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기적의 스킬 자판기 077화
용후가 계속 첨탑 지붕들을 빠르게 건너뛰었다. 마법사 알렉스를 떨어트리긴 했지만, 리볼버(+4)를 명중시킨 건 아니었다.
알렉스가 디딘 첨탑 지붕을 맞춰 중심을 잃게 해 떨어지게 만든 거였다.
상당한 높이지만, 레벨이 80이 넘으니 아무리 마법사라 신체 스탯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해도 죽진 않았을 터였다.
또는 땅에 떨어지기 전에 다른 마법을 썼을 수도 있었다.
첨탑 지붕 5개를 더 건너뛴 용후의 눈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알렉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알렉스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대로 추락했다면 목숨을 잃진 않았어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크게 다쳤겠지만, 역시 뭔가 마법을 더 쓴 것이다.
용후의 몸이 첨탑 아래로 뛰어내렸다. 성벽보다 더 높은 높이지만, 용후의 몸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착지와 동시에 바로 앞으로 질주했다. 가속까지 썼다.
그렇게 전력으로 달리며 허리의 검집에서 무아지경의 검을 뽑아 들었다. 리볼버(+4)를 쏠 것도 없었다.
부상을 입은 알렉스는 느렸고, 추락할 때 마법을 쓴 터라 바로 또 마법을 쓸 수 없었다. 또, 비리마 성은 세이브존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용후의 몸이 무아지경의 검을 휘둘렀다.
촤악!
"……크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른 알렉스가 허리에서 엄청난 양의 피를 쏟으며 앞으로 쓰러져 바닥을 굴렀다.
구르다 멈춘 알렉스의 몸이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에 잠기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5분 안에 숨이 끊어질 것이었다.
용후가 자동사냥 스킬을 풀었다. 그리고 알렉스의 숨통을 끊지 않고 내성을 나가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이 비리마 성의 부활 장소였다. 멀지 않았다. 달리면 5분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
용후가 광장에 도착했을 때 알렉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인벤토리로 헨슬런의 편지가 들어와 있지 않았다.
알렉스의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단 뜻이었다.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분수대 뒤쪽에서 빛이 일렁였다.
마법과는 다른 빛, 부활의 빛이었다.
용후가 리볼버(+4)를 꺼내 들고 분수대 뒤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활을 끝낸 알렉스의 얼굴로 리볼버를 겨누고 헨슬런 백작의 편지를 들어 올렸다. 알렉스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일그러졌다.
"그게 어떻게……!"
말이 되지 않았다. 절대 드랍될 수가 없었다. 황당해서 말이 다 나오지 않았다.
'아니, 드랍된 게 아니다!'
빼낸 것이다.
소문 대로였다. 있을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스킬을 쓴다는 소문 말이다.
용후가 말을 이었다.
"한 번 더 죽을 겁니까, 아님 날 믿고 내 첩자가 되겠습니까?"
물론 거짓말이었다.
첩자 짓을 하고, 자신의 일을 망치려 한 자를 위해 애를 쓸 생각도,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었다.
알렉스도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헨슬런 백작의 편지를 빼앗겼으니.
비리마 남작이 이 편지를 갖고 헨슬런 백작을 찾아가 알렉스가 헨슬런 백작의 첩자였단 걸 실토했단 말을 하면, 알렉스는 절대 헨슬런 백작의 용서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니 알렉스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자신, 그리고 비리마 남작의 옆에 붙어 최대한 협조하는 거였다. 비리마 남작이 자신을 용서해주길 바라며.
"……알겠습니다.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연구실에서 했던 약속은 꼭, 꼭 지켜주십시오."
"당신이 열과 성을 다해 최대한 협조한다면, 저도 비리마 남작의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힘쓸 겁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잘해 봅시다."
그렇게 말하며 용후가 웃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알렉스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용후의 손을 맞잡았다.
믿을 수가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기에.
"일단 알렉스 씨의 연구실로 돌아가죠. 거기서 알렉스 씨가 헨슬런 백작에게 가서 전할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즉, 자신이 만들어준 거짓 보고를 새로 전하란 거였다.
"그리고 하나 더."
걸음을 떼려던 알렉스가 용후의 그 말에 발을 다시 제자리로 돌렸다. 용후가 말을 이었다.
"그 이계템 내놔요."
알렉스의 인벤토리에 스마트폰이 있었다.
