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기적의 스킬 자판기 054화
"어?"
용후가 지하 15층 공략을 끝내고 지하 16층으로 막 내려갔을 때였다.
자신을 미행했던 자들이 지하 16층의 시작 지점에 모여 있었다. 자신들을 앞질러 가지 않고 되돌아갔었는데.
그 말은, 1층에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로 돌아가 지하 16층으로 이동을 했단 뜻.
용후의 미간이 구겨졌다. 더 아래층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 보내주지 않은 거니까.
이용비로 100골드를 내며 용후는 말했고, 또 물었었다. 이 텔레포트 게이트로 갈 수 있는 가장 아래층으로 가게 해달라고, 그렇게 되도록 설정된 게 맞냐고.
맞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쩌면 지하 16층보다 더 아래층으로도 내려갈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호구가 된 셈.
자신을 잡으려고 온 것보다, 용후는 그게 더 화가 났다.
스킬 자판기를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버거튼에게 검으로 사기 수준으로 가격 눈탱이를 맞은 게 떠오르며 더 그랬다.
"유저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홍염 길드의 길드원들입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남병수입니다. 홍염 길드의 3파티장을 맡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유저님을 스카웃 하고 싶어 이렇게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준 100골드에서 50골드 돌려줘요. 더 내려갈 수 있는데 거짓말치고 텔레포트 게이트 제대로 가동 안 시켰으니까."
남병수의 스카웃 어쩌고 하는 말을 싹 무시한 용후가 그런 말을 하며 손바닥을 펴 남병수 쪽으로 내밀었다.
물론 계약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텔레포트 게이트로 갈 수 있는 맨 끝 층이 아니면 50%를 돌려주겠단 구두계약도 하지 않았지만, 용후는 50%를 돌려받기로 했다.
계약서가 있다 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 자기 건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했다.
못 주겠다 해도 용후는 50%를 돌려받기로 했다.
100%가 아닌 건 그래도 지하 15층까진 건너뛰게 해줬으니까.
물론 50%니 100%니 하는 건 이 자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
공격해오면, 용후는 텔레포트 이용에 쓴 100골드가 아니라 가능한 건 다, 가능한 많이 털어갈 작정을 하고 있었다.
"50%, 예, 돌려드리겠습니다. 일부로 그랬던 건 아닙니다. 길드원들이 여러 층을 오가다 보니 설정에 착오가 있었던 거 같네요. 사과드립니다."
남병수가 고개까지 살짝 숙여 보였다.
권총을 가진 유저, 그리고 권총을 쓰지 않아도 강했다.
자신을 포함해 19명이니 잡을 수는 있지만, 분명 죽는 자들이 생길 테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스카웃 할 수 있으면 그게 가장 베스트.
이 유저를 터는 것보다, 이 유저가 가진 요리 스킬로 소세토 유적지를 끝 층까지 공략하면 얻게 되는 수익이 더 클 테니. 죽는 일도 없고.
그러니 100골드 전액이 아닌 50골드를 돌려주고 함께 유적지를 공략할 수 있다면, 남병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냥 돌려줄 순 없는 일.
50골드를 돌려줬는데, 자신들과 손을 잡고 소세토 유적지를 공략하지 않겠다 하면 안 되니까.
"길드원으로 스카웃 하려는 게 아닙니다. 소세토 유적지를 같이 공략하잔 겁니다. 물론 지금도, 그리고 공략 후에도 저희 길드에 들어오고 싶으시다면 대환영입니다."
유저, 용후는 대꾸가 없었다. 그대로 손을 내민 상태로 남병수를 빤히 봤다.
남병수가 계속 말을 이었다. 언제든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한 상태로.
"소세토 유적지를 공략하고 있는 길드 중 저희 홍염 길드가 가장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하시면 훨씬 안전하고 빠르게, 그리고 반드시 공략이 가능하다 확신합니다. 몬스터를 잡아 나온 수익 배분은 유저님과 저희 길드가 5대5로 하고, 보상방에 있는 템을 현자의 돌의 파편은 빼고, 나머진 2개 먼저 고르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어떠세요? 저희와 같이하시면, 아까 말씀한 50골드도 돌려드리겠습니다."
"사기 치는 길드를 어떻게 믿고. 그리고 아깐 왜 어둠 속에 숨어서 따라왔어? "
"그건……."
남병수는 대답을 못 했다.
