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6
286화 심연의 결계 (4)
만들어진 사슬검은 불카누스의 벼락검과 아주 비슷한 외관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칼끝의 마지막 사슬날이 달랐다.
이 사슬검의 마지막 날은 거대한 갈고리 형태의 모양이었다.
‘휴, 나의 역작이 완성됐군. 이제는…….’
대규는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에게 넘겨준 아카나의 구슬을 꺼냈다. 이제 이 구슬을 이 검에 장착시킬 때였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대규는 헤파이스토스가 외계인들의 아티펙트들을 자신의 무기와 장비에 장착시켰던 걸 떠올렸다.
무기에 아티팩트를 올려놓고 망치고 크게 한 방 때렸었다.
‘그렇게 하면 되려나.’
대규는 자신이 만든 사슬검 위에 아카나의 구슬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망치를 들고 심호흡을 한 뒤,
콰아아아앙!
의식의 대장간 전체에 굉음이 울려 퍼졌고, 어느새 칼자루 한가운데 프로메테우스의 구슬이 박혀 있었다.
‘좋았어!’
하지만 검을 만든 상태지만 귀아스페룸이 남아 있었다.
대규는 남아 있는 귀아스페룸을 녹여 갑옷과 방패도 만들기로 했다. 단순히 맨몸에 칼 한 자루만 지니고 싸울 순 없을 테니까 말이다.
대규는 열심히 갑옷과 방패를 만들었다. 얼마 후 모든 장비가 완성됐다.
칼, 갑옷, 방패… 모든 장비는 모두 자신이 본래 지니고 있던 장비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녔던 장비들을 떠올리고 상상해서 만든 거니까.’
그리고 방패엔 전에 죽었던 괴물뱀 아이기스까지 다시 박아 넣었다.
이 방패는 자신의 상상으로 만드는 것이어서 머릿속으로 아이기스를 자세하게 떠올리니 자유롭게 그것을 장착할 수 있었다.
‘아자토스의 핵과 아이기스가 모두 들어간 방패라…….’
오히려 기존 것보다 성능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갑옷과 벼락검 역시 기존에 대규가 지니고 있던 무기들에 견주어 보아도 그 성능이 손색없었다.
그렇다면 이젠 이것들을 물질로 형상화할 차례였다.
우선 의식의 대장간을 나섰다. 어느새 자신의 몸은 심연의 결계 속 새하얀 공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무기를 다 만들었나 보군.”
프로메테우스가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고 대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곧 대규는 두 손을 들고 눈을 감은 뒤 정신을 집중했다.
눈앞에 의식의 대장간에서 만든 무기와 장비들을 형상화하겠냐는 메시지창이 떠올랐고, 망설임 없이 Yes를 선택했다.
팟!
대규의 눈앞에는 방금 전 자신이 의식 속에서 만든 무기들이 나타나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눈앞에 나타난 무기들을 보고는 놀란 듯 말했다.
“호오, 대장장이 기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대단하군.”
그러자 대규는 그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건 말 그대로 의식의 대장간이니 대장장이의 기술보단 자신의 의식 속에서 제작할 무기를 어떻게 상상하고 구성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겠군. 하지만 아주 훌륭하게 만들었군.”
대규는 자신이 만든 갑옷을 입고 벼락검과 방패를 든 뒤 프로메테우스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결계를 나갈 차례군요. 그런데 이 결계는 어떻게 나가는 겁니까?”
스스로 이곳에 들어오긴 했지만 나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자네가 지닌 공략집의 힘을 이용하면 나갈 수 있지. 하지만 엄청난 의지력이 필요할 거야.”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심연의 결계는 신이 패배하거나 죽기 직전 빈사 상태에 처하면 오는 곳인 만큼 스스로 들어온 자가 나가기 위해선 들어올 때만큼의 고통을 겪어야 하지. 하지만 그대의 정신력이라면 충분히 나갈 수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대규는 공략집을 작동시켜 심연의 결계를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프로메테우스가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기다리게.”
“……?”
대규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 옆에 있는 결계의 하얀 벽 틈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스스슥-
틈이 갈라졌고 다른 티탄 신족 한 명이 그 안에서 나왔다.
