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기적의 스킬 자판기 055화
'한 명만 남기고 다 처리.'
자동사냥 스킬이 넷을 다 잡고, 탄창에 남아 있던 남은 총알도 다 쏘자 용후가 마음속으로 말했다.
용후의 몸이 지면을 세게 박차며 홍염 길드원들을 향해 다시 돌진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용후의 몸이 질풍검을 휘둘렀다. 그저 빠르기만 한 게 아닌 검술의 움직임!
촥!
"큭!"
목이 잘린 유저가 그 자리에 허물어지며 목의 절단면에서 피 분수를 뿜어냈다.
이어 왼발을 대각선 앞으로 반 발짝 디딘 용후의 몸이 이번엔 왼쪽으로 질풍검을 휘둘렀다.
쩌엉! 촤악!
"크아악!"
그런 소리들이 나며 또 다른 홍염 길드원이 옆구리에서 피를 뿜어내고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허리를 절단하진 못했지만, 판금 갑옷을 입고 있는 상대임에도 갑옷을 찢고 옆구리를 깊게 베어놓은 것이다.
퍼억!
무릎을 꿇자 낮아지게 된 머리로 용후의 몸이 킥을 날려 정확히 유저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빠득! 파각!
이번에도 두 개의 소리가 연달아 났다. 목뼈가 부러지고 관자놀이가 박살 나는 소리였다.
카앙!
챙!
옆에서 뒤에서 날아오고 찔러 들어오는 검과 창을 물 흐르듯 이어지는 스텝을 밟으며 막고 흘려낸 용후의 몸이, 이어 그 둘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한 명은 복부가 꿰뚫리고, 다른 한 명은 팔이 절단돼 피를 쏟고 뿜으며 쓰러졌다.
그런 둘에게 시전조차 주지 않고 용후의 몸이 빙글 몸을 돌리며 다시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홍염 길드원들을 쫓는 것.
"뭐야 저 괴물은!"
"100레벨 넘는 거 아냐?"
"남병수 이 미친 새끼야! 권총이 다가 아니잖아!"
용후의 스탯 수치는 60레벨대, 그러니 홍염 길드원들과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못한 정도였다. 그리고 장비 수준도 그랬다.
더구나 용후는 사제의, 그것도 NPC 사제의 버프를 받은 상태인데, 홍염 길드원들은 디버프를 받은 상태.
그런 상태에서 자동사냥 스킬로 싸우고 있으니 아무리 아직도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해도 용후가 가볍게 찍어 눌러버리는 것이었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남은 홍염 길드원들이 동료들이 죽건 말건 텔레포트 게이트를 향해서만 전력으로 달렸다.
아무리 자동사냥 상태라 해도 그렇게 작정하고 도망가니 다 잡긴 힘들었다. 더구나 텔레포트 게이트로 올라만 가도 1층으로 휙휙 이동이 돼버리니.
그리고 그때 자동사냥 스킬이 풀려버렸다.
남은 건 이제 셋도 되지 않았다. 용후가 스스로 전력을 내 달렸다.
한 명은 잡아야 했다. 그래야 홍염 길드가 어떤 길드고, 전력이 어떤지 제대로 알 수 있으니.
그런데…….
"아악!"
한 명을 따라잡은 용후가 죽지 않을 정도로 공격한다는 게 힘 조절을 제대로 못 해 더 깊이 검을 찔러 넣고 말았고, 결국 유저의 숨이 끊어져 버렸다. 그러곤 그 즉시 부활이 이루어지며 사라졌다.
그사이 남은 둘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도망가 버렸고.
'스킬만이 아니라, 나도 강해져야 돼.'
자동사냥 스킬을 자주 쓰며 검술을 어설프게나마 쓸 수 있게 됐지만, 자동사냥 스킬과 비교하면 기사와 하급 병사만큼 차이가 있었다.
정말 제대로 된 검술을 익히고 싶단 생각이 거듭 들었다.
한 명을 생포하지 못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어차피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쓰면 홍염 길드원인지 아닌지 다 알 수 있으니.
"절 공격한 자들을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드랍템을 다 챙긴 용후가 나탈리 사제를 보며 말했다.
나탈리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협력하겠단 뜻.
세히브 여신은 대가 없는 사랑과 용서, 자비를 베푸는 신이 아니었다. 행운과 투쟁의 신이었다.
자신들을 공격한 자들은 선량한 유저와 세히브교의 사제를 해하고 재산을 빼앗고, 노예처럼 부리려 한 극악무도한 강도들.
그들을 처단한다면 세히브 여신도 기뻐할 것이다.
차갑고 굳센 표정을 지은 나탈리 사제가 용후의 뒤를 따랐다.
용후와 나탈리 사제가 비석이 박혀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진 위에 올라서자, 마법진이 빛을 냈다.
그리고 한순간에 1층으로 이동이 됐다.
* * *
"상태창이 다 보여."
