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
291화 제우스 (5)
대규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허, 헉…….”
그러자 제우스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디 한번 공격해 보거라. 그대가 사용하는 그 잘난 검법으로 말이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대규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곧 푸른 기운이 그의 손과 칼자루에 돌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오로지 자신 앞에 서 있는 존재를 베어 버릴 생각만 할 뿐.
휘릭, 휘릭, 휘릭!
대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사슬검을 휘둘렀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았지만, 검날들은 모조리 제우스의 급소를 향하고 있었다.
플로우 참파 검법은 완전히 완성된 형태였다. 지금 대규가 시전하는 참파는 여태까지 시전했던 것 중 가장 완벽했다.
검날들의 움직임은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챙! 챙! 챙!
제우스가 든 벼락에 의해 모든 검날의 움직임이 다 막히고 있었다. 제우스는 꼭 대규가 아테나의 플로우 창법의 창두를 막아 냈던 것처럼 대규의 검날들을 여유롭게 막으며 외쳤다.
“하하하! 이 정도로구나! 가소롭군!”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신체 개조술을 받은 제우스는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았다.
대규의 표정은 당황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크윽…….”
플로우 참파가 먹히지 않는다.
자신이 매일매일 빼먹지 않고 부지런히 수련했던 검법이었다. 그리고 검법 자체는 완벽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먹혀 버렸다니.’
이것은 자신의 실수나 문제가 아니었다. 제우스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탓이었다.
그럼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대규는 사슬검에 붙어 있는 검날들을 죄다 분리시켰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사슬날들의 움직임을 상상했다.
대규가 상상하는 것은 사슬날들이 일렬의 형태로 늘어나 제우스를 포박하는 것이었다.
사슬날들이 일렬로 이어져 밧줄 형태를 취하고 제우스의 몸을 포박해서 점점 조여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검날들이 저 자식의 몸을 뚫을 것이고 상처를 입힐 수 있겠지.’
대규는 판단이 서자 신속하게 움직였다.
우선 머릿속으로 단단한 사슬날 밧줄을 떠올렸다.
그러자 사슬 검날들은 일렬로 좌르륵 이어져 기다란 줄 형태로 변했다.
촤르륵-
줄 형태로 변한 사슬 검날들은 거대한 뱀처럼 제우스를 향해 꿈틀거리며 날아갔다.
“훗.”
하지만 제우스는 피하기는 커녕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심지어 날아오는 사슬 검날들을 들고 있는 벼락으로 막아 내지도 않았다.
곧 사슬 검날들이 제우스의 몸을 칭칭 휘감기 시작했다.
제우스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며 외쳤다.
“이것이 그대의 공격이란 말이지. 그럼 어디 똑똑히 느껴 보거라. 나와 그대의 차이를!”
이제 제우스의 몸을 포박한 사슬 검날들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그의 몸을 조여들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여전히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사슬 검날들이 자신의 몸을 조이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번쩍!
제우스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온몸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그가 맨 처음 벼락을 들고 대규를 공격했을 때 보았던 팔근육의 움직임과 비슷했다.
이제 그의 몸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조여드는 사슬 검날들이 그의 육체를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끼기긱-
사슬 검날들이 제우스의 몸에 부딪히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뭐 몸이 저래?’
제우스의 몸은 꼭 단단한 강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흐아압!”
그 순간 제우스가 커다란 기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일렬로 이어져 그의 몸을 포박했던 사슬 검날 밧줄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일렬로 이어져 있던 사슬날들은 각자 완전히 분리가 돼 버려 중앙 신전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대규는 재빨리 떨어진 사슬 검날들을 허공에 떠오르도록 조종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화염 돌풍이다.
“가랏!”
대규가 외치자 사슬 검날들은 일제히 화염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염 돌풍들은 제우스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제우스는 다시 한번 손에 들고 있는 벼락을 휘둘렀고, 오색이 살짝 감도는 황금 벼락들이 허공에서 떨어져 대규의 사슬 검날들을 후려쳤다.
우르릉!
콰지직!
그러자 제우스를 향해 날아갔던 화염돌 풍들은 강풍을 만난 촛불처럼 힘없이 꺼져 버렸다.