“네 녀석은!”
대규는 그를 알아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와 마티가스의 봉우리에서 치렀던 최후의 전투에서 자신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던 에피메테우스였다.
그리고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이기도 했다.
대규는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 녀석이 대체 왜 여기에……?”
그러자 에피메테우스가 대규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말을 이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선택받은 자여. 나는 형과 함께 선택받은 자인 그대를 만나기 위해 역시 스스로 심연의 결계에 들어왔다. 그대는 역시 형이 만든 아카나의 구슬의 능력을 이어받은 존재였군. 그리고…….”
그는 고개를 다시 든 뒤 대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최후의 전투에서 그대는 나를 쓰러뜨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보상을 줘야겠지.”
보상이란 말에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공략집의 정보에 따르면, 분명 에피메테우스를 쓰러뜨리고 보상으로 획득하는 아이템은 아카나의 구슬 조각이었다.
에피메테우스의 양손이 좀 전에 프로메테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양손을 동시에 허공 위로 쳐들었다.
에피메테우스의 오른손 위엔 낯익은 구슬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프로메테우스가 대규에게 줬던 아카나의 구슬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그 구슬의 크기는 프로메테우스의 구슬에 비해 훨씬 작았다. 반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였다.
‘꼭 콩알만 한 걸. 그래서 아카나의 구슬이 아니라 구슬 조각인 건가.’
그리고 그의 왼쪽 손바닥 위엔 백색의 상자가 둥둥 떠 있었다.
그건 제우스가 판테온의 신들에게 보상으로 내리는 백색 상자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 외관이 좀 달랐다.
상자의 뚜껑 한가운데엔 커다란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우선 에피메테우스는 오른손에 있는 아카나의 구슬 조각을 먼저 대규에게 건넸다.
“받아라.”
“이건…….”
대규가 신기하다는 듯 구슬을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이건 내 능력이 담겨 있는 정수이다. 하지만 나는 형만큼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구슬의 크기가 부끄럽지만 이렇게 작은 것이지. 그래도 이 구슬 역시 그대가 지니고 있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백색 상자는…….”
그는 이제 왼손 위에 있는 백색 상자를 대규에게 건넸다.
상자를 건네받은 대규는 상자의 외관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백색의 상자 뚜껑 위에 커다랗게 박혀 있는 붉은 보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보석이 아니었다.
‘붉은 눈동자……?’
붉은 동공은 대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섬뜩할 정도였다.
대규는 에피메테우스를 보며 물었다.
“이것이 대체 무엇이냐?”
그러자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은 그대가 우리 티탄 신족의 왕인 크로노스를 쓰러뜨리고 얻어낸 보상이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나 혼자 쓰러뜨린 것이 아니다. 그는 나와 제우스가 힘을 합쳐서 함께 쓰러뜨렸다. 그래서 경험치도 전투의 기여도에 따라 나눠 가졌다.”
그 말을 들은 프로메테우스가 대규에게 말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네. 하지만 분명 그대가 없었으면 제우스는 크로노스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티탄 신족들은 크로노스의 보상을 그대에게 주고 싶어 한다.”
옆에서 에피메테우스가 거들었다.
“맞다. 그 거만하고 음흉한 제우스 녀석에겐 줄 수 없지.”
대규는 백색의 상자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이 붉은 눈은 크로노스의 눈동자인 걸까?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대규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열어 보거라. 그것은 최후의 전투에서 그대와 제우스를 난항으로 몰아넣었던 ‘그것’이다.”
“설마?!”
대규는 급하게 상자를 열었다.
촤아악-
상자 안에서 강렬한 백색의 빛과 거센 강풍이 뿜어져 나왔다.
얼마 후 빛과 바람이 가시자 상자 안에는 스킬 비석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판테온의 스킬 비석과 달리 새하얀 백색의 비석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고대 문자가 적혀 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대규에게 말했다.
“그것을 집어 들거라. 그대라면 크로노스의 힘을 가질 만하다. 그리고 그 힘으로 꼭 제우스를 쓰러뜨려라.”
