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기적의 스킬 자판기 021화
"너……."
박민성이 용후를 노려봤다.
그러나 용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당장 이계템을 꺼내 들고 달려든다 해도 그 공격에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물론 권총을 또 갖고 있고, 총알까지 장전되어 있다면 아무리 자동사냥이라 해도 백 프로 피할 수 있단 확신까진 없다.
그러나 권총은 그렇게 흔한 이계템이 아니다. 이계템 중에서도 레전드리급. 아니 그 이상이다.
그러니 절대 총을 두 자루까지 갖고 있진 않다.
한편, 박민성은 성격대로 하지 않고 분노를 눌러 삼켰다.
유저들이 많고, 그 유저 중엔 자신보다 더 고렙의 유저도 있었다.
또 영지 변방에 있는 마을이지만, 제대로 된 훈련을 하고 검술을 익힌 NPC 경비대는 레벨을 떠나 무서운 상대였다.
말도 탈 줄 아니 따돌리고 도망가는 것도 싶지 않고.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유일하게 리볼버를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대장간이 이곳뿐이기 때문이었다.
일곱 조각이 나 권총이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지만, 박민성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레어, 매직 등급 병장기도 단 1분 만에 고친다 했다. 그것도 내구력을 1도 안 깎고 옵션까지 붙여주면서.
분명 특별한 대장장이 스킬을 얻게 된 게 틀림없다.
"다시 고쳐."
"이렇게 망가져 버린 건 못 고칩니다."
너무도 태연하게, 그리고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말하는 용후의 모습에 박민성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못 고치면 죽는다."
그러나 겁을 먹긴커녕 대장장이, 김용후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조소였다.
박민성의 미간이 팍 일그러지고, 입술이 비틀렸다.
"이 새끼가, 진짜 뒈지려고! 남의 보물을 그따위로 산산조각 내놓고 그 태연한 태도는 뭐야! 그게 얼마짜린 줄 알아? 어? 진짜 죽어볼래!"
"수리 전에 말했잖아요. 성공 확률은 20%도 안 된다고. 죄송하다 사과는 했으니 또 하진 않겠습니다."
"하……."
이계템, 그것도 권총의 가격이 얼만지 자세히까진 몰라도 엄청 비싸다는 건 알고 있을 테고, 자신이 고렙이란 것도 장비를 보고 알 텐데도 이런 뻔뻔하다 못해 당당한 태도라니.
이놈 보통 놈이 아니다.
단순히 인상을 구기며 협박하는 정도론 말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어디 이래도 태연할 수 있나 보자.'
박민성이 트롤 가죽 코트를 조금 젖히고, 안쪽의 조끼에 달려 있는 브로치를 내보였다.
초보 마을의 유저라 해도 자커스 도적단의 마크를 못 알아보진 않을 터.
비리마 남작령 일대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도적단이 자커스 도적단이니까.
팔켄 마을로 물건을 대로 오는 상인들, 팔켄 마을을 떠나는 유저들, 퀘스트를 하러 오는 고렙 유저들까지도 자커스 도적단의 표적이었다.
물론 팔켄 마을 주변뿐 아니라 영지 전 지역에서 두루두루 활동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큰 도적단이고,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하단 악명으로 특히 유명했다.
"어때? 생각이 바꼈나? 반드시 고치고 싶어졌을 거야. 그렇지?"
"이렇게 일곱 조각이 난 걸 어떻게 고칩니까. 이게 무슨 검이나 방패도 아니고. 말이 되는 소릴 해요."
박민성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뭐 이런……!
그러나 분노나 살기보다 당황스러움이 더 많이 담겼다.
모른다고?
자커스 도적단을?
알고 있었다. 월간 모험 책을 매달 사서 봤는데 모를 리가.
그러나 용후는 그렇다 해도 리볼버를 다시 수리해 돌려줄 생각은 없었다. 일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커지긴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건 큰 기회다.
이미 리볼버는 얻은 거나 다름없고, 박민성은 이계템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
지금 박민성은 반대쪽 코트를 조금 젖혀 허리띠에 차고 있는 과도를 내보이고 있었다. 손잡이가 플라스틱으로 된, 이 세계엔 있을 수 없는 과도.
언제든, 그리고 세이브존 안에서도 난 널 죽일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박민성이 자신을 공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용후가 말했다.
"시간을 좀 주면 연구 좀 해보고 다시 시도해 보겠습니다."
상대가 악당 한 명에서 도적단이 됐다.