그 스킬을 쓰며 용후가 리볼버(+2)에 총알을 채워 넣었다.
그사이 나탈리 사제는 용후와 자신의 몸에 버프를 새로 걸었다.
소속란에 홍염 길드가 적혀 있는 상태창을 발견한 용후가 바로 움직였다.
성큼성큼 다가가 50m 정도 거리가 되자, 용후가 그 유저를 겨냥해 리볼버(+2)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앙!
"큭!"
총알에 등을 관통당한 유저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돔 구조의 동굴이라 총성이 엄청 크게 울렸고, 근처에 있던 유저들이 전부 용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유저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또 홍염 길드원을 발견한 용후가 즉시 리볼버(+2)의 총구를 돌렸다.
자신을 노린다는 걸 눈치챈 홍염 길드원이 급히 몸을 돌렸지만 소용없었다. 거리가 60m밖에 되지 않아서였다.
"컥!"
급소를 맞은 건 아니었지만, 날아간 총알의 공격력은 무려 700, 급소가 아니라 해도 맞으면 즉사였다.
"뭐야 저 미친놈은!"
"저거 총 아니야?!"
"와, 진짜 있었구나!"
유저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면서도 상당수가 용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도망가지 않고 근처에서 용후를 보는 유저들도 있었다. 그냥 막 쏴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였다.
미쳐 날뛰고 있는 게 아니라 타깃이 확실히 있는 듯했다.
근처에 홍염 길드가 적힌 상태창이 더 보이지 않자 용후가 걸음을 뗐다. 그리고 분수대 쪽으로 갔다.
그곳이 부활장이고, 또 유저들 간의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 그래서인지 음식과 술을 파는 상인들도 다들 그곳에 있었다.
그곳에 홍염 길드원들도 많이 있을 것이었다.
예상대로 분수대 근처에 홍염 길드원들이 많이 보였다.
분수대 쪽으로 걸어가며 용후가 리볼버(+2)를 연달아 당겼다.
그러나 다 쏴 죽이진 않았다.
지하 15층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자들과 악명 스탯이 있는 자들만 쏙쏙 골라잡았다.
"저 새끼가 돌았나!"
1층으로 도망쳐온 홍염 길드원들은 안도하고 있었다.
죽어 부활한 자들도 기억 소실로 인한 후유증으로 괴로워하고 있긴 했지만, 또 죽게 될 수도 있단 불안은 없었다.
그 유저가 길드도 파티도 아닌, 사제만 데리고 있는 2인 파티기 때문.
아무리 19명을 혼자 박살 내며 도망가게 만들었다 해도, 둘이서 1층으로 올라와 길드를 상대로 전쟁하려 할 거라곤 생각지 않은 것이다.
'미친…… 무슨 생각이지? 설마 진짜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건가?'
그때, 유저가 권총의 탄창을 젖혀 탄피를 쏟아내곤, 인벤토리에서 총알을 꺼내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전.
다시 정확히 홍염 길드원들에게만 총을 쏴댔다. 그러면서 묘한 말도 했다. 1골드 어쩌고 하는.
"으악!"
"컥!"
"아악!"
공격을 시도하는 길드원들도 있었지만, 검과 창, 도끼론 날아오는 총알보다 먼저 거리를 좁혀 유저의 몸에 공격을 성공시킬 순 없었다.
활과 석궁도 소용없었다. 활이나 석궁을 꺼내 들면 그 길드원들부터 쏴 죽이니.
권총의 공격력만 대단한 게 아니라 사격 실력도 상당했다.
이젠 사격 스킬까지 생겼기 때문.
그때였다.
티링팅팅팅!
또 권총의 탄창을 젖혀 연 유저가 또 탄창에 총알을 채워 넣었다.
"왜 계속 나와!"
"근데 나 인벤에서 돈이 빠져나간 거 같은데?"
총알을 다 쏘면 공격할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또 총알을 채워 넣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대체 몇 발을 갖고 있길래…….'
그리고 어떻게 지하 15층 전투엔 없었던 홍염 길드원들도 찾아내 쏴 죽이는 걸까.
게다가…….
"시X, 개같은 X!"
또 디버프 권능이 들어왔다. 그 즉시 분수대 뒤에 숨어 있던 홍염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확 느려지고 굼떠졌다.
용후가 리볼버(+2)를 겨눈 자세로 분수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분수대를 돌며 권총을 쏴댔다.
몇 발은 조각상에 맞아 튕겨 나가기도 했지만 4명의 몸에 총알을 명중시켰다. 조각상이 엄청 큰 것도 아니고, 홍염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엄청 굼떠졌기 때문.
"나, 난 아니야! 난 홍염 길드원이 아니라고!"
용후가 웃었다. 머리 위에 떠 있는 상태창에 다 보이기에. 홍염 길드 소속이란 글자가.
용후가 방아쇠를 당겼다.
투앙!
