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피아노-84화 (84/177)

[84] Ep.13 : 얼굴 없는 음악가. (1)

&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어느 작은 납골당.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층 건물은 밝은 햇살 아래 따스해 보이지만, 막상 실내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곤했다.

아마도 그것은 슬픔이 가지는 온도인지도 모른다.

고인을 모셔 놓은 곳은 어디나 비슷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스무살이 된 민준이는 납골당에 도착하기 전 꽃집에 들러 새하얀 카네이션 한 송이를 구입했다.

“카네이션? 오랜만에 찾아가는데 너무 수수하지 않을까?”

“아니, 이거면 충분해.”

할머니께 드릴 카네이션을 들고 민준이가 할머니가 계신 건물 안으로 향하자, 조용히 뒤따라오던 진아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왜? 같이 들어가자며…?”

“그래도 오랜만에 재회인데, 너 먼저 할머니께 인사드려. 나는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

민준이는 진아의 따스한 배려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신경 써줘서 고마워..”

옛 기억을 더듬어 어렵지 않게 할머니의 유골이 담긴 곳을 찾아낸 민준이는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유골 단지를 바라보았다.

1996년 12월 10일.

윤경자.

할머니의 이름이었다.

단지 앞에는 자신이 오스트리아로 떠나기 전 진아와 셋이서 찍은 사진이 조그만 액자에 담겨 놓여져 있었다.

마치 자신의 손주 손녀 마냥 환하게 웃어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에 민준이는 살짝 보관함을 열어 유골 단지 앞에 새하얀 카네이션을 놓아 드렸다.

“항상 종이로 된 카네이션 밖에 달아드리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생화를 드리네요.”

해마다 5월 달이면 학교에서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어 할머니 가슴에 달아 드리던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밖에서도 하루 종일 달고 다니실 만큼 좋아하셨다.

“조금만 더 오래 사시지 그러셨어요. 이런 거 말고 할머니께 해드리고 싶은 게 더 많았었는데..”

민준이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시기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민준이네 집에 들른 진아가 현관문 앞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를 발견한 것이었다.

덕분에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진 할머니는 다음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온 석 대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민준이 이제 곧 먼 곳에서 피아노 대회가 있다죠…? 그러니 부디 방해 안 되게 내가 이대로 눈을 감아도 그냥 조용히 있어줘요..”

마지막 떠나는 그 순간까지 손자만을 생각했던 그녀는 그렇게 그 날 저녁. 잠이 들고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그 다음 날 쇼팽 콩쿨의 심사가 끝난 뒤 송 실장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에 의해 민준이에게 전해졌다.

대회도 끝났으니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사로잡혀있던 아이에게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었을까?

할머니가 눈을 감았던 그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이 서러웠는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내내 아이는 울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다.

발터 뮐러와 송 실장의 도움으로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할머니를 모시고 난 뒤. 민준이 다시 발터 뮐러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할머니가 없는 한국에서 민준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별다른 보호자 없이 13살짜리 꼬마가 가야할 곳은 뻔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다리는 좀 어때요? 그곳은 많이 편한가요?”

비록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민준이는 그동안 할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비엔나에서 있었던 일.

피아노 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할머니가 떠난 뒤에 발터 뮐러 선생님께서 후견인이 되어준 일들까지..

모든 걸 털어 놓은 그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단 한 마디였다.

“사랑해요. 할머니..”

그때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진아는 천천히 다가와 떨리는 민준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이제 그만해. 할머니도 슬퍼하시잖아..”

“응..?”

보관함 안에 습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사올 때부터 생화에 뿌려져있던 것일까?

바닥을 향하고 있는 카네이션 꽃잎 끝에는 마치 할머니의 눈물처럼 맑은 물방울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할머니. 저 진아에요. 작년에도 왔었는데, 저 기억 하시죠?”

친 손녀처럼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며 인사드린 진아는 맞잡은 민준이 손을 들어 보이며 할머니를 향해 환히 웃어 보였다.

“드디어 민준이가 돌아왔어요~ 2년만 있다 돌아온다더니, 글쎄 6년이나 더 있다 돌아온 거 있죠? 너무 괘씸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제부터 제가 다시는 어디로 못 도망가게 이렇게 꽉 잡고 있으려구요. 이제 할머니 보러 올 때마다 민준이랑 같이 올게요~”

잠시 후. 할머니를 모신 납골당을 나와 진아와 함께 서울로 향하는 길..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민준이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같이 와줘서..”

“응? 뭐라고? 바람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려..”

“할머니 보러 같이 와줘서 고맙다고~”

“뭐? 창문 좀 닫고 얘기해봐. 잘 안 들린 다니까~”

“어? 저기 길에 만원 짜리 떨어져 있다.”

“어디? 어디이!!?”

“… 너 방금 일부러 못들은 척 한 거지?”

“······.”

“······.”

“나 걸렸어? 티 많이 나?”

“어. 너무 노골적이었어..”

“아, 창피해..”

그 순간. 얼굴이 빨개진 진아는 애꿎은 엑셀만 꾸욱 밟았다.

그렇게 싱그러운 봄날의 햇살 아래 텅 빈 국도를 두 사람을 태운 빨간색 차량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파주에서 서울로 진입해 들어오자 민준이는 진아에게 도로가에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왜? 어디 가려고?”

