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피아노-22화 (22/177)

[22] Ep.3 : 오만과 편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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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일찍 교무회의를 위해 자료를 준비 중이던 오수정 선생 앞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오 선생. 잠깐 나 좀 볼까?”

불 독처럼 축으러진 볼 살에 욕심이 가득해 보이는 인상.

전에 한바탕 말다툼이 있었던 이후로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 하던 정옥분 선생이 웬일로 자신을 찾아 왔는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저 지금 회의 준비 때문에 좀 바쁜데요.”

정 선생과 말을 섞어봤자, 좋은 대화는 아닐 것 같아 오수정 선생은 일부러 바쁜 척 그녀를 외면했다.

“나이든 사람이 먼저 와서 말을 걸면 ‘네, 알았습니다.’ 하고 따라 올 것이지. 하여튼 요새 젊은 선생들은 싹수가 없어.”

선생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저속한 표현에 오 선생이 고개를 들어 정 선생을 노려보았다.

“어머,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싫은 말 좀 했다고 살쾡이 눈을 뜨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지금 진짜 어이없는 행동하시는 게 누군 줄이나 아세요?”

“뭐라고!?”

점점 언성이 높아져가는 정 선생의 말투에 제2차 교무실대전이 발발하지 않을까 불안하던 이때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교무 회의 시작합니다. 거기 두 선생님들도 그만 하시고 다들 회의실에 모여 주세요.”

차마 교감 선생님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순 없었기에 정 선생은 한동안 오 선생을 바라보며 씩씩대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자~ 자자, 정 선생님? 우리 오 선생님 얼굴 뚫어지겠네. 그만 좀 노려보시고 같이 회의 가시죠?”

전에도 두 선생을 말리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뤘던 체육 선생이 환한 미소로 다가왔다.

“꼴에 남자라고 젊은 여자 감싸 돌기는 기가 막혀서…”

정옥분 선생은 젊은 남자 선생과 오 선생을 번갈아 보다가 비대한 몸을 돌려 회의실로 향했다.

“괜찮아요. 오 선생님?”

“정말 저런 선생이 어떻게 아직까지 교직에 있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알게 모르게 오수정 선생님에게 관심을 두고 있던 체육 담당 박찬수 선생은 표정 관리가 안 되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꺼운 회의 자료를 오 선생이 품에 안아 올리자, 박 선생이 허겁지겁 그녀의 자료를 거들어 주었다.

“제가 들어드릴게요.”

“네? 아녜요. 회의실까지 10미터도 안되는데요.”

“그래도 여자 분이 혼자서 들기엔 무거우실 텐데?”

“이정도야 거뜬하거든요? 그리고 저 도와 주시면 정 선생님이 엄청 째려보실 걸요?”

“하하~ 이 박찬수. 그런 거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주세요. 얼른~”

반쯤은 억지로 오수정 선생님의 자료를 나눠든 박 선생은 자료 맨 위에 있는 피아노 대회 전단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와~ 곧 피아노 대회가 열리는군요.”

“네. 덕분에 학년 별로 추천 참가자 정리하느라 며칠 동안 엄청 힘들었어요.”

“그런 건 저한테 진즉 말씀하셨으면 도와 드렸을 텐데~”

“어머, 선생님도 클래식에 대해 아세요?”

“클래식이요? 무, 물론이죠~!! 제가 클래식을 또 엄청 좋아하거든요~”

“음~ 그럼 가장 즐겨듣는 곡이 뭔데요?”

“네? 아, 그게…”

오 선생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박 선생의 머릿속에 번개 같이 스쳐가는 곡이 하나 있었다.

“엘리제를 위하여…”

“오~ 저도 그 곡 참 좋아해요.”

웃으며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오 선생을 따라 박 선생은 함박웃음을 지은 채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그가 가장 즐겨 듣는 클래식…

사실 클래식의 ‘ㅋ’자도 모르는 박 선생이지만,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가끔 아버지 트럭을 몰 때 후진 기어를 넣으면 자동으로 울리던 곡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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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달 중간고사까지 수업 일정에 대한 건은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여러분도 익히 아시겠지만, 작년 11월에 오픈한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에서 인근 국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피아노 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교육청과 함께하는 백화점 홍보용 대회긴 하지만, 위에서 참가 학생 선별에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는 공문이 내려온 만큼 학교의 명예를 빛내줄 인재를 뽑아야 하는데, 어떻게 잘 진행 되고 있나요. 오수정 선생?”

