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기적의 스킬 자판기 024화
털썩!
박민성이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리고 금세 박민성이 쓰러진 자리에, 정확히는 등이 있는 곳부터 피가 고였다. 용후가 쏜 총알이 가슴을 관통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리볼버를 인벤토리에 넣은 용후가 박민성의 시체로 가 시체가 된 상태에서도 손에 꽉 쥐고 있는 과도부터 빼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과도집도 챙겨 칼날을 넣고 과도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다른 장비들도 벗기기 시작했다.
노멀템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아무리 못해도 70~80골드는 나가겠는데."
이계템인 과도는 뺀 계산이었다.
과도까지 판다면 못해도 600골드는 벌 수 있을 것이다. 잘만 팔면 800골드도 받을 수 있고.
아무 효과도 안 붙어 있고, 공격력과 내구력도 노멀 등급 단검보다 못한 과도지만, 세이브존에서 유저를 공격할 수 있는 그 효과만으로도 사겠단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물론 팔 생각은 없지만.
뭐든 다 만들어 스킬로 이것과 똑같은 과도도 만들 수 있다. 손잡이까지 플라스틱으로 해서.
그러나 그건 이계템이 아닐 것이다.
등급이나 붙어 있는 효과들까지 똑같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총알은 리볼버가 매개로 사용됐기에 이계템의 효과가 붙게 된 거고.
그때 용후가 상체를 들었다. 장비를 다 벗겨 다 챙긴 것이다.
좌우를 살핀 용후가 앞으로 걸었다. 골목을 나와서는 더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교회 방향으로 갔다. 이제 성기사들을 호위로 붙여야 되니까.
박민성은 자정이 되기 전까지 시체 상태로 계속 쓰러져 있겠지만, 팔켄 마을 안에 박민성의 동료가 더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쫓아오거나 하는 기척은 없었다.
용후가 무사히 교회에 도착했다.
'됐다.'
용후가 빙긋 웃었다.
한편, 골목길 안에서 속옷만 입은 상태에 손에 자커스 도적단의 브로치를 쥐고 있는 시체가 발견되어 경비대에 신고된 건 그로부터 10분 뒤였다.
* * *
"X발! 이런 개X발!"
바르뎅 마을의 광장이었다.
방금 막 부활한 팬티만 입고 있는 남자가 그런 말을 외치며 분수대를 발로 걷어찼다.
"아악!"
비명을 꽥 지른 남자가 그 자리에 푹 주저앉아 양손으로 발을 붙잡곤 데굴데굴 굴렀다.
박민성이었다.
발톱이 깨진 듯했다. 발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그 정도로 세게 찼다.
게임 속이 아니다.
현실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통증에 박민성이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그러나 머릿속에 통증은 이내 사라지고 분노가 다시 꽉 차올랐다.
용후에 대한 분노였다.
"날 완전 갖고 놀면서 개X신으로 만들어? 아흐윽……."
발을 붙잡고 그런 욕을 하며 한참을 더 바닥을 구르던 박민성이 겨우 절뚝이며 몸을 일으켰다.
"하……."
팬티만 입고 있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박민성이 그런 소리를 내며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렸다.
유저들은 부활하지 않아도 의식은 죽은 몸속에 그대로 있다. 물론 보이지도 들리지도, 감각도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름은 느낄 수 있기에, 정말 듣던 대로 세이브존 안에서 이계템에 의해 죽자 정말 부활이 되지 않는구나 하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정까지 시체 상태로 누워있게 된다면, 당연히 차고 있는 장비들을 다 털리게 될 거란 건 짐작을 했다.
그래도 직접 눈으로 보니 정말 어이가 털리고 더, 정말 미칠 듯한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런 한편.
"뭐가 사라졌지……."
박민성의 얼굴에 공포심이 번졌다.
그랬다.
잃은 건 더 있었다.
기억.
그러나 식은땀까지 줄줄 흘리며 곰곰이 생각해 봐도 어떤 기억이 사라졌는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사라졌다.
