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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284화 (284/294)

# 284

284화 심연의 결계 (2)

‘심연의 결계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 존재가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스스로 공격해서 심연의 결계로 들어가라는 말은 자결하란 뜻인 걸까?’

게다가 공략집이 이런 내용을 지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대규는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제우스가 점점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자신은 모든 장비와 무기들이 해제된 상태였으므로 제우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없었다.

게다가 제우스가 자신을 공격해 심연의 결계에 가둬 버리면 그는 제우스가 꺼내주기 전까진 심연의 결계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결계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스스로 결계에서 나올 수 있게 되는 걸까?’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우스에 의해 갇히게 되는 것보단 그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략집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하고 있었다.

대규는 곧 결심한 뒤 비장하게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자신을 포박하려고 다가온 영웅 중 한 명에게 달려들었다.

“으음?!”

그 모습을 본 제우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대규는 영웅이 들고 있는 칼을 재빨리 빼앗은 뒤였다.

그리고 제우스와 다른 신들이 자신에게 다가온 틈도 없이 칼끝으로 자신의 맨 가슴을 있는 힘껏 찔렀다.

푸우욱!

뜨거운 핏물이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안 돼!”

저 멀리 신들이 앉아 있는 원탁에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아테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규 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규의 시야는 급격하게 흐려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였던 건 아테나의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의식 역시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강력한 전기가 가슴 근처에 도는 것 같았고 추운 극지방에 있는 것처럼 온몸이 덜덜 떨렸다.

곧 시야가 캄캄해졌다.

스스슥-

그리고 기분 나쁜 감촉들이 자신의 온몸을 휘감는 게 느껴졌다. 곧 자신의 몸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슥-

이제 자신의 몸이 좁은 튜브 관 속을 통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 후 대규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곳은!’

사방을 둘러봐도 새하얀 백색의 공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아자토스의 궁전 속 아자토스가 있던 방이 새카만 암흑만 펼쳐져 있던 공간이라면 이곳은 그와 정반대라고나 할까. 벽도 천장도 없었고, 오로지 하얀색만이 질리도록 펼쳐져 있었다.

계속 보고 있자니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심연의 결계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이 심연의 결계?’

그렇다면 이곳은 신들에겐 감옥과도 같은 곳인 셈이었다.

어느새 피가 철철 흘러나왔던 가슴팍은 지혈이 완벽하게 돼 있었다. 의식도 또렷해졌고, 시야도 정확하게 보였다.

‘그런데 대체 공략집은 왜 나보고 이곳에 스스로 들어가라고 한 걸까.’

게다가 분명히 이 안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계 안에는 새하얀 공간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규는 혹시 몰라서 공략집의 지도창을 작동시켜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았다.

‘역시…….’

얕은 한숨을 쉬고 있을 때였다.

반짝!

지도창의 한가운데가 불현듯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붉은 점이 아닌 노란 황금색 점이었다.

붉은 점이 아닌 거로 보아 쓰러뜨려야만 하는 적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 저것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존재일까?’

얼마 후 점이 반짝이는 위치의 공간의 틈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백색의 피부에 민머리, 그리고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최후의 전투에서 싸웠던 티탄 신족이었다.

“다, 당신은?”

그 티탄신족은 붉은 눈으로 대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디어 너와 만나게 됐구나, 선택받은 자여.”

대규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에 대한 공략집의 정보가 뜨길 기다렸다.

하지만 대규의 예상과 달리 공략집이 뜨지 않았다.

‘왜 이래?’

몹시 당황스러웠다.

신들의 왕 제우스와 심지어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봤을 때도 공략집은 그들의 정보를 떠올려 줬었다.

그런데 왜 이자만 정보가 떠오르지 않는 걸까?

그러자 티탄 신족은 대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뒤 말을 이었다.

“아카나의 구슬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 것 같구나. 아, 그대가 그 구슬을 가진 이후 구슬은 이제 구슬의 형태가 아니라 ‘공략집’의 형태로 바뀌었겠군.”

그의 입에서 나온 공략집이란 단어를 들은 대규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여태껏 여러 존재가 공략집의 존재를 추리하고 추측했지만 지금 저자처럼 대놓고 공략집, 이라고 말한 자는 없었다.

당황한 대규는 그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그러자 그는 몹시 예의 바른 태도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뒤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이렇게 만나게 되니 반갑다. 나는 아카나의 구슬과 그대가 차원의 틈 시절부터 여태껏 잘 사용해 온 공략집을 만든 존재다. 그리고 그대가 최후의 전투에서 싸웠던 에피메테우스의 형이기도 하지.”

“프, 프로메테우스?”

대규는 중얼거리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나를 알고 있구나.”

도통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신화책에서 읽었던 이 프로메테우스가 공략집을 만든 존재라고?

‘너무 뜬금없잖아! 잠깐만…….’

대규는 속으로 전에 신화책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렸다.

분명 프로메테우스는 예지 능력을 지닌 티탄 신족이었다. 오죽하면 그의 이름 프로메테우스가 지닌 뜻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대규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프로메테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지닌 그 공략집은 내가 지닌 예지 능력의 집합체와도 같다. 나는 내 예지 능력의 정수를 아카나의 구슬로 만들어 인간 중 한 명에게 그것을 주기로 마음먹었지. 하지만 그게 그대가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이제라도 만나서 반갑다.”