통화나 와이파이는 당연히 될 리 없다. 그러나 녹음 기능과 카메라만으로도 활용처는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부르는 게 값인 이계템이었다.
* * *
헨슬런 백작의 집무실.
자신이 이중첩자가 됐단 걸 헨슬런 백작이 눈치채지 못했다 생각하며 알렉스가 계속 말을 이었다.
"바트리칸 산맥으로 간 조사단이 벨베른과 악마교의 병력이 원정대가 보고한 것 이상으로 많단 보고를 해왔습니다. 비리마 남작과 교회 병력의 토벌대만으론 벨베른과 악마교 토벌에 성공할 확률은 5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고를 다 들은 헨슬런 백작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비리마 성의 토벌대가 벨베른과 악마교 토벌에 실패한다면 그 타격이 상당할 테고, 그만큼 비리마 남작의 전력이 약해질 테니, 헨슬런 백작의 입장에선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러고 나면, 벨베른 토벌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명목을 만들어 비리마 영지에 시비를 걸고 전쟁으로까지 몰아갈 수 있을 터다.
비리마 남작령을 통째로 먹기는 힘들겠지만, 병력을 더 줄여놓고, 땅을 좀 따먹거나 상당한 액수의 전쟁 배상비를 얻어낼 수 있을 터.
그리고 비리마 남작이 실패한 벨베른과 악마교 토벌을 자신이 해내면 자신의 명성은 보다 더 크게, 그리고 더 빨리 왕궁에 닿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성공 확률 50%는 토벌에 실패할 가능성도 높지만, 성공할 가능성도 있단 거였다.
"그래서?"
더 해보란 뜻으로 헨슬런 백작이 알렉스에게 턱짓을 했다.
"비리마 남작이 유저들에게도 퀘스트를 걸었습니다. 그 퀘스트를 받고 모여든 유저 용병 부대까지 합쳐야 성공 확률이 50%가 됩니다. 그러니 기사 10여 명과 유저 용병 부대의 고레벨들을 토벌 도중에 빼내면 토벌 성공 확률은 절반도 되지 않게 될 겁니다."
헨슬런 백작이 대답하지 않고, 턱수염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그걸 보는 알렉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렇게 몇 분, 이마에 가득 찬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을 즈음 헨슬런 백작이 입을 뗐다.
"좋다. 기사 한 명당 1,000골드씩 10,000골드, 유저 용병들을 빼낼 비용으로도 10,000골드를 주겠다. 그리고 성공하면 알렉스 네게 포상으로 2,000골드를 주겠다. 확실히 해내라."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땀범벅이 된 알렉스가 쓰게 웃었다. 과연 헨슬런 백작!
100골드만 돼도 엄청난 액수다. 그런데 기사 한 명을 빼내는데 1,000골드라니. 그러나 충분히 납득이 되는 액수였다.
기사라 해서 다들 기사도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넘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헨슬런 백작은 그 정도 액수는 줘야 확실히 주인을 배신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2,000골드! 방금 보고한 게 다 사실이고, 실제로 자신이 해낸 일이라면 저 2,000골드를 받고 자신의 인생은 확 바뀌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김용후에게 붙어 제발 잘 좀 봐달라며 목숨을 애걸해야 하는 상황. 쓴웃음조차도 잘 지어지지 않았다.
"몸이 좋지 않나?"
"……예? 아, 아닙니다."
헨슬런 백작의 녹색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책상 앞에 서 있는 알렉스를 빤히 바라봤다.
알렉스의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들었다. 그리고 바닥으로 땀 방울이 몇 방울 떨어졌다. 알렉스가 고개를 숙인 채 필사적으로 몸이 떨리는 것만은 참아냈다. 그때였다.
"급히 내 성으로 달려왔을 테니 피로가 많이 쌓였겠지. 하지만 서둘러 돌아가라. 비리마 그 여우 같은 자를 속이려면 틈을 보여선 절대 안 될 것이야."
"……알겠습니다."
알렉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헨슬런 백작의 집무실을 나가, 바로 타고 온 말을 타고 비리마 성으로 향했다.
한편…….
