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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38화 (3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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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스킬 자판기 038화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로 보고 있는, 열화판 현자의 돌 파편의 상태창엔 설명이랄 게 없었다.

현자의 돌의 열화판 파편이란 내용이 전부.

그러니 현자의 돌의 파편과 현자의 강화석에 대해 더 알려면 발품을 팔아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리 많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될 듯했다. 아는 마법사가 생겼으니까.

갈렉스 말이다.

아직 인맥이라 할 정돈 아니지만 그래도 호감도 500 정도면, 물어보면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선 대답을 해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갈렉스는 임무 수행 중 큰 실수를 한 게 있고, 그 실수가 영주의 귀로 들어가지 않게 하려면 자신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

마탑에서 제대로 마법을 배우고 익힌 NPC 마법사라면 현자의 돌에 대해 아는 게 분명 있을 터다.

용후는 일단은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비리마 성까지 돌아가는 동안 시간은 많으니.

먼저 할 건 논공행상이었다.

용후가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다시 쓰며 아이템 더미를 봤다.

이미 유저들이 드랍템을 꺼내기 전에 인벤토리 속을 들여다보며 뭘 가질지 생각해 뒀기에 용후는 금방 다음 아이템을 골랐다.

-남성 귀족복을 얻었습니다

이 세계는 옷도 전부 아이템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옷에도 등급이 붙어 있었다.

좋은 재료로 잘 만들어진 옷에는 옵션이 붙는 경우도 있다. 방금 용후가 집어 든 옷이 그랬다.

설명창에 스테아 의상실의 원장이 디자인하고 미슬린 실을 주재료로 한 땀 한 땀 직접 바느질을 해 만들었단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미슬린 실로 짜, 옷인 데도 방어력이 갑옷 못지않게 높고 내구력도 그랬다.

유니크 등급으로 옵션도 붙어 있었다.

입고 있으면 품위와 위엄 스탯이 개방되는 효과였다. 수치는 둘 다 20.

특수 스탯이 2개나 붙어 있고 수치도 꽤 높은 만큼, 방어력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에픽 등급도 붙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특수 스탯의 가치는 컸다.

그 두 효과까지 더해져, 이 옷을 입기만 해도 상대가 귀족이라 하더라도 태도가 더 나긋나긋해지고 친절해지게 될 것이다.

스탯에는 그런 효과가 있었다.

비리마 성에도 의상실이 있었다. 그러나 갑옷 수준의 방어력에 스탯 옵션이 붙어 있는 옷은 없었다.

"스테아 의상실이라……."

헨슬런 백작령이던가. 그곳일 것이다. 월간 모험 책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었다.

그 의상실에 가면 바로 이런 옷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재료들을 다 준비해 맞춤옷을 의뢰하거나, 원장이 만든 옷은 경매를 통해 판매를 하는 식이었다.

즉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든 옷.

중요한 자리에 참가할 때 입으면 좋고, 팔아도 좋다. 큰돈이 될 테니.

귀족들, 또는 귀족이나 대상인들을 상대하거나 거래하는 유저들에게 팔면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옷의 원래 주인은 걱정할 게 없다.

유저들에겐 정당한 몬스터 사냥과 퀘스트를 통해 얻은 드랍템은 그게 뭐든 가질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용후가 다시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쓰곤 다음 아이템을 찾았다. 이번에도 금방 찾아냈다.

-질풍검을 얻었습니다

이것도 유니크였다.

질풍검은 공격력이 엄청 높진 않지만, 유니크에 걸맞은 수준은 됐고, 민첩 스탯을 15 올려 주고 공격 속도를 20% 상승시켜주는 옵션이 붙어 있었다.

자동사냥 스킬을 쓰면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지는데, 그때 공격 속도 20% 상승 효과가 붙게 되면 근력 체력 스탯이 오르거나 공격력이 오르는 것보다 더 전투력이 오르게 될 거란 판단이었다.

