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
275화 초월자 (4)
대규는 아직도 아자토스의 내핵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헤파이스토스를 보며 물었다.
“그럼 방패가 수리되고 아자토스의 내핵을 장착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그러자 그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난번처럼 1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헤파이스토스 님을 믿고 맡기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상업 구역의 오픈 대장간에 있는 파베르에게 갔다 올 테니까요.”
“제 제자 녀석한테 말입니까?”
“네. 전공을 세운 부대 영웅들에게 줄 보상 무기들을 얻어 오려구요.”
“하긴, 그 대장간엔 그런 무기들이 수없이 쌓여 있을 겁니다.”
대규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인사를 한 뒤 그의 작업장을 나섰다. 그런데 작업장을 나서기 직전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모형이 있었다.
바로 티탄 신족들의 모습을 본떠 만든 피규어였다.
‘대체 저 존재들과 나의 공략집이 정말로 연관이 있는 걸까?’
민머리에 백색의 피부, 그리고 붉은 눈을 지닌 저 괴물 같은 존재들이 도무지 공략집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저번에도 본 피규어지만 오늘따라 더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걸.’
꼭 그들의 붉은 눈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대규는 작업장을 나와 판테온의 상업구역으로 이동했다. 헤파이스토스가 방패를 만지고 있을 1시간 동안 파베르가 있는 오픈대장간으로 가서 부하들에게 보상으로 줄 무기들을 골라야 했다.
대장간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니 파베르가 호들갑을 떨며 대규를 맞이했다.
“전쟁의 신 나리! 오셨습니까!”
그의 얼굴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대규가 새로운 전쟁의 신이 됐으니 앞으로 자신의 대장간에 의뢰를 많이 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규가 세미데우스 시절부터 이곳 대장간에서 무기를 제작했으니 가게 홍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파베르는 대규의 생각보다 이미 한발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대장간의 잘 보이는 곳에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저희 대장간은 판테온의 새로운 전쟁의 신 대규 님이 지닌 무기들을 만들어온 곳으로 실력이 검증된 판테온 최고의 대장간입니다. 저희 대장간을 돌봐주시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님의 명예를 걸고 당신의 무기를 최선을 다해 제작해드립니다!]
대규는 문구를 바라본 뒤 파베르를 향해 물었다.
“장사는 잘되나요?”
그러자 그는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부끄럽습니다. 대규 님 덕분에 무기제작 의뢰가 늘어났답니다.”
대장간의 작업대 위엔 제작 중인 무기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런데 대규 님께서 웬일로 이곳에…….”
“부하들에게 전공 보상을 내릴 무기들을 가져가려구요.”
“그렇군요! 창고에 가시면 무기들이 잔뜩 있을 겁니다.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저희야 대규 님이 그 무기들을 가져가면 영광입죠.”
파베르는 대규를 창고로 안내했고 대규는 그곳에서 영웅들에게 줄 무기들을 챙겼다. 그리고 이제 황금 상자를 만들 때였다.
처음에 황금 상자를 만들 때는 고생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았다.
순식간에 의식의 대장간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황금 상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몇 번 해봤더니 이제 능숙하게 만들 수 있었다.
대규는 실력 있는 대장장이처럼 망치질 몇 번만으로도 황금 상자들을 뚝딱뚝딱 만들어 냈다.
곧 그는 상자들을 물질로 형상화 시킨 뒤 그것들에 무기들을 각각 담아 영웅들에게 줄 보상들을 모두 준비했다.
어느새 1시간이 흘렀다.
지금쯤이면 헤파이스토스가 자신의 방패를 다 수리해 놨을 것이다.
대규는 파베르에게 인사를 한 뒤 다시 헤파이스토스의 작업장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의 작업대 위에는 네메시스의 방패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방패의 외관이 좀 이상했다.
분명 그전까지 방패는 황금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방패는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자토스의 내핵과 똑같은 색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대규가 방패를 가리키며 묻자 헤파이스토스가 대답했다.