몬스터한테 죽어서 아이템 드랍하면 주으려고 따라갔다가, 딴마음이 더 생겨 계속 따라갔다 말할 수는 없으니.
"뭐 그건 꼭 들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됐고, 50골드 안 내놓으면 알아서 빼간다."
"……개X끼가. 언제 봤다고 반말을 찍찍해."
유저의 냉기가 흐르는 태도에 이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남병수가 얼굴을 싹 바꾸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 기대도 안 했기에 태도를 바꾸는 것도 빨랐다.
남병수 뒤에 서 있던 다른 유저들도 전부 무기를 꺼내 들었다.
용후가 픽 웃었다. 엄청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였다. 자신의 무기가 뭐고 어떻게 싸우는지 봤으니 당연한 일.
그래도 이 숫자면 잡을 수 있다 생각하고 있겠지만, 포위를 이미 했음에도 쉽게 공격해 오지 못했다.
"사제님, 저한테 신속의 권능 하나만 써주시고, 이후엔 힐을 사제님한테만 쓰시면서 몸 잘 지키세요."
"예? 하지만……."
"전 유저입니다. 혹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겨우 이런 자들한테 죽지도 않고요."
"알겠습니다…… 형제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나탈리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고, 기적 같은 스킬을 쓰는 유저. 죽지 않는다 말했으니 죽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인벤에서 리볼버(+2)를 꺼내 들고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쓴 용후가 말했다.
"임창식, 고준용, 김진혁, 오장후. 3번씩 죽은 너희들 먼저 무조건 총으로 쏴죽인다."
현재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은 맥스를 달성한 상태, 그러자 상태창 안에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부활 횟수란도 그중 하나.
그렇게, 용후에게 이름을 불린 유저들이 더 바짝 긴장을 했다.
남병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넷 다 주력이 돼서 싸워줘야 할 유저들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쫄아버린 것.
그때, 총성이 울렸다.
직후 고준용이 이마에서 피를 쏟으며 뒤로 넘어갔다. 이어 고준용 바로 뒤에 있던 길드원도 쓰러졌다.
밀려 넘어진 게 아니었다. 고준용과 똑같이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총성은 한 번만 울렸는데.
만지면 다 고쳐 스킬로 수리되며 오른 공격력에, 무기 강화석에 의한 두 번의 강화로 지금 리볼버(+2)의 공격력은 무려 700이었다.
그랬기에 고준용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이 뒤에 있던 유저의 머리까지 관통한 것이었다.
"하……."
너무 황당한 장면에, 남병수, 그리고 길드원들의 입에서도 탄식과 신음이 나왔다. 그리고 얼굴 가득 공포심이 번졌다.
잘못 건드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확 들었기에.
* * *
"자동사냥."
방금 먼저 잡겠다 이름을 말한 유저들이 길드원들 사이사이로 숨자, 용후는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70~80미터 거리 내라면, 용후는 거의 백발백중으로 총알을 명중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무리 속에 숨어버리면, 움직이거나 싸우면서 총을 쏴야 되니 그건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자동사냥 스킬은 검술 궁술만이 아니라, 권총도 잘 다뤘다.
'리볼버로 임창식, 김진혁, 오장후 먼저 잡아.'
자동사냥 스킬이 발동되자 용후가 마음속으로 컨트롤을 했다.
왼손엔 질풍검을, 오른손엔 리볼버(+2)를 든 용후의 몸이 검술의 스텝을 밟으며 옆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 용후의 움직임을 쫓아 남병수와 길드원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그러나 남병수와 길드원들은 진형이라 할 것도 없고, 움직임도 제멋대로.
용후의 몸이 금방 틈을 찾아냈다.
투앙!
"큭!"
총성과 함께 외마디 비명이 솟았다. 김진혁이 낸 소리였다. 왼쪽 가슴에서 피를 쏟으며 김진혁이 제자리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어 또 총성 없는 비명이 한 번 더 들렸다. 김진혁의 가슴을 관통해 나온 총알이 뒤에 서 있는 유저의 어깨를 관통하자 난 소리였다.
급소가 아니었고, 갑옷을 입고 있는 몸을 관통했으니 공격력이 현저히 줄었을 텐데도 즉사.
진짜 어처구니가 없었다.
홍염 길드원들이 공포에 떨었다.
"뭐 저딴 개사기가 있어!"
총이 사기적이란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닐 것이다.
