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
278화 최후의 전투 (2)
100미터 밖이었지만 그림자들은 몹시 거대했다.
‘대체 얼마나 큰 거야?’
대규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제우스가 포세이돈과 하데스, 그리고 대규를 보며 말했다.
“우리도 몸을 키워야겠지.”
그리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플렉서블 바디!
쑤우욱-
위액이 역류하는 메스꺼운 느낌은 여전했다. 그 느낌과 함께 4명의 몸은 커졌다. 곧 티탄 신족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전에 제우스의 홀로그램에서 본 것처럼 다들 똑같이 생겼다.
실제로 보니 그들의 외관은 더욱 징그러웠다.
혈관이 다 비쳐 보일 정도로 하얀 백색의 피부에 민머리였다. 그리고 눈은 루비처럼 붉었다. 심지어 흰자와 검은자의 구분이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상한 소재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저 소재는!’
대규는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을 보자마자 눈동자가 커졌다.
갑옷의 소재는 익숙한 것이었다.
‘귀아스페룸!’
예전에 자신이 거인들의 지하 감옥 카르케르에서 얻어 왔던 그 전설의 금속과 동일한 것이었다.
분명 귀아스페룸의 아이템 설명에는 거인들이 이용하는 금속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하긴, 티탄 신족들도 크게 봐서는 거인들에 속하니까… 이 녀석들 역시 귀아스페룸을 이용할 수 있는 거겠지.’
그때 대규 옆에 서 있는 하데스가 대규에게 말했다.
“대규,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녀석이 에피메테우스입니다.”
그 말에 대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저 녀석을 처치하도록 하지요.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제우스 님.”
하지만 제우스는 대규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각한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왜 저러지?’
대규는 다시 한번 제우스를 바라보며 그를 불렀다.
“제우스 님?”
그제야 제우스는 대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알겠다. 출전하도록 하라.”
왜 저러는 걸까.
제우스는 전투 상황에서 저렇게 넋 놓고 있을 신이 아니었다. 그의 저런 태도는 확실히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대규는 신경 쓰지 않고 에피메테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이럇!”
고삐를 잡아당기자 옵티뭄의 겨드랑이에 있는 날개가 활짝 펴졌다. 그리고 옵티뭄은 에피메테우스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에피메테우스와 가까워지자 공략집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신족 이름: 에피메테우스(Epimetheus)
보상: 아카나의 구슬 조각(등급 ???)
특징: 티탄 신족의 일원 중 하나인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형과 함께 판테온의 진흙으로 고대 인류들을 빚었다. 뛰어난 예지 능력과 전투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능력은 형에 미치지 못한다. 특이한 스킬은 없으나 ‘판도라의 상자’라는 특수 아이템을 지니고 있다.
보유 아이템
판도라의 상자-에피메테우스가 가지고 있는 마법 상자로 그것을 열면 온갖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상대방을 공격한다. 한 전투에서 한 번만 열 수 있다.
<에피메테우스는 불사(不死)의 존재입니다.>
<에피메테우스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심연의 결계에 봉인을 할 수는 있습니다.>
<에피메테우스를 심연의 결계에 봉인하려면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공략집을 읽은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에피메테우스는 어쨌든 티탄이지만 신족이기 때문에 판테온의 신들처럼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 역시 불사의 존재였기 때문에 심연의 결계에 가둬야 했다.
이거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다음 두 가지였다.
우선 에피메테우스가 보유 스킬 대신 보유 아이템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녀석은 특이한 스킬 대신 판도라의 상자라는 아이템을 써서 적을 공격하는 것 같았다. 아이템을 써서 적을 공격하는 패턴은 대규가 여태까지 본 적들의 패턴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라면 분명…….’
대규는 신화 책에서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는 예전에 제우스가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 상자였다. 정확히는 아리따운 인간 여성인 판도라와 함께 딸려 보낸 상자였다.
에피메테우스는 아리따운 여성인 판도라를 아내로 삼았지만, 제우스의 상자는 열어 보지 않았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를 싫어했기에 상자 속에는 분명 좋지 않은 게 있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열었고, 상자에선 온갖 재앙과 질병, 부정적인 감정들이 튀어나와 인간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에피메테우스가 지니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란 아이템은 적을 공격하는 흉측한 몬스터들이 잔뜩 들어 있는 상자 같았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보다도 더욱 대규를 놀라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보상에 적힌 아카나의 구슬 조각이었다.
그것을 본 대규는 할 말을 잃었다.
‘아카나의 구슬이라고?’
처음에 그는 보상란에 적힌 그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분명 자신은 어디선가 저 아카나의 구슬이란 걸 본 적이 있었다.
한참 동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니 드디어 생각이 났다.
맨 처음 정체불명의 안내인 여자를 통해 차원의 틈으로 끌려왔을 때, 분명 차원의 틈에 처음 진입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이 바로 아카나의 구슬이었다.
그때는 안내인 여자조차 그 구슬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녀가 설명하지 못한 거겠지만.’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 구슬 덕분에 이 공략집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분명 자신은 그 구슬을 얻은 뒤 현실과 똑같이 생긴 차원의 틈 세계로 돌아왔다.
몬스터들이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왔던 그 차원의 틈 세계에서 실수로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아카나의 구슬을 땅바닥에 떨어뜨렸었다.
‘분명 나는 구슬을 그때 깨뜨렸다. 그리고 그 깨진 구슬에서 새어 나온 빛이 분명히 내 머리를 향해 들어왔지.’
이후 정체 불명의 수많은 문자가 머릿속에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왔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었다.
[축하합니다! 차원의 틈 공략집을 습득하였습니다.]