가슴에서 피를 쏟으며 유저가 쓰러지자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사격 스킬이 2LV이 됩니다
-총알 속도가 8% 오릅니다
-공격력이 10 오릅니다
분수대 주변에 있던, 지하 15층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홍염 길드원들과 악명을 가진 길드원들을 싹 잡은 용후가 분수대를 나가 다른 곳으로 갔다.
나탈리 사제가 뒤를 따르며 용후의 몸에 새로 권능을 걸었다.
잠시 뒤 용후가 도착한 곳은 막사들이 모여 있는 공터였다.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새로 쓴 용후의 눈에 많은 홍염 길드원들의 상태창이 보였다.
안으로 걸어들어 간 용후가 입구 근처에 서서, 다른 길드의 여자 유저와 대화를 하고 있는 홍염 길드원의 가슴을 리볼버(+2)로 겨눴다.
지하 15층에서 자신을 공격한 길드원은 아니었지만, 악명 스탯이 500이 넘었다.
"뭐, 뭐야!"
대꾸하지 않고 용후가 리볼버(+2)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앙!
-대륙 전역에 명성이 200 오릅니다
드랍된 매직과 유니크템 2개를 주워 인벤토리에 넣은 용후가 홍염 길드가 적혀 있는 상태창이 많이 모여 있는 막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 * *
지하 21층에서 올라온 강영재의 귀에 묘한 소리가 들렸다.
병장기로 싸우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법이 폭발하는 소리와 비슷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마법인가?"
그래도 직업이 마법사인 부하를 돌아보며 물었다. 역시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한 유저가 묘한 말을 했다.
"총소리 같습니다만……."
그러나 확신은 없는지 말끝이 흐려졌다. 정체불명의 소리가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 들리고 있어서였다.
이계템 중에 권총이 있단 건 이들도 알고 있지만, 이렇게 총을 난사해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총알은 만들 수 없으니까. 마법으로도 연금술로도.
그러나 이 소리는 틀림없는 총성이었다. 그거 말곤 없었다.
강영재가 걸음을 뗐다. 총성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가보면 알 일이었다.
그러나 총성이 들려오고 있는 막사 공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파티장님."
한 파티원이 강영재를 부르며 앞으로 달려왔다. 강영재가 멈춰 섰다. 멈춰선 강영재에게 그를 부른 파티원이 검지와 엄지로 쥐고 있는 금속 재질의 뭔가를 내밀었다.
강영재가 손바닥을 내밀었고, 파티원이 그 위에 쥐고 있던 걸 올렸다.
역시 총알이었다.
정확히는 탄피.
주위를 둘러보니 바닥에 반짝반짝거리는 것들이 여러 개 보였다. 전부 탄피였다.
그때 또 총성이 들렸다.
"뭘까요……?"
탄피를 주워 건넨 파티원이 이해가 안 간단 표정을 지으며 총성이 들려오는 막사 공터 쪽으로 돌아섰다.
총인 건 확실한데, 총성이 많아도 너무 많이 들렸다. 여럿이 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권총 한 자루가 내고 있는 총성이 틀림없었다.
소세토 유적지는 50레벨 이상의 유저들이 활동하는 곳. 그러니 총을 쏘고 있는 유저도 그 정도 레벨은 될 것이다. 총을 믿고 왔다 해도, 못 해도 30~40레벨은 될 터.
레벨을 거기까지 올리는 동안 총을 많이 썼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총알을 많이 갖고 이 세계로 떨어졌다 해도, 그 레벨쯤 될 즈음엔 얼마 남지 않게 될 테고, 혹 아직도 많이 남았다 해도 앞으로도 두고두고 써야 되니 절대 막 쓸 순 없다.
그런데 지금도 총성이 연달아 들려오는 상황.
그렇다면…….
"총알을 만들 수 있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 만들 수 있으니 저렇게 막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세계엔 절대 불가능하거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건 없다. 흑마법사 벨베른을 만난 뒤 강영재는 더 그렇게 생각했다.
연금술이 됐든 야장술이든, 총알을 만들 수 있는 뭔가가 분명 있는 거다.
"이놈 잡아다 쓰면 소세토 유적지 공략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영재의 얼굴이 엄청 진지해졌다. 그러나 어둡던 얼굴은 좀 밝아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공략 속도를 더 내면 된다.
소세토 유적지는 리젠이 되는 던전. 다시 20층부터 몬스터들을 잡으며 공략을 해야 하지만, 권총과 무한한 총알이 있다면 빠르게 층들을 공략해 식량이 다 떨어지기 전에 보상방을 털고 올라오는 게 가능하다.
"이놈 잡는다."
정체가 뭐든.
왜 몬스터도 없는 1층에서 저렇게 총질을 막 해대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이유가 뭐든 반드시 잡아서 써야 한다.
공략에 실패하면 기억 소실보다,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총에 맞아 기억을 잃는 정돈 별로 두렵지도 않았다.
강영재가 11명의 부하를 데리고 막사 공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