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기적의 스킬 자판기 028화
교회.
주교실이었다.
"대단하십니다. 물론, 장담하신 대로 그 도적이 입을 열도록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만, 이렇게 빨리 본거지를 불게 하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트리던 주교가 용후에게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순수하게 놀라서기도 했고, 보통 인물이 아니란 생각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심지어 간도 크지…….
도적의 입을 열게 해 만들었단 지도를 자신이 직접 영주에게 전하겠단다.
물론 누구든 잘만 생각하면, 그 편이 경비대장에게 넘기는 것보다 훨씬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단 생각은 하겠지만, 실천해 옮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잡은 도적으로부터 자커스 도적단의 본거지를 알아내는 일은 한 시가 급한 아주 중차대한 일.
그런, 영주가 기대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일을 망치기라도 했다간, 하다못해 영주의 심기라도 불편하게 만들었다간, 득은커녕 막대한,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수 있었다.
감옥에 갇히거나 참수대에 목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럴 게, 자커스 도적단 때문에 요즘 비리마 남작령이 입고 있는 피해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영지 곳곳 활동하지 않는 곳이 없고, 심지어 영주의 기사와 병사들이 호위하는 손님이나 상단까지도 공격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중에 자커스 도적단의 본거지를 가지고 이득을 취하려 장사를 하려 했다간, 비리마 남작의 분노를 사기에 딱 좋았다.
그러나 김용후의 얼굴에선 긴장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김용후의 자신이 직접 영주님께 지도를 전하겠단 말에 경비대장의 대답이 오지 않은 상황인 데다, 허가가 떨어진다 해도 긴장이 될 텐데도.
'잘 모르는 건지, 담과 통이 엄청 큰 건지.'
그러나 후자일 것이다.
영리한 자니까.
영지가 돌아가는 상황도 모르고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트리던 주교는 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일이 잘못되면 김용후의 부탁을 경비대장에게 부탁한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게 될 테니.
그래서였다.
"무척 궁금하군요…… 그 악명 자자하고 베일에 싸여 있던 자커스 도적단의 본거지가 어디였던 건지."
용후의 눈치를 슥 살핀 트리던 주교가 결국 참지 못하고 마저 말을 이었다.
"그 지돌 저도 좀 볼……."
"그건 안 됩니다."
트리던 주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후가 일언지하에 말을 잘랐다.
교회의 주교씩이나 되는 인물이, 그것도 호감도가 엄청 높은, 이젠 지인이라 해도 될 신도의 공을 가로채려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용후는 만에 하나란 것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용후는 트리던의 호감도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제가 오늘 들린 건 기부를 더 하고 싶어서입니다."
용후가 화제를 돌리며 테이블 위에 금화 주머니를 올렸다. 200골드였다.
전혀 부담되는 기부액이 아니었다.
2,200골드가 넘는 돈을 벌었고, 비리마 성에서 일이 뜻대로 풀려 자커스 도적단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이다.
"또 이렇게나 큰돈을……!"
금화 주머니를 끌어당겨 입구를 열어 금화를 확인한 트리던 주교가 가까스로 커지려는 미소를 참아냈다.
그때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0 오릅니다
-트리던 주교의 호감도가 100 오릅니다
명성도 명성이지만, 용후는 트리던 주교가 기뻐하는 모습이, 그리고 호감도가 올랐단 알림창이 더 흐뭇했다.
트리던 주교가 기뻐하면 자신도 기뻐져서는 물론 아니었다.
지금까지 대화도 많이 하고 부탁도 두 번이나 하며 지켜본 결과, 트리던 주교는 두고두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일단 적당히 권력욕이 있었다. 그리고 말을 하는 걸 보면 머리 회전이 빠르고 융통성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 적당히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도록 도움만 조금씩 줘도 아주 다방면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나 큰 기부금을 오실 때마다 하시다니…… 분명 이번에도 세히브 여신님의 큰 가호가 있을 테니, 더욱이 뜻하신 대로 잘 되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트리던 주교가 성호를 긋곤 용후의 몸에 새로 대축복을 걸어줬다.
그때였다.
똑똑.
"사제 한스입니다. 경비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용후 형제님께 급히 전할 말이 있답니다."
초소의 경비병에게 교회에 있겠다 전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오늘 중으로 경비대장의 허락이 떨어질 거라 확신했기에.
자신이 만든 지도를 주지 않겠다는데 경비대장이라 해도 뭘 어쩌겠는가.
자신은 유저인데.
