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기적의 스킬 자판기 043화
"뭐야, 버거튼이 왜 용후 대장간에서 수리를 하고 있어?"
"용후 씨 도제로 들어갔다던데."
"도제라니?"
용후 대장간 앞이었다.
대장간에 줄이 그리 길게 서 있지 않은데도, 유저들은 그 줄에 서지 않고 용후 대장간 주변에 서서 그런 대화들을 나눴다.
뜬금없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그런데 정말 버거튼 대장간은 간판까지 내려진 상태였다.
"어제만 해도 또 한판 붙을 것처럼 길에서 싸우던데."
"나도 봤어. 그러다 둘이서 이야기하자면서 갔는데, 무슨 이야길 어떻게 했길래, 허 참."
"용후 그 사람, 진짜 보통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해."
그저 운 좋게 특별한 스킬 몇 개를 얻은 게 다가 아니었다.
특별한 스킬 몇 개를 얻었다 해도 영주도 못 잡던 자커스 도적단을 두목까지 잡아내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것까지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 마을까지 샀다.
작위를 받아 귀족도 됐다.
또, 대체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도 잘 요리할까.
버거튼을 망하게 하더니, 이젠 아예 자기 부하로 만들어 부리고 있었다.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스킬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펄펄 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때였다.
"에이, 쓰레기 같은 놈! 이렇게 잘 수리할 수 있으면서 그동안 그렇게 쓰레기 같이 수리를 했었다니."
용후 대장간에서 나온 한 유저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가면서도 계속 버거튼의 욕을 했다.
그 유저만이 아니었다. 용후 대장간에서 수리를 하고 나온 유저들 모두가 그랬다.
"이런 수리 실력을 가졌으면서, 어휴, 개쓰레기."
"대장간은 망하고, 노예까지 되니 속이 다 시원하네."
"그동안 초보 유저들 등쳐먹은 벌이니 달게 생각하고 앞으론 이렇게 제대로 수리해라. 안 그럼 용후 씨한테 바로 가서 알릴 거니까."
수리를 하고 나온 유저들 모두 버거튼에 대한 욕은 하면서도, 수리된 장비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수리가 돼서였다.
총내구력이 좀 떨어지기야 했지만, 상급 대장장이가 수리해도 총내구력은 조금은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노멀 등급 장비는 총내구력이 5 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레어와 매직 등급 장비는 10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손이 미끄러져 수리 중에 장비가 박살 나는 일도 없었다. 이 정도면 아주 준수했다.
그랬다.
버거튼은 원래 상당한 실력을 가진 대장장이였다. 중급 대장장이니 당연한 일.
유니크 등급 이상이면 몰라도 그 아래 등급 장비들은 제대로 수리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버거튼이 용후 대장간 안에서 수리를 하는 모습을 용후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버거튼이 납작 엎드리기로 했다 봐도 될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암살 계약서가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있는 한은. 그리고 비리마의 영웅이란 자신의 별명이 사라지지 않는 한은.
도망가면, 비리마 남작의 수사관들에게 쫓기게 되는 것이다.
버거튼의 레벨은 고작 17, 그리고 수중에 돈도 없다. 도망가면 금방 잡히게 되어 있었다. 그걸 버거튼도 잘 알 테고.
용후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팔켄 마을을 나와 팔켄 숲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사제 나탈리를 픽업하기 위한 바르뎅 마을이었다.
* * *
-독에 중독됐습니다
파칼 숲.
용후는 숲 초입은 금방 지났다. 그러나 중간 지점부턴 속도가 좀 느려졌고, 독침을 쏘는 고블린 무리들이 나오는 지점부터 조금 헤매고 있었다.
힐링 포션은 이전 단체 퀘스트를 할 때 쓰고 남은 게 많았고, 해독제는 광장의 고렙 유저들을 통해 20개 정도를 샀다. 그러나 지금은 해독제는 다 쓴 상태.
그러나, 용후가 독에 중독돼 죽는 일은 없었다.
고블린들의 레벨은 12~13, 높아야 15 정도의 저렙이지만 독침은 상당한 맹독, 그러나 용후의 자가 재생력은 독도 해독을 해냈다.
그렇다고 독침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눈앞이 흐려지고, 현기증이 나고, 몸의 균형이 흔들리는 탓에 움직임이 확 둔해졌다.
그러니 레벨이 20 정도 차이 나는 고블린들이라 해도 떼로 덤벼들기까지 하니 금방금방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급할 건 없었다. 언제까지 바르뎅 마을의 교회로 사제를 픽업하러 가겠다고 약속을 한 건 아니니까.
자신이 교회에 도착하면, 그날이 나탈리 사제의 십칠 수행 시작일이었다.
"나 1골드만."
-1골드를 얻었습니다.
-더블 크리티컬
-2골드를 추가로 빼 옵니다
-더 이상 빼 올 금화가 없습니다.
