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기적의 스킬 자판기 056화
"뭐야, 저 미친놈은!"
"무슨 총알이 계속 나와!"
"몸 사리지 말고 공격하란 말이야!"
갑자기 홍염 길드의 막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온 한 유저가 다짜고짜 총을 막 쏴대자, 홍염 길드원들이 우왕좌왕하며 그런 말들을 외쳐댔다.
용후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나탈리 사제도 있었다.
"뭐야 이건 또!"
"저 사제야! 저 NPC 사제가 건 디버프 권능이야!"
"사제부터 죽여!"
"죽이지 말고 생포해! 잡아서 인질로 써서 저 놈 잡아!"
홍염 길드원 몇이 나탈리 사제를 향해 몰려갔다.
그러나 그 직후 고막이 터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총성이 울렸다.
용후가 나탈리 사제를 향해 달려가는 홍염 길드원들을 향해 리볼버(+2)의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기 때문이었다.
총 3명이었고, 전부 등에 총을 맞아 즉사당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것도 정확히 셋 다 심장을 관통 당했다.
거리가 가깝기도 했고, 셋 다 나탈리 사제의 속도가 느려지고 균형감각이 둔해지는 디버프 권능에 걸려 있어서였다.
"상태창이 다 보여."
리볼버(+2)에 총알을 장전해 넣으며 용후가 상태창 스킬을 새로 썼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도 아무도 용후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적극적으로 공격하던 자들은 대부분 죽었고, 이미 탄창에 총알 몇 발이 들어갔기 때문.
달려들면, 탄창을 다 채우지 않고 중간에 탄창을 밀어 넣어 쏴버리니 공격할 틈을 찾을 수 없었다.
후웅!
다시 허공에 빛을 내는 상태창들이 떠오르자 용후가 걸음을 떼 분수대 쪽으로 향했다.
잠시 뒤, 용후의 눈에 한 바위 위에 떠올라 있는 상태창이 보였다.
소속란엔 홍염 길드가, 악명란엔 300이 넘는 명성 수치가 적혀 있었다.
용후가 그 바위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바위 뒤에 숨어 있는 홍염 길드원의 등을 리볼버(+2)로 겨냥해 쐈다.
투앙!
"아악!"
외마디 비명을 내며 유저가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러곤 금세 피 웅덩이에 잠겨 들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200 오릅니다
드랍된 아이템 2개를 주워 인벤토리에 넣은 용후가 다시 분수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나탈리 사제가 용후의 몸에 권능을 새로 걸어주며 그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홍염 길드의 길드장 이현기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었다.
* * *
"……."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남병수의 말에 따르면 저 유저는 유적지 지하로 들어가자마자 권총을 썼다 했다.
그리고 남병수가 데려간 길드원들과 싸우면서도 상당한 양의 총알을 썼을 터다.
그런데 또 20여 명의 길드원들을 권총만으로 쏴 죽였다.
그뿐 아니다.
분수대 방향으로 갈 때 탄창에 총알을 채워 넣으며 갔다.
'총알을 수백 발 갖고 있기라도 하다는 건가.'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주저함이 드는 한편, 이현기는 더 욕심이 생겼다.
엄청 많을 걸로 추정되는 돈과 어떤 던전이나 유적지, 미궁도 끝 층까지 클리어할 수 있게 해주는 요리 스킬, 거기다 수백 발, 어쩌면 수천 발도 가지고 있을지 모를 총알까지.
이 정도면 거의 드래곤의 레어를 터는 수준.
그래서였다. 건드리면 안 될 자를 건드렸단 생각을 하면서도, 이현기는 유적지의 출구가 아닌 분수대 쪽으로 향했다.
그때, 다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총성이 한 번 들릴 때마다, 낯익은 목소리의 비명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총성은 정확히 6번째 이후 그쳤다. 권총의 탄창에 총알을 장전하고 있기 때문.
'5초.'
딱 5초였다. 다시 총성이 들리기 시작한 시간은.
총알 한 발을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장전하고 있지만, 상대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건 아니었다.
물론, 길드원들이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던 건 3발만 장전됐건 2발만 장전됐건 1발만 장전됐건 공격을 해오면 즉시 탄창을 넣어 방아쇠를 당겨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있었다.
자신에겐.
"금강불괴 스킬로 한 발은 막을 수 있어."
