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피아노-13화 (13/177)

[13] Ep.2 : 천재의 발현(發現) (7)

* * *

“그래도 뼈는 다치지 않았네. 다행이야.”

양호실 담당인 김가연 선생님은 내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손바닥에 골고루 연고를 발라주셨다.

“그래도 당분간 너무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돼. 알았지? 자~ 이 찜질팩 꼭 쥐고 있어.”

“네. 감사합니다.”

굳은 표정으로 내 손을 바라보던 오수정 선생님은 치료가 끝나자 내 곁으로 다가왔다.

“진짜 너무 하지 않아? 화가 났으면 나한테 뭐라 해야지. 애한테 이게 무슨 짓이람…”

“네 기분은 십분 이해하지만, 너무 열 내지는 마. 그러다 민준이가 또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김가연 선생님과 오수정 선생님은 동갑내기로 비슷한 시기에 우리 학교에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두 선생님의 대화는 마치 친구처럼 다른 선생님들보다 사이가 더 각별해보였다.

“진짜, 내일 당장 교육청에 신고를 해야지 안 되겠어.”

“아서라. 교육청에 신고하면 뭐가 달라질 거 같아?”

“그럼 그냥 이대로 모른 척 넘어 가자고?”

“너 우리 학교에서 촌지 받는 선생님이 그 사람 하나인 줄 알니? 알게 모르게 오가는 물건까지 따지면 담임선생님들 중에 거의 80%는 받고 있을 걸? 만약에 교육청에 신고하면 먼지하나까지 털어내서 학교가 발칵 뒤집힐 텐데, 너 교사 첫 부임한 곳에서 영영 짤리고 싶어?”

“하아~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누가 너보고 어떻게 해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 그냥 모른 척 해. 그게 가장 현명한 거야.”

“히잉… 짜증나. 내가 생각했던 선생님이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그래, 그래~ 나도 최근 들어 이 학교에 실망이 크다…”

유머 1번지의 개그 코너 마냥 두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유머 1번지 하는 날이구나.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프로그램인데…

나는 아직도 얼얼한 손가락으로 콧잔등을 긁으며 실의에 빠져 있는 오수정 선생님을 불러보았다.

“선생님.”

“응? 그래 민준아. 손 많이 아프지?”

“괜찮아요. 뭐 그런대로 익숙하기도 하고요.”

점심시간이 끝나고 잔뜩 성이 나 교실로 돌아오신 담임선생님과 눈을 마주친 순간.

난 얼핏 이렇게 될 것을 직감했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나랑 집안 사정이 비슷한 친구들 역시 때론 이유 없이 선생님께 매를 맞는 일이 허다했으니까.

오늘은 분명이 지난주에 제출한 미술 숙제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려 나갔다.

부반장인 진아가 내 편을 들어 주었지만, 그런 건 아무 소용없었다.

그 때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온통 나와 오수정 선생님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으니까…

&

치료를 마치고 오수정 선생님과 함께 학교를 나서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 오늘은 소희의 피아노 소리를 못듣겠구나…

“많이 아프니?”

“이젠 괜찮아요. 회초리 몇 대 쯤이야~”

“오올~ 제법 남자다운데?”

오수정 선생님의 칭찬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 나는 선생님 쪽을 돌아보며 불끈 주먹을 쥐어 보였다.

“아야야…”

너무 세게 쥐었나보다…

“괜히 무리 하지 말고~ 아무튼 누가 사내 아이 아니랄까 봐.”

“헤헷.”

그때였다.

꼬르르륵…

배곯는 소리가 평소보다 너무 크게 들려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저녁 시간이네. 선생님이 밥 사줄까?”

“정말요?”

“뭐 먹고 싶니? 짜장면? 탕수육?”

물론 이름만 들어도 침이 꼴깍 삼켜지는 메뉴지만,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집에서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셔서…”

“아~ 그래? 그럼 간단하게 조기 앞에서 떡볶이라도 먹을래? 할머니 것도 포장해서 가져가렴.”

“와아~ 감사합니다.”

오수정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1인분과 튀김, 그리고 오뎅 꼬치를 사주셨다.

“이게 요즘 유행하는 떡꼬치라는 거구나~ 아줌마 이것도 두 개 주세요.”

