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피아노-55화 (55/177)

[55] Ep.7 : 베토벤 교향곡 No.9 합창.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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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우리가 열었던 피아노 대회 덕분에 학교가 아주 쑥대밭이 되었구만…”

오늘자 신문을 펼쳐 보던 송 실장이 신문에 대서특필된 촌지 사건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실장님. 지난 어린이 피아노 대회 이후 백화점 판매 동향 보고서입니다.”

석 혜인의 목소리에 신문을 반으로 접은 그는 석 대리에게 결재서류를 넘겨받으며 넌지시 물었다.

“어때? 매출은 많이 올랐어?”

“객 단가로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내방객수가 월등히 늘어 총매출은 평균치의 1.5배 가까이 상승하였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백화점을 이용하는 고객은 점점 늘어날 거야. 객 단가 높은 고객만 받는 다고 전체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니까. 나쁘지 않군.”

“하지만, 이번처럼 중산층 고객을 대거 끌어 들이기 위해선 꾸준한 홍보성 이벤트가 필요할 듯 싶은데요.”

“그게 우리 홍보실에서 할 일이긴 하다만, 뭐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

“사실 한 가지 생각해 둔 것이 있기는 합니다만…”

석 혜인의 대답에 송 실장은 결재 서류를 한쪽으로 치워 두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송 현우는 그녀의 제안에 흥미가 동했는지 만족 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백화점의 이름을 걸고 어린이 악단을 만들자고?”

“제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이번에 저희 백화점에서 개최한 어린이 피아노 대회의 성공 사례를 발판으로 YMCA에서 오케스트라 대회에 관한 안건이 올라 왔다고 하더군요. 내부 회의를 거친 결과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규모의 오케스트라 대회라면 보통 음대생들이나 시향 쪽에서 많이 나가지 않을까?”

그러자 석 혜인은 송실장의 질문에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런 고정 관념의 허를 찌르는 것이죠. 어느 정도 오케스트라의 구색만 맞춰 진다면 저희에겐 이미 비장의 카드가 준비 되어 있으니까요.”

“비장의 카드? 설마 차민준을 얘기하는 거야?”

“네.”

“그 녀석은 피아노가 전문 아닌가?”

“오케스트라에는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피아노 협주곡도 있으니깐요.”

“아!!!”

송 실장은 그녀의 대답에 가볍게 책상을 내려치며 탄성을 질렀다.

라흐마니노프.

러시아의 뛰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생애 4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였는데, 그중에서도 2번과 3번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나 2번 같은 경우는 엄청난 흥행 수입을 거두어 라흐마니노프를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급부상 시켰지만, 문제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피아노 테크닉을 필요로 했다.

덕분에 많은 피아니스트들을 절망에 빠뜨린 곡으로도 유명했는데, 민준이의 뛰어난 피아노 실력이라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게 석혜인의 생각이었다.

“아이들만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 그거 나쁘지 않은데?”

송 실장은 석 혜인의 제안을 즉석에서 수렴하였다.

한 번 결정한 사항에서는 절대 뒤도 돌아보지 않는 추진력. 그것은 송 실장의 장점 중에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송 실장과 석혜인은 제법 죽이 잘 맞는 파트너 였다.

그렇게 다음 목표가 정해지자, 두 사람의 머리는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자문은 자네의 오빠인 석 교수님과 상의하는 게 좋겠군.”

“맡겨주세요. 오빠라면 반드시 힘이 되어 주실테니깐요.”

“그럼 우리의 비밀 병기인 차민준 군은 내가 직접 학교로 찾아가 담임선생을 만나 보도록 하지.”

“실장님께서 직접이요?”

“어찌 되었든 우리 백화점이 주최한 대회에서 학교의 불미스러운 일이 까발려졌으니. 동태도 좀 살필 겸. 잠시 다녀오지.”

“송 실장님. 설마 오늘 가시게요? 아직 학교가 어수선 할텐데 조금 진정이 되고 찾아가시는게 어떠신지?”

“무슨 소리야. 이런 때일수록 빠르게 분위기를 환기 시키는 게 중요한 법이거든? 학교에 연락해서 전에 우리랑 연락했던 담당 선생이랑 점심 약속 좀 잡아줘.”

안 그래도 사무실에 틀어박혀 결재 서류에 사인이나 끄적거리던 것이 지루했던 송 실장은 재밌는 일 거리의 등장에 서둘러 외투를 챙겨들고 밖을 나섰다.

“어휴… 정말 저 분을 누가 말려.”

송 실장은 백화점을 나서자마자 근처에 있는 레코드점에서 곧장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음반을 구입했다.

계산을 마친 뒤 자신의 차에 오른 송 실장은 차량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학교 측과 나눌 대화 내용에 대해 머릿속으로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그때 자신의 차량에 설치된 카폰이 울렸다.

“실장님. 저 석혜인 대리입니다. 아직 출발 안하셨죠?”

“응. 무슨 일이야?”

“일단 학교 측에 연락해서 오수정 선생님과 점심 약속을 잡아 두었습니다.”

“아, 고마워. 그럼 다녀올게.”

석 혜인과 통화를 마친 그는 지그시 엑셀을 밟아 백화점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그의 목적지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연서 국민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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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약속 시간에 맞춰 미리 학교에 도착한 그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생이 다니는 영지 국민학교에 비해 상당히 시설이 낙후 되어 있었다.

“제법 오래된 학교인가보네.”