수리에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안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나가는 정도로 어찌 될 일이 아니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된다.
안 되게 할 자신이 있으니 용후는 기어코 리볼버를 고쳐 박민성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며칠 정도만 시간을 벌면, 박민성을 잡고 박민성의 또 다른 이계템과, 장비들까지도 전부 얻을 수 있다.
이계템은 세이브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세이브존 안에서도 유저를 상처 입히고 죽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세이브존 안에서 이계템에 죽게 되면, 물론 부활은 되지만 바로는 되지 않는다. 자정이 지나야 부활이 된다 했다.
그리고 부활 불가 상태의 시체로 쓰러져 있으면, 인벤토리는 털 수 없지만 입고 있는 장비는 전부 벗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엔 자커스 도적단까지도 없앤다.
용후가 큰 계획을 짰다.
엄청난 돈과 아이템, 그리고 명성도 얻게 될 것이다. 또 화려한 인맥도.
"그렇게 나와야지."
박민성의 표정이 좀 풀렸다.
아무리 똘끼가 있는 자라도 상대가 무려 도적단인데 이렇게 나오는 게 정상이다.
"얼마나?"
"일주일 정도는 필요할 거 같네요."
"안 돼, 너무 길어. 3일 주지."
"3일이라…… 별로 자신이 안 드네요."
용후가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좋아…… 나흘. 대신 반드시 고쳐."
"나흘이라……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최선으론 안 돼. 네 목숨이 걸렸어. 죽을 각오로 임해."
그렇게 말하며 용후의 눈을 지그시 쳐다본 박민성이 재차 과도를 내보인 뒤 몸을 돌려 대장간을 나갔다.
그러나 나가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대장장이의 얼굴에 겁먹은 표정도, 초조해 하는 감정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한편 용후는 박민성이 나가자마자 다시 권총 파편들을 들고서 대장간 안쪽으로 들어갔다.
"만지면 다 고쳐."
용후가 스킬을 쓰며 리볼버 파편들을 만졌다.
파편들이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저절로 붙고 뭉쳐져 한순간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완벽히 수리까지 돼서.
그뿐 아니다.
역시 옵션도 붙었다.
*더 튼튼해진
*더 가벼워진
공격력도 올랐다.
50이나.
공격력이 550이 된 것이다.
"총알까지 있으면 박민성은 혼자서도 가볍게 잡아."
팔켄 마을 안에서도.
총알을 얻을 방법은 물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주는 스킬 자판기니까.
물론 랜덤 버튼을 누른다고 총알이 나오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총알도 만들 수 있는 스킬이 나올 수는 있다.
다음번에 나오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백 프로 나온단 보장은 없기에, 용후는 총알을 얻지 못했을 때의 일도 생각해뒀다.
"다음 손님."
용후가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자 빨리 식사를 끝내곤 교회로 갔다.
* * *
성기사들은 강하다. 하급 성기사라 해도 레벨이 최소 100은 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기사들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검술과 다양한 전투경험을 갖고 있고, 그리고 사제들 정돈 아니지만, 권능도 쓸 수 있다.
그런 성기사들을 자신의 호위로 붙일 수 있다면 이계템을 가진 박민성은 물론이고, 자커스 도적단이 자신을 노리고 더 와도 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을 생포해 기사단에 넘기면, 자커스 도적단의 아지트를 알아내 일망타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베스트는, 스킬 자판기에서 총알도 만들 수 있거나 총알 없이도 권총을 쏠 수 있는 스킬을 얻어 리볼버를 사용해 박민성은 자신이 잡아 그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이계템인 과도와 그의 고렙 장비들까지 챙기는 것이다.
그 뒤 분명 또 오게 될 또 다른 도적단원들은 성기사들로 잡고, 한 명은 생포해 기사단에 넘기는 것.
어쨌든 성기사 몇을 당분간 자신의 호위로 두는 건 꼭 필요하다.
트리던 주교의 힘을 빌리고, 영주가 자커스 도적단 토벌에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했다.
혹 트리던 주교에게 성기사를 붙여주겠단 말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리볼버는 수리해 박민성에게 넘겨주는 게 맞다.
그러나 용후는 자신이 있었다.
교회의 주교실.
"100골드를 더 기부할까 합니다."
트리던 주교와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던 용후가 슬슬 일어나봐야겠단 말을 하며 인벤토리에서 100골드가 든 금화 주머니를 꺼내 테이블 위에 척 올렸다.
트리던 주교의 눈이 커지고 입가엔 미소가 크게 걸렸다.
