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기적의 스킬 자판기 051화
손님, 김용후의 몸이 밝은 빛을 내며 빛났다. 어찌나 밝은지, 그 빛 때문에 몸이 안 보일 정도였다.
나탈리 사제의 힐이 용후의 몸에 들어간 직후, 레벨업이 이루어져서였다.
"……."
박정석이 입을 반쯤 벌리곤, 아직도 빛을 내고 있는 용후를 홀린 듯한 기분을 느끼며 봤다.
정말 강했다.
심지어 제대로 된, NPC 기사나 용병들의 검술을 썼고, 움직임도 100레벨이 넘는 초고렙 같았다.
그래서였다.
붉은털 늑대 20여 마리를 다 잡는데 10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평균 레벨보다 3~4레벨이 더 높아 보이는 늑대들이었는 데도.
그야말로 일방적인 도륙.
'정체가 뭐지?'
황당한 건 더 있었다.
"……뭐야, 도축하는 거야?"
설마설마했다. 죽은 붉은털 늑대의 시체에 단검을 푹푹 찔러 넣고 배를 가르는 걸 보고선.
근데 정말 도축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하고 있었다. 몬스터를, 무슨 소나 돼지를 도축하듯.
금세 붉은털 늑대 2마리를 도축한 김용후가 몸에 거의 피를 묻히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 마차로 돌아왔다.
"가죠."
권능을 써준 것에 대한 답례인지 사제를 향해 살짝 묵례를 한 김용후가 사제를 먼저 마차에 태우고 자신도 탔다.
붉은털 늑대 떼는 팔켄 마을과 바르뎅, 비리마 성을 오가는 마부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동족의 시체도 먹는 들판의 포식자들, 피 냄새를 맡고 금세 다른 붉은털 늑대 떼가 몰려들 것이다.
김용후가 정말 쉽게 잡아냈지만, 그래도 박정석은 몸서리를 치며 서둘러 마차를 출발시켰다.
마차가 다시 멈춘 시각은 4시간 정도를 더 달려서였다.
"야영하죠."
마차에서 내린 김용후가 스킬로 모닥불을 지폈다. 그러곤 다짜고짜 모닥불 위에 물을 채운 솥단지를 올려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까 잡은 붉은털 늑대를 도축해 얻은 고기로 요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했다. 사실은 아니길 바라는 것이었다.
"저기 손님…… 몬스터 고기엔 마력독이 있어 독 내성 스킬로도 해독이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꽤나 요리답게 변해 펄펄 끓고 있는 솥단지 속에 김용후가 국자를 넣어 맛을 보려 하자, 박정석이 다가가 슬쩍 말했다.
"제 요리 스킬은 몬스터 고기의 마력독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
"예? 아아……."
그러나 그런 요리 스킬이 있단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몬스터 고기는 뭘 어떻게 하든 절대 먹을 수 없단 게 반론의 여지 없는 기본 상식이었다.
"걱정말고 많이 드세요. 맛은 맛있다 할 수준은 못 되지만 잘 드시면 피로가 확 풀릴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김용후가 기어이 국자로 국물을 떠 후륵 마셨다. 그러곤 나쁘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
정말 놀랍게도 요리가 끝날 때까지도, 김용후는 멀쩡했다.
꼬르르륵!
박정석의 배에서 굉장한 소리가 났다.
빵이나 육포 정돈 인벤토리에 있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김용후가 만든 건 정말 제대로 된 식사였다.
비주얼도 냄새도 기가 막혔다. 몬스터 고기라는 건 알지만, 저런 제대로 된 요리를 보고, 딱딱한 빵과 육포가 넘어갈 리 없었다.
또, 토즐린 마을까진 하루 이상 더 가야 했다.
'먹자.'
자신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줘야 할 마부를 독살시킬 이유가 없었다. 또, 김용후는 여전히 멀쩡하고.
"그럼, 잘 먹겠습니다."
스튜 요리인데, 살짝 퓨전 같았다.
박정석이 국물 맛부터 봤다. 적당히 매콤하면서 담백한 게, 상당히 맛있었다. 또, 고기도 딱딱하거나 질기지 않고 의외로 야들야들했다.
"후아후아!"
결국 그런 소리까지 내며 박정석이 정신없이 요리를 입안에 쓸어 넣다시피 했다. 잠시 뒤, 음식을 다 먹자, 갑자기 알림창이 떴다.
버프였다.
체력이 회복됐다는 알림창뿐 아니라, 생명력과 체력 스탯까지 올랐다. 그것도 무려 15.
몬스터를 요리할 수 있게 해주고, 이렇게나 높은 식후 버프 효과라니. 에픽 등급 요리 스킬도 이 정도까진 아닐 것이다.
레전드리 등급쯤 되는 듯했다.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야.'