‘신체 개조술로 대체 얼마나 능력이 향상된 거야?!’
대규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데 제우스가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공격은 다 끝났나? 그럼 이제 내 차례로구나.”
그는 오른손으로 다시 한 번 벼락을 쳐들었다.
곧 중앙 신전에 심상치 않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콰쾅…….
이제 대규의 사슬 검날들은 다 분리되어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저 사슬날들로는 앞으로 나에게 닥쳐올 제우스의 거대한 벼락을 막아 낼 수 없어.’
방패로 저 벼락을 막아 낸다 하더라도 이번에 저 벼락을 박게 되면 방패에 다시 집어넣었던 아이기스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맨 처음 제우스가 날린 한 번의 공격만으로 아이기스의 머리가 절반이나 날아간 상태니까 말이다.
‘결국 이 녀석의 힘을 쓰게 되는구나!’
대규는 방패에 장착한 아자토스의 핵을 바라봤다.
여태껏 지니고 있는 마나량이 부족해서 자신이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스킬이 남아 있었다.
초신성 폭발 스킬!
사실 여태까지 대규는 이 스킬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로 다음과 같은 무시무시한 스킬의 설명 때문이었다.
[초신성 폭발: 아자토스가 지니고 있는 최강의 스킬. 갖고 있는 핵융합 에너지를 한꺼번에 방출에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 반경 1,000km 이내의 모든 것들이 초토화된다. 대신 아자토스의 핵을 지닌 자만이 쓸 수 있는 스킬이며 하루에 한 번 밖에 쓸 수가 없다. 마나 소모 10,000.]
‘하지만 제우스는 지금 신체 개조술까지 받은 상태다. 나의 다른 공격들은 전혀 먹히지 않고 있어. 아마 이 스킬만이 제우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터.’
물론 이 스킬을 쓰게 되면 판테온의 중앙 신전은 물론 주변의 모든 것들도 초토화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전투를 저 멀리서 구경하고 있는 판테온의 신들과 대규 부대의 영웅들조차도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반경 1,000km 이내의 모든 것들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스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의 육체를 지녔던 자신도 이 폭발 앞에선 온몸이 갈가리 찢겨져 버렸다.
‘이 스킬을 쓰려면 장소를 이동해야 한다.’
대규는 크로노스, 그리고 다른 티탄 신족들과 싸움을 벌였던 마티가스의 봉우리를 떠올렸다. 그곳이라면 안전할 것이다.
제우스와 자신 둘이서만 싸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대규는 마티가스의 봉우리로 순간 이동하려 했다.
그러자 제우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도망가려는 것이냐?”
“아니다. 우리의 싸움으로 다른 신들에게 피해를 입히긴 싫다. 이건 우리 둘만의 싸움이니까 말이야. 마티가스의 봉우리에서 우리 둘이 겨루자!”
“핑계 대기는. 뭐,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대규는 순식간에 마티가스의 봉우리에 도착했다.
봉우리의 모습은 그전과 똑같았다. 크로노스를 상대하면서 파괴되고 주저앉았던 봉우리들은 신기하게도 다시 원상 복구가 돼 있었다. 자가 치유 능력이라도 지닌 봉우리일까?
‘이럴 때가 아니다. 우선 마나 한계량부터 높여야 한다.’
초신성 폭발 스킬은 마나를 무려 10,000이나 소모하는 스킬이다.
대규는 마나 폭렬 스킬을 재빨리 사용했다. 온몸에 흐르는 마나가 혈관을 따라 심하게 요동치는 느낌이 들었다.
마나 한계량이 두 배 가까이 올랐음을 확인했다.
‘빨리! 엘릭서!’
그러자 공략집이 기다렸다는 듯 신속하게 엘릭서를 자동으로 먹여 줬다.
“흐음, 뭔가 엄청난 걸 준비하고 있는 것 같군.”
제우스가 어느새 마티가스의 봉우리에 당도해 대규를 보며 말했다.
마침 엘릭서를 마시고 마나와 생명력을 풀로 채운 대규는 제우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너는 쓰러뜨릴 것이다.”
