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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280화 (280/294)

# 280

280화 크로노스 (1)

대규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전투에서 밀리고 있다니.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눈에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멀리 떨어져 있었던 티탄 신족의 왕 크로노스가 눈 깜짝할 사이 어느새 제우스의 코앞으로 다가가 목을 조르고 있었다.

‘순간 이동 능력이라도 지니고 있는 건가? 스피드가 너무 빠르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우스의 목덜미는 크로노스의 하얀 손에 보기 좋게 잡혀 있었다. 곧 제우스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우스의 뒤쪽 허공에서 작은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스스슥-

패배한 신을 데려가는 심연의 결계였다.

‘제우스가 정말 심연의 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단 말이야?’

감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가 정말로 결계 안에 빨려 들어가면 더 볼 것도 없이 판테온의 패배였다.

대규는 제우스와 크로노스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옵티뭄을 몰고 날아갔다.

그 순간 크로노스와 눈이 마주쳤다.

‘응?’

분명 크로노스는 10미터 앞 정도의 거리에 있었는데 어느새 순식간에 멀어졌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정말로 순간이동인건가?’

그때 대규의 눈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공략집-

신족 이름: 크로노스(Cronus)

보상: 초월자 등급의 스킬

특징: 티탄 신족의 왕이자 제우스의 아버지. 예전에 판테온을 다스렸던 경력이 있다. 한때 제우스에 의해 심연의 결계에 갇혔지만, 다시 살아 나와서 외계인과 다른 티탄 신족을 이끌고 제2차 기간토마키아를 일으켰다. 크로노스를 해치우면 기간토마키아는 판테온의 승리로 끝난다.

보유 스킬:

공간 왜곡-주변에 있는 공간을 자유자재로 늘리고 접고 하며 왜곡시킨다. 이 스킬 하나만으로 크로노스는 온갖 적을 제압해 왔다. 마나 소모 500.

<크로노스는 불사(不死)의 존재입니다.>

<크로노스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봉인을 할 수는 있습니다.>

<크로노스를 심연의 결계에 봉인하려면 초월자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크로노스는 확실히 다른 신들과는 달랐다. 다른 신들은 그들을 심연의 결계에 봉인하려면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나 아이템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를 봉인하려면 초월자 등급 이상의 무기가 필요하단다.

‘그런데 저 스킬은 뭐지?’

티탄 신족의 왕이라길래 화려한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가 지니고 있는 스킬은 딱 한 가지였다.

공간 왜곡.

대규로선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공간을 왜곡한다고? 설명으로만 봐선 어떤 스킬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저 스킬 하나만으로 온갖 적을 제압했다고 한다.

‘잠깐, 설마 방금 봤던 순간 이동 능력 같은 게 저 스킬인가?’

설명만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략집은 스킬들의 시전 영상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대규는 공략집의 영상을 재생했다. 그러자 공간 왜곡 스킬을 시전하는 영상이 나왔다.

스킬 시전 영상을 본 대규는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스킬은 말 그대로 공간을 왜곡하는 스킬이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공간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심지어 좌우를 반전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눈엔 변하는 공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방금 전 크로노스가 제우스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으로 다가갔던 것도 그 스킬의 일환이었다.

크로노스는 자신과 제우스 사이에 있는 공간을 확 줄여 버려서 단번에 앞으로 가게 된 것이다. 실제로 크로노스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 사이에 있는 공간이 줄어든 것뿐이다.

물론 상대방인 제우스와 대규의 눈에는 줄어든 공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크로노스가 순간 이동 능력을 쓴 것처럼 빠르게 이동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게다가 방금까지 대규의 10미터 앞에 있던 크로노스가 훌쩍 멀어지게 된 것도 이 스킬 때문이었다. 크로노스는 자신과 대규가 서 있는 공간의 길이를 늘려서 저 멀리 도망친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그리 위협적인 스킬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정도의 위력과 효과라면 공간왜곡 스킬은 단순히 남들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이동 스킬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스킬이 정말로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규는 공략집의 스킬 시전 영상에 눈을 고정했다.

영상 속에선 자신이 크로노스를 공격하려 하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영상 속의 대규는 크로노스에게 불카누스의 벼락검 끝을 들이대며 그의 가슴팍을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벼락검의 공격을 막지도 않았다.

그리고 벼락검의 끝이 크로노스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푸욱!

대규는 영상을 보고 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영상 속의 자신은 크로노스의 가슴팍을 찔렀는데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건 영상 속 자신의 가슴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영상 속의 크로노스는 대규가 칼로 자신의 가슴팍을 찌르기 직전 그들 사이의 공간을 좌우로 반전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서 대규의 칼끝은 실제로 크로노스가 아니라 반대편에 있던 자기 자신을 공격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크로노스는 상대방의 공격을 이용해 오히려 그를 공격했다.

그는 공략집의 영상을 끄고 제우스와 크로노스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전투 양상은 영상으로 봤던 것들이었다.

이제 제우스와 크로노스는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제우스는 광역 스킬이 아니면 그를 공격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크로노스가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로 자신의 가슴팍을 가격하려고 했다.

‘안 돼!’

대규가 제우스를 향해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제우스의 가슴팍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크로노스는 자신을 공격하는 척하며 공간을 반전시켜 실제론 자신의 칼날이 제우스를 공격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크윽…….’

제우스는 아무런 공격도 하지 못한 채 크로노스에게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당했다.

저런 스킬을 지니고 있다면 제우스가 아무리 위력적인 벼락을 지니고 있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뭐 저딴 사기 스킬이 있어.’

