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Ep.12 : 재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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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너희들이 최고다~!!”
“아, 진짜 소름 끼쳤어..”
박수와 함께 쏟아지는 관객들의 칭찬에 방금 연주를 마친 아이들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끝난 거지…?”
“이게 뭐야. 대회가 끝나면 속이 다 시원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아쉽지?”
“그러게 이제 주말마다 연습도 안 해도 되니까. 엄청 신날 줄 알았는데…”
손에서 악기를 내려놓은 아이들은 저마다 울컥하면서도 허탈한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 합숙 때 폭염 속에서 연주를 강행하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오 수정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다들 너무 힘들어서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겠지만,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딱 하나는 약속할게.”
“무슨 약속이요?”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나중에 무대 위에서 모든 연주를 마치고 났을 때. 너희는 그 날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것. 분명 너희 인생 중 가장 아름다운 하루로 기억 될 테니까.”
오 수정 선생님의 말이 옳았다.
당시 그녀의 말에 부정하며 대회만 끝나면 신나서 무대 위에서 소리 지를 거라던 아이들 모두 지금은 지휘자인 민준이가 어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마치기만 바랄 뿐이었다.
“민준아.. 너 괜찮아?”
베토벤의 모습이 사라지고, 무대 뒤 텅 빈 공간을 바라보던 민준이는 안나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괜찮아. 미안 어서 관객들에게 인사 드려야지.”
아직도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객석을 향해 민준이가 몸을 올리자, 다시 한 번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휘자 단상에서 내려온 민준이가 안나와 함께 허리를 숙이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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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공연의 완성도를 비롯해 관객의 만족도까지 모든 면에서 리틀 스타는 심사 위원 전원에게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대회 2등은 은퇴한 음악가들의 노익장을 과시했던 실버 벨이… 그리고 직장인들로 구성된 비틀즈는 3위를 차지했다.
대상으로 리틀 스타의 이름이 불러진 그 순간. 무대 위에 아이들은 저마다 서로를 끌어안고 뛸 듯이 기뻐했다.
지휘자인 차민준이 리틀 스타의 대표로 트로피를 수상하던 그 때..
이제 고작 첫 회를 맞이한 이 작은 대회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세계적인 거장 발터의 등장이었다.
“허억!! 저기 저 사람. 설마 발터 뮐러 아냐?”
“진짜다!! 진짜야!!”
“어머, 세상에 저분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대회 관계자들마저 전혀 예상치 못한 거물의 등장에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설 정도로 세계적인 거장이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보통이 아니었다.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온 그는 트로피를 들고 있는 아이를 자신의 품안에 조용히 끌어안았다.
“내가 평생토록 지켜본 것 중에 가장 훌륭한 무대였다. 실로 고맙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월간 클래식 선배기자는 팔꿈치로 후배를 찌르며 소리쳤다.
“카메라!! 빨리!!”
“네!? 아, 네!!!”
찰칵!! 찰칵!!!
뜻하지 않게 후배와 함께 특종을 얻어낸 그는 행여 다른 기자들에게 인터뷰를 뺏길까 서둘러 무대 밑으로 향했다.
어설픈 영어를 사용해 발터 뮐러에게 아이와의 관계를 묻자, 세계적인 거장은 그의 질문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저의 제자입니다.”
“헉!!”
마치 쇠망치라도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수첩에 인터뷰 내용을 받아 적던 그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자, 발터 뮐러는 민준이와 함께 훌륭한 연주를 이루어낸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또한 리틀 스타의 모든 단원들 역시 저의 제자입니다.”
발터 뮐러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민준이를 향해 살짝 윙크를 보내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꼬마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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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후.
그레이스 백화점의 이벤트 홀에서 리틀 스타의 마지막 공연이 한차례 더 열렸다.
각종 매체에서도 아이들의 공연을 극찬한 탓일까?