곧이어 비닐에 씌인 연두색 플라스틱 접시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떡볶이가 하나 가득 담겼다. 1인분이라지만 굉장히 푸짐하게 담아주셨기에 이것만 먹고도 배가 부를 것만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선생님.”

할머니께 배운 대로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포크로 떡볶이 하나를 집어든 순간…

“어!? 민준이다~!!”

“오~ 그러네. 차민준~ 혼자서 뭐 먹냐?”

민석이와 근상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방과 후에 축구라도 했는지 흙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휘날리며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뒤에는 볼 트래핑을 연습하며 걸음을 옮기는 승우에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어보였다.

“손은 괜찮냐?”

“응. 약 발랐어~”

“그러게 그냥 순순히 인성하고 한 대 맞고 끝날 것이지. 왜 숙제 냈다고 바락바락 우겨서 몇 대 더 맞냐.”

“억울하잖아~”

“어? 오수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래. 다들 배고프지? 이리 와서 떡볶이 먹고 갈래?”

“와아아아~~”

… 역시나 저 녀석들이 사양할 놈들이 아니지. 오죽하면 별명이 떡볶이 귀신들인데…

특히나 민석이가 포함되어 있으니 어쩌면 분식으로 짜장면, 탕수육 값이 나올 수도 있겠는데?

좁은 포장마차에는 어느새 반 친구들도 가득차고, 오수정 선생님은 난감한 듯하면서도 어쩔수 없는지 밝게 웃어 보이셨다.

“민준아.”

“네?”

“그 어린이 피아노 대회 말인데…”

“아, 네…”

“꼭 나가고 싶니?”

선생님의 물음에 허겁지겁 떡볶이를 삼키던 나는 물끄러미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휴지로 떡볶이 국물이 묻은 내 입가를 닦아 주셨다.

“어른스러운 척해도 이럴 땐 영락없이 꼬맹이구나~”

그 순간. 선생님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라리 오수정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럼 정말 좋았을텐데…

하지만 나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오늘 종례시간에 정옥분 선생님께서 어린이 피아노 대회는 반 대표로 용석이로 정하셨어요.”

“흐음~ 그래서 민준이 넌 여기서 포기 할 거니?”

처음에는 선생님께 대회 이야기를 꺼낸 건 단순한 핑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요 며칠 소희와 구교사의 피아노로 인해 내 안에서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갈망이 점점 더 커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어요.”

“응?”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그래서 소희뿐인 아니라 좀 더 다양한 피아노를 듣고 싶어요.”

어쩌면 어린아이의 투정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담아 선생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종이컵에 담긴 오뎅 국물을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나가렴. 너의 추천서는 내가 써줄 테니.”

그 순간 접시 째 손에 들고 떡볶이를 쓸어 담고 있던 민석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와~ 민준이 너 피아노 대회 나가는 거냐?”

“오~ 짱인데?”

“그래. 사실 누가 나가도 용석이보단 잘 칠 것 같다. 아까 보니까 되게 나가기 싫어하는 눈치던데.”

“킥킥~ 맞아. 우리 반장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 싫어하잖아.”

그때 오수정 선생님께서 내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이 손을 소중히 해야 해. 알았지?”

잠시 후.

나는 선생님께서 할머니를 위해 따로 포장해주신 떡볶이를 들고 집으로 달리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도 높은 계단도 오늘은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할머니~!!!”

집에 다다를 때즈음 크게 할머니를 찾아 작은 문이 삐걱 열리며 할머니가 나오셨다.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 왔구나~”

두 팔을 벌린 채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의 품에 안기자, 더 이상 오늘 만큼 행복한 날은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일주일 뒤.

‘흐음~ 손은 충분히 나았고….’

그 동안 오수정 선생님과 수위 할아버지의 조언대로 건반 위를 두드리는 이미지 수업만을 병행하던 나는 손가락이 근질 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양호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매일 찜질팩으로 손을 마사지 했더니, 푸른 멍이 많이 사그라 들었다.

“일주일 동안 머릿속에 베토벤에 대한 이미지는 확실히 심어 두었느냐?”

“그럼요~ 오수정 선생님이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렇다면 문제없겠군. 오늘은 유난히도 달이 밝구나. 자~ 그럼 시작해볼까?”

“그럴까요?”

양 손끝을 가볍게 문지른 나는 천천히 새하얀 건반 위에 손을 올려두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