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기적의 스킬 자판기 075화
용후가 집을 나섰다.
염력 마법을 얻었단 알림창을 막 봤을 땐 실망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염력 스킬이 지금 자신의 전투력을 가장 많이 올려줄 수 있는 스킬이었다.
염력 마법으로 총알들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탄창 안에 장전해 넣는 정교한 컨트롤까지도 가능하니.
"그저 서 있는 상태였고, 속도도 그리 빠르진 못했지만……."
그건 스킬 레벨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격하게 전투를 벌이는 상태에서도 리볼버(+4)의 탄창을 열고 총알들을 빠르게 탄창 안에 넣을 수 있게 될 터다.
그리고 다른 스킬들처럼, 5레벨 이상 오르거나 MAX를 달성하면 분명 특수한 효과도 생겨날 것이다.
현자의 강화석으로 강화를 한다면 더 특별한 효과도 생겨날 테고.
사실 당장 염력 스킬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용후에겐 현자의 강화석이 하나 남아 있었다.
큰 현자의 돌의 파편으로 만든 강화석으로 스킬 자판기를 강화할 때 튀어나온 파편이었다. 충분히 현자의 강화석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러나…….
"일단, 남겨두자."
마음을 가다듬었다.
염력 스킬은 이제 1레벨. 빠르게 해내진 못했지만 1레벨에서 이 정도로 정교하게 컨트롤을 해 리볼버의 그 작은 탄창 구멍에 넣었으니, 레벨이 1레벨만 올라도 더 확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 조급한 마음에 염력 스킬에 현자의 강화석을 써버리면, 후회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강영재가 하급 악마를 소환했을 때 하나 남겨둔 현자의 강화석으로 자동사냥 스킬을 강화해 위기를 모면했던 것처럼, 지금보다 더 현자의 강화석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생길 수 있었다.
"나 2골드만."
파칼 숲의 초입을 막 지난 지점.
어그로가 걸린 고블린이 용후를 향해 괴성을 터뜨리며 돌진했다. 그러나 다른 고블린들은 저게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뛰쳐나간 고블린을 바라만 봤다.
그때, 나 2골드만 스킬의 쿨타임이 끝났다.
"나 2골드만."
두 번째로 2골드만 스킬을 건 고블린은 금화를 갖고 있지 않아 금화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역시 어그로는 확실히 끌려 용후를 향해 달려왔다.
그때, 용후가 인벤토리를 불러내고 염력 스킬을 썼다.
훙!
일부러 리볼버(+4)의 탄창은 전부 비워둔 상태, 용후가 염력만을 사용해 리볼버의 탄창을 젖혀 열고, 총알 6발을 탄창을 향해 이동시켰다.
옅은 빛에 휩싸인 총알 6개가 리볼버(+4)를 향해 날아가 탄창에 한 발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6발을 다 허공에 띄워 이동시킬 순 있어도 탄창 구멍들에 한꺼번에 넣는 건 불가능했다.
'한 발, 두 발, 세 발…….'
거기까지.
고블린이 10m까지 거리를 좁혔다. 용후가 염력으로 리볼버(+4)의 탄창을 닫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리볼버를 쥐고 손잡이 아랫부분으로 고블린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키헥!"
레벨 58, 스탯 수치상으론 80레벨대! 고블린의 머리가 산산조각으로 터지며 바닥으로 고꾸라져 용후의 발 앞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다 축 늘어졌다.
염력 스킬을 올리는 거니 총알(+4)까지 쏠 필요는 없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퍽!
"……키헤엑!"
뒤따라 달려온 고블린은 발로 얼굴 안면을 차 머리를 터뜨렸다. 피와 뇌수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고블린을 피해 용후가 슬쩍 비켜섰다.
고블린이 바닥으로 쓰러져 몇 바퀴를 구르며 멈췄고, 용후는 다시 리볼버의 탄창을 열어 채워 넣은 총알 3발을 바닥으로 쏟아냈다.
그러나 그 총알들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도중에 멈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다시 총알 6발이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용후가 리볼버(+4)에서도 손을 뗐다.
그 상태로 용후가 더 깊은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몬스터들은 어디서든 보였다. 몬스터가 보이면 그 즉시 나 2골드만 스킬을 써 어그로를 걸고, 몬스터들이 달려오는 동안 염력으로 리볼버(+4)의 탄창을 열고 총알들을 탄창 안에 채워 넣는 연습을 했다.
스킬 레벨이 오르지 않았어도 연습을 하자 조금씩 조금씩 총알을 탄창에 넣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리고 그걸 1시간 정도 했을 때였다.
-염력이 2LV이 됩니다
이후 염력으로 총알들을 움직이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연습으로 좀 능숙해진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게 스킬의 힘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자동사냥 중에도 염력을 사용해 리볼버(+4)에 총알을 장전할 수 있느냔 거였다.
처음에 비하면 총알을 장전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으니, 슬슬 자동사냥 스킬 중에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마침 오크들이 내는 소리가 들렸다. 용후가 염력의 효과가 끝나자 바로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총알과 리볼버(+4)를 주워들고 그 방향으로 갔다.
