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기적의 스킬 자판기 013화
"……."
박강철이 어이없단 표정을 지으며 용후를 봤다.
70m쯤 되는 거리에서 계속 1골드만 달란 말만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용후가 강자존 파티를 쫓아다니며 저 말을 하는 건 많이 봤다. 그러나 저 말을 자신한테까지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강자존 파티와 관련이 있는, 그들만 알아먹는 말이겠거니 했다.
근데 자신한테도 쓴다? 왜?
자신들, 강철 파티가 장형석과 손을 잡았단 걸 눈치챘고, 그래서 자신들을 강자존 파티와 같은 편으로 보고 쓰는 거라면 아예 이상한 건 아니었다.
대체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왜 쓰는 건진 일단 제쳐 두고.
그러나 자신과 장형석이 만날 당시, 엘프의 노래 1층 주점엔 김용후가 없었다.
엘프의 노래 건물 주변에도 없었다.
확실하다.
부하들을 엘프의 노래 밖으로 보내 김용후가 오는지 안 오는지 보게 했으니까.
누군가 알려줬을 리도 없다. 주점 안에 있던 유저들을 전부 내보냈으니.
물론 주인 NPC와 서빙을 하는 NPC는 있었다. 그러나 NPC가 알려줬을 리는 없다.
호감도가 엄청나게 높지 않은 이상에야 NPC들은 유저들의 일엔 간여를 하지 않으니.
김용후는 술도 안 마시고, 엘프의 노래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니 엘프의 노래 NPC들과 뭔가가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걸까.
자신과 장형석의 협상을.
그냥 눈치였다.
용후는 눈치가 빨랐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뚝 떨어져 살아가게 된 이세계, 그리고 정말 운 좋게 하게 된 NPC가 운영하는 잡화점 알바.
아무리 말은 통한다지만 눈치가 없다면 1년 동안 절대 해나갈 수 없었을 터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눈치가 더 좋아졌다.
또, 강철 파티도 강자존 파티 못지않게 인성이 글러먹은 자들이 모인 파티고, 이런저런 민폐와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닌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핫스팟 근처에서 평소와 달리 두 팀으로 나뉘어 사냥을 하는 걸 보고 바로 눈치를 챈 것이다.
"나 1골드만."
이쯤 되자 빡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10번도 넘게 저 소릴 듣고 있으니.
그러나 그런 만큼 불안함도 엄청 커졌다.
화가 나서 하는 거라면 차라리 욕을 하지, 저건 진짜 너무 이상했다.
분명히 뭔가 있다.
'혹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혹시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인벤토리."
박강철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아이템들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어?"
어어!
"뭐야!"
소지금란이 이상했다. 이 액수가 아니었는데? 8골드나 비었다.
동화도 아니고 금화가 8골드나 비는데 어디에 썼는지 기억을 못 할 리 없었다.
"시X……."
박강철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머리털도 쭈뼛 서고, 뒷덜미도 서늘해졌다.
아니지? 아닐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말 한마디로 인벤토리의 금화가 빠져나간다니.
그러나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나 1골드만."
헉!
빠, 빠져나갔다. 빠져나갔어! 정말 소지금란의 금화가 1골드 빠져나갔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런 개사기가 어딨어!
"어!"
이건 또 뭐야?
1골드를 달란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1골드가 왜 또 빠져나가?
나 1골드만 스킬의 크리티컬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걸 박강철이 어찌 아리. 박강철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어떻게 모은 8골드인가. 핫스팟을 가진 강자존 파티완 달랐다.
전재산 12골드, 반년을 모은 돈이었다. 그런 돈이 이젠 4골드밖에 남지 않았다.
"그, 그만! 멈춰!"
당연히 용후는 멈추지 않았다.
"나 1골드만."
"멈추라고!"
멈추지 않았다.
"나 1골드만."
"두, 둘러싸! 둘러싸서 공격해!"
또 1골드가 빠져나가 2골드만 남은 소지금란을 보자 결국 이성을 잃은 박강철이 외쳤다.
멀리서 석궁만 쏘기로 했는데 왜 공격을 하란 건지 이상했지만, 다들 일단 박강철의 말대로 했다.
