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피아노-34화 (34/177)

[34] Ep.5 : 좋은 사람. (7)

“아~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뭔데요?”

“이따 수업 끝나고 선생님 집에 같이 갈래?”

“선생님네 집에요?”

&

“민준아~ 축구 한판 안할래?”

종례 후. 책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승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미안, 오늘은 수업 끝나고 오수정 선생님 댁에 가기로 했거든.”

“으잉, 선생님 댁에? 너 혼자?”

하긴 선생님이 가정 방문차 학생 집에 찾아가는 것은 봤어도 반대로 학생이 선생님 집을 찾는 것이 드문 일이긴 하지.

나는 승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필통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냥 좀 일이 있어서.”

“아무리 피아노도 좋지만, 겨우 운동장도 차지했는데, 같이 축구도 못하고 서운하다.”

“미안. 이번 대회만 마무리 되면 같이 공차고 놀자.”

“중요한 대회니까. 할 수 없지. 이번엔 봐 준다.”

“고마워.”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그나마 내 사정을 잘 이해해주는 승우였기에 쉽게 물러나 주었다.

“야, 근상이네 가서 슈퍼 패미콤 할 사람~!! 그 녀석 스트리트 파이터2 샀대!!”

“진짜?”

민석이의 외침에 집에 가려던 남자 아이들이 우르르 근상이에게로 몰려갔다.

“진짜야? 너네 집에 스트리트 파이터2 있어?”

“응. 이번에 삼촌이 일본 다녀오는 길에 사다주셨어.”

“우와~ 짱이다. 그럼 지금 너네 집 놀러가도 돼?”

스트리트 파이터2 아마도 오락실 깨나 다녀본 녀석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격투 게임이다.

오죽하면 축구 귀신인 승우마저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근상이에게 달라붙어 있을 정도니…

별로 게임에 관심이 없던 나는 친구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삼키며 책가방을 둘러매었다.

그때였다.

“민준아.”

“응? 소희구나. 무슨 일이야?”

“너 혹시 오늘 바쁘니?”

이상하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

“미안, 오늘 오수정 선생님이랑 약속이 있는데. 무슨 일이야?”

“아, 그래? 실은 나한테 피아노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널 따로 보고 싶다고 하셔서…”

“너의 레슨 선생님께서 나를? 왜?”

“전에 피아노 예선에서 너의 연주를 들었는데, 너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으신가봐.”

“으음… 미안하지만, 오늘은 무리일거 같아.”

“응. 알았어. 선생님한테는 내가 대신 전해줄게.”

“고마워 소희야. 그럼 나 오수정 선생님이 기다리셔서 먼저 갈게.”

“저기, 민준아. 잠깐만.”

“응? 또 왜?”

“저기…”

나를 불러 세운 소희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그 날 말야. 내가 무대에 올랐을 때. 혹시 나에게 무슨 말하지 않았어?”

“내가 너한테?”

조금은 쌩뚱맞은 질문에 소희를 멀하니 바라보자,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 것도 아냐. 그냥 내가 잘못 들었었나 봐.”

“아… 그래?”

“선생님 기다리시겠다. 잘 가~”

“아, 응.”

소희와 헤어지고 교실을 나온 나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상하네. 그냥 난 소희가 너무 긴장하길래 무대 밑에서 힘내라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설마? 그때 내 생각을 읽은건가?”

흠칫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지만, 소희는 아무렇지 않게 소지품을 챙기고 있었다.

에이… 아니겠지.

&

교무실에 찾아가니 때마침 오수정 선생님께서 할머니와 통화 중이셨다.

“네. 할머니. 그래서 민준이가 좀 늦을 것 같아요. 대신 이따가 제가 민준이 집까지 꼭 안전하게 바래다주겠습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저녁 꼭 챙겨드시구요. 이따 뵙겠습니다. 할머니.”

통화를 마친 선생님은 나를 향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할머니 허락은 선생님이 대신 받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오래 걸리나요?”

“으음… 글쎄에 중요한 부분만 빠르게 돌려 보면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은데.”