"염력."
용후가 먼저 염력 스킬부터 새로 걸었다. 그리고 자동사냥 스킬을 썼다.
'오크들 왼손으로만 사냥.'
검을 썼다간 오크가 7마리나 된다 해도 순삭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맨손으로, 그리고 왼손만 쓴다면 서너 번 정도는 쳐야 완전히 숨이 끊어질 것이다.
컨트롤이 걸리자마자 용후의 몸이 오크들을 향해 바람처럼 내달렸다.
"취케헥!"
"취헥!"
뭔가가 수풀을 마구 헤치며 빠르게 내달리는 소리에 오크들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
그 직후, 이미 거리를 좁힌 용후의 몸이 한 오크의 턱에 왼주먹을 꽂아 넣었다.
"……취케헥!"
비명을 꽥 지른 오크의 머리가 옆으로 홱 돌아가며, 결국 몸까지 허공에 뜨며 핑그르르 돌아 멀찍이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오크는 터프하고 호전적이었다. 날아간 오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른 오크들은 검을 뽑아들고 용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용후가 인벤토리창을 열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창 안에서 총알들을 꺼내고,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리볼버(+4)의 탄창을 열었다.
'이런…….'
쉽지 않았다.
몸이 계속 격하게 움직이니 리볼버(+4)의 위치가 계속 바뀌었다. 게다가 탄창 구멍들은 얼마나 작은가. 그러나 용후는 계속 정신을 집중해 총알들을 탄창을 향해 움직였다.
그때, 한 발이 탄창 안으로 들어갔다. 게다가 원래대로라면 움직이고 있으니 바로 빠져나와 버렸겠지만, 염력으로 그 상태로 있도록 하면서 또 다른 총알을 이어 넣는 데 성공했다.
'된다!'
가능했다.
물론 아직은 빠르지 못했다. 그러나 연습을 계속하고 스킬 레벨을 더 올리면 충분히 10초 내로 총알 6발을 장전해 넣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전투 소리를 듣고 근처에 있던 오크들이 더 몰려왔다. 그 오크들을 계속 왼손만으로 잡게 하며 용후는 리볼버(+4)의 탄창에 총알을 장전하는 연습을 더 했다.
잠시 뒤.
스킬 레벨이 3레벨이 되자 용후는 미련 없이 파칼 숲을 나와 박정석의 마차를 타고 비리마 성으로 향했다.
"뭐든 다 만들어."
달리는 차 안에서 용후가 그린 마석으로 총알을 만들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총알들이 염력에 의해 마차 안을 둥둥 떠다니며 리볼버(+4)의 탄창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계속 반복했다.
* * *
고급스러운 가구들과 미술품들로 채워진 방이었다. 그 방의 중앙에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진 긴 식탁이 놓여 있고, 그 식탁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남자 셋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셋 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동자, 듬성듬성 난 콧수염과 턱수염, 몸 어디든 살집이 두둑했다. 살이 쪄 늘어졌지만, 피부엔 윤기가 좔좔 흘렀다.
쩝쩝촵촵!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들로만 채워진 방과 고급스러운 귀족 옷과는 어울리지 않는, 게걸스러운 느낌까지 드는 소리가 아무 대화도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
셋 중 가장 젊어 보이는 남자가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천으로 입을 쓱 닦으며 입을 뗐다.
남작 홀더러스였다.
"악마교 퀘스트만이 아닙니다. 흑마법사까지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흑마법사를 잡으려 했고, 그 흑마법사가 악마교와 연관되어 있단 걸 알고서, 그 흑마법사를 통해 악마교까지 잡으려 하는 것입니다."
용후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리마 성에 영주가 만든 단체 퀘스트가 유저들에게 떴고, 그 이야기가 비리마 영지와 인접해 있는 세 영지, 홀더러스, 베긴, 빌로도 영지로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히 흘러 들어간 게 아니었다. 비리마 성에서 활동하는 정보원들에 의해 보고가 올라온 것이었다.
"그자가 그 자라지요?"
또 다른 남작, 베긴이 입을 닦아내지도 않고 입안에 아직 남은 고기를 쩝쩝 씹으며 말했다.
"예, 그자가 그자입니다. 자커스 도적단을 소탕한 유저."
"그렇다면…… 교회와 비리마 남작 양쪽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는 만큼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높군요."
빌로도 남작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공할 겁니다."
세 귀족이 똑같이 기대감에 찬 표정들을 지었다. 일이 아주 쉽게 풀리려 하고 있어서였다.
파칼 숲 안에 광산이 있었다.
채광꾼들의 말에 따르면, 어마어마한 양의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을 거라 했다.
그러나 비리마 남작은 그 광산의 존재를 몰랐다. 알았다면 그 광산을 아직 손도 대지 않고 있을 리 없으니.
