용후가 발렌티가 건 추가 보상인 3개의 1급 성물 중 하나를 골랐다.
-1급 성검 벨도렌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