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피아노-106화 (106/177)

[106] Ep.16 : 거장의 귀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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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

맑은 피아노 선율 하나가 관객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 그 순간..

신이 내린 듯한 피아노 연주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우와아아아아!!!!!!”

“이야!! 정말 대단한 곡이야!!”

“휘이이이익!!”

“최고다!!”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박수 소리와 사람들의 함성..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쉽게 등을 돌릴 수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드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를 언제까지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끝났네요.”

어느새 자신의 곁에 다가온 피아니스트 차민준이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요? 이제 속이 후련하신가요. 차이콥스키씨?”

“크윽.. 으윽…”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투명한 눈물이 땀과 함께 지휘자 단상을 적시고 있었다.

어깨를 늘어트린 채 몇 번인가 위 아래로 들썩이던 그는 결국 가볍게 눈물을 훔치며 사람들을 향해 뒤돌아섰다.

“우와아아아!!!”

“차이콥스키!! 차이콥스키!! 차이콥스키!!”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차이콥스키의 이름이 홀을 가득 메우고, 관객들의 기립 박수는 어느새 5분을 넘기고 있었다.

차이콥스키와 함께 피아노 협주곡을 마친 악단들은 서로를 칭찬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차이콥스키는 차민준과 손을 잡고 관객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로서 모스크바 음악원의 전통인 일요 연주회는 성공적인 마무리로 끝을 맺었다.

공연이 끝난 후.

그 누구도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무대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연한 기회로 그의 연주회에 참석한 어느 귀족 부인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경의를 표하며 매년 6000루블의 지원금을 원조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녀의 원조는 이후 무려 13년 동안이나 지속이 되었는데, 차이콥스키는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4번째 교향곡을 그녀에게 헌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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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는 첫 연주회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먼저 밀린 월세를 해결했다.

늦은 밤. 자신의 딱한 사정을 빌미로 수작을 부리려는 게 아닌가 의심했던 메르켈 부인은 차이콥스키가 내민 돈뭉치에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서, 설마. 이게 다 오늘 번 돈?”

“앞으로 월세가 밀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몇 달치 방세도 미리 얹어두었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 나야 월세만 꼬박내주면 불만 없지..”

“그동안 신경 쓰이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돈을 건넨 차이콥스키는 모자를 벗어 메르켈 부인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아, 저기 차이콥스키씨!”

“네. 부인.”

“깜빡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당신 앞으로 편지가 한통 왔었어요. 잠시만 기다려 봐요.”

현관을 열어둔 채 집안으로 들어간 메르켈 부인은 잠시 후 갈색 봉투에 담긴 편지 한통을 들고 나왔다.

발신자의 이름은 한스 폰 뷜로.

차이콥스키는 그의 이름을 보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루빈스타인 원장에게 피아노 협주곡에 대해 혹평을 들었을 때 반발 심리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몇명에게 악보를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연락이 없어 반쯤 포기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답장이 올 줄이야..

"감사합니다. 메르켈 부인.."

잠시 후.

자신의 비좁은 방으로 돌아온 차이콥스키는 침대에 앉아 메르켈 부인에게 받은 봉투를 열어 보았다.

-친애하는 차이콥스키에게-

일전에 보내주신 피아노 협주곡의 악보는 잘 보았습니다.

당신의 피아노 협주곡은 몇 년을 공들인 작품이라는 것이 한 눈에 느껴질 정도로 아주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중략..)

저는 지금 미국에서 연주회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혹시나 여건이 되신다면 모든 경비는 제가 지불 할 테니, 저와 함께 초연을 해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당신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리며 미리 손을 풀고 있겠습니다.

-한스 폰 뷜로.-

참으로 꿈만 같았던 하루였다.

편지지를 쥐고 있는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탁자 위에 편지를 내려놓고 몸을 뉘었지만, 자꾸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이전에도 오케스트라 단원이 모자랄 경우 대리 연주자로 무대에 오른 적이 간간히 있었지만, 오늘의 경험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성취감이 느껴졌다.

10년 전 법무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그가 음악의 길을 선택했을 때, 주변 사람은 모두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한 열정은 그의 나이 35세가 되어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다음 날.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차이콥스키는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에게 온종일 시달려야했다.

심지어 출근길에는 모르는 사람들까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지나갈 정도였으니, 학원 안에서는 오죽했겠는가?

다음 연주회에 자신을 올려달라는 청탁.

평가 시험을 앞두고 피아노 반주자를 찾던 학생들은 피아니스트였던 차민준에게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만 그들의 물음에 답했다.

그 날 오후.

떠들썩했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짐을 챙기던 중.

루빈스타인 원장 밑에서 잡무를 행하는 시종이 차이콥스키를 찾아왔다.

그는 차이콥스키에게 한 장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것은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저작권을 모스크바 음악원과 공동 소유로 하는 계약서였다.

정기적으로 공식 무대에서 연주회를 갖게 해주는 대신 학원 측과 수익을 나누는 방법.

원장인 루빈스타인이 차이콥스키에게 제시한 비율은 8:2였다.

아주 당연스럽게도 학원 소속인 차이콥스키의 비율은 단 2할 뿐이었다.

잠시 동안 지그시 계약서를 바라보던 차이콥스키는 차분히 종이를 반으로 접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원장님께서는 차이콥스키씨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실 거라 기대하고 계신답니다.”

