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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50화 (5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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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 050화

"사제 나탈리입니다."

테이블 앞으로 온 여사제가 먼저 팰린 주교를 향해 묵례를 하고, 이어 용후를 보며 성호를 긋고 허리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세히브교식의 인사였다.

용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똑같이 나탈리 사제에게 세히브교식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나탈리 사제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흰색 로브에, 신발은 아무 장식 없는 가죽 미들부츠, 손에 들고 있는 스태프엔 진주석이 박혀 있었다. 진주석엔 권능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더 앳돼 보였다. 17살이 아니라 14~15살 정도로 보일 정도.

작은 체구와 작은 얼굴, 특히 햇빛 한 번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새하얀 피부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소리와 톤은 달랐다.

사제에 맞는 품위가 있었다.

"유저 김용후입니다."

"용후 형제님의 용맹함과 활약상을 익히 들었습니다. 함께 여행하고 수행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고 큰 의지가 됩니다."

마탑에 마탑지가 있다면 교회엔 소식지가 있었다. 아직 바르뎅 마을까지 소탕된 자커스 도적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제들이 보는 교회 소식지엔 소식이 실려 있었다.

그게 팰린 주교가 김용후가 기부금을 팔켄 마을의 교회만큼 주리란 보장은 없음에도, 트리던 주교의 부탁을 들어준 또 다른 이유였다.

인맥으로 만들어두면, 하다못해 안면이라도 잘 터 두면 분명 득이 될 사람이라 판단했기에.

"아직 수행이 많이 부족하여 큰 도움이 되진 못할 테지만, 여행 동안에도 열심히 정진하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앙심이 깊고, 신성력이 높으신 사제님이라 들었습니다. 저 또한, 함께할 수 있어 든든합니다. 저와의 여행이 부디 좋은 수행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통성명이 끝나자, 팰린 주교가 딱 적당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아직도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토록 신앙심이 깊은 유저 분은 내 본 적이 없네. 또한, 비리마 영지를 구한 영웅이 아닌가. 배울 게 많은 훌륭한 유저 분이니, 좋은 수행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연륜이 있는 만큼, 그리고 나아질 거 하나 없이 시골 마을의 교회들만 전전하는 주교답게, 기회가 오자 아주 혀가 잘 돌아갔다.

용후가 픽 웃었다.

기억해 두지.

이런 자들은 환영이었다.

그리고 용후는, 사제 나탈리와도 십칠 수행 여행 후 바이바이가 아니라, 연을 만들어둬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상태창 안에 뭔가가 더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냥 감(感). 이 감이 무슨 감인지, 함께 유적지를 공략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갈 길이 멀어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용후의 그 말에 팰린 주교가 노구를 일으켰다. 그러곤 배웅을 하겠다며 교회 정문까지 따라 나왔다.

"영웅담을 듣지 못해 아쉽습니다. 바르뎅 마을에 혹 또 들르신다면, 언제든 교회에 들려주십시오. 언제든 환영입니다. 다음엔 교회의 포도주도 대접하겠습니다."

이미 트리던 주교를 통해 교회 포도주 맛을 봤지만, 용후는 적당히 그러겠다 말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헨슬런 백작령의 포리칸 숲으로 가는데 쓸 마부와 마차를 구하기 위해 마을 북쪽으로 갔다.

* * *

"……둘이서 가겠다고요?"

NPC 마부가 용후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곤 용후의 옆에 서 있는 나탈리 사제에게도 똑같이 했다.

레벨이 몇이나 되는지 가늠해 보는 것.

유저들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 NPC 마부 에렌딘은 아이템을 보는 눈이 제법 됐다.

장비는 상당히 좋았다.

'사제까지 달고 있는 걸 보면 보통 유저가 아니긴 한데…….'

그러나, 아무리 봐도 고렙으론 보이지 않았고, 몬스터 사냥을 하는 유저로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도 손도 무슨 귀족가 자제처럼 깨끗해서였다.

'사제도 너무 어려.'

