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기적의 스킬 자판기 037화
도적들을 잡지 않고, 용후의 뒤를 따라온 자가 있었다.
유저 백재현이었다.
직업은 어쌔신, 레벨은 72였다.
비리마 성에서 유일하게 레벨이 70이 넘는 유저였다.
그러니 NPC들을 빼면, 자커스 도적단 소탕 퀘스트에 참가한 유저들 중 레벨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백재현은 비리마 성의 유저 랭킹에 이름이 없었다.
파티를 이뤄 몬스터 사냥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존재를 일부로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였다.
백재현은 암살자였다.
돈을 받고 복수를 대행해 주거나, 죽이고 싶은 자를 대신 죽여주는 일을 했다.
상당히 돈이 됐다.
밑에 유저 몇을 데리고 정보 길드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자신을 필요로 할 만한 자들에게 직접 찾아갔다.
지금 백재현이 받은 의뢰는 김용후를 죽이는 거였다.
팔켄 마을의 용후 대장간에 장비 수리를 하러 갔다가 받게 된 의뢰.
의뢰인은 NPC 버거튼이었다.
그런데 작업을 해보기도 전에 김용후가 비리마 성으로 가더니, 쭉 내성에 머물다 자커스 도적단 토벌대의 지휘관까지 됐다.
물론 백재현이 이 퀘스트에 참가한 건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의뢰가 아니더라도 백재현에게도 이 단체 퀘스트는 한몫 두둑이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김용후까지 잡으면 그야말로 대박이고.
버거튼이 선금으로 준 돈이 10골드, 성공하면 35골드를 더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친놈, 저런 괴물 같은 놈을 어떻게 잡으라고."
버거튼에게 하는 말이었다.
레벨은 그리 높지 않았다. 분명 자신보다 한참 낮을 것이다. 그러나 일대일로 붙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어쌔신 스킬을 사용한 암살도 마찬가지. NPC 기사에 마법사까지 계속 붙어 있는데 무슨 수로.
아니 저 NPC들이 없다 해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김용후가 어떤 스킬을 쓰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평범치 않은 비범한 스킬들인 건 분명했다.
두목의 왼팔 오른팔 격인 도적들을 딱딱 골라내 잡아내고, 비밀 통로의 출구를 찾아내더니, 두목이 던진 미끼를 간단히 간파해내기까지 했다.
특히, 자신의 설명창엔 금고 열쇠란 내용이 확실히 적혀 있었다. 자신이라면 감쪽같이 속았을 터다.
그러나 두목의 반응을 보니 가짜였던 것이다.
"괜히 건드렸다간 X되는 수가 있겠어."
이제 김용후는 비리마 영지의 영웅까지 됐다.
그런 김용후를 암살하면 김용후도 부활 후 보복을 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찾을 테고, 영지의 영웅을 죽인 자를 잡기 위해 비리마 남작도 움직일 것이다.
영주의 경비대가 작정하고 조사를 하면 꼬리가 잡힐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백재현은 그보다 김용후가 더 마음에 걸렸다.
왜인지 아무리 잘 숨어도 아무리 먼 곳까지 가도 자신을 찾아낼 것만 같은 것이다.
정말 다 찾아내고 잡았지 않나.
자커스 도적단의 본거지도, 두목의 왼팔 오른팔도, 비밀 통로도, 그리고 두목도.
자신이라고 다를까.
자커스 도적단의 두목에 비하면 자신은 피라미인데.
"버거튼 그 새끼 생각할수록 열 받네."
대장간이 망한 충격으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싶었다.
버거튼 그놈 계속 김용후에게 보복을 하려 하다간 보복을 하긴커녕, 더 끔찍한 일들을 당하게 될 것이다.
'어!'
김용후와 NPC들이 말을 타고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자 백재현이 얼른 몸을 더 바짝 낮춰 수풀 속으로 숨었다.
