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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287화 (287/294)

# 287

287화 제우스 (1)

곧 결계 안으로 처음 들어올 때처럼 좁은 튜브 관을 통과하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온몸의 장기를 누군가가 쥐어짜는 듯한 기분이었다.

‘으으…….’

철푸덕!

얼마 후 대규의 몸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몸을 휘감고 있던 붉은 손들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심연의 결계를 성공적으로 벗어났습니다.]

됐다.

대규는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이 어디지?’

곧 자신이 있는 장소를 알아차렸다. 그곳은 바로 자신의 주둔지 옆에 있는 평원이었다.

항상 부대의 영웅들을 훈련시켰던 그 장소였다.

그런데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자신의 부대 주둔지가 위치한 곳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대규는 신의 눈을 이용해 주둔지 안의 풍경을 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대규 부대의 영웅들은 모두 온몸이 밧줄로 꽁꽁 포박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에게 매우 거세게 반항하고 있었다.

그중 존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가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여기 남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대장군인 지영이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의 상관은 대규 님이십니다. 아무리 당신이 신이라 해도 우리를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을 겁니다!”

그 순간 커다란 굉음이 들렸고 주둔지 한가운데 땅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누군가가 광역 마법스킬을 쓴 것이다.

부대의 영웅들은 모두 쓰러져서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대규의 귀에 꽂혔다.

“웃기는군! 이 천한 인간 출신들 주제에……. 이건 제우스님의 명령이다. 너희는 잔말 말고 나를 따라와야 한다.”

그 목소리를 들은 대규의 얼굴은 사정없이 구겨진다.

아폴론은 거만한 표정으로 땅에 쓰러져 있는 대규 부대 영웅들을 내리깔아 보고 있었다.

대규가 주둔지의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아폴론은 재수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너희의 상관이라는 그 잘난 자식은 심연의 결계에 갇혀버렸다. 하하하! 제우스 님께 당할 것 같으니 스스로 자결을 택하는 그 비겁한 꼬락서니란! 전쟁의 신이란 칭호가 우스울 지경이었지.”

그 말에 영웅들은 심각하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럴수가…….”

“대규 님이 심연의 결계에?”

“말도 안돼……. 게다가 자결이라니.”

방금 전까지도 영웅들은 아폴론에게 거세게 저항을 했었다. 하지만 대규가 심연의 결계에 갇혔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급격히 전의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그때 주둔지의 입구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웃기지 마라, 아폴론. 당장 내 영웅들로부터 그 더러운 손을 치워라.”

어느새 주둔지로 빠르게 날아온 대규의 목소리였다.

아폴론은 주둔지 입구에 서 있는 대규를 보고 놀라서 외쳤다.

“허, 헉! 이럴 수가!”

그곳에는 정말로 대규가 서 있었다. 심지어 그는 결계에 끌려들어갈 때처럼 맨몸이 아니라 갑옷에 검, 방패 등 모든 장비를 다 갖춘 채였다.

“마, 말도 안돼……. 당신이 여기 어떻게…….”

대규가 없을 때는 잘난 자식, 이라는 둥 막말을 마구 해대더니 막상 초월자의 육체를 지닌 대규를 눈앞에서 보자 아폴론의 입에선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저 자식에게 존댓말을 들어도 기분이 좋진 않다.’

대규는 아폴론을 바라보며 피식 조소를 날리며 말했다.

“왜 그러지?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그러자 아폴론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겨우 말을 이었다.

“그, 그런 건 아닙니다만… 하지만…….”

대규는 이제 고개를 돌려 자신 부대의 영웅들을 바라보았다. 존, 라이펑, 지영을 포함한 모든 323명의 영웅은 아폴론이 끌고 온 아폴론 부대의 정령 영웅들에 의해 온몸이 포박된 상태였다.

대규는 아폴론을 무섭게 내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내 영웅들을 풀어줘라.”

그러자 아폴론은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 그럴 순 없습니다. 이, 이건 제우스 님의 명령이라…….”

“알고 있다. 그리고 제우스의 속내도 알고 있지.”

속내, 라는 말을 들은 아폴론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규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쏘아붙였다.

“왜 그러지? 아하, 아폴론 너도 제우스의 계획에 함께 가담할 모양이구나.”

그 말을 들은 아폴론은 이를 악물고 대규에게 중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인간 출신 영웅들이 이곳 판테온 신들의 지위를 넘보는 꼴을 나는 볼 수 없습니다!”

초월자의 육체를 지닌 자신 앞에서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아폴론의 용기가 가상할 지경이었다.

대규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조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본색을 드러내는군. 하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야.”

“…예?”

“판테온의 신들이 부당한 명분으로 인간 출신 영웅들을 해치우려 하는 꼴을 나 역시 용서할 수 없다!”

말을 마친 대규는 허리춤에서 자신이 만들어 온 사슬검을 꺼내 들었다.

화르르륵-

검은 불길이 검날 끝에서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 모습을 본 아폴론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분명 헤파이스토스님이 당신의 무기들을 다 무장해제 시켰을 텐데… 대체 어떻게…….”

“그건 네 녀석이 알 바 아니다. 어서 칼을 꺼내 들어라.”

대규는 사슬 검날 끝을 아폴론의 심장 쪽으로 겨누며 말을 이었다.

“나의 부대 영웅들을 제우스에게 데려가려면 너는 먼저 나를 쓰러뜨려야 할 거야.”

“으, 으으…….”

이제 아폴론의 얼굴은 사색이 됐고, 그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폴론 역시 전에 있었던 디오니소스와 대규의 결투를 관람했고 대규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결투는 신과 신의 대결이었다.