유저라 해도 죄목으로 공무집행방해 같은 걸 붙여 감옥에 가둘 순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 해서 인벤토리에 있는 지도를 빼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경비병 몇이 자신을 데리고 마차를 몰아 함께 영주성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영주 성에서도 똑같이 하면 된다. 영주와 독대하게 될 때까지.
스킬 자판기를 얻고 한 달 남짓.
용후는 알게 됐다.
능력이 있으면, 그 능력만큼 대우를 받는다는 걸, 대우해 준다는 걸.
분명 비리마 남작도 용후 대장간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거기다 성의 1급 고문관도 알아내지 못한 자커스 도적단의 본거지까지 알아냈다. 그것도 단 몇 시간 만에.
그러니 자신은 영주에게도 충분히 능력 있고, 가치 있는 자일 것이다. 금방 만날 수 있다.
트리던 주교의 들어오란 말에 문이 열리고 경비병이 들어왔다.
"경비대장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성으로 떠날 채비를 1시간 내로 끝내고 경비대 초소 앞으로 와 주십시오. 오시면 바로 출발합니다."
용후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 바로 가면 됩니다. 떠날 준비는 다 끝났으니."
성으로 간다.
그리고 영주를 만난다.
스킬 자판기를 얻기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
그러나 지금 용후는 자신 있었다. 상대가 영주라 해도. 그 누구라 해도.
* * *
"재밌군."
영주 성이었다.
비서에게서 김용후에 대한 보고를 들은 비리마 남작이 가장 먼저 한 말이 그거였다.
흥미로웠다.
비리마 남작도 용후 대장간에 대해 들었다.
그러나 고렙 유저가 운 좋게 특별한 대장장이템을 얻어 팔켄 마을로 내려가 대장간을 열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김용후의 레벨이 20도 안 되는 걸로 추정이 된다니.
무슨 일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유저들이지만, 김용후의 이야긴 지금껏 들어온 유저 관련 보고 중 가장 신기하고 희한했다.
"레벨이 20도 안 되는 대장장이가, 고문실에 들어간 지 몇 시간 만에 지도를 만들어 나왔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도가 거짓일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비서였다.
애초에 감히 누가, 얼마나 간이 큰 유저여야 귀족에게, 그것도 광활한 영지를 거느리는 대영주에게 사기를 치려 하겠는가.
더구나 김용후는 대장간 일로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잘못되면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리스크를 지며 사기를 칠 필요가 없는 자였다.
비리마 남작의 생각도 그랬다.
그랬기에 비리마 남작은 유저 김용후를 자신의 집무실로 들이도록 한 것이었다.
하나 더 이유가 있었다.
'겁 없이, 경비대장에게 넘기지 않고 영주인 자신을 직접 만나 전하겠다 올라온 것만 봐도, 그저 운 좋게 얻은 특별한 능력 몇 갤 믿고 날뛰는 자가 아냐.'
뭔가 더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도에 대한 대가를 더 많이 받고자 하는 것만이 아니라, 뭔가 자신과 하고자 하는 거래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였다.
똑똑!
"누구냐."
"행정관 레먼입니다. 유저 김용후가 도착했습니다."
"들어와라."
문이 열렸다.
그리고 대장장이의 작업복도, 갑옷도, 로브도 아닌, 평민의 평상복을 입은, 검은 눈에 검은 머리의 젊은 청년이 걸어 들어왔다.
* * *
"……."
비리마 남작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는 용후를 위아래로 훑었다.
젊어도 너무 젊고, 키와 덩치, 외모는 유저치곤 상당히 준수한데, 얼굴이나 손등엔 흉터 하나가 없었다.
딱 팔켄 마을에서 활동하는, 그것도 이 세계에 떨어진 지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 초보 유저의 모습.
비리마 남작이 생각한 용후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래서였다. 비리마 남작의 표정이 좀 뚱해졌다. 좀 실망감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비리마 남작은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자는 아니었다.
하긴, 누구든 귀족에 영주인 자신 앞에선 위축되게 마련. 그리고 유저에게 중요한 건 오직 레벨, 또는 스킬뿐이다. 다른 건 중요치 않았다.
"지도, 장담할 수 있나?"
하녀가 용후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자마자 비리마 남작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상대가 귀족이었다면, 하다못해 거래를 하는 상인만 됐어도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상대는 대단한 수리 스킬을 가졌다지만 그래 봐야 한낱 대장장이 유저, 아쉬울 게 하등 없었다.