아이들의 마지막 공연은 티켓 판매를 시작한지 채 몇 분 되지도 않아 곧바로 매진을 기록하였다. 혹여 다음 공연 일정에 대한 사람들의 물음에 공연 관계자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죄송하지만, 리틀 스타의 단원들은 모두 어린 학생들로서 이번 공연 이후 더 이상의 공연 일정은 잡혀 있지 않습니다.”
민준이의 피아노를 듣기 위해 자주 백화점 레스토랑을 이용했던 사람들 중에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은 아이의 마지막 공연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백화점 자체에 클레임까지 걸을 정도로 그 반응은 뜨거웠다.
결국 당일 아침 가짜 암표상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잠시 소란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공연을 치를 수 있었다.
역시나 리틀 스타의 마지막 공연은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 속에 반년이 넘어가는 결코 짧지 않은 일정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백화점에서 준비한 만찬회에는 아이들은 주로 좋아하는 음료수와 피자, 햄버거. 치킨 등이 뷔페식으로 화려하게 차려졌다.
신이 난 아이들이 작은 접시에 온갖 음식을 눌러 담는 와중에 민준이는 그저 접시를 손에 들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준이는 배 안 고프니?”
어느새 자신의 곁에 다가온 오 선생님의 질문에 민준이는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린 제자의 마음을 알아차린 오 선생은 잠시 무릎을 꿇은 채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오늘이구나? 친구들한테 작별 인사 하는 날..”
“네…”
힙겹게 입술을 떼는 민준이의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오 선생은 그런 민준이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꼭 안아 주었다.
“괜찮아. 그곳에서 대회를 마치면 금방 돌아올 텐데 뭐~ 친구들 모두 널 기다려 줄 거야.”
“그렇겠죠? 금방 다시 돌아 올 수 있겠죠”
“그럼. 우리 민준이 더 멋져져서 돌아오면 선생님 어쩌나~”
어린 제자의 머리를 몇 차례 쓰다듬던 오 선생은 민준이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손을 잡고 단상에 올려 보냈다.
“저기, 오늘 민준이가 너희들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네.”
오 선생님의 말에 식탁에 앉아 허겁지겁 음식을 삼키던 아이들의 시선이 전부 민준이에게로 향했다.
근처에서 송실장과 함께 음료를 즐기던 J 음대의 두 교수 역시 잠시 잔을 내려두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작별 인사를 하려나 보군요.”
오 교수는 민준이 곁에 서있는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난 반년 간 교사로서 그리고 오케스트라 악단 리틀 스타의 고문으로서 아이들을 잘 지도 해준 딸이 참으로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때 송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미 필요한 수속은 다 마쳤습니다. 이번 주말 마에스트로의 내한 공연이 끝나면 귀국 행 비행기에 함께 보낼 예정입니다.”
“흐음.. 2년 동안 아무 보호자도 없이 혼자 보내자니, 마음이 영 불편하군요.”
“일단은 석혜인 대리가 분기마다 출장 형식으로 민준이를 만나고 올 예정입니다. 2년 후 피아노 대회를 마치고 곧바로 돌아올지 어떨지는 저 아이의 선택이죠. 어쩌면 더 오래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때 송 실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석 교수가 그 동안 송 실장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대체 그 많은 지원을 감당하실 예정이라니. 실장님은 민준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까?”
그러자 송 실장은 석 교수의 물음에 미소와 함께 화답했다.
“저는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합니다. 천성이 악필이거든요. 또한 유명한 화가와 조각가의 작품을 무수히 보았지만, 불행히 미술에도 소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에게도 한 가지 재능은 있더군요.”
석 교수는 뜻 모를 송 실장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어떤 재능입니까?”
“사람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가능성…이요?”
“웃으셔도 좋아요. 이런 것을 혜안이라고도 한다는데 글쎄요. 그렇게 대단한 것까진 아닙니다만, 저는 그 사람의 능력이 개화하는 그 순간을 즐기는 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준이는 아직도 굉장히 많은 걸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언젠가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위대한 음악가가 될지도 모르죠. 그 때를 상상하면 왠지 기분이 짜릿해 진다고 할까요?”