자신의 머리 위에 상태창이 떠 있단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또, 이미 토벌대가 출발하기 전부터 김용후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단 것도.
그러나 용후는 모른 척했다.
도적단의 스파이가 아닌 건 분명하고 70레벨이 넘는 고렙이니 토벌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지금도 용후는 일단 그냥 지나쳤다.
도적들을 잡아 얻은 아이템을 뱉게 해야 되니.
* * *
자신의 상태창을 연 용후가 미소 지었다. 역시 보상 수준이 엄청났다.
일단 막대한 양의 경험치가 들어와 레벨업을 9번이나 했다. 거기에 모든 스탯이 10씩 올랐다.
경험치도 용병으로 참가한 유저들보다 훨씬 양이 많지만, 전 스탯 10 상승은 지휘관에게만 주어진 보상이었다.
용후가 가진 스탯은 대축복 효과가 사라지면 없어질 행운 스탯을 빼면 딱 기본 스탯 4개뿐이었다. 그래도 그것만 해도 무려 13레벨업을 더 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돈은 3,500골드나 들어왔다.
"그럼 자커스 도적단 소탕을 하면서 번 돈이……."
고문실에서 도적에게 빼낸 돈이 약 2,000골드, 비리마 남작에게 지도를 팔아 받은 돈이 2,500골드, 두목이 가진 아공간을 털어 번 돈이 약 3,000골드, 그리고 퀘스트 클리어로 들어온 돈이 3,500골드.
합치면 약 11,000골드.
이게 다가 아니다.
박경일에게 뺏은 유니크 방패에, 본거지까지 오며 잡은 몬스터들이 드랍한 드랍템, 본거지 안에서 전투를 하며 도적들에게 뺏은 금화도 상당하고, 참가자들이 내놓은 드랍템들 중 가장 비싸거나 가치 있는 아이템도 5개 들어온다.
클리어 보상은 더 있었다.
명성이 30,000이나 올랐다.
그리고 모든 상점 20% 할인권에, 보상란엔 없던 칭호까지 얻었다.
칭호를 얻기란 정말 힘들다.
필드에서 몬스터 사냥만 해선 절대 얻기 힘들고, 퀘스트를 이것저것 많이 한다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칭호가 진짜 대박이야."
훌륭한 지휘관 칭호 덕분에 특수 스탯이 2개나 생겨나 있었다.
카리스마와 통솔력.
전 스탯 10 증가 보상을 받은 이후 칭호 보상을 받아 카리스마와 통솔력 스탯엔 스탯 보상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기본으로 15씩이 주어져 있었다.
그즈음 갈렉스가 모는 말이 본거지에 도착했다.
"목소리 증폭 마법을 걸어주세요."
용후의 말에 갈렉스가 즉시 마법을 걸었다.
몸을 휘감은 빛이 사라지자 용후가 외쳤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퀘스트가 클리어된 걸 다들 보셨을 겁니다. 다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정말 큰일을 해냈습니다. 미룰 필요가 없겠죠. 지금 이곳에서 바로 논공행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약속한 대로 도적들을 잡아 얻은 드랍템을 일단 전부 내놓으란 말이었다.
생포한 도적들을 한곳으로 모은 뒤 유저들이 용후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순순히 드랍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퀘스트는 클리어됐지만 비리마 성으로 도착하기 전까지 용후의 지휘관직은 유효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숫자니 말을 듣지 않는 자도 있기 마련이었다.
설마 인벤토리 속이 보이는 건 아닐 테니 자신이 뭘 주웠는지 다 알기야 하겠냔 생각을 하면서.
"백재현 씨, 몬스터와 도적을 잡아 얻은 드랍템을 전부 꺼내 활약도에 따라 분배하는 게 저와 한 약속입니다. 왜 약속을 어깁니까?"
아이템 더미 위에 적당히 값싼 드랍템들을 꺼내놓고 돌아선 백재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단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건지 그것부터 놀랐다. 이 많은 참가자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웠다고?
