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피아노 - 손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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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 Ep.1 : 사라진 아이 (1)
-프롤로그-
한 남자의 피아노 소리가 콘서트홀에 울리자 객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마치 훌륭한 복서의 주먹이 상대방의 급소를 정확히 노려 친 것처럼…
연주 시작 전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그의 피아노는 첫 음부터 아주 깔끔한 소리를 내었다.
쇼팽의 녹턴
녹턴이라는 작품은 본래 아일랜드의 존 필드가 작곡한 피아노 양식으로 한밤의 정취를 담아낸 듯 한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차후 쇼팽에 의해 더욱 정교하고 세련된 피아노 양식으로 완성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새하얀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에는 오래된 반지가 조명 빛에 반사 되어 영롱한 색을 발하고 있었다.
그 반지에 대해서 묻는 인터뷰에 연주자 차민준은 그저 엷은 미소만 지었다고 한다.
잠시 후. 아름다운 그의 피아노 선율이 곡의 최고조 부분에 달한 순간…
객석에 있던 청중들의 반응이 연주자의 머릿속으로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심장이 너무 아파….’
‘하아… 하아….’
‘제발 이 곡이 멈추지 않기를….’
아름다운 새벽빛 연주가 계속 되길 바라는 갈망과 심장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는 듯한 서정적인 감정의 교차.
청중의 다양한 반응에 연주자 차민준은 두 눈을 감은 채 미소 지었다.
그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마지막 끝맺음까지 제대로 들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의 연주에 집중하던 몇몇은 호흡 곤란으로 어지러움을 호소할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
짝.. 짝짝짝짝짝~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청중의 박수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한손을 가슴에 올리고 자신의 연주를 들어준 청중들에게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그에게 보내는 박수소리는 거대한 콘서트홀을 가득 메우기에 충분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방송국에서 나온 여기자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차민준씨의 피아노는 본래 악보에 쓰여 있는 작곡가의 의도를 재해석하여 더욱 훌륭한 곡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이 많은데요. 그런 민준씨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셨던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으신가요?-
그녀의 질문에 잠시 자신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 멘델스 존, 그리고 쇼팽까지 역사상 모든 위대한 작곡가 모두 저의 훌륭한 스승님이셨습니다.”
“아… 그 말뜻은 그들이 남긴 수많은 악보들 안에서 홀로 답을 찾으셨다는 뜻인가요?”
“아뇨.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그들은 모두 저의 훌륭한 스승이자, 또한 라이벌이었거든요. 그럼 공연 리허설을 준비해야 해서 저는 이만…”
멀어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모의 여기자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당최 뭐라는 거야? 이래서 예술가들은 인터뷰 따기가 힘들다니깐… 특히나 세간의 주목을 받는 천재들은 더욱이…”
수첩을 손에 쥔 볼펜으로 톡톡 두들기며 그녀는 대기실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피아니스트 차민준.
이 이야기는 역대 피아노 위인들의 재림이라 불리운 한 천재 피아니스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거대한 시간 속에 휘말린 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이도 하다.
EP.1 : 사라진 아이.
1993년. 3월. 서울시 서대문구 연화 국민학교 2교시 체육 시간.
“받아라 불꽃 슈우웃!!!”
“크으윽… 훌륭한 볼이군. 하지만 더 이상은 용서 못해. 간다!! 번개 슈우웃!!”
에휴… 너희들의 그 타오르는 연기 혼은 칭찬해줄만 한데, 그냥 빨리 빨리 좀 던질 순 없을까? 무슨 공하나 던지는데 이리 오래 걸려?
작년 말부터 TV에서 방영된 ‘피구왕 통키’ 덕분에 요새 체육 시간에는 별 해괴망측한 쇼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받아랏 차민준!! 도끼 슈우웃!!”
우렁찬 기합과 함께 제법 덩치가 큰 민석이가 나를 노렸지만, 박력 넘치는 목소리에 비해 녀석의 볼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천천히 날아왔다.
터억. 흐음.. 역시 캐릭터 연기에 너무 집중한 탓에 볼에 힘이 하나도 없구나..
아니지 애초에 저런 요상한 포즈로 던지는 볼에 힘이 실릴 리가 만무하지..
“아, 뭐야.. 그렇게 싱겁게 잡아 버리면 내가 뭐가 되냐.”
“그럼 어떻게 통키처럼 뒤로 튕겨져 날아가 줄까?”
“당연히 그래야지!! 방금 내가 던진 건 도끼슛이라고~!!”
그래, 그래. 너 잘났다.
피구 공을 위 아래로 던졌다 받으며 상대편 진영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를 슥 훑어본 나는 짧게 호흡을 끊으며 살짝 몸을 숙였다.
“오호라, 민태풍의 회전 회오리 슛이냐. 이 몸이 받아주지!!”
민석이 녀석이 통키라도 된 마냥 양 손바닥을 모으며 앞으로 나서자, 나는 있는 힘껏 발을 내딛으며 몸을 활짝 열어젖혔다.