성녀라도 되지 않는 이상에야, 저 나이에 쓰는 권능은 힐링 포션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힐과 하급 권능 두세 개 정도였다.

"그 정도의 장거리는 파티 손님들만 받습니다. 포리칸 숲까지는 힘듭니다."

"몬스터는 걱정할 거 없습니다. 제가 다 잡을 수 있으니. 게다가 사제님도 있고. 따블로 하고, 우리가 유적지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헨슬런 성까지도 데려다주면 헨슬런성까지 비용도 따블, 성공보수도 넉넉히 챙겨줄 테니 갑시다."

마부들은 더 있었다. 그러나 용후는 이 마부의 마차를 타고 싶었다. 말의 상태가 특히 아주 좋아서였다.

자신감에 여유까지 보이는 용후의 태도에 에렌딘은 살짝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바울 들판에서 붉은털 늑대 떼를 만나면 파티 없이 잡긴 힘들고, 포리칸 숲은 트롤도 서식하는 숲이었다.

20인 파티가 가겠다 해도 고민할 판에, 레벨이 제아무리 보기와 달리 높다 해도 60레벨 70레벨까지 되진 않을 테고, 14~15살이나 됐을 것 같은 여사제, 이 둘만 믿고 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용병이라도 한 서넛 데려오면 모를까…… 힘듭니다. 다른 마부 알아보세요. 안 가요."

에렌딘은 고개를 아예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용후도 더 설득하지 않았다.

아무 마부나 일단 구했다가 도중에 들리게 될 헨슬런 백작령의 토즐린 마을에서 말을 사서 바꿔주거나, 다른 마부를 새로 구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때였다.

"저기, 그거 제가 가면 안 될까요?"

30대 중반 정도 나이에, 왜소한 키와 체격,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NPC가 아닌 유저였다.

"마부 박정석이라고 합니다. 아까 하신 가격 얘기, 저한테도 적용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손님, 제 마차 어떠세요?"

용후가 박정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용후를 외면하고 있던 에렌딘의 고개도 박정석 쪽으로 돌아갔다.

순간 뭔가 자기 걸 뺏긴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불쾌해진 것도 잠시, 에렌딘은 코웃음을 쳤다.

'장사가 아무리 안 돼도 그렇지, 뒈지려고 작정했군.'

* * *

'뭔가 있는 사람이야.'

용후가 에렌딘과 흥정하는 걸 유심히 보던 박정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런 표정을 짓는 유저는 본 적이 없었다. 랭킹 1위 파티의 파티장, 랭킹 1위 길드의 길드장이란 자들도 저렇게 여유 있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지는 않는다.

잘나간다는 유저들도 다들 얼굴에 불안함과 초조함이 보였다.

아무리 잘나가도 찰나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고, 누가 어떻게 치고 올라올지 그것도 불안하니까.

그런데…….

'달라.'

이 유저는 달랐다. 허세가 아닌 진짜 강자의 여유가 저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였다. 박정석도 아무리 고렙이라 해도 2인 파티만 데리고 포리칸 숲까지, 그것도 포리칸 숲의 초입을 넘어 더 들어가는 게 위험하단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박정석은 이 유저를 잡아야겠다 싶었다. 엄청난 기회란 생각이 들었기에.

"좋아요. 따블도, 성공보수도 약속하죠."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유저입니다."

괜히 자격지심이 들어 박정석이 말했다.

"알아요. 대신, 말 바꾸죠. 토즐린 마을에 도착하면요. 물론 그 말 제가 공짜로 바꿔줍니다."

"예? ……정말이세요?"

"정말입니다."

"감사합니다! 할게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 박정석이 가진 말도 나이가 좀 있어서 그렇지 결코 나쁜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더 좋은 말이라면, 가장 팔팔한 나이의 최상등급 말을 사주겠단 거였다.

그래도, 내심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정말 용병은 고용하지 않으셔도 되는 건지……."

"괜찮습니다."

이젠 사제까지 있는데, 소세토 유적지까지 가는데 필드 몬스터에 죽을 일은 절대 없었다.

"알겠습니다. 믿고 가겠습니다."

