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
277화. 최후의 전투 (1)
대규의 육체는 판테온의 진흙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은 분명 판테온에 존재했던 고대 인류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인류들은 멸종했다고 하지 않았나.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아스클레피오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몸은 티탄 신족들이 만든 것이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로 자랐다지만, 분명 인간인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다. 티탄 신족들은 대규의 부모가 아니었다.
‘뭔가 잘못된 것일 거야.’
대규는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내렸다.
하지만 좀 전처럼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추가로 떠오르거나 하진 않았다.
읽다보니 티탄 신족들은 머릿수가 꽤 됐지만, 그중에도 네임드 신족들이 있었다.
마치 지금 판테온의 신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표적으로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있었고, 몇몇 생소한 이름들이 보였다.
휘페리온(Hyperion), 오케아노스(Oceanos), 코이오스(Coeus)…….
그런데 그중에서도 대규의 눈길을 끄는 티탄 신족의 이름이 하나 있었다.
바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였다.
순간 책에서 그 이름만 빛나 보였던 건 착각이었을까.
대규도 익히 프로메테우스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신이었다.
하지만 그도 티탄 신족인 줄은 몰랐다.
대규는 책의 내용을 읽어 내렸다.
책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그 어떤 신보다도 인간을 사랑하는 신족이었다. 게다가 완벽한 ‘예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흐음…….’
그 예지 능력 덕분에 그는 제우스가 티탄 신족과 치렀던 대전투에서도 티탄 신족의 패배를 예견하고는 재빨리 판테온의 신들에게 투항했다. 그래서 전투가 끝난 후에도 그는 크로노스와 달리 제우스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
‘처벌이란 심연의 결계를 뜻하는 말일 거다. 한마디로 그는 심연의 결계엔 갇히지 않았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전투가 끝난 후 그는 판테온에서 항상 인간들의 편을 들었다. 당시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와 다른 티탄 신족이 진흙으로 빚은 고대 인류였다. 그래서 애착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와 사이가 틀어지기에 이른다.
제우스가 판테온을 다스리게 된 이후 고대 인류와 판테온의 신들이 각각 소의 어떤 부위를 먹을 지 선택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지방으로 쓸모없는 뼈를 두르고, 가죽으로 살코기를 덮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를 제우스에게 바치며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정하라고 했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답게 당연히 프로메테우스의 속임수를 간파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뼈가 들어 있는 쪽을 선택했다.
‘우리도 프로메테우스가 어디까지 무례한 짓을 하나 두고 본 것이겠지.’
그리고 정말로 도를 넘는 순간이 오면 아마 무서울 정도로 처벌하려 했을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제우스의 성격이라면 능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제우스는 당연히 가만있지 않았다. 이후 그는 판테온의 고대 인류들로부터 불을 빼앗아 버렸다. 그래서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 덕분에 살코기를 가졌지만 고기를 익혀 먹을 수 없게 됐다.
이에 프로메테우스는 다시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와서 인간들에게 전해줬다.
인류 입장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엄청난 영웅이지만 제우스의 입장에선 천하의 못된 놈이었다.
결국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산에 묶고 매일 독수리에게 간이 쪼이는 벌을 받게 했다.
그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우스여, 언젠가 그대는 몰락할 것이다! 그대의 시대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그랬던 것처럼, 너는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내고 판테온의 왕위에 올랐다. 언젠가 너를 몰아낼 존재가 분명 나타날 것이다!’
나중에 그런 프로메테우스를 헤라클레스가 구해줬다는 설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프로메테우스의 행방에 대해선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대규는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제우스의 성격이라면 바위산에 계속 묶어두지 않았을 거다. 확실하게 심연의 결계에 가두든가 했겠지.’
그런데 프로메테우스가 이 정도로 인간을 사랑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티탄 신족들과 빚은 고대 인류를 사랑했던 건가.’
어찌 됐든 이 정도면 티탄 신족에 대한 배경 지식은 대강 알았다. 그들의 자세한 전투 능력들은 책으로 알 수 없었다.
그건 전투를 해봐야 아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을 맞닥뜨리고 공략집의 정보를 읽어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에 묘사된 티탄 신족과 자신이 봤던 티탄 신족들은 외관부터가 달랐다.
‘그럼 나도 이제 2주 동안 부지런히 훈련해야 한다.’
생각을 마친 대규는 옥상으로 올라가 자신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곧 최후의 전투 날짜가 다가왔다.
전투 날, 대규가 현실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제우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규는 당장 중앙 신전으로 들어오라. 전투에 대한 전략 회의가 있을 것이다.’
그 목소리를 들은 대규는 바로 판테온의 중앙신전으로 갔다.
신전 안으로 들어서니 제우스와 하데스, 포세이돈이 미리 도착해서 원탁에 주르륵 앉아 있었다.
제우스와 달리 하데스와 포세이돈은 대규를 몹시 어려워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에게 어색한 존댓말까지 썼다.
“오, 오셨군요.”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 존댓말은 적응이 안 된다.
대규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제우스가 말했다.
“새로운 전쟁의 신다운 위엄이 느껴지는구나.”
제우스는 대규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를 쳐다보는 눈빛은 절대 부드럽지 않았다.
지난번 대규가 아자토스를 해치우고 초월자의 육체를 얻은 후부터 그를 바라보는 제우스의 눈빛은 한결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더더욱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는 것 같았다.
대규가 원탁에 앉자 제우스는 전략 회의를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최후의 전투에 관한 전략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제우스가 허공에 손뼉을 짝 하고 치자 그들의 눈앞에 꼴 홀로그램처럼 커다란 지도가 보였다.