"그 지도가 틀리다면, 목이 열 번은 더 날아갈 거다."
용후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비리마 남작이 그 말을 더 덧붙였다. 죄를 물어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게 될 정도로 죽일 거란 말이었다.
그러나 용후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눈빛도 그랬다.
그 모습에 오히려 비리마 남작의 표정이 좀 변했다. 보기와 달리 제법 멘탈이 단단하단 생각을 하며.
"예, 자커스 도적단의 본거지로 가는 지도가 틀림없습니다."
지도를 완성하자마자 명성이 올랐다는 알림창이 떴으니까.
"하지만 절 습격했던 도적 여럿이 도망쳤습니다. 지금도 본거지를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본거지에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토벌대를 꾸려 먼저 본거지에 도착해야만 소탕이 가능하단 말이었다.
즉, 자신의 지도는 확실하니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란 말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그때였다.
"하하!"
비리마 남작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보기완 달리 강단이 있군. 첫인상은 좀 실망했지만,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법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용후는 바로 알아들었다.
스킬 자판기에서 사 먹은 비약으로 키도 크고 골격도 두꺼워지고 근육도 늘고, 이목구비도 또렷해졌다.
그러나 자신보다 키도 덩치도 더 작아도 몬스터들을 잡으며 구른 자들은 키는 그대로지만 몸은 확 변하고, 이목구비는 그대로지만 눈빛과 표정이 확 바뀐다.
그러나 자신에겐 그런 건 없었다.
그래도 자신감은, 그리고 뭐든 해낼 수 있단 자신에 대한 믿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걸 얻었다.
스킬 자판기와 스킬 자판기를 통해 얻은 스킬들로 지금껏 해온 일들을 통해.
용후가 말했다.
"남작님께서 본론을 바로 꺼내셨으니, 그리고 한시가 급한 일이니, 저도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보란 뜻으로 비리마 남작이 입가에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잠자코 용후의 얼굴을 봤다.
"저는 유저, 영주님의 부하도 영주민도 아닙니다. 이 지도는 제가 만들었습니다. 이 지도를 사고 싶으시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조금 공격적으로 들리는 말투에 비서가 주의를 주려 나섰지만, 비리마 남작이 손을 들었다. 비서가 즉시 멈추곤 다시 한발 물러섰다.
"그렇지, 자네는 유저지. 그러니 물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야지."
유저는 자원.
그런 유저들이 사냥을 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김용호는 특히 더 질 좋은 자원이었다.
또, 특히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도적단, 그것도 자커스 도적단 소속인 도적의 입을 간단히 열게 하는 능력까지.
쓸모가 많았다.
그러니 잘 구슬려 잘 사용해야지.
그러나 진짜 이 지도가 진짜인지는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대화를 통해.
그 정도면 충분했다.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뭔가 다른 속내가 있는 건지.
"얼마를 원하나?"
"먼저,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물론, 유저들을 토벌대에 용병으로 쓰기 위해 단체 퀘스트를 만드시겠죠?"
"물론."
"그 단체 퀘스트의 지휘관으로 절 임명해 주십시오."
영주가 만드는 단체 퀘스트다. 최소 S등급은 붙는다. 거기에 지휘관으로 참가하면 기본 보상만으로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레벨이 몇인가?"
"12입니다."
"12?"
역시.
레벨은 딱 초보.
그러나 비리마 남작은 용후의 말을 자르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가 더 있는 자란 확신은 더 커졌기에.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신만만할 순 없다. 허세가 아니었다. 진짜다.
용후가 말을 이었다.
"절 지휘관으로 해주시면, 지도를 단돈 2,000골드에 팔고, 자커스 도적단의 두목을 반드시 잡아내겠습니다."
물론 퀘스트 클리어의 보상은 별개.
비리마 남작이 입가엔 미소를, 미간엔 주름을 잡았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자커스 도적단의 두목은, 잡는 것보다, 찾아내는 게 더 힘들다. 알려진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베일에 쌓여 있었다.
성기사들이나 사제들의 권능으로 악명 수치를 볼 수 있지만, 일부러 부하들의 악명 수치를 더 높여놔 가짜 두목을 만드는 건 도적단의 가장 흔한 수법이었다.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일단 진짜 두목이 누군지만 알아내면, 다 잡은 거 아니겠습니까."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을 쓰면 상태창과 인벤토리를 전부 볼 수 있다.
악명 수치는 믿을 게 못 되니 상태창보단 인벤토리, 그 안에, 두목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물건이 분명 들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