사제는 아무나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도 파티도 아닌 혼자. 그런 자가,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데 뭘 모르고 자신만만해 하는 것이거나, 허세일 리는 없었다.

"주겠다 한 성공보수는 고용비의 5배 드리죠."

"예……?"

바르뎅 마을에서 소세토 유적지 정도의 거리면 비용은 보통 2골드, 더블을 주겠다 했으니 소세토 유적지까지 4골드, 이후 헨슬런 성까지도 같은 값을 내겠다 했으니 4골드, 성공보수는 고용비의 5배를 주겠다 했으니 20골드, 그럼 일을 끝내고 바르뎅 마을로 돌아올 땐 28골드를 벌어서 돌아오게 되는 거였다.

"소세토 유적지까지, 그리고 헨슬런 성까지도 열심히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선심을 쓰는 건 아니었다. 혹할 정도의 성공보수를 약속해야 유적지를 공략하고 나올 때까지 자신들을 기다릴 거란 생각에서였다.

또, 이 마부 입장에선 목숨을 거는 셈이니 이 정돈 돈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물론 다칠 일조차도 없지만.

그때였다.

"저기! 그거 내가 할게요. 내 마차에 타시죠, 손님."

방금 그 NPC 마부 에렌딘이었다.

"포리칸 숲은 인기 있는 사냥터죠. 전 포리칸 숲까지 빨리 가는 지름길도 알고 있습니다. 말도 중간에 새로 안 사셔도 됩니다. 제 말들은 최상등급 말……."

에린딘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용후가 에렌딘을 향해 필요 없다는 듯 손으로 막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서였다. 그리고 용후는 다시 박정석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박정석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고, 토즐린 마을에서 말을 바꾸면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도 않을 것이다.

에렌딘이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자신이 엄청난 기회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왠지 자꾸 들었다.

성공보수로 저렇게나 많은 액수를 주는 자라면, 용병을 구할 돈이 없어서 둘이서만 가는 건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물 건너간 일이었다.

"지금 바로 가죠. 식량도 제가 제공합니다."

이동 중엔 몬스터를 잡아 던전밥 스킬로 요리를 해 나눠 먹으면 되고, 자신들이 유적지를 공략하고 나올 때까지는 유적지 1층에서 음식을 사 먹으면서 기다리면 되었다.

"알겠습니다. 타시죠."

박정석이 마차 문을 열어줬다. 용후와 나탈리가 타자 문을 닫아준 뒤 박정석도 마부석에 올랐다.

그리고 마차를 돌리며 살짝 미소 지은 얼굴로 에렌딘을 슥 내려다봤다. 그동안 자신을 얼마나 무시했고, 가로채 간 손님이 몇이던가.

박정석은 불안함이 아닌 기대감이 들었고, 일그러져 있는 에렌딘의 얼굴을 보며 통쾌함도 느꼈다.

그렇게 용후와 사제 나탈리를 태운 박정석의 마차가 바르뎅 마을을 나가 바울 들판을 달렸다.

그로부터 1시간여 뒤.

하울링 소리가 들리더니, 붉은털 늑대 떼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많다……!'

거의 20마리, 게다가 덩치도 한 마리 한 마리 다 컸다. 붉은털 늑대의 평균 레벨보다 3~4레벨 정도 더 높은 놈들일 듯했다. 박정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소, 손님! 붉은털 늑대입니다! 정말, 괜찮은 건가요?"

"봤습니다. 마차 세우고, 마차 안에 그대로 있으세요. 오늘 저녁은 저걸로 하죠."

"……예?"

묘한 말을 한 손님 김용후가 마차가 멈추지도 않았는데 마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곤 가볍게 바닥에 착지, 검과 방패를 꺼내 들곤 달려오는 붉은털 늑대 떼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빠르다!"

붉은털 늑대들보다도 더.

박정석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이어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몬스터 한 마리 안 잡아 봤을 것 같은 얼굴과 손을 하고선, 붉은털 늑대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사제의 스태프 끝에 박힌 진주석이 빛을 냈다.

권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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