“대규 님께서 주신 그 내핵 때문입니다. 내핵을 방패에 장착시키자마자 방패의 색깔이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방패의 성능에는 문제없습니다. 수리도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어디 봅시다.”
헤파이스토스가 방패를 내밀었고 대규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방패는 그전보다 몹시 단단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기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던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좀 허전한걸.’
아이기스는 괴상망측하게 생긴 추한 괴물뱀이었지만 없어지니까 나름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방패를 가만히 바라보자 아이템 설명창이 떠올랐다.
[아자토스의 내핵을 장착한 네메시스의 방패(초월자)]
[초월자 등급의 아티팩트 아자토스의 내핵을 장착한 방패다. 내구도가 10배는 단단해졌으며 아자토스의 내핵이 지니고 있는 핵융합 에너지를 공격으로 쓸 수 있다.]
‘아자토스가 나에게 퍼부었던 그 엄청난 핵융합 에너지를 공격으로 쓸 수 있다니.’
게다가 방패의 등급 역시 초월자 등급이었다. 아무래도 아자토스의 내핵이 초월자 등급 아티팩트라서 그것을 장착하니 방패의 등급이 올라간 것 같았다.
이 방패가 지닌 핵융합 에너지는 분명 티탄 신족과의 최후의 전투에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대규는 방패를 집어 들고는 헤파이스토스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헤파이스토스 님, 감사합니다.”
“아니, 대규 님, 고개를 숙이실 필요 없습니다.”
그가 두 손을 내저었지만 대규는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새롭게 단장한 방패를 들고 그의 작업장을 나섰다.
대규는 바로 자신의 주둔지로 돌아왔다.
이제 영웅들에게 보상을 내릴 때였다.
영웅들이 받을 보상은 이번이 마지막일 터였다.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간토마키아 전투는 이제 없었다.
영웅들은 대규가 주둔지로 돌아오자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대장군 지영이 대규를 깍듯이 맞이했고 그는 지휘사령부의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자신이 손수 제작한 화염의 왕좌에 가서 앉았다.
323명의 영웅 역시 그를 따라 지휘사령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곧 대규가 앉은 왕좌 위에 새로운 징표가 떠올랐다.
“저것은!”
영웅들이 일제히 소리 높여 외쳤다.
그 징표는 중앙신전에서 제우스가 대규에게 새롭게 내린 전쟁의 신 징표였다. 장검과 창, 그리고 투구의 옆모습이 멋지게 형상화된 징표였다.
대규는 323명의 영웅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대들은 판테온 전쟁의 신 부대의 영웅들이 됐습니다.”
그 말에 영웅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대규 님 만세!
대규는 영웅들의 함성을 들으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정말로 잘 싸워줬습니다.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이번 전투… 아니, 우리가 헤쳐 온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맨 앞줄에 서 있는 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존, 그대의 염동력 스킬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줬습니다. 물론 그를 위해 당신은 혹독한 훈련을 겪어냈지요. 당신이 겪은 혹독한 훈련에 따른 보상은 내가 제대로 해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존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친 뒤 고개를 숙였다.
대규는 우선 영웅들에게 자신의 축복 스킬을 내렸다.
쏴아아아-
대규의 손끝에서 나온 빛들이 영웅들의 몸에 스며들듯 들어갔다. 그리고 영웅들의 능력치들이 각각 랜덤하게 올랐다. 올라간 능력치를 확인한 영웅들은 다시 한 번 대규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대규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전투에 대한 보상입니다.”
대규가 손을 허공에 한 번 휘두르자 그가 만든 323개의 황금 상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영웅들의 머릿수와 동일한 개수였다.
영웅들은 각자의 황금 상자를 받아 든 뒤 열어보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이건…….”
“엄청난 무기야!”
“이런 무기를 판테온 상업구역에서 돈주고 사려면 무지 비쌀 텐데…….”