분명히, 무사히 일을 마치고 바르뎅 마을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사제님도 어떠세요? 드시고 주무시면 피로가 남지 않습니다."
세히브교는 사제들의 음식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또, 몬스터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교리도 없었다.
그러나 몬스터로 만든 요리는 역시 꺼려지는 듯했다.
"감사하지만, 저는 따로 제 식량을 가져 왔습니다, 형제님."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거절한 나탈리 사제가 가방에서 꺼낸 빵과 치즈, 말린 육포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차는 마부가 몰고, 몬스터 처리는 다 자신이 할 테니 간간이 권능만 쓰면 되는 나탈리 사제는 피로가 좀 쌓인다 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더 권하지 않고 용후는 식사를 계속했다.
그런데 토즐린 마을에 들려 말을 바꾸고, 포리칸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부터 나탈리 사제가 던전밥에 큰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부 박정석이 철갑베어로 만든 던전밥을 먹고, 스탯이 영구적으로 오르는 효과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던전밥의 스킬 레벨이 1 더 올라 5레벨이 되자, 추가된 던전밥 스킬의 새 효과였다.
박정석은 생명력과 체력, 근력 스탯이 1씩, 용후는 레벨이 훨씬 더 높아서인지 체력 스탯만 1 올랐을 뿐이지만, NPC들은 상태창만 있을 뿐 레벨업은 할 수 없는 자들, 그 정도 수치로도 혹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시 몬스터 고기는 꺼려지는 모양으로, 포리칸 숲에 들어서서도 나탈리 사제는 먹겠다고까진 하지 않았다.
-크허어어어어엉!
포리칸 숲에 난 길을 따라 달려 초입을 막 넘었을 즈음, 덩치가 큰 몬스터가 내는 포효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트롤 같습니다. 가깝습니다."
용후가 나탈리 사제를 보며 말했다.
* * *
-크허어어어엉!
고통에 찬 비명을 내며 트롤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무려 1시간에 걸친 전투였다.
리볼버(+1)를 썼다면, 장전된 총알 6발을 전부 줄줄이 쏴도 상식을 초월하는 재생력 때문에 바로 죽이기까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10~20분 정도에 전투가 끝났을 것이다.
무한하게 재생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부턴 마석을 구하기 힘드니, 총알을 아껴야 해서였다. 소세토 유적지는 마석은 나오지 않는 유적지였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40이 됩니다
상태창을 열어 스탯 포인트를 생명력 스탯에 전부 넣은 용후가 트롤의 시체로 갔다.
"도축."
던전밥 스킬의 도축을 쓰자, 그 즉시 트롤의 시체에 선들이 쭉쭉 그어지고 번호들이 새겨졌다.
단검을 꺼내 쥔 용후가 선을 따라 트롤 도축을 시작했다.
그리고 도축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바로 모닥불을 지피고 레시피창을 열어 트롤 고기와 트롤의 피를 이용한 요리를 시작했다.
"이번엔 무슨 요리인가요?"
마부 박정석이 다가와 군침을 삼키고 기대감이 담긴 눈을 했다.
"트롤 안심찜입니다."
트롤의 피에는 유일하게 마력독이 없었다. 그래서 힐링 포션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였다.
그냥 마셔도 보약이 되는 게 트롤의 피였다.
그런 트롤의 피까지 넣어 만드는 요리, 기대가 됐다. 꽤 큰 폭으로 스탯을 올려줄 것이다.
30여 분 뒤.
요리가 완성됐다.
용후는 먼저 박정석의 접시에 트롤 안심찜을 담아줬다.
접시를 받아들며 박정석이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손님인데 요리도 끼니마다 해주지, 맛도 있지, 먹을 때마다 스탯까지 오르니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인사가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포크를 들며 또 한 번 인사한 박정석이 허겁지겁 트롤 안심찜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곤 다 먹자 와 하는 탄성을 내고 하하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진짜, 손님 요리 스킬 끝내주네요! 생명력 스탯 3에, 근력, 체력 스탯이 2에, 민첩도 1 올랐어요! 감사합니다. 이거 제가 오히려 돈을 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부담 갖지 말고 드세요. 만든 김에 나눠 먹는 것뿐이니까요. 어차피 혼자 다 못 먹습니다."
그때였다.
"저기…… 형제님."
나탈리 사제였다.
"예, 말씀하세요, 사제님."
붉어진 얼굴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괜찮다면…… 저도 맛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용후가 씩 웃었다.
나탈리 사제가 던전밥을 먹으면 용후 입장에서도 좋았다. 수행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 셈이 되니.
몸이 강해지면 정신력도 더 강해지는 법이고, 정신력이 강해지면 신성력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또, 신체 능력 스탯이 오르면 무슨 수행을 하든 더 잘하게 될 테고.