중요한 부분? 선생님께선 나에게 무얼 보여주시려는 걸까?

그때 건너편 책상에 있던 정옥분 선생님께서 퇴근 하시려는지 핸드백을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의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핸드백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값비싸 보였다.

“넌 담임선생님이 돌아가는데, 인사도 안하니?”

선생님의 화려한 핸드백에 눈이 팔려있던 나는 서둘러 고개를 숙여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안녕히 가세요.”

나의 인사에 지그시 나를 내려다보시던 선생님의 생각이 내 머릿속에 흘러 들어왔다.

[하여튼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마치 침을 뱉듯이 내뱉은 선생님의 생각에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신발주머니를 움켜진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화가 난 나는 아직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선생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뭐, 뭐야? 그 눈은?”

“······.”

“너 이 녀석. 빨리 눈 내리 깔지 못해? 어디 선생님한테 도끼눈을 떠!!”

“······.”

“너 안되겠다. 이리 와.”

갑자기 내 손을 낚아 채는 담임선생님의 행동에 오수정 선생님이 깜짝 놀라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애한테 지금 무슨 짓이세요.”

“뭐? 얘가 방금 날 어떤 눈으로 바라 봤는 줄 알아?”

그러자 오수정 선생님이 곧장 정옥분 선생님의 말을 받아쳤다.

“정옥분 선생님. 선생님께서 지금 어떤 눈으로 민준이를 바라보고 있는지 아세요?”

오 선생님의 말에 책상에 놓여진 작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힐끗 바라 본 담임선생님은 잠시 나와 오선생님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빠르게 몸을 돌려 교무실 출입문으로 향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을 나서기 전 선생님을 불러 세웠다.

“선생님.”

“뭐야.”

“저도 다른 아이들처럼 선생님께 돈을 드리면 그때는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주실 건가요?”

“뭐…?”

“저는 다 알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기가 차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은 내가 시선을 피하지 않자,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떠시더니 교무실 문을 박차고 사라지셨다.

차리 태풍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고요해진 교무실에 몇몇 선생님들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와… 진짜 갈 때까지 가는 구나.’

‘아이 입에서 저런 소리까지 나올 정도면 대체 얼마나 해드신거야? 적당히 좀 하지.’

‘아씨… 이러다가 교육부 감사라도 나오면 나도 덜미 잡히는 거 아냐?’

‘저 아이가 이번에 피아노 대회에 본선에 올랐다는 차민준이라는 아이인가? 역시 보통이 아니네….’

‘아무리 교감인 나랑 비슷하게 교사직을 해먹었지만, 요샌 정말 도가 지나치군. 뭔가 조치가 있어야겠어.’

교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선생님들의 수많은 생각 속에 나는 숨이 막혀오는 걸 느꼈다.

그러던 중.

‘캬~ 역시 오수정 선생님. 완전 예뻐~ 볼수록 내 스타일이야~’

음? 이건 누구지?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한번 했으면 소원이 없을 텐데….’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오수정 선생님만을 생각하는 열렬한 마음의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체육 담당 박찬수 선생님께서 멍청한 표정으로 오수정 선생님을 바라보고 계셨다.

“민준아. 너 괜찮니?”

“네? 아, 네. 괜찮아요. 선생님.”

“아무튼 너희 담임선생님도 참… 이번에 자기가 추천했던 용석이가 탈락하고 돌아왔더니, 얼마나 교무실에서 고함을 치시던지. 내가 순서 배정을 잘못해서 아이 기를 눌리게 했다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예선전의 번호표 배정은 오수정 선생님이 아닌 행사 진행자가 임의로 주었을 뿐이니까.

“그럼 민준아 우리도 가볼까?”

“네…”

준비를 마친 오수정 선생님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시며 핸드백을 챙기셨다.

오랫동안 쓰셨는지 모서리 부분이 많이 닳아 있는 오수정 선생님의 핸드백은 정옥분 선생님의 화려한 그것보다 훨씬 더 값져 보였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오수정 선생님 내일 뵙겠습니다~”

오 선생님의 인사에 박찬수 선생님이 두 팔을 휘적거리며 웃어보였다.