용후는 비리마 성을 떠나기 전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로 유저들의 인벤토리 속 아이템 목록을 다 적어 놨다. 그리고 이름은 상태창만 보면 알 수 있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어기면 군법으로 처벌합니다."
백재현의 머릿속에 박경일이 총알에 맞아, 그것도 다리에 맞았는 데도 외마디 비명만 지르고 고꾸라져 의식이 날아가 버린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나…….
갖고 싶은 게 있었다.
어쌔신에 딱인 유니크 등급 반지였다.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김용후가 두목과 싸울 때 암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김용후를 쫓아 본거지를 빠져나갔으니, 자신의 활약도는 상위권일 수 없었다.
그러니 이 반지가 자신에게 돌아올 일은 없다.
'다 아는 건 말이 안 돼…….'
적당히 찔러보는 거겠지. 자신이 재수 없게 걸린 거고.
"아, 착각했네요. 여기요. 이게 전부예요."
백재현이 아이템을 3개 더 꺼냈다. 이 아이템들도 매직에 유니크였다. 속이 쓰렸다.
"그림자 반지는 왜 안 꺼냅니까."
"예?"
백재현의 눈이 더 커졌다. 어떻게 이름까지 알아? 정말 인벤토리를 볼 수 있단 거야 뭐야?
"그건 비리마 성을 출발할 때 없었던 템일 텐데요. 즉 퀘스트 중에 얻었단 거죠. 틀립니까? 그리고 전투 중에 빠져나와 날 왜 미행합니까? 기회는 한 번만 드린다 했습니다."
용후가 NPC 기사 파빈을 돌아봤다. 파빈이 즉시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검날에 푸른빛이 맺혔다.
"아악!"
백재현의 입에서 비명이 솟고 왼팔이 절단돼 날아갔다.
뒤에 있는 유저들의 입에서 비명과 탄식이 터졌다.
* * *
그저 약속을 어기고 군법을 어긴 자가 아니었다. 백재현의 악명은 3,000이 넘었다.
또, 인벤토리 안에 묘한 게 들어 있었다.
[버거튼의 계약서]
계약서의 이름과 백재현의 직업, 그리고 악명 수치만으로도 대충 짐작이 됐다.
버거튼이 백재현에게 암살을 의뢰한 게 아닌가 싶었다.
"3초 줍니다. ……드랍템을 다 내놓지 않으면 다음은 다리 날아간다. 물론 내놔도 감옥엔 갇히고. 단 빨리 내놓으면 팔만 잘려 감옥에 갇힐 테고, 늦게 내놓으면 다리도 잘리고 더 오래 징역을 살게 될 거다. 셋, 둘……."
"크흐윽…… 다…… 전부 다 꺼냈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다 안 꺼냈으니 하는 말이다."
"다 꺼냈어!"
용후가 대꾸하지 않고 파빈에게 눈짓을 했다. 파빈이 다시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백재현의 왼쪽 다리가 잘렸다.
유저도 잡고 몬스터도 수없이 잡고 NPC도 잡았다. 팔다리가 한 짝씩 잘려 피 웅덩이 속에서 비명과 악을 지르며 버둥거리고 있는 백재현을 용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쳐다봤다.
"갈렉스 님."
갈렉스가 백재현에게 가 팔다리의 절단면에만 힐링 포션을 부었다. 그러자 차츰 출혈이 멎었다.
"다음은 오른팔입니다."
"난, 난 다 내놨어…… 결백해……!"
계속 절단면에 포션을 부울 테니 죽어 부활하는 걸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거짓말을 하고 내놓지 않았던 템을 이제 와서 내놓을 순 없었다.
지휘관의 명령을 어겨 즉결처벌을 받은 병사의 죄는 가볍지 않다.
유저 용병이라 해도 영주의 토벌대에 참가한 이상 토벌대가 해산되기 전까진 병사고 부하다.
지금 템을 내놔봐야 감옥에서 푹 썩게 될 터였다.