첫 번째 두 번째 죽음과는 차원이 다르게 많은 기억이 사라져 버리는 세 번째 죽음이기에 그것만은 확실히 느껴졌다.
몸이 떨려왔다.
그러나 박민성은 고개를 세차게 젓고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누군지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절대 당한 건 안 잊고, 반드시 되갚아 주고, 그걸 위해서라면 미쳐서 막 나가는 깡 빼면 시체인 박민성."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그리고 이 세계에서도 그랬다.
그 미친 깡이 어디서든 자신에게 동료를 만들어주고 누군가의 위에 서게 해줬다.
그걸 잊지 않았다면 됐다.
어차피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아쉬울 거 하나 없는 기억들.
자신이 누군지만 안다면 새로운 기억들로 채우면 그만이다.
"권총도 되찾고, 김용후 그 새끼도 도적단에 갖다 바친다."
권총도 총알도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 그 대장장이를 얻는다면 그보다 더한 보물이 있을까.
그 대장장이를 어떻게 노예로 만들어 써먹을 것인가는 자신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잡아다 자커스 도적단에 넘기면 그만.
그건 가능하다.
일단 죽이고 죽여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폐인으로 만든다.
그런 다음은 쉽다.
어차피 권총도 총알도 스킬로 만드는 것일 테니 기억 없는 자가 돼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
"이건 기회야."
성공하면, 엄청난 공이다.
더 위로 확 올라갈 수 있다.
어제, 자신을 죽이고 바로 팔켄 마을을 떠났다 해도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터다.
그리고 팔켄 마을의 유저들과 NPC들을 통해 정보를 모으면, 김용후가 어디로 가는지까진 몰라도 어느 쪽으로 갔는지까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들판을 통해 가고 있거나 파칼 숲을 가로지르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박민성이 절뚝이며 걸었다.
그리고 골목길로 들어갔다.
자커스 도적단의 단원들은 비리마 남작령 곳곳에 퍼져 활동하고 있다.
바르뎅 마을에도 있었다.
마약을 팔기도 하고, 장물 거래도 하고, 소매치기나 도둑질에 사기도 치고, 이런저런 정보도 모았다.
그래서 아지트가 있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을 한참을 절뚝이며 걷던 박민성이 한 낡은 술집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 지하 1층이 바르뎅 마을 안에서 활동하는 단원들의 아지트였다.
"민성 형님!"
카운터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달려 나와 박민성을 부축했다.
"이게 무슨……?"
천하의 박민성이 팬티만 입고 다리를 절며 들어오다니,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애들 다 불러."
"예? 아, 예……! 그, 근데 형님, 꼴이 대체 왜 이러십니까……?"
혹 도적단 본진이 영주가 보낸 토벌대에 당했거나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박민성이 이런 모습이 될 일은 없으니. 그렇다 해도 팬티만 입고 있는 건 이상하지만.
"이 X발 새끼가, 꼴? 꼴이라 했냐?"
"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걱정돼서 급하게 말하다 보니 말이 헛나왔네요……."
다른 때였다면 보호막이 둘리든 말든 냅다 발로 쪼인트를 깠겠지만, 아직도 발이 욱신거렸다.
다시 확 느껴지기 시작한 발의 통증에 만사가 싫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박민성이 그냥 넘기곤 말을 이었다.
"애들 다 부르란 말이야, 이 새끼야! 잡아 죽여야 할 새끼 있으니까 마을 떠날 준비 해서 오라 그래."
"아, 예!"
카운터에서 나온 남자가 바로 주점을 나가 달렸다.
바르뎅 마을에서 활동하는 단원들의 수는 12명, 전부 레벨이 25가 넘고, 30이 넘는 유저도 셋이나 있었다.
그리고 한 명은 이계템도 갖고 있다.
총은 아니지만.
둘만 남겨두고 전부 데려가기로 했다.
그 리볼버의 탄창 수는 6발.
자신까지 11명이 달려들고, 이계템으로 찌르면 무조건 잡는다.
