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기적의 스킬 자판기 034화
자커스 도적단의 두목은 NPC였다. 이름은 엘판트였다. 레벨은 112였다.
처음부터 도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원래는 기사였다. 그것도 중급 기사였다.
그런데 도박에 빠져 있었다.
빚까지 생길 정도였다. 50골드가 넘었다. 그래도 도박을 멈추지 못했다.
돈을 빌리려다 동료 기사를 살해하게 되고, 그의 돈까지 훔쳐 도망쳐 도적질을 하며 먹고 살게 된 계기가 그거였다.
마침 유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기가 그즈음으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돈이 벌리자 엘판트는 도적단까지 만들었고, 그 도적단이 커져 지금의 자커스 도적단이 된 것이었다.
게다가 자커스 도적단은 최근 또 한 번 큰 도약을 준비 중에 있었다.
권총을 사용해 영주의 기사들까지 잡으면서 이젠 하늘을 찌를 기세로 오른 악명 덕분에, 곳곳의 지부들로 온갖 범죄자들이 단원이 되겠다며 모여들고 있어서였다.
그 중엔 기사 출신과 용병 출신, 심지어 마법사들까지 있었다.
이 기세면 조만간 다른 영지로도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까지 되고 나면, 영주의 토벌대만으론 자신의 도적단을 뿌리 뽑을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기사와 병사들, 유저들이 함성을 지르며 우르르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 수가 500명이 훌쩍 넘었다.
아니 수는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기사 수였다.
대충 훑어봐도 전신 갑옷으로 무장한 NPC 기사들이 곳곳에 쉽게 쉽게 눈에 들어왔다.
비리마 남작은 두 개의 기사단을 갖고 있었다. 그 기사단을 전부 보낸 듯했다. NPC 마법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유저들의 움직임도 뭔가 좀 묘했다. 그냥 막 싸우는 게 아니었다.
기사와 병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마치 훈련을 받은 병사 같은 움직임들을 보였다.
훈련을 받은 건 아니었다.
다만, 모든 분대의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었고, 유저들 전원이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단 확신을 갖고 싸우고 있어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사기도 자신감도 충만했다.
"대체 어떤 새끼야……!"
단원 중 누군가가 본거지를 분 거다. 그것도 아주 속속들이.
'이건 막을 수 없다.'
본거지에 있는 전력까지도 다 알고서, 아주 작정하고 토벌대를 만들어 습격을 해왔다.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엘판트의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이었다.
[두목,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마법사 미커였다.
[임성웅 데리고 내 막사 앞으로 와. 빠져나간다.]
권총이 임성웅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임성웅은 사격의 귀재였다. 사격 스킬도 7레벨이나 됐다.
비리마 남작의 기사들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단지 권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권총을 임성웅이 썼기 때문이었다.
3서클 마법사 미커와 임성웅, 이 둘만 있으면 자커스 도적단은 다시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다.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엘판트의 막사 안에 분지 밖으로 연결된 지하 통로가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쓰면 자동으로 붕괴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니 지하 통로에서 나가기만 하면, 그 뒤엔 지하 통로가 발각돼도 상관이 없었다.
"흐아앗!"
한 유저가 엘판트에게 달려들었다. 50레벨이 넘는 고렙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공격하고 있는 자가 두목이고 레벨이 100이 넘는단 걸 알았다면 절대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멀 등급의 추레한 낡은 가죽 갑옷에 단검 한 자루만 들고 있어 100레벨이 넘는다곤 생각할 수가 없었다.
또, 엘판트는 노멀 등급의 단검만으로도 50레벨대 유저쯤은 간단히 잡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적당히 공방을 주고받았다.
중간중간 밀리고 당황한 듯한 연기까지 했다.
자신이 두목이란 걸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커와 임성웅이 올 동안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발각된 상태였다.
그뿐 아니라 마법사도, 누가 권총을 갖고 있는지도 용후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엘판트로선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자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자가, 마법사와 권총을 가진 유저를 먼저 잡으려 하고 있단 것도.
