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기적의 스킬 자판기 009화
-석궁술 스킬을 얻었습니다
그 알림창이 뜨자마자 조창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형석이 형! 저 스킬 얻었어요!"
"좋아, 잘했어! 창수 넌 이제 석궁 그만 쏴."
가장 석궁을 몬스터들에게 잘 맞추던 조창수가 석궁을 쏘지 않게 되면 그만큼 기회가 더 생겨 다른 둘도 금방 석궁 스킬을 얻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약 2시간.
"형, 저도 생겼어요."
"저도요!"
"좋아."
장형석이 씩 웃곤 둘을 향해 엄지손가락까지 세워 보였다.
"이젠 스킬 레벨 올려."
김용후가 당장에라도 핫스팟으로 올 것 같아 계속 불안했는데, 아직도 김용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젠 와도 상관이 없었다.
아니, 빨리 와라 이제.
셋 다 석궁술을 스킬화시켰고, 핫스팟으로 돌아오기 전에 숲으로 들어가 흰독뱀을 잡아 독까지 뽑아내 빈병에 거의 절반을 채워왔다. 물론 석궁 볼트 절반에 그 독을 이미 묻혀놨고.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다 이거지.'
반복 행동을 스킬로 만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석궁을 허공에 쏘기만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닌 것이다.
맞춰야 했다. 그리고 점점 명중률도 올려야 한다. 그걸 반복해야 스킬화시킬 수가 있다.
그러나 강자존 파티의 파티원들은 전부 레벨이 10 이상, 그리고 이곳은 몬스터들이 엄청 빠르게 리젠되는 핫스팟, 그래서였다. 하루도 안 지나 스킬화시킬 수 있었던 건.
바보가 아니니 김용후는 자신이 석궁을 준비했을 거란 생각은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나절도 안 지나 스킬화를 시키고, 석궁 볼트에 독까지 묻혔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독은 더.
팔켄 마을 뒤편엔 숲이 있다. 들판은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짐승이 있고, 독충에 식인 식물도 있다.
게다가 고블린과 코볼트가 서식하고 있기까지 하다. 지들 마을까지 만들어서.
팔켄 마을에 성에서 파견해놓은 경비대가 있어 숲을 나와 마을까지 오진 않고, 숲 초입까지도 오는 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간혹 초입에서 만났다는, 심지어 죽어서 마을에서 부활했단 유저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니 김용후는 자신들이 숲까지 들어갔다 왔다곤 생각지 못한다. 생각이야 할 순 있지만 에이 설마 할 것이다. 그러니 분명 핫스팟으로 온다, 놈은.
"형석 형, 저 2렙 됐어요!"
장형석이 또 엄지를 척 세워 보였다.
"좋아. 팍팍 올려, 팍팍! 우리 강자존 파티야. 우리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주자."
"예!"
강자존 파티원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장형석은 정말 쓰레기지만 대범함이나 행동력은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잡는다, 이번엔.
파티원 모두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와라, 김용후."
빨리.
* * *
써걱!
김용후가 휘두른 검에 목이 뎅강 잘린 여우가 소리도 못 내고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직후 김용후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2가 됩니다
레벨업이었다. 처음 해보는 레벨업, 가슴이 좀 벅찼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이 레벨업을 하는 일은 평생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레벨업을 하다니.
자동사냥 스킬 덕분이었다.
신체개조 비약으로 스탯 수치가 20레벨 가까이 되긴 했지만, 몸이 강해진 것과 잘 싸우는 건 물론 관계가 크기야 하지만 사냥 경험이 전혀 없는 용후에겐 그렇지 않았다.
분명 들개를 상대로도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스탯 수치는 자신보다 한참 낮지만 들개는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으니까.
정말 날쌔고 능숙하게 공격을 해왔다. 허를 찔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자동사냥 상태가 된 자신의 몸은 들개보다 더 날쌔고 민첩하고 노련했다. 심지어 검술까지 구사했다.
정말 제대로 된 검술 스텝을 밟으며 공격과 회피를 했고, 검을 휘두르는 동작에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더 놀라운 건 자동사냥 스킬에도 스킬 레벨이 있단 거였다.
-케헹!
늑대였다.
용후가 대각선 아래로 휘두른 롱소드가 낮게 자세를 낮추며 옆으로 돌아 들어오던 늑대의 등을 벴다.
아주 깊었다.
그러나 레벨이 9인 늑대는 들개와는 비교도 안 되게 생명력이 강하고 또 터프했다.
잘린 등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데도 멈추지 않고 방향을 휙 꺾어 용후를 향해 돌진했다.
용후의 몸이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늑대가 더 빨랐고, 그러니 뒷걸음질 정도론 거리를 벌릴 수 없었다.
"어어!"
옆으로 몸이라도 날려야 했다.
그러나 자동사냥 중인 몸은 용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동사냥 스킬을 풀기도 뭐했다. 풀어도 풀리지 않으니까. 바로는. 3~4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였다.
멈춰선 용후의 몸이 갑자기 발을 휘둘렀다. 그랬다. 피하던 게 아니라 발차기를 하기 위한 준비 동작이었던 것이다.
쉭!
마치 공을 차듯 용후의 오른발이 휘둘러졌다. 사정없이. 용후가 휘두른 발이 늑대의 턱을 퍼억 소리를 내며 그대로 올려쳤다.
-켕!
늑대의 다리가 지면에서 뜨며 몸이 옆으로 날아갔다. 꽤 멀리까지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 늑대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용후의 몸이 홱 앞으로 내달렸다. 달리며 롱소드를 역수로 고쳐 쥐었다.