죽는 걸 무서워해 도망가는 단원은 생기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온 지령이라 할 거니까.
권고사항 정도가 아니라 지령을 어기는 건 자살행위다. 그런 자들은 도망을 가도 끝까지 찾아내 자신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죽여 버린다.
잠시 뒤, 단원들이 속속 주점에 도착했다.
다 모이자 박민성이 말했다.
"이계템 나한테 주고, 내가 쓸 만한 장비들 하나씩 내놔. 그리고 해 뜨면 바로 간다."
* * *
다음 날.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각, 박민성과 10명의 도적이 팔켄 마을에 도착했다.
일단 김용후가 어디로 가는지, 하다못해 어느 방향으로 갔을지를 알아내는 게 먼저였다.
그러나 그 전에, 박민성은 왠지 용후 대장간부터 가보고 싶었다. 왜인지 김용후가 대장간에 있을 것도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아니, 그저 기분만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수리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수리 이야기를 하는 유저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밝았다.
용후 대장간이 문을 닫았는데 저렇게 밝게 웃으며 수리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이상했다.
"설마 아니겠지……."
용후 대장간이 그대로 있다면, 김용후가 팔켄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럴 리가 있나.
머리가 돈 게 아니고서야.
부활하면 보복을 하러 올 거란 걸 생각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보통이라면 동료를 더 데려올 거란 생각도 할 것이다.
"다 따라와."
가보면 알 일.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있을 것 같았다. 있으면 좋은데, 왜 이리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걸까.
물론 김용후는 리볼버를 갖고 있으니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이젠 진짜, 진짜 정말 죽으면 안 되니까. 절대 자신은 총알에 맞으면 안 된다.
그 생각 때문이겠지.
'아니…….'
아니야…….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본능이 뭔가를 더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뭔가가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어?!"
"있는데요?"
"형님!"
단원들이 그런 말을 하며 박민성을 돌아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냔 얼굴들.
유저들이 긴 줄을 서 있고, 대장간 문도 열려 있었다.
"……."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떠난다던 놈이, 떠나는 게 맞는데 왜, 어째서?
"기다려."
단원들을 멈춰 세운 박민성이 혼자 용후 대장간 방향으로 올라갔다. 김용후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일단은.
"허……."
대장간 안에서 수리 중인 건 진짜 김용후였다. 심지어 미소까지 지으며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다.
저 미친놈이……!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때였다.
"어!"
대장간 안, NPC 성기사가 있었다.
테이블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에, 김용후의 좌우에 서 있었다.
하급으로 보였지만 하급 성기사도 레벨이 100이 넘는다. 그리고 검술을 익힌 NPC 성기사는 동레벨의 유저 성기사보다 훨씬 더 강하다.
'이게 뭐야!'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
저 모습은 NPC 성기사 둘이 김용후를 호위하고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어떻게 NPC 성기사를 호위로 붙인 건지 몰라도, 그래서 떠나지 않은 거구나!
저 교활한 놈! 진짜 보통 놈이 아니다. 그냥 똘끼만 충만한 놈이 아냐.
그때였다.
김용후와 눈이 딱 마주쳤다.
"저놈이에요! 저놈이 절 협박한, 사실은 도적단의 도적이었던 그 도적놈이에요!"
로브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지만 용후는 대번에 박민성을 알아봤다. 상태창이 다 보여 스킬 덕분이었다.
NPC 성기사 한 명은 용후 옆에 남고, 다른 NPC 성기사는 대장간을 튀어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악명을 볼 수 있는 권능을 박민성에게 걸었다.
악명 2010.
성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악명이면 도적단의 도적이 틀림없었다.
더 속도를 냈다.
"이런 개X발!"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 생각도 못 했다.
"도망가! 아니, 막아! 내가 도망갈 수 있도록 막……!"
박민성의 말이 뚝 끊겼다.
NPC 성기사가 휘두른 검에 박민성의 오른쪽 다리가 절단돼 날아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