그랬기에 세 남작들은 파칼 숲을 비리마 남작으로부터 빼앗으려는 작당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위는 남작에 불과하나, 남부에서 헨슬런 백작에 버금가는 재력을 가진 그를 도모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온갖 계획이 세워졌다가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최근 자커스 도적단이 소탕되며, 도적단을 잡기 위해 사용되던 병력이 영지 방어에 집중되면서 더욱 수작을 부리기가 어려워진 상황.
그러던 차에 들려온 게 유저 김용후에 대한 이야기와 악마교 퀘스트였다.
"자커스 도적단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 김용후가 비리마 남작에게 요구한 보상이 팔켄 마을이었습니다. 현재 팔켄 마을의 주인은 김용후 그 유저입니다. 땅에 욕심이 있는 자입니다. 분명, 이번 악마교 퀘스트의 보상으로 파칼 숲을 달란 요구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악마교와 흑마법사를 잡는 데 일조해 큰 명성을 얻을 수 있다 해도, 비리마 남작이 숲을 통째로 주려 하겠습니까?"
"비리마 남작이 원하는 건 승작입니다. 악마를 소환해 재앙을 불러들일 수 있는 흑마법사에, 교황청이 잡으려 애를 쓰고 있는 악마교까지 잡아낸다면, 승작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말하는 홀더러스 남작의 눈에 확신이 차 있었다.
"하긴…… 비리마 남작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작위 문제니."
"그렇게만 된다면 파칼 숲을 뺏을 수 있겠군요. 그것도 아주 간단히 말이죠."
비리마 남작과 달리 상대는 고작 준남작 작위를 가진 유저, 전쟁의 명분을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누구도 이 영지 전쟁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비리마 남작이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비리마 남작이 움직이기 전에 끝내버리면 되었다.
상대는 고작 파켈 마을과 파칼 숲만 가진, 병력조차 갖고 있지 않은 유저 신분의 하급 귀족이니.
그런 생각들을 하며 세 귀족이 비슷비슷한 얼굴로 비슷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빌로도 남작이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그러자 뒤에 대기하고 있던 하인이 포도주를 들고 와 잔에 따랐다.
빌로도 남작이 그 잔을 들고, 이어 다른 귀족들도 하인이 채운 포도주 잔을 들었다.
빌로도 남작이 말했다.
"김용후의 악마교 퀘스트 성공을 기원하며!"
"세 영지의 동맹을 축하하며!"
"광산을 위하여!"
세 귀족이 포도주잔을 쨍 소리 나게 부딪치며 탐욕이 가득 담긴 얼굴로 포도주를 들이켜거나 천천히 음미했다.
* * *
비슷한 시각.
용후의 악마교 퀘스트에 대한 보고를 들은 자가 한 명 더 있었다.
헨슬런 백작이었다.
"비리마 남작에게 전령을 보내라. 흑마법사 벨베른과 악마교 토벌에서 손을 떼라고."
헨슬런 백작에게 올라온 보고는, 단순히 비리마 성안에서 활동하는 정보원들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를 모아 만든 게 아니었다.
헨슬런 백작은 비리마 남작의 내성 안에 첩자를 두고 있었다. 그것도 비리마 남작의 측근 중 한 명이었다.
그랬기에 세 귀족이 받은 정보와 달리, 벨베른과 악마교 토벌에 동원하는 병력의 전력까지 아주 세세하게 보고 내용에 담겨 있었다.
헨슬런 백작은 비리마 남작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 내용을 전부 적었다.
그리고 그 정도 전력으론 토벌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니 토벌을 멈추란 식으로 이유를 적게 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측근 중에 첩자가 있단 걸 알게 되겠지만, 그 측근이 누군지만 밝혀지지 않는다면, 혹 잡힌다 해도 자신의 첩자라는 것만 발설하지 않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중요한 건 명분이었다.
왜 비리마 남작과 교회의 토벌을 중단시키고 자신이 토벌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명분.
물론 헨슬런 백작은 벨베른과 악마교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비리마 남작과 교회의 병력을 모아 만든 토벌대가 벨베른과 악마교를 토벌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자신의 부대에 의해 벨베른과 악마교가 토벌되고 난다면 말이다. 얼마든지 자신의 입맛대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명분은 하나 더 있었다.
벨베른도 악마교도 자신의 영지 안에 있는 자들. 자신이 토벌하는 게 당연했다.
"지금부터 내 영지 안으로 다른 영지의 병력을 일체 들이지 마라. 허락 없이 들어오면 공격도 불사한다는 걸 편지에 적어 넣어라."
비서가 깃펜을 쥔 손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편지가 다 작성되자 즉시 집무실을 나갔다.
"재밌군. 악마를 소환하는 흑마법사와 악마교라."
아주 큰 공이 될 것이다. 왕궁으로까지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게 될 터다. 그리고, 흑마법사와 교회의 금고는 드래곤의 레어에 버금간다는 말이 있다. 막대한 재화도 벌어들이게 될 터.
또, 그게 아니더라도 비리마가 승작을 하게 둘 수는 없었다. 남부의 패자는 쭉 자신이어야 하니. 비리마는 쭉 남작으로 있어 줘야 했다.
아직, 헨슬런 백작의 머릿속에 용후에 대한 생각은 들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