체육 선생님께서 음악 선생님을 몰래 좋아하시는구나.

나는 선생님과 교무실 문을 나설 때까지 웃으며 손을 흔드는 박찬수 선생님께 꾸뻑 인사를 그렸다.

&

선생님의 집은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학교에서 늦게 나온 탓에 버스에서 내리자 이미 골목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이쪽이야.”

버스에서 내려 낮은 언덕을 오르자, 빌라가 즐비한 주택가가 눈에 들어왔다.

골목골목을 굽이 돌자,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기 시작했지만, 선생님 손을 꽉 잡고 있으니 낯선 동네도 무섭진 않았다.

“평소에는 골목길이 어두워서 무서웠는데, 오늘은 민준이랑 같이 걸으니까 하나도 안 무섭네~”

“정말요?”

“그러엄~”

선생님의 손을 잡고 얼마나 걸었을까.

불이 켜진 조그만 빌라 1층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라? 동생이 벌써 왔나?”

“선생님 동생이 있으세요?”

“응. 한 살차이 여동생이 하나 있지.”

뭔가 선생님에게도 형제가 있다는 것에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오 선생님께서 초인종을 눌렀다.

“언니야?”

“응. 문 좀 열어줘.”

“잠깐만 기다려~”

현관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선생님의 손을 움켜 쥐었다.

어라? 이 목소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딸칵.

잠금장치를 돌리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철문이 바깥쪽으로 열리자, 안에서 토끼 얼굴이 그려진 분홍색 셔츠의 여성이 웃으며 마중을 나왔다.

“어!? 희경이 누나?”

“어라? 민준이 네가 여길 어떻게…?”

매달 라면을 배급해줄 때 마다 웃으며 나를 챙겨주던 동사무소 직원 희경이 누나.

지난 번 소희네 집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깜빡 배급 시간에 늦었을 때도 나와 할머니를 위해 따로 라면을 따로 챙겨 주었던 마음씨 고운 누나였다.

그런데, 설마 그 누나가 오수정 선생님과 자매였다니…

“뭐야? 희경이 네가 우리 학교 학생을 어떻게 알아?”

“아, 그게 내가 전에 몇번 말했었잖아. 다리 아프신 할머니랑 착한 손자가 있는데, 매달 우리 동사무소에 라면 받으러 온다고…”

“뭐? 그럼 매번 라면 한 박스 받으러 오는 아이가 민준이였어?”

“자, 잠깐만… 그럼 언니네 학교에 엄청 피아노를 잘친다는 아이가…?”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선생님과 희경 누나는 풋하고 서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어서 들어와.”

“그래. 일단 들어가자. 민준아.”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우리집과는 달리 훈훈한 온기가 도는 선생님네 집에선 보글보글 된장 찌개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다.

“찌개 끓이고 있었어?”

“언니 오면 같이 먹으려고 오랜만에 실력 좀 발휘했지.”

“어쭈~ 제법인데?”

“거의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런데 이거 우리 동사무소 관할 꼬마 손님도 왔으니, 계란 후라이라도 하나 부쳐야 겠는 걸?”

“희경아…”

“응?”

“아주~ 좋은 생각이야. 나 금방 씻고 올게. 아, 맞다.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보관함에서 ‘아마데우스’ 좀 찾아줄래?”

“아마데우스? 그 ‘모차르트’ 나오는 영화? 그건 왜?”

“우리 민준이 보여주려고~”

“음~ 이미 몇 번이나 돌려 보긴 했지만, 뭐~ 저녁 식사하면서 같이 볼까?”

모차르트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 거린 나는 오수정 선생님이 서둘러 씻고 나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신 오수정 선생님께서 희경 누나가 미리 준비해둔 비디오 테이프를 재생 시키자, 조그만 티비 안에서 웅장한 교향곡과 함께 한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오~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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