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기적의 스킬 자판기 016화
"잠깐만요. 거기 가지 마세요."
한 유저가 버거튼 대장간으로 들어가려 했고, 대장간 근처에 서 있던 유저가 그 유저를 불렀다.
"예?"
대장간 문을 열다 말고 유저가 뒤를 돌아봤다.
"거기서 수리하면 망해요. 사는 것도 안 되고요."
너무도 단호한 표정에 유저가 결국 문손잡이를 놓고 돌아섰다.
"누구세요?"
"그냥 팔켄 마을에서 활동하는 유저에요. 사기를 당할 걸 뻔히 아는데 모른 척할 수 없어서요. 같은 처지의 유저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유저의 이름은 조준영.
며칠 전 버거튼에게 죽을 뻔한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넘겨 겨우 구입한 검의 첫 수리를 맡겼는데 반병신이 된 검을 돌려받은 그 유저였다.
"사기요?"
"예, 수리 맡기면 총내구력 왕창 깎일 겁니다. 또 무슨 장난질을 치는 건지 토끼만 잡아도 내구력이 깎이는 경우도 있어요."
"무슨 그런……."
유저는 조준영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이 마을에 있는 유저들은 자신처럼 갑자기 이 세계로 불려온,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떡하니 간판까지 걸어놓고 대장장이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파렴치한 짓을 한단 말인가.
좀 더 수리비가 비싸더라도 빨리 수리를 끝내고 빨리 사냥을 하고 싶어 이 대장간으로 가려 했던 건데, 진짜 낭패를 볼 뻔했다.
그래서 이 대장간이 이렇게 손님이 없던 거구나.
"저는 검 맡겼다가 총내구력이 절반 이상이나 깎였어요. 그래놓고 한단 말이 '손이 미끄러졌네'가 끝입니다. 제가 진짜 학을 뗐어요.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아아……."
유저가 수리를 맡기려던 자신의 검을 내려다봤다.
별 볼 일 없는 허접한 검이지만 너무도 소중한 밑천이었다.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거지만, 그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런 무기의 첫 수리에 총내구력이 절반 이상 깎여버린다면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더구나 수리비가 1실버에요. 용후 대장간은 1동화인데 말이에요. 줄이 길어서 여기로 오신 거죠? 그래도 1동화에 수리를 완벽히 해주는 데다 옵션까지 붙여주는 델 두고 1실버나 받으면서 수리를 엉망으로 하는 이런 대장간에 수리를 맡기는 건 진짜 아니죠."
더 비싸면 2동화 정도겠지 생각했지 1실버라니, 그걸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용후 대장간에선 옵션까지 붙여준다니 이것도 몰랐던 사실.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동안 퀘스트만 하느라 사냥을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돼 용후 대장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알려주신 게 다 사실이라면…… 정말 감사합니다. 큰일 날 뻔했네요."
이 남자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용후 대장간에 긴 줄이 서 있는 게 하루아침 일이 아니니까.
아무리 호객행위를 열심히 해도 실력이 없으면 밑천은 금방 드러나고, 손님은 곧 줄어들게 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뭔가 있긴 있는 대장간이란 생각은 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때였다.
"이런 쌍X의 새끼!"
갑자기 대장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욕을 빽 지르며 누군가 튀어나왔다.
40대 중반 정도 나이에 머리가 벗겨지고 아무렇게나 기른 지저분한 턱수염에 코가 빨갛고, 배가 불룩한 남자였다.
버거튼이었다.
"뭐 이 사기꾼 새끼야!"
조준영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버거튼의 레벨은 저래 봬도 17.
머리 위에 게임처럼 레벨이 뜨는 건 아니지만, 유저들 사이에 그리 알려져 있었다.
젊은 시절엔 병사 생활도 하고 용병 생활도 했단 이야기도 있었다.
레벨부터 용병 이야기까지 버거튼 본인 입으로 한 말일 테니 그대로 다 믿긴 어렵지만, 그래도 엉터리 수리에 앙심을 품고 버거튼을 공격한 유저가 간단히 제압당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러니 15레벨 이상은 될 것이다.