몬스터 고기는 안 먹는 게 맞단 고민을 이곳까지 오며 쭉 한 모양이지만, 보기와 달리 나탈리 사제는 꽤 성공욕이나 출세욕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용후에게 트롤 안심찜을 담은 그릇을 받은 나탈리 사제가 인사를 하곤 조심스레 트롤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아……!"
한 입 먹자마자 탄성을 낸 나탈리 사제의 손이 빨라졌다. 그리고 다 먹자, 정말 마부의 말 그대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2 오릅니다
-체력이 영구적으로 2 오릅니다
-근력이 영구적으로 3 오릅니다
"이럴 수가……."
나탈리 사제가 묘한 눈으로 용후를 봤다. 자신에게 엄청난 기회가 온 게 아닌가 싶었다.
분명, 십칠 수행이 끝나고 교회로 돌아갈 즈음엔 자신은 많이 달라져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유적지 공략은 이제 시작이니.
"식사가 다 끝나셨으면 슬슬 갈까요?"
"예, 정리를 돕겠습니다."
"마차 준비하겠습니다."
나탈리 사제는 용후의 식기 정리를 도왔고, 박정석은 마차로 달려갔다.
그로부터 1시간 뒤, 100m 앞에 소세토 유적지가 있다는 팻말이 보였다.
* * *
"텔레포트 게이트 얼마에요?"
유저 남병수가 파티원들을 데리고 막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려던 때였다. 검과 방패를 찬 유저와 세히브교의 사제로 보이는 NPC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그런 말을 해왔다.
가끔 있었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뭔지 잘 모르고 돈을 낼 테니 타게 해달란 자들이.
텔레포트 게이트는 고대의 기술로, 만들 수 있는 마탑도 마법사도 없었다.
대신 텔레포트템이라 불리는 아이템이 몇 개 있었다. 텔레포트 비석 세트도 그중 하나였다.
단, 모든 텔레포트템들이 그렇듯, 텔레포트 비석 세트도 던전이나 유적지, 미궁 안에서만 쓸 수 있었다. 던전과 유적지, 미궁은 마나 농도가 필드에 비해 3~5배 이상 더 높아, 그 덕분에 사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깊어질수록 마나 농도가 점점 짙어지고, 그렇게 마나 농도가 너무 심하게 짙어지면 텔레포트템이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소세토 유적지가 그런 경우였다.
그 탓에 홍염 길드는 지하 17층 이상 더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벌써 두 달째였다.
그래도, 텔레포트 비석을 설치해 놓은 지하 15~17층은 몬스터가 리젠되고, 그 몬스터들이 꽤 고가의 템들을 드랍하는 데다, 한 달 전엔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도 얻어 홍염 길드는 소세토 유적지를 떠나지 않고 공략이 아닌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돈을 주고 타겠단 파티나 길드가 있어도 홍염 길드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빌려주지 않았다.
이용비를 받는 것보다 지하 15~17층을 독점해 몬스터들의 드랍템으로 돈을 버는 게 훨씬 짭짤했다.
"우리 길드만 쓰는 길드 전용이에요."
"돈 내고 탈게요."
아무리 돈이 있는 파티나 길드라 해도, 100골드를 내겠는가 200골드를 내겠는가.
그 정도 액수가 아니면 사용에 횟수 제한이 있는 텔레포트 비석을 쓰게 해주는 건 손해였다.
"네, 안 돼요."
"100골드 줄게요."
"안…… 뭐요?!"
"100골드요."
10층 이상을 건너뛸 수 있다면 100골드를 쓸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용후가 100골드가 든 금화 주머니를 꺼내자, 남병수의 표정이 싹 변했다.
"길드에요, 파티에요?"
"이렇게 둘이에요."
"……예?"
순간 남병수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못 타게 하자, 장난질을 치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유저의 얼굴에선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옆에 있는 사제의 얼굴도 그랬다.
'그렇단 말인지…….'
남병수가 속으로 웃었다.
레벨이 100레벨을 넘지 않고서야 사제까지 데리고 있다 해도 단둘이서 지하 15층을 제대로 돌 수 있을 리 없다.
이런 거금을 주고 타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언제 봤다고 그런 친절을 베푸나.
"좋아요. 그 100골드 주면 타게 해줄게요."
남병수가 지하 17층으로 맞춰져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슬쩍 지하 15층으로 바꿨다. 어차피 1시간도 못 가서 죽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100골드를 남병수에게 건넨 용후가 나탈리 사제와 함께 텔레포트 게이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어 남병수가 텔레포트 게이트 위로 올라갔다. 층수를 그대로 지하 15층에 두고선.
"따라가서 죽으면 드랍템 줍자."
남병수의 말에, 9명의 파티원들이 재밌겠다는 듯 웃으며 우르르 텔레포트 게이트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