‘이 엄청난 신력!’
대규가 나타난 지도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는데 제우스가 말을 이었다.
“그간 나의 아우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수고해 준 결과, 티탄 신족 12명 중 8명을 잘 처리할 수 있었다. 그 공로에 대해선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포세이돈, 하데스여.”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제우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 남은 티탄 신족은 총 4명…….”
제우스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내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맡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쓰러뜨려야겠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제우스.”
포세이돈이 제우스를 보며 말했다.
제우스는 이제 지도 쪽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남은 티탄 신족은 이제 3명이다.”
제우스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홀로그램 지도에 티탄 신족 3명의 모습이 보였다.
헤파이스토스의 작업장에서 피규어로 봤던 것처럼 그들은 모두 백색 피부에 민머리, 그리고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 3명은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꼭 세쌍둥이 같은걸.’
제우스는 그들에 대해 설명했다.
“왼쪽부터 에피테우스, 코이오스, 휘페리온이다. 그대들이 각각 한 명씩 맡아서 전투를 하면 되겠네.”
그러자 포세이돈이 대규를 바라본 뒤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대규가 에피테우스를 맡는 게 좋겠지요?”
“그래요, 형님. 저 녀석이 티탄 신족 중에서는 가장 어린 녀석이니까 말입니다.”
가장 어린 녀석이라고?
생긴 건 다들 똑같이 흉측하게 생겼는데 저 중에서도 어리고 늙은 자가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에피테우스라면…….’
대규는 자신이 신화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자신이 책에서 봤던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이었다.
대규는 제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제가 에피테우스를 상대하겠습니다.”
그러자 제우스는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좋아. 그럼 포세이돈과 하데스도 각각 상대할 적을 정하도록 하라.”
곧 포세이돈이 휘페리온, 하데스가 코이오스를 맡게 됐다.
이제 홀로그램창엔 티탄 신족 3명이 모습이 사라졌고, 원래 떠올랐던 지도가 보였다.
“그럼 이번엔 우리가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최후의 전투답게 우리가 옛날에 대전투를 벌였던 곳에서 전투가 벌어질 예정이다.”
“그곳이라면…….”
제우스는 지도 한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미티가스(Μύτικα)의 봉우리다.”
그 말을 들은 대규가 놀라서 이렇게 외쳤다.
“봉우리 위에서 전투를 벌인단 말입니까?”
“그렇다. 그 봉우리는 엄청나게 거대하다. 따라서 우리와 티탄 신족 녀석들이 충분히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곳이지. 그리고 이 전투에선 그 봉우리를 점령하는 존재가 판테온을 점령한다는 법도가 있다. 게다가 어차피 부하 군대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4명 대 4명의 싸움이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그러자 제우스는 대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새로운 전쟁의 신이여, 행운을 빈다. 티탄 신족들은 여태까지 그대가 상대했던 외계인들이나 기간테스들과는 확실히 다를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는 포세이돈과 하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들도 무사히 전투를 마치길 빈다. 이 마지막 전투로 판테온의 승리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규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허리춤의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쓰다듬었다.
이제 정말 전쟁의 신으로서 첫 출전이다.
“그럼 이동하도록 할까?”
제우스가 묻자 나머지 신들은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곧 제우스가 손을 휘두르자 투명 이동 결계가 4명의 신 부근에 쳐졌다.
이 4명 중에서는 제우스가 가장 상관이라서, 그가 투명 이동 결계를 치는 것 같았다.
‘이것이 최후의 전투…….’
대규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애써 자신의 가슴을 진정시켜 봤지만, 심장박동은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니 그들은 중앙신전을 벗어나 있었다.
팟!
이동 결계가 사라졌고, 그들은 매우 고도가 높은 곳에 서 있었다.
‘이곳은!’
그곳은 지도에서 봤던, 그 엄청나게 큰 봉우리였다. 하지만 다른 산들의 봉우리처럼 녹음이 우거져 있진 않았고, 그냥 황량한 바위 봉우리일 뿐이었다.
게다가 봉우리 위의 하늘은 짙은 보랏빛으로 몹시 음산해 보였다.
제우스는 비어 있는 봉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측이 먼저 도착한 것 같다. 다들 전투를 준비하지.”
제우스는 자신의 허리춤에서 무기인 벼락을 꺼내 들었다.
자세히 보니 그 벼락은 벼락 형태로 생긴 장검이었다. 하지만 벼락 형태의 검신에선 연신 무시무시한 전기 자기장이 번쩍이고 있었다.
포세이돈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무기인 삼치장 트라이던트를 꺼냈고, 하데스 역시 자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그를 본 대규도 허리춤에서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꺼낸 뒤 오른손에 네메시스의 방패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제우스가 흥미롭다는 듯 그의 방패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것이 이번에 새롭게 제작한 방패인가?”
“그렇습니다.”
“…꽤나 좋아 보이는군.”
그때 대규의 공략집 지도창이 붉은 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티탄 신족들이 나타났다.
녀석들은 봉우리가 아닌 하늘 위 공중에 떠 있었다.
대규는 낮은 목소리로 제우스에게 말했다.
“녀석들이 나타났습니다.”
“응?”
“저기, 하늘 위쪽입니…….”
대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랏빛 하늘에서 굉음이 울리며 벼락이 쳤다.
우르릉! 쾅쾅!
벼락은 정확히 제우스와 다른 판테온의 신들이 서 있는 곳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내리꽂혔다.
신기한 건 그 거대한 벼락을 맞았는데 봉우리는 멀쩡했다.
얼마 후 벼락이 떨어진 곳에서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세 개의 인영(人影)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