또 유저가 유저를 공격하면 보호막이 둘리지만, NPC와 유저 사이엔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조준영은 이미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버거튼은 조준영보다 강하지만 느렸다. 작정하고 도망가면 잡지 못했다.
"이보게, 내 대장간도 오늘부터 1동화에 수리를 하고 있어. 그리고 총내구력을 왕창 깎아놓는다느니 토끼만 잡아도 내구력이 떨어진다느니 하는 말은 같은 유저 대장장이인 김용후를 돕기 위해 하는 유저들의 수작질이야. 세상천지에 일부러 수리를 엉망으로 하는 대장장이가 어딨단 말인가. 대장장이들은, 그런 장인의 명예를 더럽히는 짓은 하지 않아."
"아뇨…… 그냥 다음에 올게요."
사람마다 느껴지는 풍모나 분위기라는 게 있다.
바로 앞에서 본 버거튼에게선 그 명예를 중시하는 장인의 풍모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유저가 몸을 돌렸다.
"너 이X끼, 잡히기만 해봐! 망치로 아주 아작을 내준다!"
버거튼이 다시 조준영을 쫓아갔고, 유저는 용후 대장간으로 갔다.
단돈 1동화에 100%로 수리, 그리고 옵션까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 * *
결국, 조준영을 잡지 못하고 돌아온 버거튼은 다시 대장간으로 들어갔다가 부러진 검과 창날에 금이 쩍쩍 가 있는 창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용후 대장간으로 갔다.
"어디 이놈, 내구력이 2, 3밖에 안 남은 이 매직 등급 무기들도 고칠 수 있나 보자."
못 고치면? 일단 멱살부터 잡아챌 것이다. 그리고 소란을 피우며 오늘 장사를 못하게 해주는 거지.
내일도 모레도 같은 방법을 쓰면 된다.
초보 유저들만 있는 마을. 유저들은 힘이 없었다. 여기선 자신들이 갑이다.
"어디서 배워처먹은 상도덕이야."
본때를 보여주마.
* * *
용후는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싱글벙글이었다.
수익이 상당했다.
노멀 등급 아이템만 1동화지, 레어와 매직 등급 아이템은 1실버에서 많게는 2~3실버도 받고 있어, 1시간이면 2~3골드를 벌어들였다.
그러니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 식사 시간만 빼고 일하면 하루에 약 20골드를 벌 수 있었다.
그뿐인가. 명성도 얻는다.
수리 하나당 5~10씩 받으니, 무려 하루에 3,000~3,500 정도의 명성이 쌓였다.
이젠 슬슬 5~7개 정도는 고쳐야 명성이 올랐지만, 여전히 이 정도면 어디서도 이만한 명성을 올리기 힘들었다.
'대장간 일로 돈과 명성을 왕창 올린다.'
스킬 자판기에 불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또 스킬을 살 수 있도록.
"다 됐습니다."
용후가 대장간 입구로 돌아와 수리된 방패를 손님에게 건넸다.
"와……!"
방패의 상태창을 열어본 유저가 감탄을 하며 활짝 웃었다.
수리는 완벽했고, 더 단단해졌단 옵션이 붙어 있었다. 심지어 총방어력 수치가 7이나 올라 있었다.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해요!"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감사하단 말도 절로 나왔다. 이 정도면 방패가 레어급이 됐다 해도 되었다.
손님이 나가고, 이어 다음 손님이 들어왔다.
"수리해 주게."
손에 들고 있던 검과 창을 바닥으로 툭툭 던지며 손님이 말했다.
버거튼이었다.
"매직 등급이군요. 내구력은 2, 3, 상태가 최악이네요. 수리비는 15골드 15골드씩 30골드 받겠습니다."
버거튼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무슨 헛소리야? 다른 손님들은 2실버, 많아야 3실버를 받는단 걸 다 알고 왔는데! 그 가격이면 사고 말지!"