알렉스가 헨슬런 성을 떠난 뒤에도 헨슬런 백작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점점 세력을 키우며 치고 올라오는 비리마 남작을 고꾸라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알렉스가 이 중 첩자가 됐을지 모른단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헨슬런 백작도 벨베른과 악마교 토벌의 총지휘관에 유저인 김용후가 임명됐고, 김용후가 신비한 스킬을 쓴다는 이야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다. 유저들은 스킬이라는,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힘을 쓰지만, 그렇다고 진짜 마법사보다 진짜 기사보다 더 강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귀족들에게 있어 유저들도 마찬가지로 작정하고 없애고자 하면 간단히 눌러 죽일 수 있는 벌레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유저가, 자신을 농락할 수 있단 생각을 헨슬런 백작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때, 헨슬런 백작이 책상 위에 놓인 벨을 눌렀다. 벨이 놓인 책상 주변에 마법진이 새겨졌다. 그리고 잠시 뒤 비서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헨슬런 백작이 말했다.
"비리마 남작에게 벨베른과 악마교 토벌을 맡긴다는 편지를 써서 보내라. 내가 아주 기대가 크며, 성공을 기원한다는 말과 함께."
* * *
-2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비리마 성으로 돌아온 알렉스가 헨슬런 백작에게 받은 매수비 2만 골드를 그대로 용후에게 건넸다.
알렉스가 헨슬런 백작에게 한 보고는, 전부 용후가 알려준 말이기 때문이었다. 또, 인벤토리, 그것도 인벤토리 속 아공간 가방에 든 아이템까지 빼내는 용후기에 알렉스는 액수를 속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약속을 꼭 지켜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능력이 있는 자인만큼 곁에 두고 써볼까 하는 욕심도 내심 들었지만 첩자 짓을, 그것도 이중첩자까지 하는 자를 어떻게 믿고 곁에 두겠는가.
그리고 용후는 비리마 남작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도 지금 같은, 가능하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떨어지는 게 얼마나 많은가.
"알렉스 씨의 거취가 결정 나면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주십시오. "
그 말을 끝으로 알렉스의 연구실을 나온 용후가 비리마 남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기사와 병사, 마법사 갈렉스가 알렉스의 연구실이 있는 첨탑을 둘러싸고 몇은 첨탑을 올라갔다.
"어서 오게!"
용후가 집무실로 들어가자 비리마 남작이 의자에서 일어나 용후를 반겼다. 책상 위에 헨슬런 백작의 편지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건가?"
"첩자를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테이블 앞 소파에 비리마 남작과 마주앉은 용후가, 헨슬런 백작으로부터 2만 골드를 받았단 이야긴 빼고 적당히 각색을 거쳐 설명을 했다.
2만 골드가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헨슬런 백작이 알렉스에게 준 돈은 비리마 남작의 기사와 퀘스트에 참가한 용병 유저들을 매수하기 위한 돈, 헨슬런 백작이 2만 골드를 갖고 태클을 건다면 기사들을 돈으로 매수하려 했단 게 알려지게 되니, 돈 이야기는 나올 수가 없었다. 알렉스의 말은 누구도 믿지 않을 테고.
"첩자를 잡아낸 것부터 헨슬런 백작의 생각을 바꾸기까지, 정말 대단하군. 용후 자네라면 해낼 줄 알았네."
"운이 좋았습니다. 토벌대 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다 끝났네. 비리마 성에서 활동하는 유저들도 절반 이상이 참가했네."
그렇다면 내일 아침 토벌대를 출발시킬 수 있다.
결국, 헨슬런 백작 때문에 지체된 시간은 전혀 없게 된 셈이다. 첩자를 잡아 비리마 남작의 호감도를 500 올렸고, 돈만 2만 골드를 벌게 됐다.
"부대 편성이 어떻게 됐는지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습니다."
집무실을 나온 용후가 연병장으로 향했다.
부대 편성에 대한 대단한 지식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용후에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세세하게 볼 수 있는 스킬이 있다.
그걸 통해 부대 편성을 좀 더 균형 있게 조율하는 게 가능했다. 특히 용병 부대의 조율은 꼭 필요했다.
분명 파티들 위주로 편성이 돼 있을 테니.
그런데 토벌대 부대를 살피던 용후의 눈에 묘한 상태창들이 보였다.
총 3명의 첩자와 1명의 암살자가 섞여 있었다.
첩자들은 비리마 남작령 인근의 귀족들인 빌로도, 베긴, 홀더러스가 보낸 자들이었고, 암살자는 NPC로 유저 박경일이 보낸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