동쪽 대륙에서 물 건너온 유니크 등급의 스킬.
소세토 유적지 공략을 위해 거의 전재산을 털어 샀고, 그런 만큼 열심히 스킬 레벨을 올려 현재 7레벨이 되어 있었다.
한 발로 두 명도 죽이는 공격력이니 2발은 완전히 막을 수 없겠지만, 1발은 금강불괴 스킬이 유지되는 동안엔 막을 수 있다 이현기는 확신했다.
2발을 맞는다 해도, 금강불괴 스킬은 풀리겠지만 즉사하거나 전투 불능에 빠지진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현기는 6레벨의 대쉬 스킬과, 8레벨까지 올린 회피 스킬도 갖고 있었다. 둘 다 매직 등급이었다.
이 두 스킬로 한 발을 피해내고, 거리를 좁혀 스킬을 담은 공격을 성공시키는 거다.
'그럼 이길 수 있어.'
자신과 거리가 좁혀지면, 권총에 총알을 장전할 여유는 완전히 없어질 테니.
다시 총성이 울렸다.
분수대 일대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길드원 몇을 향해 방아쇠를 연달아 당기고, 부활해 기억 소실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길드원들을 향해서도 총을 쏴댔다.
그렇게 6발을 다 쏘자 바로 탄창을 열어 탄피를 쏟아내곤 총알을 다시 채워 넣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선,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며.
그야말로 무자비.
자신들이 먼저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이현기는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타이밍을 놓치고 만 것.
죽었다간, 자신도 부활하고 죽고 부활하고 죽고를 반복하고 있는 길드원들과 똑같은 꼴이 될 거란 생각, 그 생각이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또 6번의 총성이 울렸다.
'움직여!'
자기 자신에게 외친 말이었다. 다음 타깃은 자신이 될 수 있었다.
눈엔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바위 뒤나 벽 틈새에 숨어 있던 길드원들도 투시라도 하듯 찾아냈으니.
이현기가 지면을 박찼다.
그러면서 스킬들을 연달아 썼다.
'오크 전사의 질주, 신속한 움직임, 금강불괴!'
이현기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 순간 달리는 속도가 훅 올라갔다.
투앙!
총알을 3발만 장전하고 탄창을 밀어 넣은 용후가 달려드는 이현기를 향해 총을 쐈지만, 아직 거리가 있었고 이현기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 제대로 조준하지 못해 총알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용후가 차분히 다시 이현기를 조준했다. 그리고 다시 리볼버(+2)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앙!
명중이었다.
그런데 묘한 소리가 났다.
태앵!
쇠와 쇠가 충돌하는 듯한 소리.
직후, 이현기의 다리 쪽에서 금이 쩍쩍 간 투명한 막 같은 게 보였다.
용후의 눈이 조금 커졌다.
NPC 마법사의 고서클 실드도 뚫는 게 권총의 총알이다. 그런데 강화가 이루어져 공격력이 700이 넘게 된 총알을 막아내다니.
'더 강화시켜야 돼.'
물론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가 있으니 한 발을 더 맞추면 저 막도 부수고 유저의 몸에도 상당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용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방금 쏜 총알도 부상만 입힐 생각으로 다리 쪽으로 빗겨 쏜 총알이었다.
홍염 길드원들은 전원이 소세토 유적지 안에 있는 분수대에서 부활하진 않았다. 부활귀환 스킬을 갖고 있는 자들이 몇 있었다.
그런 만큼 길드장도 부활귀환 스킬을 갖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 죽이기 전에 금화를 빼두는 게 좋았다.
1골드만 스킬을 쓴 용후가, 검집에서 질풍검을 뽑아 휘둘렀다.
"어어!"
이현기의 눈이 커졌다. 권총을 쏘면 방패로 막으며 마저 거리를 좁힌 뒤 스킬을 넣은 찌르기 공격을 날릴 생각이었는데.
방패도 써 총알의 공격력을 깎아 놓으면 계속 움직이며 공격까지도 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
그런데 권총이 아닌 검을 뽑아 공격을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쩌엉!
촥!
질풍검이 금강불괴 상태를 깨부수고 이현기의 왼쪽 허벅지를 베며 지나갔다.
"아악!"
이현기가 휘청였다.