“아, 네…….”

“그대는 공략집을 이용해 자신의 능력을 잘 개발시켰던 것 같더군. 그대의 행적은 내가 이 심연의 결계 속에서 아주 잘 봤다.”

“고맙습니다.”

간신히 인사를 하긴 했지만 대규의 마음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프로메테우스를 바라보다가 간신히 입을 열어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왜 저에게 공략집을 내리신 겁니까?”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다른 티탄 신족들은 아주 옛날 옛적에 손수 판테온의 고대 인류들을 진흙으로 빚어 만들었지. 그리고 나는 그 인간들을 사랑했다. 그들의 능력은 판테온의 신들, 정령들에 미치진 못했지만, 그들은 열심히 노력했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오히려 인간들보다 더 큰 힘을 지닌 정령들과 신들은 자만심과 자기도취에 취해 있었지.”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대규는 거만한 태도로 인간을 무시했던 아폴론을 떠올렸다.

프로메테우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판테온의 고대 인간들은 신들, 정령들보다 능력이 떨어졌지만 많은 노력을 해서 판테온의 고대 문명을 번창시켰다. 그리고 판테온의 신들을 도와 여러 몬스터들과도 싸움을 벌였지.”

“…알고 있습니다.”

대규는 책에서 읽은 내용을 기억하며 대답했다.

바로 제1차 기간토마키아!

1차 기간토마키아는 타르타로스에 갇혀 있던 거인 몬스터들과 판테온 신들 간의 전쟁이었다. 이때 인간 영웅들은 신들을 돕기위해 전쟁에 대거 참전했었다.

그중 가장 실력이 뛰어났던 인간 영웅인 헤라클레스는 그 전쟁 이후 전공을 인정받아 보상으로 신의 육체를 얻기도 했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서글픈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항상 판테온의 고대 인간들을 경계했다. 오히려 자신들을 도와준 인간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탄압했지. 인간들이 혁명이라도 일으킬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기득권의 두려움이랄까. 그대라면 제우스가 당시 인간들을 괴롭혔던 일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일들 때문에 제우스와 반목하기도 했지.”

대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책에서 읽은 사건들일 것이다.

게다가 대규 자신이 알고 있는 제우스라면 능히 그럴 만한 인물이었다. 아마도 그는 인간들이 더더욱 강해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판테온 신들의 지위를 위협할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제우스는 신들의 지위가 위협될 것 같으면 그 존재들을 가차없이 탄압해 버린다.

‘그래서 나도 결계에 가두려고 했던 거겠지.’

대규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한편 프로메테우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우스는 인간들에게 불을 빼앗아가기까지 했지만 내가 희생을 해서 다시 불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진노한 제우스는 나를 심연의 결계에 이렇게 가둬 버렸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은 급격하게 침울해졌다. 그는 입을 열어 비장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그 이후 크나큰 비극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생각에 내 예지 능력을 이용해 공략집을 만들었다.”

비극, 이란 단어를 말할 때 그의 표정엔 분노까지 서려 있는 듯했다.

“비극이라구요?”

“…그렇다. 그 비극에 관해 이야기해 주기 위해서 나는 그대를 이곳 심연의 결계에 스스로 걸어 들어오게 한 것이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거라. 나는 앞으로 자네가 해야 할 행동들을 말해 줄 것이다.”

“그게 대체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대는 내가 하라는 대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자네 자신과 자네가 꾸려 왔던 부대의 인간 출신 영웅들, 더 나아가서는 자네가 현실에서 살고 있는 지구까지 구해 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일세.”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프로메테우스의 말을 들은 대규는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젠 지구까지 구해 내야 한다고?’

어이가 없었다.

“대체 무슨 비극이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 겁니까?”

대규가 당황해서 묻자 프로메테우스는 그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혹시 ‘트로이의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가?”

대규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과 인간 영웅들이 참전한 커다란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 이유는 좀 유치하기까지 했다.

판테온 신들의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여신 에리스(Eris)가 남긴 황금 사과를 두고 판테온의 여신들이 서로 다투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트로이 왕국의 왕자 파리스가 심판을 내리게 됐고, 사과는 아프로디테에게 갔다.

아프로디테는 그 대가로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그에게 그 당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줬다.

문제는 헬레네가 이미 결혼을 한 스파르타의 ‘왕비’였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마누라를 눈뜨고 빼앗긴 트로이의 왕이자 인간 영웅이었던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한 원정 길에 나선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발발 원인이었다.

이 전쟁은 거의 10년 동안 지속했는데 그 도중에 어마어마한 사상자와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심지어 1차 기간토마키아때 신들을 도와줬던 주요 인간 영웅들이 많이 희생당하기도 했다.

결국 전쟁은 그리스 군이 이겼지만 모든 전쟁이 그렇듯 땅은 황폐해졌고, 사상자들의 시체가 산더미를 이뤘다.

대규는 책에서 읽은 이 내용을 떠올리며 프로메테우스에게 말했다.

“나도 트로이의 전쟁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이 당신이 얘기하려는 비극입니까?”

“그러하네.”

그 말을 들은 대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고 항상 승리를 위해 누군가는 희생당합니다. 그건 제가 겪었던 이번 기간토마키아 전쟁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트로이의 전쟁이 특히나 비극이 될 이유가 있습니까?”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넨 아무것도 모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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