-영롱한 수정 반지를 얻었습니다

전 스탯을 2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 강화석으로 강화를 하면 수치가 2씩 오르는 효과도 있었다.

-고대 마법사의 로브를 얻었습니다

마법사 도적 미커가 쓰던 로브였다.

용후가 얻은 드랍템이지만 일단 자신도 꺼내놨던 걸 다시 주웠다.

설명란엔 고대 마도 왕국의 어느 마법사가 쓰던 로브란 설명이 다였다.

그 시절에 양산형으로 막 만들어져 막 팔던 로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효과는 대단했다.

마력 스탯과 지능 스탯을 10씩 올려 주고, 항마력 스탯 개방 옵션도 있었다. 그 항마력 스탯에 붙는 수치는 10.

항마력이 단 1만 돼도 마법을 맞았을 때 입는 데미지 차이가 크다. 그러니 항마력 스탯만큼은 10만 돼도 높은 수치라 할 수 있었다.

"약속했던 대로 딱 5개입니다."

용후가 그렇게 말하며 뒤로 두 걸음을 물러났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퀘스트가 클리어되기 전, 퀘스트창에서 참가자들의 활약도 수치를 보고 적어 놓은 것이었다.

"활약도 수치에 따라 순번이 정해지고, 먼저 드랍템을 고르게 되는 72명은 드랍템 3개씩을, 나머지 분들은 5개씩을 고르면 딱 개수가 맞습니다."

용후가 이름을 부르자 20명의 유저들이 앞으로 나와, 시장의 골라 잡아처럼 정신없이 아이템 더미를 뒤지며 아이템을 3개씩 골랐다.

그 유저들이 물러나자 용후는 바로 또 20명을 불렀다.

불만을 토로하는 유저들은 없었다.

있어도, 조금 전 백재현이 처절하게 제압되던 장면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감히 입도 벙끗 못했다.

또 활약도에 따른 분배니 결코 불공평한 분배가 아니었다. 항의할 명분도 없었다.

"드랍템 분배가 끝나면 무료 수리를 하겠습니다. 뭐든 다 수리해 드립니다. 여러분이 큰 활약을 해줬기에 클리어할 수 있었던 퀘스트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지휘관으로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활약도 상위의 유저들은 더 활짝 웃었고, 알짜배기들만 쏙쏙 사라져가는 드랍템 더미를 보며 불퉁한 표정들을 짓고 있던 활약도 하위 유저들의 표정도 꽤 풀어졌다.

"수리가 끝나면 비리마 성으로 복귀하겠습니다. 비리마 성의 NPC 모두가 여러분을 환영해 줄 겁니다."

그렇다. 김용후만이 아니다. 퀘스트의 참가자들인 자신들도 영웅이다.

그리고 돌아가면 모든 상점 20% 할인 보상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결국, 분위기가 차츰 더 풀리며 모든 유저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져 갔다.

* * *

비리마 성으로 돌아가는 길.

용후는 마법사 갈렉스가 모는 말에 타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이 차이입니다. 현자의 돌은 마법사들이 만들었고, 열화판 현자의 돌은 연금술사들이 만들었습니다."

용후의 질문에 갈렉스가 가장 먼저 한 대답이었다.

"마법사들이 만든 현자의 돌이 진짜고, 연금술사들이 만든 건 가짜입니다."

그러나, 현자의 돌은 지금 시대의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이 만든 게 아니었다.

고대에 만들어진 물건.

고대 마도 시대는 신화시대의 신들이 더러 실존하기도 했던 시대.

그런 영향도 더해져 옛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의 마법력과 연금력은 지금 시대의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을 아득히 상회했다고 한다.

그런 마도시대의, 돌도 황금으로 만들어냈다던 연금술사들이 만든 물건, 가짜라 해도 별거 아닌 쓸모없는 물건일 리는 없다.

"예, 열화판 현자의 돌에도 현자의 돌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현자의 돌의 반의반도 안 되는 힘입니다."

"흥미롭네요."