석 교수는 자신으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송 실장의 배포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능력이 표출 되는 순간을 즐긴다니, 아무튼 이 사람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한편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민준이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젯밤에도 자기 전에 그렇게나 연습했는데…
막상 이 순간이 다가오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무슨 말은 먼저 하려고 했더라?’
그때 민준이와 친한 승우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2년 뒤에 꼭 돌아올 거지?”
“어…?”
그러자 민석이 역시 답답해서 못 참겠는지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
“적어도 중학교는 같은 곳으로 가야할거 아냐? 그래야 같이 또 놀지.”
“······.”
“쇼팽 콩쿨인지 뭔지 가서 상금 타면 선물도 사오고, 알았지?”
“너희들.. 다 알고 있었던 거야?”
민준이의 질문에 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바보야. 언제까지 숨기려고 했어.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었는데.”
“어, 언제부터…? 언제부터 알았던 거야?”
“오케스트라 대회 끝나고 안나 언니가 미리 얘기 해줬어. 다들 울지 말고 웃으면서 보내 주자고, 그런데… 정말 미안한데요. 언니. 저 그 약속 못지킬거 같아요.”
그 순간. 민준이를 바라보던 진아의 볼을 타고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다들 미안. 막상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려니까. 너무 슬퍼져서…”
진아의 목소리와 함께 여태 것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던 다른 아이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내렸다.
정말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된 만찬회에서 민준이가 먼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나 금방 돌아올게!! 대회만 끝나고 나면 곧바로 돌아올 테니까. 우리 그때 다시 모여서 오케스트라를 열자.”
“와~ 그거 좋은 생각인데?”
“좋아 더 연습해서 그때는 내가 수석자리 차지해야지.”
“네 주제에? 킥킥. 그게 가능하겠냐?”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놀려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어른들은 기특한 눈으로 묵묵히 아이들의 이별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2년 뒤 이 날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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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이잉~!!!
화려한 피날레와 함께 활을 내린 남자의 바이올린 연주에 주변에서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제법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동양인 남자는 사람들의 환호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야외 공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수준급 연주에 감동했는지, 어린 소녀가 꽃목걸이를 남자의 목에 걸어 주었다.
“고마워. 꼬마 아가씨.”
“우와~ 오빠. 엄청 멋져요~!!”
“그래? 하하…”
“내일도 여기 오면 오빠의 바이올린 들을 수 있어요?”
“내일? 으음… 내일은 무리겠는데?”
“우웅? 왜요..?”
“조금 멀리 떠나야 하거든.”
"멀리? 어디로 가는데요?"
"한국.."
"한국?"
"여기서 엄청 멀리 있는 곳이야."
꼬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젊은 남자가 몸을 세우자, 초저녁부터 럼을 병째로 불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박수와 함께 입을 열었다.
“동양인 젊은이가 바이올린 실력이 제법이군. 마치 왕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아저씨.”
“내가 이 주변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죄다 알고 있는데, 대체 누구한테 배웠나? 굉장히 독특한 주법을 사용하던데.”
“아, 그게…”
“괜찮으니까. 누군지 말해 보게. 응?”
그러자 동양인 남자는 그의 질문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니콜로 파가니니.”
“아~ 니콜로 파가니… 아니 잠깐 뭐라고? 이 사람이 내가 지금 술 취했다고 놀리는 거야?”
“믿으실지 안 믿으실지는 아저씨. 자유에요~ 저는 스승님과 저녁 약속 있어서 이만.”
“자, 잠깐만 기다려!!”
‘어차피 말해도 믿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내가 그 괴팍한 성격 맞춰주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휴.. 아무튼 그렇게 연습을 해도 역시 라 캄파넬라는 연주하기가 버겁단 말야….’
바닥에 놓인 케이스를 집어든 남자의 오른손에는 검은색 반지가 초 저녁 가로등 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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