대규는 백색의 스킬 비석을 집어 들었다.
촥!
비석이 오른손의 주먹 안에서 쫀득하게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곧 비석으로부터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으윽… 뜨겁다!”
현재 대규는 마법 저항력이나 화력 마법의 효과를 경감시켜 주는 장비들은 결계 밖에서 다 벗어 던지고 온 상태였다. 스킬 비석은 이제 대규의 손안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비석을 쥐고 있는 대규의 손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손바닥을 펴고 스킬 비석을 집어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스킬 비석은 초강력 본드로 그의 손에 붙은 것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녹아내린 비석의 하얀 액체는 대규의 손바닥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초월자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지만 참을 수 없는 강렬한 고통이 대규의 온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모든 정보가 쉴 새 없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왕왕 울리고,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 기분은…….’
분명 낯익은 느낌이었다.
맨 처음 안내인 여자로부터 아카나의 구슬을 받고 차원의 틈에 들어오자마자 그 구슬을 깨고 공략집을 습득했을 때도 이렇게 머리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분이었다.
심지어 온갖 정보가 머릿속으로 다 들어오는 기분까지 비슷했다.
얼마 후 두통과 이명이 멈췄다.
그리고 손안에서 뜨겁게 녹아내리던 백색의 비석은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규는 보유 스킬란을 확인해 봤다.
‘역시……!’
‘그 스킬’이 보유 스킬란에 안착해 있었다.
[공간 왜곡-티탄 신족의 왕 크로노스가 부리는 스킬. 자신 주변에 있는 공간은 자유자재로 변형하고 왜곡할 수 있다. 공간을 줄이거나 늘이기, 혹은 반전도 가능하다. 마나 소모 1,000.]
공간 왜곡 스킬을 손에 넣었다!
대규가 보유 스킬란을 확인하자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제우스 역시 이 스킬을 당해낼 수 없는 거로 알고 있다. 그대가 이 스킬과 새로운 무기, 그리고 우리 형제의 정수인 아카나의 구슬들을 이용해 꼭 승리하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침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었던 고대 인류를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뿌리가 남아 있는 그대가 현재의 인류를 구해 줬으면 좋겠구나.”
“고대의 인류 뿌리라고요? 혹시…….”
대규는 항상 궁금해왔던 걸 프로메테우스 형제에게 물어봤다.
“판테온의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제 몸이 판테온의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심장엔 티탄 신족의 고대 언어가 적혀 있다고도 했구요. 그것이 혹시 그대들의 힘이 담긴 아카나의 구슬, 특히 공략집 때문입니까?”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그대가 우리의 힘을 물려받게 된 이상 그대는 우리 티탄 신족들이 만들었던 고대 인류가 지니고 있던 힘과 성질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렇군요.”
이제야 여태껏 품었던 의문점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역시 대규 신체가 지닌 이상한 점이었던, 심장의 언어와 판테온의 진흙으로 구성된 육체 등은 공략집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정말로 결계를 벗어날 때였다.
프로메테우스 형제는 대규에게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규, 건투를 빈다.”
말을 마친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등장했을 때처럼 결계의 새하얀 공간으로 사라져 버렸다.
스스슥-
대규는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결계를 벗어나기 위해 공략집을 작동시켰다.
[당신은 스스로 결계에 들어온 자이기 때문에 결계를 자신의 의지로 나갈 수 있습니다. 결계 밖으로 나가시겠습니까? Yes/No]
망설임 없이 Yes를 선택했다.
그 순간 새하얀 공간의 벽에서 대규를 이곳으로 끌고 왔던 붉은 손이 수없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벽에서 뻗어 나온 손들은 대규의 몸을 감쌌다.
“으윽!”
온몸이 조여 오는 불쾌한 느낌이 사정없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속이 심하게 울렁거렸다.
플렉서블 바디 스킬을 쓸 때보다 10배 정도 강렬한 울렁거림과 불쾌감이었다.
어느새 그의 시야는 붉은 손들에 의해 완전히 차단돼 버렸다.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만만치 않군. 하지만 나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대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