강철 파티에서 박강철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말을 안 들었다가 나중에 욕을 얼마나 먹으려고. 손버릇도 나쁜 박강철이었다. 파티원이라 해서 가리지 않았다. 빡치면 팼다. 자신보다 강하지 않으면.
"나 1골드만."
또 1골드가 빠져나갔다.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누구든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뭘 하고 있어! 빨리 공격해! 죽여 버려!"
용후를 에워싼 뒤 서로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던 강철 파티의 유저들이 결국 얼굴이 벌게져서 미친 듯 소리쳐대는 박강철의 기세에 쫄아 김용후에게 달려들었다.
이들도 김용후가 강자존 파티를 잡는 걸 봤다. 그러나 김용후가 강자존 전원을 상대로 이긴 건 아니었다.
4대 1 전투였고, 남은 파티원들도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자들을 각개격파로 잡아냈다.
그랬기에 17명이 둘러싸서 일제히 공격을 하는데 지기야 하겠나 싶었다. 죽어봐야 한둘이겠지 했다.
스릉!
용후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자동사냥."
용후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 * *
"멍청한 새끼."
핫스팟 안.
김용후를 둘러싸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박강철을 보며 장형석이 조소를 지었다.
"그래, 잘한다."
저렇게 해주면 자신 입장에선 땡큐였다.
박강철 파티가 김용후와 붙어서 싸우면 자신들은 강철 파티 뒤에서 더 안전하게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멍청하다 비웃었지만, 이해가 되긴 했다. 자신도 지금 박강철이 하고 있는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했으니까.
누군들 안 그럴까.
뻔히 보고 있는데, 그것도 가장 안전하다는 인벤토리에서 금화가 계속 빠져나가면 미치고 환장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결국, 강철 파티원들이 김용후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좋아 좋아."
저렇게 공격하면 박강철은 백 프로 죽게 돼 있다. 강한 유저부터 먼저 잡던 김용후였으니.
그렇게 김용후가 박강철을 잡으면 자신은 딱 김용후만 잡으면 된다.
박강철이 죽고, 김용후도 죽으면, 남은 강철 파티원들은 자신의 파티로 저절로 흡수되어 올 테니.
혹 김용후가 기억을 잃은 쇼크에 무너지지 않고 들판으로 다시 나온다 해도, 강철 파티와 합쳐져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전력이 상승한 강자존 파티를 또 잡진 못할 것이다.
"다들 움직일 준비해."
씩 웃은 장형석이 말했다.
김용후의 움직임은 마치 NPC 기사 같았다.
그러나 강철 파티는 17명, 거기에 강자존 파티까지 한 겹 더 에워싸 공격하면 제아무리 날쌔고 잘 싸워도 모든 공격을 다 막고 피하진 못한다.
물론 포션을 더 갖고 있다면, 몸 곳곳에 상처를 입어도 그 포션을 마셔가며 호락호락 당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레벨 17이 쓰는, 노멀 스킬이지만 8레벨이나 되는 관통 스킬을 정통으로 맞으면, 달리기가 자신보다 빠르고 잘 지치지도 않았던 만큼 혹 스탯 수치가 정말 20레벨대라 해도, 그렇다 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가자!"
장형석이 앞장서 달렸다. 다른 파티원들도 장형석을 따라 달렸다.
핫스팟 외곽이이었기에 금방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도착했다.
"에워싸서 도와!"
장형석이 외쳤다. 그리고 눈을 매섭게 치뜨며 파고들 틈을 살폈다.
절호의 기회다.
딱 한 방.
관통 스킬 딱 한 방만 김용후의 몸에 명중시키면 잡을 수 있다.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피를 왕청 쏟는 등 치명상을 입으면 아무리 포션을 마셔도 그런 상처는 바로 아물진 않는다.
그 상태에선 본래 힘을 반도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때, 강철 파티원 세 명이 더 죽자 달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장형석이 움직였다.
'관통!'
달리며 스킬을 시전했다.
동작이 커 명중률은 떨어지지만 지금 김용후는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유저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훙!
