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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283화 (283/294)

# 283

283화 심연의 결계 (1)

대규는 제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 앞으로 다가갔다.

자신을 바라보는 제우스의 눈빛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온화했다.

“전쟁의 신으로서 그대의 실력을 잘 볼 수 있었던 전투였다. 그대로서도 의미 있었던 첫 출전이었겠지.”

“감사합니다.”

“나는 그대가 아니었다면 크로노스를 해치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눈빛은 어두웠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신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때 제우스가 자신의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뭐지?’

척척척척-

신전의 입구 쪽에서 수십 명의 영웅이 다가왔다. 방금 전 신전의 문을 열어 줬던 문기지도 포함돼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원탁에 앉아 있던 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대규는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제 몹시 차가워져 있었다.

제우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자를 포박하도록 하라.”

“……!”

수십 명의 영웅이 대규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그를 둘러쌌다.

그리고 그들은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밧줄을 꺼내 그를 포박하려 했다.

대규는 그들을 둘러보며 일갈하듯 외쳤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대규의 기세에 눌린 영웅들은 포박하려던 행동을 멈췄다. 그러자 이번엔 제우스가 소리쳤다.

“포박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는가!”

제우스의 기세와 대규의 기세에 눌린 영웅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대규는 제우스와 똑같은 초월자의 육체를 지닌, 동일한 서열의 신이 됐기 때문이다. 그들로선 누구의 명령을 들어야 할지 몰랐다.

원탁에 둘러앉아 있는 다른 신들도 놀라서 웅성거리며 대규와 제우스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 역시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몹시 놀라고 당황한 것 같았다.

대규는 이제 제우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그러자 제우스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대와 최후의 전투를 같이하면서 나는 그대에게 충분히 수상한 점들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대를 더 이상 판테온의 신 지위에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무슨 수상한 점 말이오!”

대규는 더 이상 경어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제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그대는 어떻게 마티가스의 봉우리에 도착하자마자 티탄 신족들이 오고 있는 걸 알았지?”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이번 전투에서 일부러 그대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분명 그대는 나와 포세이돈, 하데스와 처음 마티가스의 봉우리에 도착해서 똑같이 적들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그대는 허공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녀석들이 나타났습니다, 라고.”

“그건…….”

대규가 뭐라 변명하려 했지만, 그는 그 틈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티탄 신족들은 분명 봉우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분명 그대는 그렇게 말했고, 그 이후 정말로 티탄 신족들이 나타났다. 그대는 대체 그들이 나타날 걸 미리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나는 이 점이 참으로 수상했다. 이에 대해 어디 한번 설명해 보도록 하라.”

빌어먹을.

그때 대규가 그렇게 말했던 건 공략집의 지도창에 나타난 붉은 점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제우스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공략집에 대한 이야기까지 줄줄 해야 했다.

대규는 대신 제우스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그건 억지입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 나를 포박하려 든단 말이오?”

하지만 제우스는 여전히 차갑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대는 크로노스가 지니고 있던 그 해괴한 기술을 보고 나서도 수상한 행동을 했다. 내가 그대에게 저 기술에 대해 조심하라고 충고하자 분명 그대는 나에게 그 기술에 대해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대체 그대는 크로노스가 지닌 기술을 어떻게 알고 있을 수 있었지? 그대는 여태껏 내 아버지 크로노스를 본 적도 없다. 심지어 그가 지녔던 그 기술은 아들인 나조차도 처음 본 기술이었는데 말이다.”

“그, 그건…….”

대규는 말문이 막혔다.

최후의 전투에서 분명 제우스는 자신에게 크로노스가 이상한 스킬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 대규는 저도 모르게 알고 있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분명 그 당시 제우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순간이었고, 이후 별말이 없어서 대규는 무사히 넘어갔다고만 생각했다.

당시엔 별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어.’

제우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크로노스와 싸웠던 그대의 모습을 난 똑똑히 보았다. 정말 놀라웠던 건, 그대는 크로노스가 그 이상한 스킬을 구사하는 타이밍을 알고 있는 것처럼 싸웠다는 것이다.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말이야.”

“…….”

“나는 이 모든 사항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고 싶다. 그대가 진정으로 우리 판테온을 위하는 판테온의 신이라면 솔직하게 밝혀야 할 사실들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것들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모든 신이 대규와 제우스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대규 역시 제우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판테온 신들의 왕으로서 그대를 심연의 결계에 가둘 수밖에 없다. 그대는 이제 위협적인 존재이니까 말이야.”

위협적인 존재!

그 말을 하는 제우스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대규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저것이 그의 본심이겠지.’

여태까지 제우스가 자신이 지닌 비약적인 능력에 대해 이처럼 본격적으로 따지고 들지 않았던 건 어쩌면 여태까지 대규의 실력이 신들의 왕인 자신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어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대규가 차원의 틈부터 승승장구해 오고 세미데우스에 신의 육체를 얻었어도 제우스는 아직까지는 대규가 자신의 아래에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대규가 초월자의 육체를 얻자 상황이 달라졌다.