내구력이 꽤 남아 있던 금강불괴의 막에 질풍검의 공격력이 상당량 깎였지만, 용후의 스탯 수치는 60레벨대에 질풍검의 등급은 유니크, 치명상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있는 공격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서게 만들 정도까진 아니었다. 이현기가 이를 악물며 용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용후의 움직임이 확 바뀌며 빨라지더니 이현기의 검을 옆으로 튕겨냈다.
"……!"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순간 다른 자가 된 듯했다.
'스킬?!'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킬 보정 같은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다. 더더욱 빨라지며.
쉬익!
촥!
"크윽!"
이번엔 팔이었다. 오른팔. 이어 왼팔로도 질풍검이 휘둘러졌다.
그러나 이번엔 이현기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휘두른 방패에 질풍검이 튕겨 나갔다.
역시 전투 경험이 많고 전투 센스도 있는 자답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용후의 스텝을 따라잡진 못했다.
튕겨 나간 질풍검을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고 그 방향으로 스텝을 밟으며 이동한 용후의 몸이, 금세 다시 몸을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자세로 만들었다.
쉭!
검이 휘둘러졌고, 이현기는 이번엔 막지 못했다.
"……아악!"
옆구리를 베인 이현기가 비명을 지르고 욕을 뱉으며 뒷걸음질 쳤다. 걸음을 뗄 때마다 바닥으로 피가 후두둑 후두둑 쏟아졌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다.
'충분히 죽일 수도 있었어.'
더 깊이 벨 수도, 더 위쪽을 베 심장을 양단해 버릴 수도 있었을 터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현기의 인벤토리 속에 아직 금화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또, 길드장을 특히 더 밟아놔야 자신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현기가 인벤토리에서 힐링 포션을 꺼냈다. 그러곤 용후의 눈치를 보며 포션을 마셨다.
이현기가 포션병을 다 비운 뒤에도 용후는 이현기를 공격하지 않았다. 입만 움직였다. 이현기가 회복을 다 끝낸 뒤에도 그랬다.
일대일로 싸우는 동안 다른 홍염 길드원들은 분수대 일대에서 빠져나갔고, 소세토 유적지에서도 나갔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털 수 있는 건 길드장 이현기뿐. 용후는 이현기를 아주 탈탈 털 작정이었다.
아직도 인벤토리에 300골드가 넘는 금화가 있었고, 입고 있는 장비들도 대부분 유니크였다.
다른 길드원들이 드랍한 아이템도 상당하고 금화도 많이 털었으니, 충분히 홍염 길드를 잡는데 쓴 총알 값이 나올 터였다.
"금강불괴!"
기합처럼 스킬명을 외친 이현기가 용후를 향해 다시 돌진했다.
그러나 어떤 공격을 해도 허공을 가르거나 검날이나 가드에 막혀 튕겨 나갔다.
그리고 할 수 있음에도 이번에도 죽을 정도의 반격은 오지 않았다.
'설마…….'
몇 초 간격으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니 설마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인벤토리를 열어보니 금화가 5골드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도 안 돼!"
그때 또 그 말이 들렸고, 남은 5골드가 뻔히 보고 있는데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직후, 유저가 달려들었다. 엄청 빠른 속도로.
캉!
첫 번째 공격은 막아냈지만, 만세 자세가 되며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됐고, 직후 유저의 검이 날아들었다.
촥!
"……큭!"
얼음처럼 차가운 감각이 복부와 옆구리에서 느껴지더니 이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러나 목구멍이 턱 막혀 신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바닥으로 뭔가가 후두둑 쏟아지는 소리를 들은 걸 끝으로 이현기의 의식이 사라졌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0 오릅니다
용후의 눈앞에 명성 알림창이 뜨고 몇 초 뒤, 이현기의 시체가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아이템 2개를 남겨놓곤.
용후가 그 아이템들을 주워 인벤토리에 넣고, 분수대 쪽으로 돌아섰다.
그때 이현기가 부활했다.
용후가 그 즉시 이현기의 가슴으로 질풍검을 찔러 넣었다.
푸확!
심장이 관통 당하자 이현기의 숨이 끊어졌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250 오릅니다
이번에도 명성 획득 알림창이 사라지자 이현기의 시체가 소멸하며 아이템이 드랍됐다.
용후가 그걸 몇 번 더 반복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150 오릅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100 오릅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50 오릅니다
한편…….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
흑마법사 벨베른의 부하들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파티장 강영재의 표정이 특히 어두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