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Ep.2 : 천재의 발현(發現)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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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아고고…”
욱신거리는 엉덩이 덕분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의자 끝에 걸터앉자, 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왜 그래? 어디아파?”
“그냥 엉덩이가 조금…”
“엉덩이가 왜?”
“그냥, 그런 일이 좀 있었어.”
어젯 밤. 아니지 정확히는 오늘 새벽 집에 들어가자마자, 성이 나신 할머니의 매질에 엉덩이를 호되게 맞은 나는 지금 요 모양 요 꼴이다.
“괜찮아?”
“응. 뭐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진아의 걱정에 건성으로 대답한 나는 책상 위에 몸을 엎드렸다.
평소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웃어넘기시던 할머니께서도 어제는 얼마나 놀라셨는지 서둘러 달려 나와 내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괜찮냐고 물으셨다.
물론 어제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뒤엔 괜찮지 않게 되었지만…
하긴 맞아도 싸지. 잠에서 깨신 할머니께서 얼마나 놀라셨을까.
나를 혼내고 마음이 아프셨는지. 잠들기 전 엉덩이에 약을 발라주시던 할머니께서 나에게 물었다.
“그렇게 피아노가 좋으냐?”
“네.”
“그럼. 거기가면 피아노 마음 것 칠 수 있는겨?”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피아노는 뭔가 특별해요.”
“피아노가 거기서 거기지. 하여튼 지 애비 닮아서 고집 하난 억세기도 하다.”
“죄송해요. 할머니.”
“다음에 거기 갈 때는 꼭 이 할미한테 먼저 얘기해야 혀.”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할머니와 약속을 하고 나서야 불편했던 내 마음도 조금은 편해질 수 있었다.
그러자 뒤이어 새벽에 음악실에 만난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너는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구나.-
할아버지께서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셨다. 거기다 피아노가 가지고 있다는 특별한 힘.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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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가 끝나고 평소와 같이 우유 배급소에 소희와 함께 다녀오는 길.
엊그제 소희네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이후로 왠지 모르게 얘랑 서먹한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속 시원히 이야기 해주면 좋으련만…
더구나 내에 대한 특정적인 원망은 아닌지 별다른 생각을 읽을 수도 없다.
그저 이 아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불안감과 초조함 그 정도뿐이었다.
‘설마 내가 그날 피아노를 고장 냈나?’
생각해보면 건반이 너무나 가벼워 미친 듯이 쳐 내려 갔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혹시 피아노를 망가뜨린 게 아닐까. 내심 불안해졌다.
만약에 그렇다면 할머니께 뭐라고 말씀을 드리지…
“민준아.”
“허억!?”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희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숨을 삼키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되물었다.
“뭘 그리 놀라?”
“어? 아, 아무것도 아냐. 근데 갑자기 왜 불렀어?”
“저거… 너도 나가지 않을래?”
“음?”
소희의 조그마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피아노 대회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어린이 피아노 대회?”
“1차 예선에는 따로 지정곡이 없나 봐.”
“자유곡이라 이거지?”
“아마 너라면 대상도 탈 수 있을 거야.”
“에이~ 그건 아니지. 연습할 수 있는 피아노도 없는데. 나같은게 나가봤자 망신만 당할 수도…”
“내 앞에선 숨길 필요 없어.”
“응? 내가 뭘 숨겨?”
“네 피아노 실력 말야.”
어느새 걸음을 멈춘 채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꿀꺽 삼켜졌다.
그때 타이밍 좋게 어디선가 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복도 저 끝에서 진아가 음악 담당 선생님인 오수정 선생님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민준아~”
그러자 소희는 진아의 등장에 일순 차가운 표정을 거두었다.
“어머, 민준이랑 소희가 우유 배식을 하는구나. 착하기도 해라. 그럼 조심히 들고 가렴~”
진아와 함께 걸어온 선생님은 나와 소희를 번갈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시곤 교무실로 향했다.
단정한 흰옷차림의 오수정 선생님은 내가 연서 국민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시다.
피아노 클래식이나 작곡가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정확히 알려 주셨고, 무엇보다 나의 수많은 질문에도 일절 귀찮아하시는 적이 없었다.
마침 선생님께 물어볼게 있었는데 잘됐다.