확실히 그는 대규가 초월자의 육체를 얻은 후부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대규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대규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왜냐면 이번에 겪었던 최후의 전투로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은 이 공략집에 티탄 신족의 힘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규는 자신과 처음에 싸웠던 티탄 신족 에피메테우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의 능력은 아카나의 구슬에 의한 능력임이 확실하군. 네가 그 구슬을 지니게 됐을 줄이야…….’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면서 들었던 에피메테우스의 속마음도 기억했다.

‘아카나의 구슬을 지닌 능력자,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선택받은 자가 드디어 나타났다!’

따라서 대규는 이 공략집이 티탄 신족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하지만 만약 제우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대규는 당장 심연의 결계로 끌려들어 갈지도 몰랐다.

‘아니다, 어쩌면 티탄 신족 고대 언어가 적혀 있다는 내 심장이 파헤쳐질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둘 다 별로 좋지 않은 결말이었다.

‘제기랄, 솔직하게 말해도 난리가 날 것이고, 그냥 입 다물고 있어도 난리가 나겠군.’

대체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대규는 잠깐 고민을 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그런데 이제 제우스와 나는 동등한 등급의 육체를 지닌 상태가 아닌가?’

둘 다 초월자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 대규는 예전처럼 제우스 앞에서 저절로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제우스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크로노스를 상대로 치명상까지 입히고 왔다.

‘게다가 우리 둘 다 초월자 등급 무기를 지니고 있다. 육체로나, 무기로나 나는 전혀 제우스에 밀리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제우스와 싸워서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그건 너무 무리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곳엔 자신과 제우스가 단둘이 있는 게 아니었다. 포세이돈과 하데스, 그리고 다른 판테온의 2세대 신들이 잔뜩 있었다.

그때 제우스가 대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대가 설명하지 않겠다면 좋다. 그럼 나는 그대를 심연의 결계에 가둘 수밖에 없다.”

제우스는 자신의 무기인 벼락을 들고 대규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자 대규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꺼내 들었다.

화르륵-

칼날에서 악마의 화염이 위협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두 신의 눈빛이 서로 맞부딪혔고, 중앙 신전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제우스가 원탁에 앉아 있던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헤파이스토스, 이리로 나와 보게.”

“예.”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제우스 앞에 다가왔다.

제우스는 대규가 입고 있는 갑옷과 장비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벼락검을 본 뒤 헤파이스토스에게 물었다.

“헤파이스토스, 저자가 지니고 있는 장비와 갑옷 등은 다 자네가 만든 것이 아닌가?”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자네의 손을 적어도 한 번쯤은 거친 장비들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자 제우스는 비장한 목소리로 헤파이스토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그럼 무기 제작자의 권한으로 저 모든 장비를 저자로부터 해제시켜 버리게.”

“하, 하지만… 제우스 님, 그건… 저 장비들은 이미 대규 님에게 귀속된 상태입니다.”

“님이란 칭호는 거두게!”

제우스는 심히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저자는 어쩌면 우리의 적일지도 모른단 말일세.”

“그, 그렇지만…….”

망설이고 있는 헤파이스토스를 보며 제우스가 말했다.

“헤파이스토스, 자네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자네가 손댄 모든 장비에 그 장비들을 사용자로부터 해제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불어넣었다는 건 내가 다 알고 있네. 만약 지금 당장 그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그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헤파이스토스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 역시 심연의 결계에 가둬 버리겠네.”

“히익, 알겠습니다!”

헤파이스토스는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대규의 몸에 입고 있던 갑옷과 걸치고 있던 장비들, 방패, 그리고 벼락검마저도 대규의 몸에서 떨어져 허공에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대규의 몸에 걸친 장비와 무기 중 헤파이스토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비는 단 하나도 없었다.

네메시스의 방패나 닥튈로이의 목걸이, 벼락검들 등도 처음에는 분명 자신이 얻어 낸 장비들이었지만, 그간 업그레이드를 위해 항상 헤파이스토스에게 맡겨 왔었다. 그 장비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대장장이는 판테온에서 헤파이스토스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비 해제 능력을 숨겨 놓았을 줄이야…….’

이제 대규는 완벽하게 맨몸이 됐다.

정확히는 맨몸에 초월자의 육체만 지닌 상태였다.

이젠 좀 전처럼 제우스와 대치할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없게 됐다. 이대로 제우스와 바로 결투를 한다면 심연의 결계로 끌려들어 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때 제우스가 다시 벼락을 들고 다가왔다.

“입을 열어서 할 말을 해 보라. 그렇지 않으면…….”

제우스가 들고 있는 벼락 끝부분이 공포스럽게 번쩍였다. 치직, 치직, 하는 소리를 내며 전기 자기장들이 무섭게 번쩍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공략집이 이런 건 안 알려 주나?!’

그때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창 내용을 읽은 대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제우스에게 공격 당하기 전에 스스로를 공격해 심연의 결계로 들어가십시오.>

<심연의 결계 속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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