“잠시 혼자 가볼 때가 있어서.”

“내가 데려다 줄게.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미안. 이번 만큼은 꼭 혼자 가야하는 곳이라 그래.”

“차비는 있어? 택시비라도 줄까?”

“… 얘가 지금 나를 뭘로 보고 나도 돈 있거든?”

“어제처럼 택시 아저씨한테 요금 폭탄 맞지 말고.”

마치 엄마처럼 하나 하나 잔소리를 하는 진아의 목소리에 민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무슨 일 있으면 내 핸드폰으로 연락해. 아까 1번에 저장해 뒀으니까.”

“응. 알았어.”

그렇게 진아와 헤어진 민준이는 진아의 빨간 차량이 사거리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빤히 바라보다가 뒤에 오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아, 서대문구에 있는 연서 초등학교로 가주세요.”

왠지 초등학교라는 어감이 입에 잘 붙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민준이가 6학년이 되던 해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었으니까.

택시 아저씨는 민준이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U턴 시켜 학교로 향했다.

* * *

“우와… 진짜 오랜만이네..”

택시에서 내려 학교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 멈춰선 나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언덕 위에 세워진 학교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교문 언덕이 이렇게 작았었나?”

언덕 꼭대기에 세워진 연서 초등학교는 큰 언덕을 올라와도 교문까지 또 하나의 작은 언덕이 있었는데,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이 작은 언덕이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었다.

당시 민석이는 이 언덕에만 중력이 10배로 올라가는 것 같다고 ‘계왕신의 언덕’ 이라고 부르곤 했었는데..

문득 떠오른 옛 기억에 피식 웃음을 흘린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학교로 향했다.

어린 시절 낑낑 거리며 밤마다 타넘었던 교문도 이젠 내 키랑 얼추 비슷하구나..

얼추 오후 수업이 끝나가는 시간이라 그런지 운동장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아 운동장 쪽으로 진입한 나는…

“뜨헉.. 이게 뭐야!? 건물이 한 채 더 지어졌잖아?”

내가 사용하던 신관 건물과 폐쇄되어 있던 구교사.. ‘ㄱ’자 형태로 유지 되어 있던 학교 건물은 실내 체육관이 하나 더 생기는 바람에 ‘ㄷ’자 형태가 되어 있었다.

거기다 항상 바람만 불면 흙먼지가 날리던 거대한 운동장은 인조 잔디가 깔린 깔끔한 축구장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리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변해버린 학교 모습에 마른침을 삼키며 주위를 둘러 보던 그때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 그래도 종소리는 그대로네.. 하하..”

어차피 교무실에 선생님들이 돌아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기에 나는 어린 시절에 손가락을 힘을 기르기 위해 턱걸이를 하던 철봉에 다가갔다.

예전에 설치되어 있던 페인트가 벗겨진 녹슨 철봉은 폐기처분 되었는지 운동장 한 켠에는 나무기둥으로 만들어진 신식 철봉이 설치되어 있었다.

살짝 힘을 주어 철봉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나는 친구들과 자주 놀던 정글짐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음.. 정글짐은 사라졌네.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긴 하지..”

그것 말고도 기둥이 부식되어 약간 기울어져 있던 미끄럼틀이나 항상 아무렇게나 쇠사슬이 꼬아져 있던 그네도 전부 새것으로 교체 되어 있었다.

“좋아졌네.. 우리 학교”

이윽고 잠시 후 건물안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철봉에서 내려와 교무실로 향했다.

놀라운 것은 구교사 역시 리모델링 되어 사용되고 있는지 그곳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흐음.. 이러면 그 때 구교사에 있던 음악실이 남아 있을 리가 없을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내저으며 신관에 도착한 나는 방문자용 슬리퍼로 갈아 신고 2층 교무실로 향했다.

똑똑

두 번 노크 후. 교무실에 들어서자, 예전과는 다르게 나랑 나이차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선생님들이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 세요?”

“안녕하세요. 사람을 좀 찾고 싶어서 찾아 왔는데요.”

“사람이요? 우리 학교 졸업자세요?”

“사실 졸업자는 아니고 5학년 때까지 다니다가 해외로 전학을 갔었는데..”

“아, 그러세요? 찾으시는 분이 누구신데요?”

“그게 1994년도에 이 학교에서 근무하신 수위 할아버지를 좀 찾고 싶은데..”

“수위 아저씨요?”

보통 오랜만에 학교를 찾아오면 당시 은사님을 찾으러 오는 게 당연하겠지만, 내 경우는 조금 독특했는지 여기 저기서 소곤 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당시 근무 자료나 그런게 남아 있을까요?”

“글쎄요. 선생님도 아니고 수위 아저씨라니. 1994년이면 오래 되서 아마 폐기 됐을 수도 있는데..”

“아.. 그렇군요.”

역시 너무 늦게 찾아온 건가..

하지만 마지막에 저랑 헤어질 때 언제든 자기를 만나고 싶거든 학교로 오라고 하셨잖아요.. 할아버지…

그때 였다.

교무실 한구석에서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 혹시 민준이 아니냐?”

“네? 아, 저를 알고 계세요?”

“야 이 녀석아. 나야 나. 체육 담당. 박 찬수.”

“허억!! 박 선생님!? 아직도 여기 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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