독에 몸이 둔해져 검을 고블린들의 몸에 맞춰 잡는 게 어려울 뿐, 생명력 스탯에 거의 몰빵을 하다시피 한 용후가 고블린들의 공격에 죽을 일은 없었다.
헤맨 건 잠시, 용후는 나 1골드만 스킬로 금화를 빼내 가며 급할 거 없이 느긋하게 고블린들을 사냥했다. 그러자…….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36이 됩니다
생각지 못한 알림창도 떴다.
-독 내성 스킬을 얻었습니다
독에 대한 피해를 경감시켜주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용후는 벌써 반나절 동안 고블린들의 영역에서 헤매고 있고, 특히 자가 재생력의 힘이었다.
아무리 해독 포션이 많아 엄청 먹어대며 버틴다 해도 이렇게 빨리 독 내성 스킬이 생기는 일은 없고, 애초에 해독 포션으로 해독할 수 있는 덴 한계가 있었다.
먹으면 먹는 대로 해독이 되는 게 아니라 효과가 차츰 줄어들게 되는 것.
"좋은데."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좋았다. 이제 겨우 스킬 레벨이 1레벨일 뿐인 데도.
그때부턴 고블린 사냥이 훨씬 쉬워지고, 다시 이동 속도에 속도가 붙었다.
그로부터 1시간여 뒤, 용후가 드디어 고블린 영역을 벗어났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횃불 스킬은 갖고 있지만, 켜도 그리 멀리 밝히진 못했다. 길을 찾기도, 방향을 잡기도 힘들었다.
괜히 빨리 가려다 오히려 바르뎅 마을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용후가 걸음을 멈추려 할 때였다.
불빛이 보였다.
횃불 불빛이 아니었다.
모닥불 불빛이었다.
용후가 그쪽으로 갔다.
파티 사냥은 해본 적이 없고, 할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용후에게도 파티의 숲 야영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좀 어울려 볼까 했다. 혼자 이 컴컴한 숲에서 혼자 노숙을 하는 것보단 훨씬 나으리라.
그리고 중간 지점은 지났다. 그러니 저 유저들은 바르뎅 마을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일 것이다. 그럼 바르뎅 마을로 복귀할 때 같이 가면 된다. 더 헤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젠 레벨도 높겠다, 지도와 나침반만 있으면 갈 수 있겠지 싶었는데, 숲에서 방향을 잡고 길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실례합니다.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자신의 기척을 느끼고 경계하고 있는 유저들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며 용후가 말했다.
어둠 속에서 완전히 나온 용후를 본 유저들이 무기에서 손들을 뗐다. 혼자였고, 장비는 꽤 그럴싸했지만, 레벨은 그리 높지 않아 보여서였다.
"앉으시죠."
중갑옷을 입고 있는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말했고, 다른 유저들은 각자 하던 걸 다시 했다.
4인 파티였다.
자리는 넉넉했다.
용후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근데 왜 혼자 파칼 숲을 돌아다니고 계세요?"
"팔켄 마을에서 활동하던 유저인데, 바르뎅 마을에 가는 길입니다. 혼자 숲길을 찾아서 가는 게 쉽지 않네요. 덕분에 한숨 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들이 바르뎅 마을에서 활동하는 유저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아하. 헤매셨구나. 마침 저희도 해 뜨면 바르뎅 마을로 돌아갈 생각이니, 같이 가시죠."
"그럼 거절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보답으로 헤어질 때 공짜로 수리를 해주면 될 듯했다.
이후 자신들은 어떤 몬스터를 잡는지, 그리고 용후에게 어디서 어떻게 헤맸는지를 물어 그걸 화제로도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데운 포도주인데 한잔하시겠습니까?"
마법사로 보이는 유저가 구리잔을 용후에게 건넸다.
참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여행의 시작, 기분 좋게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구나 싶었다. 수리를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용후가 사양 않고 잔을 받았다.
딱 알맞게 따뜻했다. 잘 마시겠다 말하며 용후가 데운 포도주를 마셨다.
그런데 잔을 거의 다 비웠을 때 용후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눈앞이 확 흐려지고 머리가 핑 돌았기 때문.
'뭐야, 독이야……?'
독이었다. 틀림없다. 고블린의 독침 이상의 맹독이었다. 자가 재생력과 3레벨이 된 독 내성 스킬 덕분에 의식을 잃지 않은 것이었다.
"와, 장비 진짜 대박."
"비리마 성에서 활동하는 유저들보다 더 장비가 죽이는데."
"저 반지 좀 봐, 고대 유물이 틀림없어."
"로브도 그런 거 같은데."
"검 저것도 백 프로 유니크야."
조금 흐려진 의식 너머에서 그런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자가 재생력과 독 내성 스킬이 빠르게 독을 해독해 나갔다. 용후의 시야가 차츰 밝아져 갔다.