시멘트 건물에 들어설 때면 느껴지는 특유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송 실장은 곧바로 교무실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때마침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그는 제법 시간을 잘 맞춰왔다는 생각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드르르륵~

우와아아아아~!!!!

점심 종소리와 함께 도시락을 들고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에 그는 행여라도 아이들과 부딪힐까 복도 한쪽 구석으로 몸을 피해야만 했다.

교실에서 밥을 먹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햇살 좋은 학교 스탠드에서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도 있었기에 점심시간이면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 난리가 벌어지곤 하였다.

한 차례 파도와 같이 아이들이 스쳐 가고 송 실장은 퍼뜩 정신을 차린 뒤 서둘러 교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저기 오수정 선생님을 좀 만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만…”

교무실 문을 열고 등장한 잘생긴 20대 남성의 등장에 여 선생님들의 입가에 금세 웃음꽃이 피어났다.

한편 오 선생님에 관한 것이라면 자다가도 번쩍 눈이 뜨이는 박 찬수 선생은 어디선가 본듯한 남자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수정 선생님을 찾으신다구요?”

“네. 저는 그레이스 백화점의 송 현우 실장이라고 합니다.”

“아~ 맞다. 맞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싶더라니. 저는 체육 담당 박찬수 라고 합니다.”

“저희 백화점에서 주최했던 대회에 참석 하셨던 모양이군요.”

“어휴.. 그 때 얘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요새 그 일로 학교가 좀 뒤숭숭하니까.”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렸군요. 그런데 오수정 선생님은 안 계십니까?”

“방금 점심시간 종이 울렸으니, 오실 때가 되었는데…”

그때 교무실 문이 열리며 오수정 선생이 교재를 챙겨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혹시 송 현우 실장님? 벌써 오실 줄은… 혹시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뇨.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다행이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오 선생은 두 남자 사이를 지나 자신의 책상에 교재를 내려놓은 뒤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희 학교엔 무슨 일로?”

“아직 식사 전이실텐데, 함께 간단히 점심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 하시죠. 시간 괜찮으신가요?”

“아, 네. 괜찮아요. 5교시가 체육이니 6교시 전에만 돌아오면 되요.”

“다행이네요. 그럼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송 실장과 함께 오 선생이 교무실을 나서고…

그들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던 박 찬수 선생은 허탈한 마음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 몇 달 째 같이 점심 하자는 말이 안 나오는데, 저 사람은 왜이리 쉽게 데려가냐…”

결국 오늘도 전하지 못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박 선생은 책상 밑에서 홀로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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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 선생을 데리고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한 송 실장은 매너 있게 차문을 열어 주었다.

“혹시 멀리가야 하나요?”

“글쎄요 여기서 한 20분 정도 분위기 괜찮은 레스토랑으로 잡아 두었습니다.”

“20분이나요? 왔다갔다 식사까지 하기엔 너무 시간이 빠듯한데, 오후 수업 준비도 해둬야해서요.”

“그렇다면 근처에 괜찮은 음식점이라도 갈까요? 혹시 자주 가는 곳이라도…?”

“자주 가는 곳이야 있긴한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차는 그냥 이곳에 두시고 저를 따라 오세요.”

그리고 잠시 후..

“이모 여기 떡볶이 2인분에 순대 1인분. 그리고 오뎅도 추가해주세요~”

“······.”

“왜요? 별로 마음에 안 드세요?”

“그게… 하하, 이런 곳에 와보는 건 처음이라.”

“정말요? 여기 떡라면도 진짜 맛있는데.”

좁은 탁자 위에 수저와 포크를 챙겨주는 오 선생의 모습에 송 실장은 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 지금 학교 앞 작은 가게라고 무시하시나 본데? 떡볶이 맛 한번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걸요.”

“죄송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너무 격식을 차리려고 했던 것 같네요.”

“요즘 학교 분위기도 어수선해서 멀리서 식사하고 오는 건 좀 눈치 보이거든요.”

“아, 그랬군요. 제가 눈치가 부족했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건가요?”

“그게… 저희 백화점에서 어린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만드려고 합니다.”

“오케스트라요!?”

“올해 말에 YMCA에서 주최하는 오케스트라 대회가 있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실력 있는 아이들을 모아 저희 백화점의 스폰으로 오케스트라 악단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와아… 그거 정말 멋진 생각이네요. 어른이 되어도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기조차 힘든데, 굉장히 좋은 좋은 경험일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아버지도 서울 시향에 오랫동안 계셨거든요.”

“오성태 교수님 말씀이시군요.”

“어머, 저희 아버지를 알고 계세요?”

“전에 피아노 대회에서 석 교수님과 함께 뵈었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오케스트라 악단에 대한 제의를 어째서 저에게…?”

아직 송 실장의 진위를 파악하지 못한 오 선생은 어째서 그가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송 실장은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삼킨 후 천천히 입을 떼었다.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이번 오케스트라 연주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 해볼까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라면…”

그 순간 오 선생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 악단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민준이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민준이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라니….’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따라서 이번 저희 오케스트라 연주에 다시 한 번 민준이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 선생님께서 민준이에게 잘 좀 전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저야 당연히 찬성이죠. 하지만, 대규모 오케스트라라면 뛰어난 콘서트마스터도 필요하고, 지휘도 필요할 텐데…”

“그 부분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휘까지 어린이에게 맡기는 건 확실히 무리가 있으니, 따로 섭외를 할 것이고, 뛰어난 콘서트마스터라면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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