하지만 일단 저 전투에 끼어들어 제우스를 도와줘야 했다. 저대로 제우스가 패배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다른 판테온의 신들인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각자의 전투 중이라 제우스를 전혀 도와줄 수가 없었다.

대규는 제우스가 있는 곳으로 재빨리 날아갔다.

“제우스 님!”

“크윽, 대규 아닌가…….”

제우스는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려 시나티오 스킬로 상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가 상대한 에피메테우스는 어떻게 된 거지? 벌써 그를 쓰러뜨렸단 말인가?”

“녀석은 도망쳤습니다.”

“뭐라고? 도망쳤다고?”

제우스가 놀라서 대규에게 물었고 대규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도 영문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제우스 님을 돕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알겠다. 조심하거라. 내 아버지이기도 한 저자는 이상한 스킬을 구사하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그때 대규를 바라보는 제우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알고 있다고?”

그 눈빛을 본 대규는 아차 싶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것인가? 제우스는 내가 공략집을 지니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데.’

그래서 황급히 자신의 말을 바꿨다.

“알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대규는 저 멀리에서 실실 웃고 있는 크로노스를 바라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크로노스가 공간 왜곡 스킬을 쓰는 시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시점을 모르고 마구잡이로 그를 공격했다간 오히려 공간 왜곡 스킬에 당해 대규가 자신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을지도 몰랐다.

한편 대규가 나타나자 크로노스는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새로운 판테온의 신인가? 처음 보는 얼굴이로구나.”

대규는 그런 그를 향해 호기롭게 외쳤다.

“내가 판테온의 새로운 전쟁의 신이다.”

그 말을 들은 크로노스는 제우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들이여, 이자는 그대가 새롭게 낳은 자식이냐? 흐음, 생긴 거로 봐선 그런 것 같지 않군. 어쨌든 네 녀석도 제우스와 함께 심연의 결계에 가둬 주마. 내가 그 결계 속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는구나!”

말을 마친 크로노스는 어느새 자신과 대규 사이의 공간을 확 줄여 대규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빌어먹을! 저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만 있다면…’

크로노스는 코앞에서 검을 꺼내 대규를 공격했다. 하지만 대규는 자신의 벼락검을 꺼내 휘두르지 못하고 오른손의 방패만 들이밀었다.

자칫 잘못해서 공격했다가 그가 공간을 반전시켜 버리면 큰일이었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공격을 막기만 하는 대규를 보며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너는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거냐? 아무래도 겁에 질린 것 같구나. 이런 그대가 판테온의 전쟁의 신이라니! 하하하! 판테온의 신들도 많이 나약해졌군!”

크로노스는 대규를 도발하고 있었다. 그래야 대규가 공격을 개시할 것이고 그때부터 그는 공간 왜곡 스킬을 써서 대규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하지만 대규는 그런 그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다.

‘제길, 저자가 언제 그 스킬을 쓸 수 있을지만 알아도…….’

그때 뒤쪽에서 제우스가 날아와 벼락을 들고 크로노스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시여, 당신의 상대는 저입니다!”

제우스의 오른손에는 벼락이 들려 있었다. 그는 다시 크로노스를 향해 자신의 벼락으로 공격하려 했다. 그가 벼락을 있는 힘껏 허공에 휘두르자 보랏빛 하늘에 엄청난 굉음이 일기 시작했다.

쿠르릉… 콰콰쾅!

몰려오는 구름을 본 대규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아이기스의 방패를 이용해 불러냈던 제우스의 벼락은 이 벼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기스가 불러냈던 벼락은 아기 벼락에 가까웠다.

우선 몰려드는 구름의 양도 몇 배는 많았고 떨어지는 벼락의 양도 훨씬 많았다.

콰콰쾅! 콰지직!

벼락들이 사방의 봉우리들을 다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는 벼락은 크로노스의 정수리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스피드였다.

‘희망이 있어. 저 정도의 스피드라면 크로노스가 스킬을 쓰기 전에 공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규의 예상대로 벼락은 크로노스를 공격했다.

분명 거대한 그림자가 제우스의 벼락을 오롯이 다 맞았다.

적어도 대규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공격이 성공한 건가?’

곧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하지만 좀 전까지 분명 크로노스가 서 있던 그곳엔 이제 완전히 다른 존재가 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 옆쪽에서 티탄 신족 휘페리온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포세이돈이었다.

“크으, 크으으…….”

포세이돈은 온몸으로 벼락을 맞은 채 쓰러져 버렸다.

“이런 비열한 자식!”

대규는 큰 소리로 하늘을 향해 외쳤다.

크로노스는 공간을 왜곡시켜서 저쪽에 있던 포세이돈을 이쪽으로 끌고 온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유유히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크으으… 제우스 님…….”

포세이돈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쓰러진 포세이돈 위쪽의 허공에서 틈이 쭈욱 갈라지기 시작했다.

심연의 결계가 열렸다.

결계 안에서는 징그러운 붉은 손들이 나와 포세이돈을 붙잡고 틈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전에 디오니소스를 끌어들였던 손들과 비슷한 것들이었다.

크로노스는 어느새 이쪽으로 다가와 결계 안으로 끌려들어 가는 포세이돈을 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리고 제우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하하하, 제우스여. 그대의 벼락이 그대의 아우를 심연의 결계에 갇히게 만들었구나.”

크로노스의 민머리와 붉은 눈동자가 그렇게 사악해 보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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