장형석의 검이 옅은 푸른빛에 휩싸였다.
"하아앗!"
장형석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더 빠르게 달렸다. 됐다! 이번엔 진짜 된다!
푸욱!
관통 스킬이 담긴, 그것도 양손으로 쥐고 내찌른 롱소드가 김용후의 등을 관통했다.
장형석이 활짝 웃었다.
"하하!"
웃음까지 터뜨리며 롱소드를 뽑아내 두 걸음을 물러선 장형석이 자신의 검이 빠져나온 상처를 바라봤다.
피가 뿜어져 나왔다.
"어떠냐! 하하! 맛있지? 응? 내 칼맛 끝내주지? 이런 칼맛은 처음일 거야. 아주 짜릿짜릿하지?"
그런데 그때, 장형석의 말이 뚝 끊기고,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뭐야.'
멀쩡했다.
등에 뚫린 상처에서 피는 왕창 쏟고 있는데 김용후는 똑같이 잘 싸우고 있었다. 움직임도 거의 둔해지지 않았다.
여전히 빠르고 현란하게 움직이며 유저들을 잡아나갔다.
"아악!"
"흐이익!"
두 명의 유저가 목과 옆구리에서 피를 왕창 쏟으며 털썩털썩 쓰러졌다. 저게 정상이었다. 치명상을 입게 되면.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트롤 같진 않았다. 그러나 포션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출혈이 실시간으로 확확 줄고, 상처 부위가 아물고 있기까지 했다.
"하!"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체 뭐냔 말인가, 저건 또. 대체 뭐냔 말인가, 김용후 저 인간은.
"형석 형!"
파티원 중 누군가의 그 외침에 장형석이 홱 고개를 쳐들었다. 직후 김용후가 자신 쪽으로 돌아서는 게 보였다.
"흐익!"
그 소리가 절로 나왔다.
김용후가 지면을 박찼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장형석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김용후는 상체를 틀어 그 공격을 피해내곤 두 걸음을 더 내디뎌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피할 수 없었다. 눈으론 보이는 데도. 그 정도로 빨랐다.
"나 1골드만."
8레벨이 된 나 1골드만, 여지없이 1골드가 장형석의 인벤토리에서 빠져나갔고.
-크리티컬!
1골드가 더 빠져나갔다. 장형석의 소지금란이 0이 됐다. 그리고 김용후의 검이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장비 중인 검과 각반 갑옷, 은화와 동화까지 드랍하며 장형석이 바닥에 쓰러졌다.
박강철의 시체 옆이었다.
* * *
-대륙 전역에 명성이 100 오릅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70 오릅니다
강자존 파티와 강철 파티를 모두 잡고 드랍템을 모두 줍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용후의 눈앞에 뜬 알림창이었다.
"좋아."
용후가 씩 웃었다.
마을 분수대 앞에서 부활한지 십분도 안 지났을 강자존 파티는 아직 팔켄 마을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팔켄 마을을 떠나게 되고, 핫스팟에 다른 유저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사냥을 하게 되면 분명 또 추가로 명성이 들어올 것이다. 그땐 훨씬 더 많은 명성이.
물론 지금 집으로 가면 바로 직업 스킬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용후가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스킬 자판기로 갔다.
스킬 자판기의 대량 투입구가 용후가 스킬을 살 수 있는 금화와 명성을 갖고 있단 걸 감지하곤 저절로 튀어나오며 열렸다.
인벤토리에서 돈주머니를 꺼낸 용후가 대량 금화 투입구 위에서 주머니를 거꾸로 뒤집었다.
촤르르르르륵!
금화들이 우수수 쏟아져 투입구 속에서 이리저리 구르고 부딪치고 튀어 올랐다. 용후의 얼굴이 황홀감에 젖어 들었다.
그때 딱 500골드가 채워지자 대량 투입구가 저절로 안으로 들어가며 닫혔다.
용후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직업 스킬 버튼을 눌렀다. 상태창 안의 명성 수치가 빠져나갔고,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만지면 다 고쳐 스킬을 얻었습니다
치료 스킬인가? 아님, 대장장이 스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