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Ep.1 : 사라진 아이 (4)
‘그래 할머니한테 말한 대로 후딱 찾아서 가지고 나오면 돼.’
다행히 위치는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까. 구교사 안에만 들어가면 문제없다.
하지만… 구교사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잠겼으니 뭔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에 구교사 주위를 한 바퀴 돌던 나는 2층에 창문 틈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저기다.’
1층에 있는 모든 창문은 굳게 잠겨 있었기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고, 방법은 저기 뿐인데.. 어떻게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중 마침 근처에 설치된 쓰레기 소각장이 눈에 들어왔다.
소각장 옆에는 많은 쓰레기를 담기 위해 철로 만들어진 대형 수거함이 있어 일단 저기만 밟고 서면 2층 난간으로 뛰어 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좋아. 그럼….’
나는 일단 폐지 수거함에서 여러 개로 묶여진 박스 더미 몇 개를 들고와 바닥에 쌓아 올렸다. 그것을 밟고 소각로 위로 올라온 나는 쓰레기를 태우는 기둥을 붙잡고 돌아 목표했던 반대편 쓰레기 수거함 근처에 도착했다.
‘거의 다 왔다.’
철로 된 문고리 틈에 발을 걸치고 힘차게 뛰어 오른 나는 단번에 수거함 윗부분을 잡고 위로 오르는데 성공했다.
그때였다.
신교사 쪽에서 비치는 불빛에 나는 서둘러 수거함 아래쪽으로 몸을 숨겼다.
쓰레기 더미에서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여기서 걸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기에 나는 숨을 멈추고 불빛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잠시 구교사 쪽을 한번 비춘 불빛은 이내 사그라 들었고, 나는 천천히 쓰레기 더미들을 밟고 위로 올라왔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맞은 편에 구교사의 2층 난간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나는 수거함을 박차고 뛰어 올라 난간에 상반신 절반을 걸치는데 성공했다.
‘됐어.’
체육 시간. 철봉에 매달리기나 구름다리를 곧잘 통과했었기에 나는 별 무리 없이 구교사 2층 난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끽. 끼긱…!!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창문틀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서둘러 교사 안으로 들어섰다.
“하아… 하아.. 들어왔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캐캐 묵은 먼지가 피어올라 목이 칼칼하게 느껴졌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못한 곳에 발을 들였다는 묘한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삐이익… 삐익..
오래된 구교사의 복도는 전부 나무로 되어 있었기에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혹시라도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는 건 아닐까 최대한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던 나는 어느새 3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도착해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다는 생각에 안도한 나는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여기만 올라가면 곧바로 축구공이 들어간 교실이 나오겠지…
창고 대용으로 쓰는지라 교실마다 오래된 책상과 걸상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왔지만 나는 애써 그것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오직 승우의 축구공만을 떠올렸다.
“여긴가…?”
계단을 올라 다다른 교실은 일반 교실이 아니었다. 과학실이나 컴퓨터실처럼 특수 교실 중에 하나인 이곳은 바로 ‘음악실’ 이었다.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다행히도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끼이이익…
오래된 경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전설의 고향 저리가라 할 정도로 괴기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런 고통의 순간도 승우의 축구공만 찾으면 그만 이었기에 나는 재빨리 음악실 안으로 발을 들여 놓은 그 순간…
“와아…”
나도 모르게 음악실 안의 풍경에 탄성이 새어 나왔다.
창가에 들어오는 달빛 아래 오래된 그랜드 피아노가 그림 같은 자태로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멋진데?”
잠시 승우의 축구공을 찾으러 왔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멍하니 피아노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할머니께서 걱정하시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지….’
민석이가 깨먹은 창문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일단 창가로 다가간 나는 축구공의 궤도를 예측해 보았다. 일단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온 축구공은 피아노의 옆면을 때렸는지 그 부분만 먼지가 덜 묻어나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축구공이 굴러간 흔적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음악실 구석에 멈춰있는 승우의 축구공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승우의 축구공을 주워 들고 먼지를 털어낸 나는 한쪽 옆구리에 공을 끼워 두고 발길을 옮기려던 순간. 달빛 아래 덩그러니 놓여진 피아노가 마음에 걸렸다.
보기에도 엄청 비싸 보이는 피아노인데, 왜 하필 아깝게 이런 곳에 놓여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나는 천천히 피아노 앞에 다가가 보았다.
“이거 울리나?”
덮개를 위로 들어 올린 나는 건반을 덮고 있는 헝겊을 한쪽으로 곱게 접어 두고 건반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초 저녁에 들었던 쇼팽의 녹턴을 연주해보았다.
하지만…
틱.. 틱틱..
몇 번인가 건반을 두드려 보아도 피아노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야 고장난건가? 하긴 그러니 이런 곳에 방치되어 있겠지…
그때였다.
“그 피아노는 너 같은 아이가 치기엔 건반이 무거워서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을 텐데.”
“아, 그런 거구나…”
“그러니 좀 더 힘 있게 건반을 눌러보렴.”
“네……. 음?”
휘이이잉…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 것만 같다. 건반을 누르던 나의 손은 그대로 멈춘 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뭐지? 지금 이 시간에 구교사에 있는 사람이 나말고 또 있을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귀….신?’