모두 파베르의 창고에서 가져온 무기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창고엔 무기들의 상태가 좋은 것들만 모여 있었다. 보상용이 아니라 꼭 돈받고 팔아도 될 정도로 퀄리티가 훌륭한 것들이었다.
물론 대규가 대장간을 나서기 직전 파베르가 이런 말을 하긴 했었다.
‘오늘 무기들은 전쟁의 신께 드리는 저의 성의입니다. 앞으로도 저희 대장간을 잘 보살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로운 전쟁의 신에게 드리는 로비 같은 건가.
물론 대규는 파베르의 성의를 고맙게 잘 받았다. 파베르의 그런 행동이 불법적이거나 나쁜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영웅들이 자신들의 보상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지영이 대규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대규 님, 앞으로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녀의 질문에 영웅들은 감탄하던 행동을 멈추고 대규를 바라보았다.
대규는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 제우스 님에게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저에게 맡긴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앞으론 공식적인 전투가 없으니 여러분들은 전투에 참여할 일이 없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저는 여러분들의 의사를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지영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규에게 말했다.
“사실 대규 님이 자리를 비우신 사이 저희끼리 그 사안에 대해 논의를 해보았습니다.”
“그런가요?”
“예. 저희는… 평소처럼 주기적으로 주둔지에 모여서 훈련을 하고 싶습니다. 전시상황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이번엔 라이펑이 지영을 거들며 입을 열었다.
“게다가 저희는 이제 단순히 대규 님의 부대 영웅이 아닌 판테온 전쟁의 신 부대의 영웅들입니다. 저희가 평소에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대규 님이 지닌 전쟁의 신 칭호에 먹칠하지 않겠지요.”
대규는 그 말을 듣고 자신 부대의 영웅들을 대견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더 이상 전투가 없는데도 자발적으로 훈련을 하겠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의 체면까지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대규는 기쁜 목소리로 영웅들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요. 대신 저도 앞으로 여러분들의 훈련에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더욱 강한 훈련 상대들을 마련해올 테니 기대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영웅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들 모두 현실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명령을 내리자 영웅들은 현실로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 지휘사령부의 천막에는 대규 혼자 남아 있게 됐다. 그는 자신의 왕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왕좌 위에는 전쟁의 신 징표가 떠올라 있었다.
‘이걸로 나는 정말 전쟁의 신이 됐구나.’
판테온에 들어온 게 엊그제 같은데 신이 됐고 이젠 초월자 육체까지 얻어 전쟁의 신이 됐다.
그리고 신들의 왕 제우스와 함께 티탄 신족 최후의 전투를 대비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 대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맞다! 아자토스를 해치우고 얻은 흑색의 상자를 아직 열어보지 않았다.’
대규는 보관함에서 흑색의 상자를 꺼냈다.
여태까진 황금 상자와 백색상자만 봐서 그런지 흑색의 상자는 상당히 음산해보였다.
‘분명 녀석을 쓰러뜨리면 등급을 알 수 없는 스킬을 보상으로 준다고 했었다. 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대규는 상자를 천천히 열어보았다.
쏴아아아-
여태까지 다른 상자들은 열자마자 빛이 새어나왔던 것과 달리 이 상자는 새카만 연기가 뭉게뭉게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의 바윗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설마 스킬 비석인가?’
그 바윗덩어리 위엔 이상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봤던 스킬 비석에 새겨져 있던 언어와 완전 달랐다.
문자는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했다.
‘설마 외계인들의 언어인가?’
여태까지 외계인들이 내는 말소리만 들었지 그것을 이렇게 문자로 확인한 적은 없었다.
이것은 외계인들이 지니는 스킬 비석인 것 같았다.
대규는 상자 속에서 그 바윗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빛이 뿜어져 나오는 판테온의 스킬 비석과 달리 바윗덩어리 안쪽에서 검은 연기가 미친 듯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