"100골드를 기부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또 이런 거금을……! 장담하건대 김용후 형제님께 세히브 여신님의 크나큰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며 트리던 주교가 가슴 앞에 성호를 그렸다. 그리고 금화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앞으로도 계속 기부를 하고 싶습니다만, 아마 이 기부가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예?"
트리던 주교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런데 그만하겠다가 아니라, 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단 뉘앙스였다.
사람이란 게 그렇다.
200골드도 충분히 엄청난 액수다.
상단을 운영하는 상인들, 그리고 귀족들이라 해도 이렇게 큰돈을 한 번에 툭툭 기부하진 않는다.
그러나 역시 욕심이 더 생겼다.
김용후 이 자는 이 이상 더 기부를 해줄 것도 같았다.
그래서였다.
신도들의 사생활에 대해 먼저 묻는 건 사제에게 있어 그리 좋은 모양새가 아니기에 하는 법이 없는 트리던이지만, 지금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안색에 고민이 깊어 보이시는군요. ……주제넘은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혹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사실은……."
용후가 기다렸다는 듯 박민성에 대한 이야길 털어놨다.
물론 각색을 했다.
도적단에 대한 이야긴 빼고, 고렙 유저의 이계템을 수리하다 손이 미끄러져 실패해 버렸고, 반드시 고치라는, 고치지 못하면 죽이겠단 협박을 받고 있단 식으로.
"이계템은 초보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단 걸 알고 계시는지요. 그자는 이계템을 하나 더 갖고 있었습니다. 과도였습니다. 워낙 고렙이라 과도에 불과하다 해도 이제 고작 12레벨인 전 찔리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무섭습니다…… 아무래도 대장간을 닫고 팔켄 마을을 떠나는 게 좋지 않나 싶네요. 트리던 주교님과의 대화가 바쁜 일과에 지쳐 있던 제 마음에 위로와 안식이 되었는데…… 너무도 아쉽습니다. 물론 기부는 다른 마을이나 성에 가서도 많이, 아주 많이 계속할 생각입니다."
"허어……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트리던 주교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흘렸다. 그러나 눈동자는 이리저리 돌아갔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고 있단 뜻.
그러겠지.
다른 곳에 가서도 계속 많이 기부를 하겠다 했다. 팔켄 마을에 계속 있으면 자신의 교회에 계속 많이 기부를 할 텐데, 얼마나 아쉽겠는가.
놓치고 쉽지 않겠지.
그러나 트리던은 쉽게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쉽게 나올 리 없었다.
유저들의 일이다. 잘못 엮였다간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기사단 단장도 아니고, 교회 내에서야 꽤 높은 직책이지만 그래 봐야 고작 교회를 관리 운영하는 관리직, 자신이 나서봐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들지 않을 테고.
용후가 입을 뗐다.
"그런데 성기사들의 레벨이 하급 성기사라 해도, 못 해도 100은 된다 들었습니다. 그렇게 강한 분들이 잠시 절 호위해 주신다면…… 안심하고 계속 대장간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 말에 트리던 주교가 아아 하는 말을 흘리고 손으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또한 김용후 형제님과의 담소가 요즘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입니다. 떠나신다니 너무도 아쉽습니다. 이 교회엔 성기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힘을 한 번 써보겠습니다. 하급 성기사 둘 정돈 호위로 붙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지.
교회 주교씩이나 되는데.
하급 성기사 몇 잠시 불러오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용후가 활짝 웃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저도 지금은 팔켄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떠나지 않아도 되겠군요. 성기사 분들이 둘만 절 지켜주셔도 어떤 유저든 절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떠나지 않으시겠다 하시니 기쁩니다. 또한, 안심이 되셨다니 더더욱 기쁩니다, 허허."
트리던 주교가 웃으며 다시 손을 뻗어 마저 금화 주머니를 끌어당겼고, 용후도 트리던 주교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럼 언제부터 호위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자가 4일 뒤 다시 오겠다 했습니다. 그 안엔 성기사 분들이 와주셔야 합니다."
"4일이라…… 알겠습니다. 그리되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할 겁니다."
좋아.
성기사는 됐다.
그럼 이제 스킬 자판기만 되면 된다. 불만 들어오면 분명 나와 줄 것이다. 리볼버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
언제 켜질까.
켜져라 켜져라 한다고 켜지는 건 아니었다. 그것만큼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용후는 대장간으로 돌아가 오후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 6시가 되자 바로 문을 닫고 바로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