그때 머릿속에서 예전에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민준아. 귀신의 질문에 세 번 답하면 너도 귀신이 된단다.’
벌써 두 번이나 대답했는데…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나는 가벼운 심호흡을 내뱉으며 허리를 굽혀 바닥에 있던 축구공을 주워들었다.
“그 공을 찾으러 왔니?”
마지막 질문엔 답을 하지 않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천천히 몸을 세우고 음악실을 빠져 나왔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럴수록 나의 다리는 더욱 빠르게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떻게 학교를 빠져 나왔는지도 모른 채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서 냅다 소리쳤다.
“우와아아아악!!!!!!!!!”
&
“귀신?”
“그렇다니까.”
“으하하~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
승우의 축구공을 돌려주며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민석이 녀석이 배를 잡고 웃어 제쳤다. 그 모습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나도 모르게 입이 삐쭉 튀어 나올 정도였다.
“아~ 진짜라니까!!”
“알았다. 알았어. 믿어줄 테니 대신 확실한 증거를 대봐.”
“증거?”
“그래. 증거~ 그곳에서 귀신을 만났다는 증거를 대보라고~”
“뭘 어떻게 증거를 대라는 거야?”
“귀신 봤다며 그래 어떻게 생겼디?”
“몰라. 뒤도 안 돌아보고 뛰쳐나와서 목소리만 들었어.”
“에이~ 뭐야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오늘 밤 네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보던지.”
그러자 잃어버린 축구공을 받아들고 교실에서 볼 트래핑을 연습하던 승우가 빙긋 웃으며 대화에 끼어 들었다.
“아무튼 내 축구공 찾아줘서 고맙다. 어디 다치진 않았냐?”
“그냥 놀라서 집까지 달려간 기억 밖에 없어.”
“엄청 놀랐었나보네. 그런데 구교사 음악실에 그렇게 좋은 피아노가 있었어? 의외네… 음악실에 있는 것도 꽤 낡은 피아노잖아. 네가 말한 피아노는 그랜드 피아노 같은데?”
“몰라 아무튼 엄청 크고 겁나 비싸보였어. 우리집에 놓으면 할머니랑 나는 피아노 위에 올라가서 자야할 정도로…”
“그 정도로 커?”
… 아니 어쩌면 우리집이 그만큼 작은 걸지도…
“아, 근데 그거 소리가 안났다고 했지? 하긴 아무리 좋은 피아노라도 소리가 안 나면 의미가 없긴 하지.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말야.”
하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순 없었다.
어제 귀신 해준 말에 의하면 좀 더 손끝에 힘을 줘야지만 제대로 된 음이 나올 것 같은데…
그때 멍하니 우리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근상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구교사 음악실이라면 거기 예전에 사고 났던 곳 아냐?”
“어? 설마 거기가 음악실이었어?”
“우리 엄마가 해준 이야기로는 그래. 그 당시 6학년이었던 누나가 거기서 피아노 콩쿨 연습을 하다가 사고가 있었다고…”
“무슨 사고?”
“그게 좀 황당한데…”
“대체 뭐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
“사라졌데..”
“뭐?”
“사라졌다고.. 흔적도 없이.”
“설마 납치?”
“그럴 수도 있어서 경찰이 조사를 했는데,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데.”
충격적인 근상이의 말에 우리는 굳은 표정으로 마른침만 삼켰다.
그때 민석이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어제 네가 들었다는 귀신 목소리 여자였냐?”
“아니. 그냥 아저씨 목소리였어.”
“아저씨? 에이~ 뭐야… 난 또 식겁했네.”
나도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 듣긴 했지만, 이렇게 정확하게 듣기는 처음이었다.
아마도 근상이네 어머니는 육성회 회장이시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너희들 무슨 얘기해?”
“어? 진아다.”
평소 진아를 좋아하는 근상이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두 볼이 빨개지며 급히 시선을 피했다.
“여자는 몰라도 돼.”
유난히 진아에게만 틱틱 거리는 민석이가 콧방귀를 뀌자, 진아도 지지 않고 혀를 쏙 내밀었다.
“흥~ 너한테 안 물었거든~”
“어제 민준이가 구교사에 들어갔다 왔데.”
“뭐!?”
손가락을 세워 충구공을 빙글 빙글 돌리던 승우의 말에 진아가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야, 차민준. 너 구교사는 출입 금지인거 몰라?”
“그럼 어떡해. 승우 축구공이 그 안에 들어갔는데.”
“선생님에게 부탁 드렸어야지~!!”
… 우리 반 담임선생님께서? 어이구~ 설마~ 잘도 들어 주셨겠다.
어제만 해도 반성문 제출했을 때, 진짜 잡아먹을 듯 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데…
우리반 담임인 정옥분 선생님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 사이에서도 굉장히 평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선생님이다.
교사로서 보통 60세 정도 나이라면 교감이든 교장이든 한 자리 쯤은 차지하기 마련인데, 아직도 담임을 맡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일단 자잘한 건 다 제쳐두고라도 촌지를 너무나 좋아하셨다.
학부모 간담회에서 자기는 학부모가 자신에게 해주는 만큼 학생에게 돌려준다고, 그러니 자기 자식 반장 시키고 싶으면 자기네 집으로 돈봉투 들고 찾아 오라며 당당하게 공표했을 정도니까.
이 정도면 말 다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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