그때, 용후가 NPC 기사 둘과 마법사를 데리고 움직였다.
* * *
"파빈님은 저와 같이 임성웅을 잡습니다. 지딘 님과 갈렉스 님은 마법사 미커가 두목 엘판트에게 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세요. 잡으려고 무리하지 마십시오. 붙잡아만 두면, 제가 잡습니다."
용후가 NPC 기사 둘과 마법사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가며 말했다.
"두목을 먼저 잡는 게 아니고요?"
마법사 갈렉스가 납득하기 힘들단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면, 그사이에 두목이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본가지 밖으로 빠져나가는 비밀 통로가 있을 수도 있고요. 아니, 없을 리 없습니다. 그곳으로 도망가면 잡기 힘듭니다."
용후가 고개를 저었다.
"도망가도 잡을 수 있습니다."
"예? 3서클 마법사까지 있는 도적단입니다. 그냥 비밀 통로가 아닐 겁니다. 특정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결계가 쳐져 있거나, 사용하고 나면 자동으로 붕괴되는 장치를 해놨을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무슨……."
갈렉스가 어이없단 얼굴로 용후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긴장감은 담겨 있지만, 그럼에도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여유마저도 보였다.
"두목이 그 비밀 통로를 통해 분지 밖으로 나가도 산맥을 다 내려가기 전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쓰며 쫓을 테니까.
시야가 닿는 거리 내에 있기만 하면 숨어 있어도 상태창이 떠오르는 것이다.
잡을 수 있다.
반면, 두목을 먼저 잡으려 하면 더 간단히 잡을 가능성도 있지만, 3서클 마법사와 권총을 든 유저의 공격에 자신의 호위를 맡고 있는 기사와 마법사가 죽을 수도 있었다. 물론 자신도 위험하고.
급할 게 없다.
이젠 가능한 피해 없이 끝내는 게 중요했다.
영주가 자신에게 붙여준 기사와 마법사를 잃는다면 퀘스트 클리어의 공과 영주의 자신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빛이 바래고 말 테니.
그래서였다.
두목이 도망가더라도, 두목의 왼팔 오른팔 격일 저 마법사와 권총을 가진 유저를 잡는다.
그럼 두목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해도 찾기만 하면 잡는 건 어려울 게 없다.
또, 죽이는 게 아니라 생포를 해야 하니, 마법사와 권총 유저가 없어야 생포도 훨씬 쉬워진다.
"……알겠습니다."
용후의 확신에 찬 설명에 갈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봤기 때문.
자신들은 보지 못한, 절벽 길로 가는 길목에 숨어 있던 도적들을 찾아냈고, 또 김용후의 말이 다 사실이라 치면, 산 위에서, 그 먼 거리에서도 두목이 누구고 마법사와 권총을 든 자가 누군지도 알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너무 시간을 지체하지만 않는다면 비밀 통로를 통해 분지를 빠져나간 두목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을 터였다.
그때, 마법사 갈렉스와 기사 지딘이 마법사 도적이 있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렸다.
용후가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촥! 써걱! 촥!
용후의 앞에서 달리고 있는 기사 파빈이 단 일격에 도적들을 베어 넘기며 길을 열었다.
임성웅과의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져갔다.
그때, 검으로 싸우고 있던 임성웅이 검을 내던지곤 허공으로 손을 뻗어 인벤토리 안에서 권총을 빼냈다. 그리고 용후를 겨냥했다.
'이 거리에서?'
용후의 눈이 커졌다.
아직 권총을 쏘기엔 먼 거리일 텐데.
그러나 총성이 울렸다.
투앙!
* * *
용후가 달리는 걸 멈췄다.
커졌던 눈이 아직도 컸다.
생명의 불씨라 표현하는 게 맞을 듯했다. 그게 확 꺼져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바람 정령이 할퀴고 간 방패가 뚫렸다. 그리고 갑옷도 뚫렸다. 그리고 생명력이 쭉 떨어진 것이다.
