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기적의 스킬 자판기 070화
머리와 가슴에 듬성듬성 구멍이 뚫린 강영재가 고통에 찬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나 강영재의 몸은 이미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두 걸음 세 걸음의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고, 리볼버(+4)에 장전된 총알 6발을 다 쐈지만 맞은 건 4발, 그리고 그 4발 중 한 발, 머리로 쏜 총알은 빗나가기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강영재가 몸을 옆으로 던지고 달려 용후의 사격을 피해낸 것이었다.
그러나 거리가 있었기에, 용후는 리볼버(+4)를 4발 다 명중시킨다 해도 강영재를 리볼버만으론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력으로 달리며, 용후가 무아지경의 검을 가슴 앞으로 세웠다.
"빛의 검!"
자동사냥 스킬의 쿨타임은 길어 다시 쓰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되지만, 빛의 검은 아니었다.
훙!
무아지경의 검에 새하얀 빛을 내는 빛줄기들이 휘감겨 순식간에 빛의 검을 만들어냈다.
마저 강영재와의 거리를 좁힌 용후가 아직 재생을 완전히 끝내지 못한 강영재를 향해 빛의 검을 휘둘렀다.
자동사냥에 비하면 한참 느리고 또 어설픈 검술.
그래도 검술의 움직임이었고, 자동사냥에 비하면 그렇단 거지 스탯 수치가 80레벨대인 용후의 속도는 결코 늦지 않았다.
촤악!
-……크허어엉!
용후가 휘두른 빛의 검이 강영재의 왼쪽 옆구리를 베고 빠져나왔다.
그런 뒤에도 용후는 계속 자동사냥 스킬을 통해 배운 검술의 스텝을 밟으며 움직였다.
반원을 그리듯 돌아 강영재의 등으로 파고든 용후가 이어 찌르기 공격을 날렸다.
쉭!
푸확!
-크허어어어엉!
강영재가 고개를 쳐들며 고통에 찬 괴성을 터뜨렸다.
리볼버(+4)로 쏜 총알 4발이면 공격력이 무려 3,600이 넘는다. 얼굴 쪽은 빗맞았다 해도 3,000 정도의 데미지가 몸에 들어갔을 터. 아무리 마인이 되며 생명력 스텟이 3~4배가 올랐다 해도, 그래도 3천의 공격력은 엄청 높았다.
그러니 아무리 실시간으로 재생이 된다 해도 두 번의 공격을 더 허용한 강영재는 몸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했고, 이어 세 번째 공격까지도 허용했다.
오른쪽 다리였다. 허벅지가 아니라 발목 쪽을 노렸다. 절단이 되도록.
오른쪽 발목이 완전히 잘린 강영재가 중심을 잃고 휘청이다 옆으로 기울어졌다.
기울어지면서도 변형되며 길어진 팔로 용후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용후는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쓰러진 강영재의 머리 쪽으로 달려가 검을 쥔 팔을 발로 밟고 목으로 빛의 검을 휘둘렀다.
써걱!
절단이었다.
보통 검이었다면 매직 등급이라 해도 절대 한 번의 베기 공격만으로 레벨이 70이 넘고, 모든 스탯이 몇 배로 오른 괴물의 목을 자르지 못했겠지만, 빛의 검엔 간단히 잘려나갔다.
물론 바로 목의 절단면의 조직들이 자라나며 재생이 이루어졌지만, 용후는 이어 심장에 빛의 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암흑마력이 뭉쳐 회전하고 있는 배꼼 밑 복부에도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강영재의 몸을 휘감으며 돌고 있는 암흑마력들이 한순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역시.
"후우……."
땀범벅이 된 얼굴로 깊은숨을 내쉰 용후가 뒤로 물러났다. 그때 허공에서 빛이 반짝했다.
그리고 죽은 강영재의 가슴 위로 툭 뭔가가 떨어졌다.
열쇠였다.
그 열쇠가 사라졌다.
그 템 내 거 스킬의 효과로 자동으로 용후의 인벤토리로 이동된 것이었다.
"인벤토리."
용후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들어와 있었다.
씩 용후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상태창이 다 보여."
그저 상태창을 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적힌 설명창이 떠올랐다.
용후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 커졌다.
'벨베른이 쳐놓은, 벨베른이 들어가 있는 결계를 여는 열쇠가 틀림없어.'
벨베른에 대해 가장 많은 걸 알고 있을 강영재를 생포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걸 얻었으니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계가 어디에 쳐져 있는지까진 설명창에 적혀 있지 않았다.
용후가 남은 마인 유저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단 심문관 발렌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알아내 줄 것이다. 흑마법사 벨베른의 결계가 쳐져 있는 곳의 위치를.
퍼억!