“와라. 차민준!!”
‘흥이다. 이놈아.’
하지만 당차게 앞으로 나선 녀석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가 던진 볼을 일직선으로 민석이 옆에서 멍 때리고 있던 보람이의 이마를 제대로 때렸다.
뻐억!!!
“우악!!”
짱구라는 별명을 가진 보람이의 이마에 피구공이 부딪히자, 피구 공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고, 깜짝 놀라 옆을 바라보던 민석이의 어깨를 맞춘 뒤, 곧장 바닥에 떨어졌다.
“삐이익~!! 더블 아웃~!!”
선생님의 호각 소리에 우리 편 진영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민준이 파이팅~!!”
“치.. 치사하다!! 차민준!! 나와의 승부를 피하는 거냐!!”
보람와 함께 아웃 된 민석이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나를 향해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흥~ 아웃 당했으면 순순히 외야로 나가시지~”
“쳇.”
현재 스코어는 2:2 내야에 남은 선수는 같지만, 문제는 나와 함께 살아남은 아이는 최근에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윤소희라는 여학생뿐이었다.
반면 저쪽 편에는 축구부 소속인 승우와 육상부인 근상이까지…
이거 제법 어렵겠는데?
그때였다.
[무, 무서워. 어떡해…]
음? 무심결에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소희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 마. 소희야.”
“아…?”
“내 뒤에 딱 붙어 있어.”
“오~ 차민준. 멋진데~”
그때 반대편 외야에 나가있던 같은 편 진아가 웃으며 나에게 소리쳤다.
예쁘장한 얼굴의 진아는 또래 여학생 중에서도 제법 키가 큰 편이었는데, 털털한 성격 탓에 남자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는 그녀는 ‘천진아’라는 이름 덕분에 천진반. 아니면 태진아라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시끄러~ 천진반.”
“뭐~!? 너 내가 그 별명 부르지 말랬지!?”
“됐고, 너 지난주에 나랑 연습했던 그거 기억해?”
“그거?”
그러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진아가 나에게 되물었다.
“자… 잠깐 그걸 피구에서 하자고?”
“뭐 어때 상관있어?”
“아니, 그래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와 진아의 대화에 승우와 근상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뭘 꾸미는지 몰라도 우리가 순순히 보고만 있을 것 같으냐?”
“그러니까 빨리 던져~ 이러다 체육시간 끝나겠다.”
“흥~ 그놈의 잘난 척은 미리 말해두지만 난 민석이처럼은 봐주진 않을 거다.”
승우는 몇 번 제자리에서 공을 튕긴 뒤 짧은 기합과 함께 볼을 날렸다.
축구부 소속답게 기본적인 볼 컨트롤이 민석이와는 차원이 달랐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양손을 감싸 쥐었다.
“간다. 천진반!! 잘 받아라~!!”
투웅!!
배구의 토스 자세로 최대한 진아가 받아내기 좋게 반대편으로 공을 띄우자, 당황한 승우와 근상이가 서둘러 볼을 쫓았다.
“너 진짜. 내가 그 별명 부르지 말랬지!!”
진아를 향해 튕겨 오른 볼은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 외야로 날아갔고, 그 곳에는 이미 스파이크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진아가 자신에게 날아온 볼을 그대로 쳐냈다. 국민학교 4학년인 주제에 제법 키가 있던 터라 발육 또한 남달랐는데, 평소 진아를 좋아하던 근상이가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중 정통으로 얼굴을 후려 맞았다.
파앙~!! 뻐억!!
아니 세상에… 무슨 공에 맞은 소리가 폭발음처럼 들리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뒤로 나자빠진 근상이의 코에서 쌍코피가 터져 나오자, 놀란 체육 선생님이 달려와 즉각 경기를 종료시켰다.
“아이구. 진아야 살살 좀 하지 그랬냐. 근상아 괜찮냐? 녀석아 정신 좀 차려봐.”
“선생님!! 저는 민준이가 시켜서 한 거예요.”
“아주 얘를 잡았네 잡았어. 승우야 가서 양호 선생님 좀 모시고 와!”
“네? 아, 네!!”
선생님의 외침에 근상이를 바라보던 승우는 마른침을 꿀떡 삼키며 양호실로 달려갔다.
“워… 만화책에서만 보던 천진반의 기공포를 이렇게 실제로 볼 줄이야.”
… 방금 누구인지 모르지만, 적절한 비유인데?
진아는 자신의 볼에 맞아 쓰러진 근상이에게 못내 미안했는지, 곁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진아에게 다가갔다.
“야… 힘 조절 좀 하지 그랬어.”
“그러게 누가 갑자기 그런 걸 시키래.”
결국 양호 선생님이 챙겨온 들것에 실린 근상이는 쌍코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진아를 향해 걱정 말라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I’ll be back.”
아마도 지난주에 부모님 몰래 본 터미네이터 2를 떠올린 모양이다.
…저 녀석 정말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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