그새 갑옷 안에 뜨거운 피가 차 찰랑이는 게 느껴졌다.
'내 리볼버보다 더 공격력이 강하다……?'
크기도 모양도 똑같은, 같은 기종인데.
'설마…….'
강화된 건가?
그동안 그토록 많은 아이템을 수리했지만 강화된 아이템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템을 강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단 이야긴 책에서 본 적이 있고 들은 적도 있었다.
용후가 인벤토리에서 중급 포션을 꺼냈다. 그때 또 총성이 울렸다.
기사 파빈이 앞을 막아섰는데도 용후의 왼쪽 다리에 총알이 명중했다. 갑옷이 뚫리고 다리도 관통됐다.
용후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정신을 잃지도, 포션을 놓치지도 않았다.
스킬 자판기에서 사 먹은 비약으로 강해진 육체와 자가 재생력 덕분이었다.
용후가 중급 포션을 단숨에 들이켰다.
자가 재생력은 포션이 흡수되는 속도도 효과도 더욱 증폭시켜준다.
또 총성이 울렸다.
용후도 방아쇠를 당겼다.
투앙!
투앙!
임성웅이 먼저 쐈지만 용후가 쏜 총에 놀라 자세가 흔들렸고 이번엔 용후의 몸에 명중시키지 못했다.
"나 지키지 말고 공격해요!"
용후가 외쳤다.
파빈이 측면으로 달렸다. 돌아 들어가 임성웅의 옆을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용후가 일어났다. 그리고 임성웅을 겨눴다.
투앙!
투앙!
둘이 또 거의 동시에 리볼버를 쐈다.
임성웅은 맞췄다.
용후는 맞추지 못했다.
거리가 멀었고, 아직 상처가 다 회복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방패로는 막았다. 이번에도 방패와 갑옷이 뚫렸지만, 죽진 않았다. 움직일 수도 있었다. 중급 힐링 포션을 꺼내 마셨다.
그러나 또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도 방패와 갑옷을 뚫고 몸을 관통했다. 자가 재생력이 없었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버텨냈다. 그러나 시야가 핑 돌았다. 아차 싶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쯤 파빈이 임성웅과의 거리를 거의 좁혔을 테니.
'나한테 더 쏘진 못해.'
그럼 레벨이 100이 넘는 NPC 기사의 공격을 받게 될 테니까. 그러니 임성웅은 파빈을 공격할 것이다.
타앙!
총성이 울렸지만 용후는 죽지 않았고 시력도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임성웅이 파빈을 쐈기 때문이었다.
파빈이 바닥을 구르는 게 보였다. 레귤러급의 오러 기사는 몸에까지 오러를 두르진 못하지만 그래도 100레벨이 넘는 기사다. 총으로도 맞추는 건 쉬울 수 없었다.
그러나 임성웅의 사격 실력은 상당했다. 거기다 7레벨이나 되는 사격 스킬이 공격력뿐 아니라 명중률까지 보정해 줬다.
그래서였다.
파빈의 머리나 가슴엔 명중시키진 못했지만 팔엔 명중을 시킨 것이다.
아무리 100레벨이 넘는 기사라 해도 최소 500이 넘는 공격력의 총알에 관통당하면 치명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사이 용후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명중이었다. 어깨였다. 그러나 그 정도로 충분했다. 임성웅의 레벨은 32밖에 되지 않았다. 임성웅이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저 숨만 붙어 있을 뿐인 상태지만 아직 손엔 총을 들고 있었다.
눈먼 총알에 맞는 아군이 있을 수도 있었다. 용후가 총알을 아끼지 않고 한 발 더 쐈다.
투앙!
이번엔 머리였다. 임성웅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5,100 오릅니다
기대한 리볼버는 드랍되지 않았다. 그래도 드랍템이 있었다. 행운 스탯 덕분이었다. 용후가 그걸 주웠다.
-강화석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