현재 마나량은 10,000이 약간 넘었다.
막상 처음 써 보는 초신성 폭발 스킬이라 가슴이 떨렸다.
‘떨 시간조차 없다!’
제우스가 다시 벼락을 쳐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벼락을 품은 구름은 중앙 신전에서 이곳 마티가스의 봉우리에 있는 대규의 머리 위로 도착해 있었다.
스킬을 시전하자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방패에 장착된 아자토스의 핵이 초신성 폭발을 준비합니다.]
그 순간 대규가 들고 있는 방패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방패의 가운데 부분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바로 자신이 핵을 장착했던 그 부분이었다.
그때 방패 표면에서 폭풍과 빛이 일기 시작했다.
‘아자토스가 초신성 폭발을 준비했을 때와 동일한 현상이다.’
그리고 얼마 후 방패의 표면이 쩌억 갈라지며 열리기 시작했다. 방패 안에서 대규가 장착했던 아자토스의 핵이 슬쩍 보였다.
아자토스의 핵에서는 은은한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이제 곧 폭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르릉,
콰콰쾅!
그 순간 머리 위의 구름에서 황금빛 벼락들이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대규 역시 그 벼락을 향해 아자토스의 핵이 드러난 자신의 방패를 들이밀었다.
[초신성 폭발이 시작됩니다.]
퍼어어어어엉!
휘이이이잉-!
강렬한 돌풍과 굉음이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봉우리들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이 산산이 조각났고, 한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초월자의 육체이자 스킬의 시전자인 대규의 몸 역시 폭발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공중을 날고 있었다.
“콜록, 콜록!”
사방이 검은 연기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제우스를 해치운 건가?’
초신성 폭발 스킬의 반경은 1,000km. 당연히 제우스에게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제우스가 쓰러졌다면 눈앞에 그를 해치웠다는 메시지창이 떴을 터였다.
‘눈앞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
연기가 걷혔고, 초신성 폭발의 효과가 눈앞에 드러났다.
대규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 놀랐다. 봉우리 하나가 아주 통째로 날아갔을 뿐만 아니라 봉우리가 있던 땅이 몇십 미터는 꺼져 있었다.
재빨리 하늘 위로 날아올라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야말로 봉우리는 무자비하게 파헤치고 파괴됐다.
‘괜히 반경 1,000km가 아니었어. 그런데 제우스는……?’
그때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역시 대단한 스킬이로군. 그것이 바로 초신성 폭발이라는 건가?”
대규는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제우스는 들고 있던 벼락의 끝부분으로 땅을 찔러 몸을 지탱한 뒤 걸어오고 있었다.
몸 외관엔 분명 상처들이 나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멀쩡해 보였다.
‘괴물이야? 어떻게 이 스킬을 맞고도 버텨?’
대규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제우스는 대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이 스킬을 언젠가는 쓸 줄 알았지. 내가 아자토스의 핵에 대해 모를 거라 생각했나? 애초에 외계인들의 왕 아자토스를 해치우라는 명령을 그대에게 내린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게다가 이 스킬은 마나 소모량이 엄청나겠지. 그러니까 그대가 스킬을 시전하기 전에 마나 폭렬로 마나 한계량을 올렸을 거고. 그 말인즉슨…….”
제우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눈빛은 섬뜩해 보였다.
“…이제 그대는 다시는 이 스킬을 쓸 수 없다는 것. 이 정도 스킬이라면 하루, 혹은 한 전투에서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제한이 걸려 있을 테니까 말일세.”
정곡을 찔렸다.
“그만큼 이 스킬이 그대에겐 필살기, 아껴 둔 복병과도 같은 스킬이었겠지. 그 말은 이 스킬을 능가하는 공격 스킬은 더 이상 없다는 거겠지.”
대규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우스는 그런 대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대가 판테온의 신 중에서 최강의 실력자라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 아테나가 왜 그리 그대를 각별하게 생각했는지 알겠어. 심지어 어떨 땐 아버지인 나보다도 그대를 더 생각하는 것 같더군.”
아테나!
그 이름이 제우스의 입에서 나오자 대규의 눈빛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