"상태창이 다 보여."
먼저 용후는 유저들의 상태창과 인벤토리 속부터 봤다.
"와, 생각보다 돈 많네."
용후가 한 말이었다.
"뭐?"
네 유저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쯤이면 독이 전신으로 퍼졌을 터, 당연히 목도, 혀도 마비돼서 절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 1골드만."
유저가 묘한 말을 했다.
* * *
"뭐라는 거야! 뭐가 1골드 1골드야."
"독에 중독된 거 맞아? 아니지? 어떻게 된 거야?"
"그럴 리 없는데…… 붉은꼬리 전갈 독에 맹독 스킬까지 더해서 만든 독인데…… 버틸 수가 없는데……."
"어? 뭐야, 이거? 내 인벤토리에서 돈이 빠져나가!"
네 유저들이 그런 말을 우왕좌왕했다. 넷 다 얼굴 가득 당혹감이 차올라 있었다.
레벨이 50이 넘고 70이 넘어도, 독 내성 스킬을 갖고 있다 해도, 그 독 내성 스킬이 10레벨이라 해도 돈까지 주고 산, 상급 독에 속하는 붉은 꼬리 전갈의 독에 6레벨인 맹독 스킬까지 더해서 만든 독이니 몸을 못 가누며 정신을 차리지 못해야 했다.
그런데 유저는 발음 하나 새지 않고 멀쩡히 말을 하고, 눈도 너무도 또렷했다.
이상한 의미불명의 말을 지껄이고 있지만, 독에 중독돼서 환각을 보며 하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1골드만 달라는 저 말 때문이기라도 한 건지, 한 파티원의 인벤토리에서 금화가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 그것도 말과 달리 1골드씩이 아니라 10골드 20골드씩.
뭔가에 홀린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저 유저가 자신들보다 레벨이 높지 않은 건 분명했다.
장비는 더 좋지만, 아무리 템빨이 돼도 레벨 차를 무시할 수 있는 것도 한두 명이지, 자신들은 무려 네 명, 싸우면 질 리가 없다.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싸우는 도중에 떨어진 아이템은 주울 수 없었다. 유저가 죽어 드랍한 아이템만 주울 수 있었다.
유저의 템을 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재우거나 기절시키는 거였다. 그럼 세이브존에선 불가능하지만, 필드에선 아이템을 벗길 수 있었다.
그래서 죄를 지어 경비대에 잡힌 유저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게 장비들을 인벤에 전부 넣는 거였다.
그러나 저 유저는 독에 중독이 되지 않았고, 자신들이 독을 쓴 걸 눈치챈 것 같으니, 죽여서 드랍템이라도 한두 개 나오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다.
눈빛을 교환한 네 유저들이 무기를 빼 들었다. 그 직후였다.
"자동사냥."
갑자기 유저가 또 그런 묘한 말을 하더니, 갑자기 모닥불을 휙 뛰어넘어 먼저 덮쳐들었다.
'빠르다!'
파티장 조영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움직이는 속도가 결코 자신들보다 낮은 레벨이 아니었다. 그저 템빨이 아니다. 어떤 아이템도 움직임을 저렇게까지 보정해 주는 경우는 없다.
"흐아앗!"
기합을 내지른 한 파티원이 달려드는 유저를 향해 마주 검을 휘둘렀다.
유저의 검은 숏소드, 파티원의 검은 바스타드소드. 길이 차이에서 엄청난 우위, 게다가 속도에도 자신이 있는 파티원이었다.
유저의 움직임이 보통이 아니니 공격까지 성공시키진 못하겠지만, 조영태는 파티원이 충분히 막을 순 있다 확신했다.
그럼 유저가 다음 동작을 하기 전에 자신이 공격을 성공시키면 되었다.
혹 자신의 공격이 막힌다 해도, 다른 두 파티원들도 이미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상황. 질 수가 없다.
고영태는 유저 사냥을 하는 유저가 아니었다.
그래서 악명 스탯도 없었다. 그러나 저 유저의 장비들은 좋아도 너무 좋고, 파티원도 없는 혼자, 이런 기회를 놓치며 바보다.
다만, 기껏 잡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템을 많이 털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런데…….
유저의 움직임이 갑자기 확 급변했다.
"어!"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방금 그 동작은 페인팅이었다.
그러나 페인팅이었다 해도 어떻게 저 자세에서 저런 자세로 확 바꿔, 베기 공격까지 한순간에 물이 흐르듯 해낸단 말인가!
쉭!!
위로 올려치는 사선 베기.
파티원의 목이 잘렸고, 절단된 머리는 멀찍이 날아가 수풀 속으로 떨어지고, 몸은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미친!'
흡사 NPC 기사와도 같은 움직임!
세 유저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그때 또 한 명의 목이 입을 벌린 상태로 잘려 머리가 핑글핑글 돌며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