더 해보라는 듯 용후가 그렇게 말했고, 갈렉스는 더 말을 이었다.

"고대시대에 열화판 현자의 돌로 가장 많이 했던 게 병장기나 아티팩트를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진짜 현자의 돌은 그게 뭐든 강화할 수 있었다 하더군요. 마법사들의 서클링과 기사들의 오러홀을 강화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됐던 모양입니다."

"현자의 돌만 있으면 바로 강화할 수 있었던 건가요?"

"아닙니다. 현자의 돌은 재료 중 하나입니다. 핵심 재료죠. 다른 재료들이 더 필요합니다. 또 만드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재료가 있으면 누구든 만들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만들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공식적으론 없지만…… 있습니다."

누가 만들고 있는진 모른단 뜻이었다.

"강화석의 제조법이 적힌 고대 마법서는 유적지에서 출토되어 루물 마탑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마법사도 그 마법서에 적힌 강화석의 제조법을 구현해내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명창에 고대 연금술사가 아닌 연금술사가 만들어냈단 설명이 적힌 아이템 강화석이 소량이지만 시중에 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연금술사가 만들고 있단 증거죠."

그러고 보니 임성웅을 잡고 얻은 아이템 강화석의 설명창에도 고대 연금술사가 아닌 연금술사가 만들었단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용후는 그 연금술사가 누굴까보다 아이템 강화석의 제조법이 더 궁금했다.

'어쩌면…….'

뭐든 다 만들어 스킬로 강화석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강화석이 어떤 구성물들로,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린 마석을 매개체로 쓰는 정도로 될 리 없다. 어쩌면 블루 마석이나 레드 마석으로도.

하지만, 현자의 돌, 또는 현자의 돌의 파편을 쓰면 되지 않을까.

스킬 강화석이 아닌 아이템 강화석이라면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 정도로도 가능할지 모른다.

된다면 스킬 자판기에서 산 스킬들을 10레벨 이상으로 더 레벨을 올리고, 다른 효과가 더 개방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킬 자판기 자체를 강화하는 것까지도.

물론 현자의 돌과 관련된 아이템들은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필드나 던전의 몬스터들은 드랍하지 않는다. 구할 수 있는 곳은 고대 유적지뿐이고, 유적지면 다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 그런 유적지가. 이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은 그 유적지에서 나왔을 테니.

"제가 강화석의 제조법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본이 없어 그 마법서는 루물 마탑의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루물 마탑은 폐쇄적인 곳입니다. 마법사가 아닌 자에겐 도서관 이용을 허가하지 않고, 루물 마탑 소속이 아니면 어떤 마법사든 서클이 몇이든 절차가 아주 복잡하죠. 고대 서적관의 출입은 마찬가지로 불가능하고요."

그러나 용후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별로 없었다.

돈과 인맥으로 안 되는 건 없으니. 이 세계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전혀 다르지 않다.

그때였다.

"유저시니 역시 아이템 강화석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일레그 님이 루물 마탑 출신이십니다."

일레그는 3서클 마법사로, 비리마 남작이 데리고 있는 세 마법사 중 서클과 지위가 가장 높았다.

"그러니 일레그 님은 아이템 강화석의 제조법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용후 님에 대해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용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갈렉스도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한 실수가 영주의 귀로 들어갈 일은 확실하게 없어졌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퀘스트는 끝났습니다만 이렇게라도 용후 님을 도울 수 있어 기쁩니다. 꼭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용후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 커졌다.

가슴 속에 더욱 자신감이 차올랐다. 어떻게 인맥을 만들고 사람을 부릴지 더 잘 알 것 같아서였다.

더 강해질 수 있다.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얼마든지 더 강해지고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즈음 토벌대가 터글 산맥을 다 내려가 들판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젠 비리마 성까진 금방이었다.

병사 몇이 퀘스트 클리어를 알리기 위해 비리마 성으로 먼저 갔다. 분명 성문에서부터 성대한 환영식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영주가 약속한 추가 보상도 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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