수리와 두 번의 강화로 더욱 사기적인 공격력이 된 건 맞지만, 남병수와 홍염 길드원들이 생각하는 정도까진 아니었다.
거리가 조금만 더 멀어져도 총알 한 발로 둘을 관통시켜 즉사시키는 건 되지 않았다.
워낙 거리가 가까워서였고, 또 자동사냥 스킬의 사격술이 워낙 뛰어나서였다.
투앙!
"컥!"
이번엔 오장후였다.
오장후의 몸을 겨냥해 쏜 게 아니라, 다른 유저의 몸을 쏴 그 뒤에 서 있던 오장후를 죽인 것이었다.
"하, 씨, 미친!"
말 그대로 미친 사격술이었다.
"씨X, 뭘 우르르 몰려만 다니는 거야?! 다 같이 공격하면 될 거 아냐! 그랬음 벌써 잡았어! 쫄지 마, 이 병신 새끼들아! 하기로 했으면 똑바로 해! 2파티 이 새끼들아, 빨리 안 움직여!"
용후가 지목한 넷 중 남은 한 명, 임창식이 외쳐댔다. 그 외침에 임창식의 2파티원들이 용후를 향해 일제히 돌진했다.
그렇게 2파티원들이 다 움직이자, 몸을 사리고 있던 다른 길드원들도 용후를 향해 달렸다.
3발을 쐈고, 2파티원들이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으니, 자신들이 총알에 맞을 일은 없다 생각한 것이다.
그때, 2파티원들과 용후가 충돌했다. 병장기가 부딪치고 살과 뼈를 가르는 소리, 그리고 총성도 났다.
"악!"
"큭!"
"아악!"
"컥!"
셋은 옆구리와 가슴, 허벅지에서 피를 엄청 쏟으며 쓰러졌고, 한 명은 이마와 뒤통수에서 피와 뇌수를 쏟으며 제자리에 허물어졌다.
달려드는 홍염 길드원들 셋을 베며 안으로 훅 파고든 용후의 몸이 아주 잠깐 생긴 틈을 놓치지 않고 리볼버를 쏴 임창식의 머리 한가운데를 꿰뚫은 것이었다.
"사제! 사제 공격해, 사제!"
나탈리 사제는 NPC, 죽으면 부활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자들은 나탈리 사제를 죽이지 않을 것이었다. 공략에 함께 써야 하니.
그래도 확신할 순 없는 일. 자신을 잡을 수 있단 생각이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을 테니까.
사제를 인질로 잡아 빠져나가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을 테고, 평정심을 잃은 상태니 뭔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나탈리 사제 지키면서 전투.'
용후의 컨트롤에 자동사냥 스킬이 바로 반응했다. 홍염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더 들어가지 않고, 뒤로 물러나 나탈리 사제 쪽으로 갔다.
그때, 나탈리 사제의 스태프 끝에 박혀 있는 진주석이 빛을 냈다. 그 직후, 홍염 길드원들의 표정이 더 초조하게 변하며 욕을 해대고 고함을 쳐댔다.
나탈리 사제가 홍염 길드원들에게 광역 디버프를 건 것이었다.
광역이라 해도 그리 넓은 범위는 아니었지만, 용후를 포위하느라 모여 있었기에 거의 다 걸렸고, 또 권능 디버프는 항마력으론 상쇄시킬 수 없었다.
그러니 대단한 수준의 디버프 권능은 아니지만, 굉장한 효과를 발휘했다.
김용후는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만 권능을 쓰라 했지만, 나탈리 사제는 충분히 여유가 있는데 김용후의 전투를 돕지 않고 그저 서 있기만 하긴 싫었다.
수행에 큰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도 돕고 싶었다.
특히, 김용후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얻을 수 있는 게 많은 유저란 생각이 들기에.
홍염 길드원들이 NPC 사제의 듣도 보도 못한 디버프 권능에 더 우왕좌왕하는 사이, 용후의 몸이 다시 홍염 길드원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면서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로 찾아낸, 레벨이 가장 높은 자 둘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말하며 자동사냥 스킬을 컨트롤 했다.
'리볼버로 처리.'
투앙! 투앙!
총알을 2발 쐈지만, 죽은 건 셋이었다. 물론 그 셋 중 둘은 용후가 마음속으로 말한 그 유저들.
그때, 갑자기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사격 스킬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