"제발…… 누가 좀 도와줘요! 난 결백하단 말이야!"
유저들이 술렁였다.
"저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이템을 더 안 내놓는 건 진짜 다 내놓은 거 아냐?"
"퀘스트 클리어하게 해준 건 고맙긴 한데, 지휘관이라고 김용후 저 사람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야?"
"무슨 관심법이라도 쓴다는 거야 뭐야? 애초에 이 많은 유저들이 드랍템을 얼마나 뭘 주웠는지 어떻게 다 알아? 생사람 잡는 거 같은데."
다들 용후가 틀렸길 바라는 분위기.
그래야 자신들도 아이템을 다 내놓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용후는 그런 유저들을 싹 무시하고 파빈에게 명령을 내렸다. 파빈이 다시 검을 쳐들었다.
그때였다.
"자, 잠깐! 내놓을게! ……내놓는다고!"
백재현이 꽥 소리를 질렀다.
아이템의 이름까지 알고 있고, 중급 포션까지 뿌려가며 몸을 잘라대고 있는 데다, 유저들의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걸 보니 반지를 내놓기 전까진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파빈의 검 끝이 백재현의 오른팔 위에서 멈췄다.
파빈이 검을 물리며 뒤로 물러나자 백재현이 얼른 인벤토리에서 그림자 반지를 꺼내 아이템 더미 위로 휙 던졌다.
유저들의 탄식이 터졌다.
"허, 정말이었어."
"저런 뻔뻔한."
"뭐야, 진짜…… 정말 인벤토리 속이라도 보이는 거야?"
"못할 건 뭐야. 영주도 못 잡던 자커스 도적단을 잡았어. 그건 말이 되나."
그런데 용후는 백재현이 꺼내놓은 그림자 반지에 손도 대지 않았다.
용후가 가지려는 아이템들은 따로 있었다. 더 좋은 아이템들이.
"그것도 뱉어."
"그거? 다 내놨어! 진짜야. 이젠 없어!"
이젠 정말 억울했다.
"버거튼의 계약서. 그거 뱉어."
"……뭐?"
백재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놈 대체 뭐야! 진짜 인벤토리 속을 보고 있어!
"셋 센다."
그러나 이건 진짜 꺼낼 수 없다. 꺼내면 안 된다. 암살 의뢰를 받은 내용이 적혀 있으니.
감옥에서 푹 정도가 아니라 푸우욱 썩게 된다. 재수 없으면 사형도 당한다. 무려 비리마의 영웅을 죽이려 했으니.
"내가 꺼내서 가져갈까?"
용후가 툭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그런 스킬은 없다.
그러나 백재현의 얼굴에 공포심이 차올랐다. 인벤토리 속도 보는데 빼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팔다리가 잘리고 감옥에 갇히게 된 백재현은 지금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였다.
"스스로 내놓으면 참작은 해준다."
용후의 그 말에 결국 백재현이 버거튼의 계약서를 꺼내 던졌다.
"포박하세요."
파빈이 병사들을 시켜 백재현을 포승줄로 묶게 하고 생포한 도적들이 있는 곳으로 옮기게 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2,000 오릅니다
유저들이 술렁이며 탄식을 터뜨렸다. 경외심이나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자들도 있었다.
김용후가 말하는 족족 딱딱 그 아이템이 나왔기에.
"다시 논공행상을 이어서 하겠습니다."
이후 소란은 일절 없었다.
모든 드랍템들이 꺼내졌다.
"상태창이 다 보여."
용후가 스킬을 쓰며 아이템 더미를 봤다. 무수히 많은 상태창들이 떠올랐다. 가장 궁금했던 아이템부터 집어 들었다.
-열화판 현자의 돌의 파편을 얻었습니다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현자의 돌의 파편이 '현자의 강화석'의 주재료가 된다는 글을.
그리고 현자의 강화석이 스킬 강화석이 아니겠는가 하는 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