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피아노-12화 (12/177)

[12] Ep.2 : 천재의 발현(發現) (6)

* * *

우리 학교에는 이상한 아이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가 이상할 수 있다.

아직은 확고한 자아가 나타나기 전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차민준’이라는 아이는 참으로 독특한 아이였다.

연서 국민학교 음악 담당 선생님인 오수정 선생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 아이를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래 아이들 답지 않게 영특하고 생각이 깊지만, 어느 땐 다른 아이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음악에 대해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

처음엔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 아이가 자신의 눈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 전까진 말이다.-

“선생님. 이 피아노 한번 쳐봐도 되요?”

“물론이지~ 어디 우리 민준이 피아노 실력 한번 볼까?”

방금 조율을 마친 피아노 앞에 아이의 작고 여린 손을 건반 위에 올린 순간.

수정 선생은 마치 한 피아니스트의 콘서트홀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그 첫 번째 음이 울린 순간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 커튼이 봄바람에 날아올랐다. 향긋한 꽃내음과 함께…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조차 민준이의 피아노 소리에 파묻혀 아련하게 들려올 정도로 어린 아이의 피아노 연주라고는 믿기 힘든 만큼 강한 터치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민준이의 연주는 혼란스러운 그녀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힘이 있었다.

평소에 그녀가 즐겨 듣던 정규 클래식 음반의 비창보다 약 반 템포정도 못 미치게 느리단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더욱 완벽해지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약 5분가량의 피아노 연주가 끝났지만, 그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민준이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선생님…?”

자신의 목소리에도 아무 반응 보이지 않자 민준은 재차 선생님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오수정 선생님?”

“응? 아, 미안.. 선생님이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

“괜찮으세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민준이와 눈이 마주 친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 있어야 할 아이가 아냐….’

교육자 입장으로서 민준이의 피아노 실력은 그저 잘한다 못한다라고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재(天才)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재능.

지금 그녀의 눈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가 모차르트 만큼이나 훌륭해 보였다.

“민준아.”

“네?”

“넌 꼭 피아노를 쳐야 해.”

“아, 이미 다 쳤는데요?”

벅차오르는 마음을 겨우 진정 시킨 그녀는 민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 주에 열리는 어린이 피아노 대회에 대해 담임 선생님께 이야기는 드렸니?”

“어제 수업 끝나고 말씀을 드려봤는데, 아직 답이 없으셔서…”

음악 수업이 담당인 만큼 미리 대회 공문을 확인했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어라? 그 대회 나가려면 아마 담임 선생님 추천서를 받아야 할 텐데?’

물론 자신이 추천서를 써줘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학급 담임을 건너뛰고 따로 추천서를 써주는 건 교사들 간에 예의가 아니었던지라 특별 교과 담당인 그녀가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다.

“민준아 너희 담임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셨지?”

“정옥분 선생님인데요?”

“아…”

민준이 입에서 나온 정옥분이라는 이름에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많고 많은 선생님들 중에 하필 정옥분 선생님이라니….’

딩동뎅동~ 딩동뎅동~

그때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 전을 알리는 예비종 소리가 울렸다.

“아, 벌써 끝났네.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그래? 그럼 수업 끝나고 교무실에 올래? 선생님 기다리고 있을게.”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자신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힌 민준이는 서둘러 음악실을 나섰다.

아이가 떠나고 혼자 남은 그녀는 방금 민준이가 쳤던 피아노를 잠시 바라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아이야. 차라리 내가 그 아이의 담임선생이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

그녀에게 있어 자신이 특별과목 교사인 것이 참으로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교무실로 돌아온 오수정 선생은 마침 교재를 들고 교무실을 나서려는 정옥분 선생님과 마주쳤다.

“정옥분 선생님. 저기 잠시만요.”

“무슨 일이시죠? 오수정 선생?”

작년에 첫 부임으로 연서 국민학교에 들어온 오수정 선생은 정옥분 선생이 보기엔 새파랗게 어린 신입 중에 하나였다.

그런 신입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조금은 불쾌한 마음도 들었다.

“선생님 반에 차민준이라는 학생에 대해서 말인데요.”

어린 선생의 입에서 자신이 관리하는 학생의 이름이 나오자 그녀는 양쪽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이 또 무슨 사고라도 쳤나요?”

학생의 이름을 대자마자 대뜸 사고와 연관시키는 정옥분 선생의 사고방식에 오수정 선생의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아뇨. 사고는 무슨… 오늘 음악실에서 그 아이의 도움을 받아 이 달에 착한 어린이 상에 추천하고 싶어서요.”

“흥.. 그런 사고뭉치가 무슨 도움을 주었길래.”

“선생님 방금 그 말씀은 너무 아이를 차별적으로 대하는 발언이신 것 같은데요?”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선생의 가시 돋힌 첨언에 정옥분 선생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이봐요~ 오수정 선생. 지금 나한테 훈계하는 거야? 어디 새파랗게 어린 것이…”

두 선생님들로 인해 교무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가자, 창가 자리에 앉아있던 교감 선생님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자자~ 선생님들 다들 수업 들어가셔야죠. 곧 수업 종 울릴 시간입니다~”

보다 못한 체육 선생님이 두 사람을 말리려 다가갔지만, 정옥분 선생님의 신경은 이미 곤두 설대로 곤두서 있었다.

“어제 수업 끝나고 민준이가 선생님한테 피아노 대회에 참가에 대해 이야기 했다는데, 왜 답을 안주셨나요?”

“피아노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것은 한 학급당 한명 뿐인데, 내가 왜 그런 기회를 민준이한테 줘야하지? 우리 반에선 반장인 용석이가 나갈 겁니다.”

그 말에 오수정 선생은 목젖까지 참고 참아왔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왜죠? 용석이 부모님께 돈 봉투라도 받으셨나요?”

“뭐? 너 이년이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아까부터. 야 너 내가 돈 받는 거 봤어!? 어!?”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난 정옥분 선생이 수업 교재를 내팽겨치며 달려들자, 근처에 있던 체육 선생이 뜯어 말렸다.

“아이 참~ 선생님들끼리 이러면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으음~ 크음…!! 정옥분, 오수정 선생!!”

결국 보다 못한 교감 선생님의 호통 소리에 떨어진 두 교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정옥분 선생님께서 대회 추천서를 용석이한테 주겠다면, 저는 제가 가진 추천서를 민준이에게 주겠어요.”

“어디 한번 그래 보시던지~!! 나 원 기가막혀서…”

바닥에 떨어진 교재를 주워든 정옥분 선생은 이윽고 교무실 문이 부서져라 닫고선 자신의 교실로 향했다.

&

방과 후.

정옥분 선생님과의 다툼으로 사유서를 쓰던 중에 민준이가 조심스레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

“오~ 그래. 민준아~ 어서 와.”

교무실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에게 쪼르르 달려오는 민준이의 모습에 그녀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일하시는 중이세요?”

“응? 아냐. 금방 끝날 거야. 코코아 마실래?”

“아, 감사합니다.”

커피 포트에 전원을 올리고 머그컵에 코코아 분말을 털어 넣은 그녀는 잠시 후. 뜨거운 코코아를 민준이 손에 들려주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히 잡아.”

“네..”

고개를 끄덕이며 내민 민준이의 작은 손을 본 순간.

오수정 선생은 재빨리 탁자에 코코아 잔을 내려 놓고 민준이 손을 살폈다.

“민준아. 너 손이 왜 이래?”

손바닥부터 손가락까지 매질에 퉁퉁 부어오른 민준이의 손은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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