-……크허어엉!
발렌티의 메이스에 관자놀이를 맞은 마인 유저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져 흩어졌다.
머리를 잃은 마인 유저가 암흑마력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휘청였다. 그때, 발렌티의 메이스가 이번엔 배꼽 아랫부분을 후려쳤다.
퍼억!
복부가 터지며 피와 내장이 콸콸 쏟아졌다. 그리고 마인 유저의 몸을 타고 흐르던 암흑마력이 한순간에 소멸해 사라졌다.
이제 남은 마인 유저는 한 명이었다.
그랬기에 리볼버(+4)에 총알을 다 채웠지만, 용후는 굳이 발렌티를 돕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레벨이 150대가 아니라 200이라 해도 믿겠군.'
이단 심문관들의 강함에 대해선 잡화점 알바 시절에도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책을 통해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니 그 이상,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적이 아님에도 용후는 긴장감을 느꼈다.
그때,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이단 심문관 발렌티가 만들어낸 번개였다.
파지지지직!
콰쾅!
새파란 뇌전이 마인 유저의 몸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머리가 아니었다. 뇌전이 마인 유저의 팔을 어깨 부위에서 자르며 바닥에 꽂혀 뇌전 줄기를 사방으로 뿌렸다.
-크허어어엉!
마인 유저가 팔의 절단면에서 검게 변한 피를 콸콸 쏟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 상태로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전신에 휘감긴 뇌전 줄기들 때문이었다. 빗나갔지만 몸속도 엉망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빗나간 게 아니었다. 발렌티는 일부러 빗맞혀 팔만 자른 것이다. 전투 불능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도 마인 유저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신에서 막대한 마력을 마구 소모하는 만큼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전투불능에 빠지면 마인 상태가 풀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닌 듯했다.
마인 유저들은 지성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전부 몬스터들처럼 괴성만 질러댔다.
목과 혀까지 변형이 돼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일 터다. 그렇다면 생포한다 해도 신문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단 심문관들이 열게 하지 못하는 입은 없다.
발렌티가 사제복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알약?"
크기가 좀 크긴 했지만 그렇게 보였다.
"상태창이 다 보여."
발렌티의 손에 쥐어진 알약 같은 게 마인 유저의 입으로 들어가기 전에 용후가 재빨리 상태창 스킬을 써 알약의 설명창을 열었다.
세히브교 교황청 신약과에서 만든 '마인 수명 유지제'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거기까지.
그 이상의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짐작은 갔다.
그래도 직접 듣는 게 확실하다. 용후가 이단 심문관 발렌티에게 다가갔다.
* * *
"교황청이 만든 신약입니다. 이 자를 죽지 못하게 하는 약이죠."
권능으로 만들어낸, 빛으로 이루어진 줄로 마인 유저의 몸을 포박하며 발렌티가 대답했다.
평범한 포박법이 아니었다. 이전 팔켄 마을에서 성기사들이 도적들을 잡았을 때 쓰던 포박법과도 달랐다.
배꼽 아래 단전 부위에 빛으로 이루어진 줄이 열 개가 넘게 교차하도록 하며 팔다리를 포박해 연결하고, 목에까지 빛의 줄을 세 번이나 둘렀다.
마인 유저에게 먹인 신약부터 특별한 포박법까지. 마인화 상태가 된 벨베른의 수하들을 잡아본 적이 있단 뜻이었다.
"길게는 일주일까지도 살아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유저를 심문해 알고 있는 모든 걸 불게 할 수 있죠."
포박을 다 끝낸 발렌티가 그런 말을 덧붙이며 슥 곁눈질로 용후를 봤다.
반응을 살피는 기색.
퀘스트를 받아내기 위해 자신을 더 설득하지 않고 너무 쉽게 물러선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제들에겐 벨베른의 퀘스트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으니 더욱 그러겠지.
그래서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해준 것이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다 말하며 떠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발렌티에게 퀘스트를 받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느긋한 용후의 태도에 발렌티의 미간이 좁혀졌다.
"벨베른의 소굴을 알아내면, 교회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습니다. 형제님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교회의 일은 교회가 해결합니다."
용후가 속으로 웃었다.
"흑마법사 벨베른을 잡는 일이 어찌 교회만의 일이겠습니까. 벨베른을 잡기 위해 가장 많은 인력을 동원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 교회지만,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자인만큼 한 마을의 주인인 저 또한 반드시, 그리고 가능한 빨리 잡아내 재앙을 막고 그동안 저지른 악행에 대한 죗값을 치르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벨베른의 수하를 생포한 이상, 벨베른은 잡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는 안 된다.
벨베른의 결계가 있는 곳을 알아낸다 해도 결계를 열진 못할 테니.