나는 생글 생글 웃으며 걸어오는 진아를 보자마자, 내 손에 들려 있던 우유 박스를 그녀 손에 들려주었다.
“야, 차민준!! 너 뭐하는 거야!?”
“오늘은 네가 나 대신 우유 배식 좀 해주라. 나 수정 선생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뭐어? 야!! 차민준!!”
“내 책상 서랍에 어제 학교 앞에서 받은 네스퀵 있으니까. 그거 타서 먹어~”
“네스퀵…”
흰 우유에 타먹는 초코 분말가루인 네스퀵은 진아가 굉장히 좋아하는 것들 중에 하나 였다.
이 날을 위해 어제 안 먹고 아껴두길 잘했네…
“네스퀵?”
네스퀵의 존재를 모르는 소희만이 순순히 나의 부탁을 들어주는 진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거리고 있었다.
“그럼 부탁 좀 할게~”
“어휴~ 진짜 저런 녀석도 짝꿍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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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라? 너 소희랑 우유 배식 하러 가는 길 아니었니?”
“사실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부반장인 진아한테 대신 부탁했어요.”
“그래? 나한테? 무슨 말?”
다른 반 아이들이 뛰어 다니는 복도에서 할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에 마련된 작은 휴게실에 들어왔다.
우유 배식이 있는 시간은 평소보다 쉬는 시간이 길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니?”
“베토벤이요.”
아무런 맥락도 찾아 볼 수 없는 나의 괴팍한 질문에 오수정 선생님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예전에는 쇼팽이더니, 오늘은 베토벤이니?”
“베토벤의 비창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요.”
“흐음~ 비창이라… 선생님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아주 좋아해. 그중에서 8번곡인 비창을 가장 좋아하지. 비창이 3악장까지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겠지?”
선생님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오수정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베토벤의 비창은 말이지. 그의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쓴 가장 슬픈 피아노 곡이란다.”
“아…”
어떻게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그렇게나 감성적이고 서글픈 멜로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까? 선생님의 대답에 나는 베토벤이라는 작곡가의 삶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위대한 작곡가이자, 당대의 피아니스트였던 베토벤은 일생동안 총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지. 그리고 그중에서 자신의 곡에 베토벤이 직접 제목을 붙인 것은 8번 비창(Pathetique)과 26번인 ‘고별’ 밖에 없다고 해.”
“와아… 그렇다면?”
“그래. 그 역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을 굉장히 사랑했단다.”
선생님의 대답에 나는 머릿속으로 비창을 연주하는 베토벤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히 그의 비창은 그저 슬프기만 한 곡은 아니다.
베토벤이 작곡한 곡들 전체에 흐르는 특유의 긴장감을 제쳐두더라도 분명 그의 피아노에선 따스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베토벤의 비창은 왜?”
“아, 그게…”
구교사 음악실에서 연주해 보려구요. 라고 대답했다간 아무리 오수정 선생님이라도 난리가 날 텐데..
나는 하는 수 없이 방금 전에 소희랑 보았던 피아노 대회 포스터를 핑계 삼기로 했다.
“그 다음 달에 있는 어린이 피아노 대회에 나가보려구요.”
“민준이 네가? 너 피아노 쳐본 적 없다며?”
“괜찮아요. 최근에 몇 번 쳐봤거든요.”
“뭐라고? 아니 민준아. 선생님 말은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지 않냐는 말이야.”
“그럼 혹시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으면 그 대회에 참가 할 수 없나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괜찮아요. 어차피 저는 피아노를 쳐보고 싶어서 나가는 것이니까요. 그거면 충분해요.”
“너는 정말… 어디까지 긍정적인 거니?”
“네?”
“아니야. 이제 곧 수업 시작하겠다. 어서 교실로 가보렴. 혹시 궁금한게 있으면 또 찾아오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저 가볼게요~”
“그래. 복도에서 뛰지 말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복도로 나오자, 창문 바깥으로 구교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왕 내뱉은 말. 까짓 거 한 번 해보지 뭐. 나야 어차피 대회에서 떨어져도 잃을 게 없는 걸~’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연습은 좀 해둬야겠지…?
그 날 밤.
할머니께 미리 말씀 드린 나는 늦은 저녁 다시 학교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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