지금 아폴론의 앞에 있는 대규는 무려 신을 뛰어넘은, 초월자의 육체를 지닌 자였다.

아폴론에겐 도무지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는 허리춤에서 자신의 대검을 꺼내 든 뒤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 나는… 불온한 인간들로부터 판테온을 지켜야 합니다!”

불온한 인간들이라니. 오히려 불온한 건 자신의 지위를 넘볼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을 해치우려 하는 신들 아닌가.

대규는 그의 발악하는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쓴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폴론은 진정으로 제우스의 뜻에 동참해 인간 출신 영웅들을 몰살하는 것이 판테온을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들은 본래부터 하찮고 불온한 존재이며, 따라서 무섭게 성장하는 인간들로부터 판테온을 지켜내야 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에 아폴론은 갇혀 있었다.

그는 그 믿음이야말로 판테온을 수호해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규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빌어먹을… 신이라지만 정말 보면 볼수록 현실 세계 인간들하고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니까. 삐뚤어졌지만 네 녀석의 신념은 높게 쳐주지. 물론 배우고 싶진 않지만 말이야.’

아폴론이 대검을 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꼭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보일 뿐이었다.

대규는 가뿐하게 그의 칼을 피한 뒤 자신이 만든 사슬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그때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칼에 장착된 프로메테우스의 아카나의 구슬 효과가 발동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지닌 특수 능력이 무기에 발동됩니다.]

파파팟!

사슬검을 휘두르자마자 사슬 검신에 붙어 있던 수십 개의 사슬 검날이 검신에서 튀어나갔다.

튀어나간 검날들은 곧 허공을 자유롭게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여태까진 사슬검에 붙어 있는 사슬 검날들이 분리돼도 채찍처럼 기다랗게 늘어나는 검신에 검날들이 붙어 있었다. 즉, 대규가 검자루를 쥐고 검을 휘두르면 사슬날들은 각각 날 사이가 벌어지면서 채찍처럼 움직였단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슬 검날들은 완벽하게 검신과 분리가 돼서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메시지창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사슬 검날들의 궤적과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내가 휘두를 필요 없이 생각만 하면 이 사슬 검날들이 움직인다는 건가.’

고민할 틈이 없다.

대규는 머릿속으로 검날들의 움직임을 그려봤다.

수십 개의 검날들이 소용돌이 돌풍처럼 빙글빙글 돌며 아폴론에게 날아가는 상상을 해봤다.

그리고 사슬날들엔 화염들이 화르륵 붙어서 동시에 공격하는 거다.

그 순간,

휘이이이잉-

수십 개의 사슬 검날들이 한데 모여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곧 사슬 검날들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검날들이 회전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육안으론 검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화르르륵-

얼마 후 검날 돌풍에서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가랏!”

대규는 검날 돌풍에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돌풍은 재빨리 아폴론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폴론은 대검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날 돌풍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쩌억! 콰지직!

아폴론의 대검은 돌풍에 닿자마자 두동강이 나버렸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엔 두려운 기색이 비쳤다.

대규의 사슬 검날 돌풍은 아폴론의 검을 두 동강 낸 뒤 이제 그의 가슴팍을 향해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휘리리릭-

“끄아악!”

아폴론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주둔지의 땅바닥엔 그가 흘린 피가 뚝뚝 떨어져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사슬검의 공격 단 한 번만으로 아폴론은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상대가 안 되는군.’

대규는 자신 앞에 쓰러져 있는 아폴론을 보며 생각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능력을 지닌 사슬검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이 정도라면 이제 판테온의 신들은 대규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다.

‘다만, 제우스는 다르겠지.’

아폴론은 쓰러진 채 고개를 들고 대규를 바라보며 신음 소리를 냈다.

“끄으으…….”

하지만 대규는 냉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폴론은 그런 대규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말을 할 때마다 그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끄으… 제우스 님이… 그대를 가만두지 않을…….”

하지만 대규는 그 말에 미동도 하지 않고 날카롭게 말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허공의 틈이 스스슥 갈라지며 심연의 결계가 열렸다.

그리고 붉은 손들이 틈에서 나와 아폴론의 몸을 휭휭 휘감은 다음 쑤욱 삼켜 버렸다.

‘후, 아폴론 녀석을 결계에 가뒀군.’

대규는 갑옷에 묻은 흙먼지들을 훌훌 털고 나서 뒤를 바라보았다.

그의 뒤엔 부대의 영웅들과 영웅들을 포박하려 했던 아폴론 부대의 정령 영웅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여태껏 신들끼리의 전투는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아폴론이 대규의 공격 한 방만에 빈사 상태가 돼 심연의 결계로 끌려가는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또한 심연의 결계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손들을 본 영웅들은 모두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심지어 정신력이 약한 영웅 몇몇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쓰러지기도 했다.

그 대범하고 냉정한 대장군 지영조차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지영은 대규에게 다가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규 님… 이게 대체, 아니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다른 신과 전투를 벌이다니요… 만약 다른 판테온의 신들이 아시게 되면, 특히나 제우스 님이 알게 되면 큰일이 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대규는 지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신 이렇게 대답했다.

“그보다 앞으로 더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예에?”

대규는 영웅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린 뒤 딱,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자신의 부대 323명의 영웅의 몸을 포박한 밧줄들이 풀려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밧줄은 곧 아폴론 부대의 정령 영웅들의 몸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대규는 부대의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지휘사령부 천막 안으로 들어와 주십시오.”

천막 안으로 들어가 대규는 자신의 왕좌에 앉았다.

지영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대규에게 물었다.

“대규 님,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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