그러곤 그렇게 쥔 롱소드를 일어서고 있는 늑대의 관자놀이 쪽으로 찔러 넣었다. 아래로 비스듬히.
푸확!
반대쪽 관자놀이를 뚫고 나온 검이 바닥까지 박혀 들어갔다. 끝이었다. 늑대의 눈동자에서 살기와 생기가 사라지고 몸이 축 늘어졌다.
용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자동사냥 스킬이 2레벨이 됩니다
"역시……."
대박 스킬이었다.
유저들은 아무리 고렙이라 해도 절대 이렇게 움직이지 못한다. 마치 NPC 기사들 같은 움직임이다.
한 번 본 적이 있다.
반년 전, 팔켄 마을에서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무슨 고블린 부족의 습격을 막고 토벌하는 단체 퀘스트가 있었다.
당연히 용후가 그 퀘스트에 참가한 건 아니지만 피난소가 된 교회 안에서 창문을 통해 NPC 기사들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다.
유저들의 모습이 눈에 전혀 안 들어올 정도로 잘 싸웠다. 차원이 달랐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보인 움직임이 딱 그랬다.
그러나 용후는 사냥을 멈췄다. 정말 사기적인 스킬이지만 유지시간은 5분이었다. 그리고 역시 쿨타임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은 마저 하던 일을 끝내야 했다. 강자존 파티를 핫스팟에서, 그리고 팔켄 마을에서 쫓아내는 것.
비장의 무기도 생겼겠다 이젠 정말 무서울 게 하나 없다.
용후가 핫스팟으로 올라갔다.
* * *
"나아~이일고올드으마안~!"
핫스팟 안.
강자존 파티가 있는 곳으로부터 7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용후가 그 말을 외치자마자 강자존 파티가 잡고 있던 늑대도 두고 일제히 용후를 향해 달렸다.
장형석의 인벤토리에서 1골드가 여지없이 빠져나갔지만, 장형석은 이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직 이번에야말로 김용후를 잡아 죽이겠단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죽여도 뺏긴 금화를 돌려받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핫스팟을 김용후에게 뺏기지만 않으면 돈은 다시 모을 수 있으니까.
김용후가 돌아섰다. 그리고 달렸다.
김용후는 자신들보다 빠르다. 그러나 노멀에 싸구려 석궁이지만 그래도 세 파티원들이 들고 있는 석궁의 사거리는 300m도 넘는다.
거기다 석궁술 레벨도 2~3까지 올린 상태.
김용후와의 거리가 멀어지기 전, 100m 내 거리면 충분히 맞출 수 있다.
"쏴! 빨리 쏴!"
세 파티원들이 인벤토리에서 석궁을 꺼내 들자 장형석이 눈이 뒤집혀선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푸슉!
푸슉푸슉!
푸슉!
세 석궁에서 볼트가 일제히 날아갔다. 그러나 다 실패. 아무리 스킬로까지 만들었다 해도 단 하루 만에 명사수가 될 순 없었다.
그러나 석궁의 장전은 아주 쉽고 빨랐다. 세 파티원들이 달리며 볼트를 장전하곤 다시 용후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맞췄다!"
조창수였다.
"역시 창수!"
장형석이 활짝 웃었다.
볼트 한 발이 김용후의 허벅지에 박혔고, 그 즉시 김용후의 속도가 확 줄었다. 다리를 절뚝거리게 됐으니 당연했다.
그뿐인가. 독을 바른 볼트다.
몇 초 더 지나면 몸이 무거워지고 눈앞이 하얘지면서 머리가 핑 돌 것이다.
"나 1골드만!"
어, 그래.
이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죽어봐라.
기억을 잃는 건 처음이지?
그냥 기억을 좀 잃고 마는 게 아니다. 엄청난 상실감이 밀려든다.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된 것 같은 기분에 우울감도 밀려든다.
또 다신 죽고 싶지 않아진다. 들판으로 나가는 것도 덜덜 몸이 떨릴 정도로 무서워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트라우마가 생긴다.
그걸 극복하고 계속 사냥을 하는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번 죽고 나면 사냥을 할 엄두를 못 낸다.
그러니 잘하면 한 번에, 끽해야 2~3번 더 죽고 나면 끝날 게임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돌아선 김용후가 허벅지에 박힌 볼트를 확 뽑아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병을 입에 대고 들이켰다.
"어! 포션 같은데요!"
먹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책에선 본 적이 있었다. 딱 저 모양의 병에 딱 저런 색이었다.
팔켄 마을엔 마법 상점이 없다. 그러나 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 자신들에게 뺏은 금화가 얼마인가. 퀘스트를 하러 온 고렙 유저들에게 웃돈을 얹어 포션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치료 속도가 뭐 저리 빨라!"
"와, 시X, 독도 해독된 거 같은데요."
써본 적이 없으니 그런 것까진 알 수 없었다.
용후는 매달 대리만족을 위해 월간 모험 책을 늘 사서 읽었기에 맹독 정도가 아니면 포션으로 독도 해독이 된단 걸 알고 있었던 거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더 이어졌다. 김용후가 도망가지 않고 검을 뽑아 든 것이다.
"저게 미쳤나."
김용후를 쫓아 전속력으로 달렸기에 파티원들과 떨어졌지만 그래도 넷이다.
그런데 덤비겠다고?
뭘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빨라졌고 검에 포션까지 갖고 있다지만 사냥 한 번 해본 적 없는 김용후다. 그건 틀림없다.
그런데 김용후가 진짜 달려들었다.
하!
"나 1골드만."
"쳐돌았나! 죽여!"
장형석과 검과 도끼, 창으로 무기를 바꿔 든 셋이 달려드는 김용후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자동사냥."
"뭐?"
장형석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