“물론이죠. 내일 직접 원장님께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원장님께 그렇게 전해 드리지요.”

잠시 후.

음악원을 나온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집이 아닌 시장 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차를 타도 될 만큼 주머니는 두둑했지만, 생각을 정리 할 겸 조금 걷고 싶었다.

대로에 부는 차가운 바람마저도 오늘은 상쾌하게만 느껴졌다.

“요술 성냥~ 오늘 치 딱 두 개 남았습니다!!”

어젯밤 연주 홀에서 기가 막힌 연주를 선보였던 마성의 피아니스트는 오늘도 변함없이 시장 골목 앞에서 요술 성냥을 팔고 있었다.

여전히 인기가 좋은 그의 상품은 남은 두 개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손님들끼리 언성을 높힐 정도였다.

“내가 먼저 왔어!!”

“무슨 소리야!? 먼저 돈 지불한 사람이 임자지!!”

“으하하~ 운이 좋았군. 아슬 아슬하게 하나 샀구만~”

두 개의 요술 성냥 중 하나를 가장 먼저 구입한 손님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당당하게 불꽃을 튕기며 사라지고, 나머지 하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두 손님에게 차민준은 주머니에서 여분의 요술 성냥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서로 멱살이라도 잡으려던 두 손님은 각자 하나씩 요술 성냥을 받아들고 흐뭇한 미소와 함께 사라졌다.

“수완이 좋군.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숨겨둔 건가?”

“뭐 가끔 마지막으로 판 물건이 불량품일 때도 있으니까요.”

방금 전까지 요술 성냥이 가득 담겨있던 상자를 반으로 접으며 차민준은 빙긋 웃어보였다.

“일은 잘 풀리셨나요?”

차민준의 질문에 차이콥스키는 가방 안에 넣어둔 계약서가 떠올랐다.

“글쎄.. 잘 풀렸다고 해야 할까?”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나 하며 들어도 될까요? 안 그래도 배가 고픈데.”

허기졌던 것은 차이콥스키도 마찬가지였던 터라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내가 사지.”

“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차이콥스키와 차민준이 향한 것은 이 전에 함께 식사를 나누었던 식당이었다.

카운터 뒤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주인장은 다시 나타난 두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다.

“오우~ 또 왔군. 혹시 오늘도 한 곡 쳐줄 텐가?”

“오늘은 식사만 할 거라 조금 힘들겠네요.”

“이런.. 그것 참 아쉽군.”

주인장에게 간단한 식사를 주문 한 차이콥스키는 잠시 망설이다 탁자 위에 계약서를 올려두었다.

“이게 뭔가요?”

“오늘 루빈스타인 원장이 나에게 제시한 계약서라네.”

컵에 담긴 물을 홀짝이며 계약서를 훑어보던 민준이는 너무나도 불공평한 내용에 헛웃음을 삼켰다.

“우와~ 이거 완전 노예 계약서네요. 수익 배분도 그렇고, 특히 모스크바 연주 홀 이외의 곳에선 연주 불가. 독점 계약도 모자라서 저작권도 공동 소유?”

계약 조항을 넘길 때마다 점점 화가 치밀어 올라 식사를 하기도 전에 체할 것만 같았다.

“설마 이 계약서에 사인하시려는 건 아니죠?”

“자네가 보기에 좀 너무한가?”

“당연하죠. 그걸 말이라고..”

“그렇군..”

민준이에게서 돌려받은 계약서를 다시 반으로 접어 넣은 차이콥스키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자네를 찾아온 이유는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 라네.”

“작별 인사요?”

“내일부로 모스크바 음악원에 휴직을 청하고 당분간 미국에 다녀올 생각이야.”

“미국이라면…?”

“한스 폰 뷜로라는 독일계 피아니스트가 내 피아노 협주곡을 미국에서 발표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왔거든.”

“와~ 그것 참 잘 됐네요.”

“하지만 한 편으론 너무나도 아쉽더군.”

“뭐가요?”

“자네와 다시 같은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이 말이야.”

착잡한 기분을 담아 민준이를 바라보던 그는 잠시 뒤 말을 이었다.

“몇 달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곳에 돌아왔을 때 자네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물론이죠. 꼭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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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인천 국제공항!! 지어진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건물이 반짝반짝하군.”

“마에스트로. 이렇게 함부로 다니시면 곤란합니다.”

“걱정 마. 한국은 안전한 나라니까.”

“그래도..”

“내 휴대폰 좀 주겠나?”

“아, 여기..”

“고맙군.”

수행원에게 휴대폰을 받아 든 발터 뮐러는 플립을 열자마자, 자연스럽게 버튼을 누른 뒤 귓가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네. 송 현우입니다.”

“미스터 송~!! 날세!”

“으잉? 마에스트로? 설마 벌써 한국에?”

“그래. 방금 도착했지.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 민준이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아마 작업실에 있을 텐데? 무슨 볼일이라도?”

“이번 내한 공연에서 그 녀석에게 시킬 것이 좀 있거든.”

“네에?”

“일단 중요한 건 만나서 이야기 하지.”

“알겠습니다. 민준이도 함께 데리고 가죠. 그럼 어디서 뵐까요?”

“모처럼 한국에 왔으니. 역시 그걸 먹어야하지 않을까?”

“설마…?”

“불고기 집에서 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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