"수리비가 딱 얼마다 정해진 가격은 없습니다. 수리비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데 알아보세요. 그리고 지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더 올리겠습니다. 이 검과 창의 수리비는 20골드, 20골드입니다."
이 가격이면 수리된 걸 가져다 판다 해도 버거튼은 손해였다.
현재 만지면 다 고쳐 스킬의 레벨은 5. 용후는 이제 자신의 의지로 옵션을 붙이고 붙이지 않고를 할 수 있었다.
'어디서 수작이야.'
눈치 빠른 용후는 버거튼이 뭘 하려는지 딱 감이 왔다.
한편, 엿장수 맘대로라니 버거튼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 가격이 싫으면 수리를 안 맡기면 그만.
그러나 버거튼은 저 검과 창의 수리를 맡겨야 했다.
절대 수리하지 못할 테니까. 수리하지 못하고 망가트리고 나면 장사를 못 하게 행패를 부려야 하니 말이다.
김용후가 레어 등급 매직 등급 병장기도 고쳤단 말을 듣긴 했다.
그러나 내구력이 5도 안 남은 병장기의 수리 성공률은 수리 스킬이 5레벨 이상이라 해도 10%도 안 된다.
혹 성공한다 해도 총내구력이 왕창 깎인다. 그러니 그걸 빌미로 행패를 부려도 되는 것이다.
"좋아, 20골드씩 내지."
"역시 돈 많네요. 하긴, 그동안 당신한테 호구된 초보 유저들 수가 엄청날 테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25골드, 25골드, 합쳐서 50골드 받겠습니다."
"뭐하자는 거야!"
"나야말로 묻죠. 뭐하는 겁니까. 대장장이라 누구보다 잘 알 사람이 이런 걸 수리해 달라 맡기는 게 말이 됩니까. 엿 먹이겠단 거지. 매직 등급에 내구력이 2, 3밖에 안 남아서 열에 아홉은 부서질 텐데."
"……크흠."
버거튼이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말을 삼켰다. 틀린 말이 하나 없기에.
"그래서…… 자네 실력이 그리도 좋다 들어 찾아온 게 아닌가. 꼭 고치고 싶은 검과 창이네. 좋네. 25골드씩 내지."
이놈 두고 보자. 고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저 남은 내구력이 2, 3인 것만이 아니다.
버거튼은 대장장이. 검과 창에 있는 금과 균열들에 아주 열과 성을 다해 더 손을 써 놨다.
조금만 건드려도 더 확확 금과 균열이 커지도록.
제대로 수리를 해보기도 전에 가벼운 망치질 몇 번에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럼 수리해 올게요. 1분 정도면 됩니다."
"……?"
매직 등급에 내구력이 2~3만 남은 무기도 1분이면 수리가 된다?
그때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캉! 카앙! 캉!
그리고 정말 1분 정도가 지나자 김용후가 돌아왔다. 멀쩡해진 검과 창을 들고서.
"다 됐습니다."
뭐?
될 리가!
수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버거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검과 창을 꼼꼼히 살폈다. 버거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맙소사!
옵션은 붙지 않았지만, 수리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수리 레벨 맥스에 상급 대장장이라도 된다는 건가?
"50골드입니다."
50골드라니…… 이 검과 창을 가져다 팔아도 손해였다. 엄청나게.
"손님? 50골드입니다. 다음 손님이 기다리니 빨리 내고 나가세요."
버거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건 사기야! 이건 말도 안 돼! 바꿔치기한 거지? 새것과 바꿔치기한 거야!"
"손님, 행패를 부리면 경비대를 부르겠습니다."
버거튼이 유저들에게 늘 하던 말.
급기야, 일그러진 상태로 버거튼의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게졌다.
"난 수리를 맡겼지, 새로 사겠다 한 적이 없어! 제대로 수리해 와! 그 전엔 돈 못 줘!"
"아, 그래요?"
용후가 피식 웃었다.
누구 맘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