그것은 벌써 한참 전의 일이지만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났다.
분명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공략집은 아카나의 구슬에서 나온 것이었다. 적어도 대규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는 그 아카나의 구슬이란 게 대체 뭔지 알지도 못했다.
왜냐면 아무리 바라봐도 아카나의 구슬에 대한 아이템 설명은 물음표 뿐이었다.
공략집으로도 그 구슬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없었다. 왜냐면 이미 공략집을 습득했을 땐 그 구슬이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구슬은 완전 그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에피메테우스의 공략집 정보 보상란에서 저 ‘아카나의 구슬 조각’이란 단어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어쨌든 저 녀석을 꼭 해치워서 아카나의 구슬 조각을 받아야 한다. 이 공략집은 확실히 티탄 신족들과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다.’
대규는 이런 생각을 하며 에피메테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에피메테우스 역시 자신에게 달려오는 대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흐음, 너는 여태까지 못 보던 녀석이구나. 판테온의 새로운 신인 건가?”
그의 목소리는 생긴 외모와 달리 멋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후했다.
대규는 그의 붉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다.”
“후후, 판테온의 신 녀석들은 이 에피메테우스가 어리다고 너무 얕보는 것 같군. 겨우 이제야 신이 된 애송이를 내 상대로 짝지어 주다니.”
“애송이인지 아닌지는 이제부터 보면 알게 되겠지.”
대규는 이렇게 말한 뒤 허리춤에서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꺼냈다. 그리고 에피메테우스를 향해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에피메테우스는 대규의 검을 피하는 대신 팔을 들어 직접 대규의 검을 막았다.
귀아스페룸으로 만들어진 갑옷 자체가 단단한 방패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규의 검 역시 귀아스페룸으로 만들어진 검이었다.
‘그뿐이 아니지. 돌풍의 조각까지 달았다구!’
콰콰쾅!
굉음과 함께 에피메테우스의 팔과 대규의 사슬 검날이 부딪혔다.
“레툼 익투스!”
대규는 재빨리 검을 에피메테우스의 팔에서 땐 뒤 타고 있던 옵티뭄의 몸에서 높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머리 위로 검을 쳐들며 휘둘렀다.
휘리릭-
화륵, 화르륵!
돌풍을 품은 거대한 화염들이 에피메테우스를 향해 날아갔다.
한편, 그 모습을 본 에피메테우스는 깜짝 놀랐다.
‘저 자식, 거인들이 지닐 수 있는 강철인 귀아스페룸으로 만들어진 무기를 지니고 있어? 귀아스페룸은 거인들의 감옥 심연부에서나 얻을 수 있는 건데…….’
게다가 대규가 휘둘러 생성한 돌풍을 품은 화염들은 딱 봐도 무시무시해 보였다. 에피메테우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염 돌풍을 향해 들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간 검기가 화염 돌풍을 휘감기 시작했다.
휘리릭!
둘의 실력은 용호상박이었다.
화염 돌풍과 검기가 맞부딪히며 거대한 굉음을 냈다!
콰쾅!
이윽고 두 힘이 크게 상쇄되며 돌풍과 검기는 동시에 사라졌다.
‘실력이 거의 비슷하구나!’
이제 에피메테우스는 자신이 지닌 아이템인 판도라의 상자를 꺼내고 있었다.
대규는 그 모습을 포착했다.
‘상자를 꺼냈군!’
공략 영상을 보니 저 상자를 열기 전에 상자를 빼앗아 망가뜨리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
저 상자가 열리면 온갖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되면 머릿수만으로도 대규가 밀리고 녀석을 해치우는 데 시간도 많이 소모될 터였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엄청난 몬스터들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외관이 아주 후줄근하게 생겼다. 만약 대규가 공략집을 통해 저 상자의 정체를 간파하지 못했다면 에피메테우스가 저 상자를 꺼내는 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대규는 상자를 향해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휘둘렀다.
‘무조건 상자를 열기 전에 저것을 파괴해야 한다!’
한편, 에피메테우스는 자신이 아닌 상자만을 노리고 공격하는 대규를 보며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는 상자를 열려고 했지만, 대규가 끈질기게 상자를 공격하는 통해 그것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저 자식, 혹시 이 상자에 대해 알고 있나?’
자신이 지닌 판도라의 상자는 티탄 신족들만이 알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판테온의 신들은 이 상자가 지닌 기능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이 상자의 기능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유독 상자만 공격하고 있었다.
‘확실히 저 녀석은 이상하다.’
거인들만이 애용하는 금속 귀아스페룸으로 만들어진 무기를 들고 있는 것도 그랬고 이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그랬다.
‘게다가, 아까 처음 봤을 땐 몰랐는데, 저 녀석의 육체는 신의 육체가 아니다. 제우스 녀석과 같은 초월자의 육체!’
하지만 녀석은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따라서 근 수백 년 동안 신이 된 애송이 신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애송이 신이 초월자의 육체를 얻었다고?’
에피메테우스가 알고 있는 한 판테온의 신 중에서 초월자의 육체를 얻은 신은 제우스밖에 없었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지? 잠깐, 혹시 저 녀석은…….’
에피메테우스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뭔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저 녀석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하지만 일단은 빨리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했다.
에피메테우스는 있는 힘을 다해 방어 결계를 쳤다. 곧 대규가 쏘아 버린 화염을 품은 돌풍이 그를 향해 돌진해 왔지만 그를 바로 공격하진 못했다.
결계가 막아준 탓에 그는 상자를 열 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철컥.
상자가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고 끈적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얼마 후 연기 안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보였다.
대규는 그 그림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