결계는 성과도 같다.
성을 함락시키려면 성안에 있는 병력의 몇 배의 병력이 필요한 만큼, 결계도 그랬다.
더구나 상대는 흑마법사. 게다가 악마까지 다루는 자다. 금단의 술법에도 손을 대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대 깨지지 않는 결계를 만들어냈을 것이었다.
어떤 마법사를 데려가도 절대 쉽게 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설마 인벤토리 안에 있는 결계의 열쇠를 뺏길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이단 심문관들도, 그게 누구든 입은 열도록 만들 순 있어도 인벤토리에 든 물건을 꺼내게 할 순 없었다.
죽으면 인벤토리 속 아이템이 드랍이 되기도 하지만, 병장기가 가장 드랍율이 높고, 그다음은 인벤토리 상단에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장비가 아닌 아이템, 게다가 인벤토리 하단에 넣어두면 드랍될 확률은 없다고 해도 되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템이 용후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용후는 이 스킬이 이단 심문관에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생각했다.
아직은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비리마 성의 교회로 함께 가겠습니다. 혹, 이단 심문관님께서 원하는 정보나 필요한 물건을 다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땐 제게도 그 유저를 심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흑마법사 벨베른을 하루라도 빨리 잡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단 심문관님께서 이 유저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다 얻어내신다면 저 또한 기쁩니다. ……그저 만일을 대비해서입니다. 저도 심문에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자커스 도적단을 소탕할 때, 생포한 도적의 입을 연 게 자신.
큰 사건이었던 만큼 발렌티도 그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을 대비해 혹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만한 걸 쥐고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또 하나.
또 다른 벨베른의 수하들이 또 김용후를 공격해 올 수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만일을 대비해 벨베른의 수하들을 더 생포할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좋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알겠습니다. 같이 가죠.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발렌티가 입에 손을 대고 휘파람을 휙 세게 불었다. 꽤 먼 곳에 떨어져 있던 튼튼하게 잘빠진 백마가 달려왔다.
발렌티가 그 말에 탔다.
말이 조금 앞으로 걷자 발렌티가 손에 말아쥐고 있는 빛으로 된 줄에 포박되어 있는 마인 유저가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질질 끌려갔다.
"함께 타시겠습니까? 둘도 거뜬히 태우고 달릴 수 있는 말입니다."
"마차가 있습니다. 제 마차를 타고 따라가겠습니다. 전력 질주를 하지만 않으신다면 좋은 말들이 끄는 마차라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말을 돌린 발렌티가 말에 박차를 가해 달렸다. 용후는 마차의 바퀴 자국을 따라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 마차를 만나 마차에 올랐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히 돌아온 용후의 모습에 NPC 용병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상처를 많이 입긴 했지만 아낌없이 쓴 중급 포션과 재생력, 암흑마력 저항력 덕분에 마차로 돌아올 즈음엔 전부 치료가 된 것이었다.
"비리마 성으로 갑시다."
"예!"
용후의 강함을 잘 알고 있기에 NPC 용병들과 달리 박정석은 놀란 기색 없이 바로 대답하곤 마차를 출발시켰다.
달리는 마차 안에서 용후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단 심문관 발렌티는 생포한 마인 유저로부터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알아낼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결계를 여는 열쇠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될 터.
그리고 그 마인 유저가 인벤토리에 결계의 열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인 유저의 인벤토리엔 결계의 열쇠가 없다. 있다 해도 꺼낼 수도 없겠지만.
그러고 나면, 자신에게 그 마인 유저를 심문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신약을 먹었다 해도 그 신약이 마인 상태를 풀어주거나 계속 살게 해주지는 않을 터, 세히브교는 그렇게 자애로운 교회가 아니다.
그걸 그 마인 유저도 알 것이다. 그러니 나 1골드만 스킬로 정보를 뱉게 하는 건 불가능.
하지만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해도 된다.
적당히 시간을 끌다 나와 발렌티에게 마인 유저로부터 결계의 열쇠란 걸 얻었다 말하면 끝. 그리고 그걸로 거래를 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벨베른을 잡는 퀘스트를 주고, 자신을 그 퀘스트의 총지휘자로 해달라는 거래를.
물론 벨베른을 잡기 위해 준비된 교회의 병력을 자신에게 전부 붙여 주고, 퀘스트의 등급에 맞는 추가 보상도 요구할 것이다.
교회의 성물 말이다.
"벨베른을 잡고 스킬 자판기의 신성술 버튼을 누른다."
용병 NPC들은 전부 곯아떨어진 마차 안, 용후가 그런 말을 작게 하며 입가에 씩 미소를 머금었다.
무엇이든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의 치료 스킬을 얻으면 더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정말 많은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