교감 선생님의 질문에 오수정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네. 일단 각 반 담임선생님께서 추천하신 학생들 위주로 명단을 작성했는데요. 혹시 아직 제출 안하신 선생님이나, 건의 사항이 있으신 선생님 계신가요?”

그러자 여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만 있던 정옥분 선생의 손이 천천히 들렸다.

“저희 반에 추천 학생이 있는데요.”

“네? 잠시만요. 4학년 6반은 윤소희 학생으로 이미 추천 명단이 올라와 있는데, 이 학생이 아닌가요?”

“아뇨. 그 윤소희 학생을 포함에 허용석이라는 학생도 함께 예선 명단에 올리고 싶어서요.”

“음… 정 선생님. 죄송하지만, 다른 학급과 형평성을 두기 위해 일전에 제가 각 학급당 한명씩만 추천을 받는다고 말씀 드렸었는데요?”

“우리 반에 그만큼 인재가 많아서 그래요. 불만있어요?”

“불만이 아니라. 선생님. 이제와 학생을 더 추가 하시면 다른 선생님들께서 고심해서 한명을 선출한 의미도 훼손될뿐더러 추최 측에서 제의한 예선 인원수에도 맞지가 않아서요.”

“한 명 더 명단에 올린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주최 측에 그 정도도 하나 조율해달라고 못해요?”

“정옥분 선생님. 뭔가 크게 착각하고 계시나 본데, 이 대회에 저희 학교만 나가는 게 아니에요. 애초부터 그런 조율이 안통하기에 제가 몇 번이고 신중히 추천해 달라고 말씀드린 건데요?”

“됐고, 우리 반 학생 제가 어떻게든 꼭 참가시키고 싶어요. 그러니 오수정 선생 특별 추천으로 인정해주세요.”

“제 추천 학생은 이미 정했습니다. 그것도 선생님 반 학생으로요. 이미 선생님의 학급에선 두 명의 예선 참가자가 있는데, 한명을 더 늘려 달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요? 그럼 잘됐네. 그러면 선생님이 추천한 학생은 제외하고, 제가 추천한 학생으로 대체 시켜 주세요.”

“뭐라구요?”

오수정 선생은 정선생의 태도와 말투에 점점 손끝이 차가워져만 갔다.

정말 어떻게든 민준이를 대회에서 떼어내려는 의도가 너무나도 다분히 엿보였기 때문이다.

“학급 담임으로서 누가 대회에 참가하는 게 학교를 빛내는 일인지는 제가 더 잘 알지 않을까요? 오수정 선생님이 추천한 차민준 학생은 제가 알기로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개인 피아노는 커녕 학원도 한번 다녀본 적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가 대회에 나가봤자 뭘 할 수 있겠어요?”

“정옥분 선생님. 당신 민준이의 피아노 연주. 단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으세요?”

“아뇨. 그걸 꼭 들어봐야 아나요? 피아노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학생이랑 개인 피아노를 가지고 정식 레슨을 받는 학생. 실력차가 너무나 분명한 환경 아닌가요?”

시종일관 민준이를 깎아내리는 정 선생의 태도에 젊은 오수정 선생의 피가 거꾸로 솟았다.

“정옥분 선생님. 정말 당신 한 학급의 담임선생님 맞으세요?”

“뭐라구? 이봐요. 오 선생 방금 그 말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죠?”

“선생님이 생각하는 그 의미 맞아요. 저는 민준이의 피아노를 직접 들어보았고, 그 누구보다 이번 대회에서 입상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하거든요. 단지 가정환경이 어렵다는 이유로 학생을 차별하는 당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그 아이를 상처 입히기 싫거든요. 정말이지. 당신 같은 선생을 만난 4학년 6반 학생들이 불쌍하네요.”

“이게 정말 말이면 다인 줄 알아!? 좋아. 그렇게 확신이 있으면 민준이 대회 내 보내 봐. 대신 입상하지 못하면 어떻게 책임질 건데?”

“정말이지. 정말 꼴불견이시네요. 좋아요. 민준이가 대회에서 어떠한 성적도 내지 못하면 제가 교사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그 말 꼭 기억해두겠어요. 여러분 다들 들으셨죠?”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주변 선생님들을 바라보며 사실을 확인하는 정옥분 선생에게 오 선생이 뒷말을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민준이가 입상했을 경우 그 아이를 차별한 것에 대해 어떤 도의적 책임을 지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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