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
273화 초월자 (2)
아폴론과 아레스는 고개가 90도로 꺾였다
대규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폴론, 아레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나?”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 잘 지냈습니다. 대규 님…….”
“대규 님은 어떠셨는지요?”
공손하고 깍듯한 존댓말이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속으론 욕이 절로 나왔지만, 그들은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들 앞에 있는 대규의 모습은 마치 신들의 아버지이자 왕인 제우스와 비슷해 보였다.
한편, 아레스와 아폴론뿐만 아니라 다른 판테온의 신들도 대규를 보고 그전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프로디테와 아테나 역시 대규를 보고 서서히 그들의 고개를 숙였다.
아프로디테의 경우 평소 대규를 보면 추파를 던지기 바빴지만 이젠 절대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들이키며 생각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눈을 감히 마주치지 못하겠다. 내가 여태까지 어떻게 감히 저런 분께 추파를 던졌단 말이냐…….’
아테나 역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두 눈을 흘끗 들어 대규를 훔쳐봤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대규 님이 저렇게 변해 버리다니.’
하지만 대규를 보고 느끼는 기분은 왠지 낯이 익었다.
존경과 경외의 감정, 그리고 그 안에서 싹트는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심지어 아테나의 심장은 기분좋게 뛰기 시작했다.
지금의 대규는 꼭 자신의 아버지이자 신들의 왕 제우스 같았다. 대규의 모습에 제우스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아테나는 사실 신들의 왕 제우스를 항상 남몰래 흠모해왔었다. 아버지로서의 존경심뿐만 아니라 판테온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에 대해 흠모하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그녀는 전쟁의 여신이기 때문에 강력한 존재에 마음이 이끌렸다. 그리고 판테온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는 제우스였다.
물론 흠모의 감정과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 둘 중에선 후자가 더 컸다.
‘하지만 대규는…….’
아테나는 다시 흘끗 대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심장이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규는 자신의 아버지 제우스보다 훨씬 젊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의식하자마자 마음속에선 더욱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 감정은 여태까지 대규의 활약을 볼 때마다 피어났던 감정과 동일했다.
하지만 지금 그 감정은 매우 강렬했다.
그때 아테나는 대규와 눈이 마주쳤다. 대규는 그녀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아테나, 안녕.”
대규의 말 한 음절, 한 음절을 들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뜨거워졌다.
‘이러면 안 된다.’
아테나는 최대한 감정을 냉정하게 되잡으며 대규에게 인사했다.
“안녕… 하십니까.”
대규는 이제 눈앞에서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존댓말을 쓰는 판테온의 신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들은 부대의 영웅들만큼 자신을 어려워하는 것 같진 않았다.
부대의 영웅들은 눈을 못 마주치는 것뿐만 아니라 대규를 보면 온몸을 벌벌 떨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대규에게 꼼짝 못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특히나 평소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폴론과 아레스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나는 그전까진 이들과 동등한 위치였는데 이젠 이들이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확실히 나는 이들보다 우위에 서게 됐구나.’
물론 아프로디테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좀 어색하긴 했다.
‘그래도 괜찮아. 오히려 그녀가 계속 대놓고 추파를 보낼 때가 더 부담스러웠어.’
하지만 아테나까지 저렇게 고개를 숙이며 존댓말을 쓰자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녀는 옛날엔 자신의 상관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고개를 숙였던 대상이었다.
그리고 신이 된 이후엔 그 어떤 신들보다도 친구처럼 친하고 가깝게 지내왔었다. 그런 그녀가 저렇게 자신을 윗사람 대하듯 대하니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꼭 부대의 영웅들처럼 말이야. 그런데 왜 저렇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 열이라도 오른 건가?’
그 순간 신전 가운데에 난 계단에서 세 명의 신들이 등장했다.
바로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였다.
그들 역시 대규를 발견하고는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대규를 보고 다른 신들처럼 바로 고개를 숙이진 않았지만 그들의 입에선 역시 평소의 반말이 아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오, 오셨습니까?”
하지만 제우스는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대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다른 신들처럼 대규의 기세에 눌리지 않았다.
그는 대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았다.
‘아마도 내가 초월자 등급의 육체를 지니게 된 걸 알아챈 거겠지.’
하지만 제우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사실 그는 당황하거나 하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 대규의 머릿속에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나도 이젠 초월자 등급 육체를 지니게 됐으니 제우스의 속마음을 공략집으로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략집을 발동시켰다.
대규의 예상이 맞았다.
곧 제우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아자토스를 해치운 건 그렇다 쳐도… 대체 어떻게 나와 같은 초월자의 육체를 얻어냈단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시 대규의 예상대로 제우스는 초월자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신이었다.
그 순간 대규는 제우스와 두 눈이 마주쳤다.
그 이후 제우스의 속마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제우스가 자신의 속마음을 통제한 것 같았다.
마침내 모든 판테온의 신들이 신전의 원탁에 빙 둘러앉았다.
제우스는 대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판테온의 신들이여, 축하할 일이 있다. 드디어 판테온에 새로운 전쟁의 신이 탄생했다.”
하지만 축하할 일이 있다는 말과 달리 제우스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제우스는 대규와 다른 신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레스와 대규가 징표를 걸고 한 내기가 이렇게 마무리됐구나. 대규는 이리로 나와서 새로운 전쟁의 신 칭호를 받아가도록 하라.”
대규는 공손하게 제우스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항상 제우스를 마주하면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고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 일어났다. 하지만 지금을 달랐다.
오히려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들어 제우스와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됐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신들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제우스는 대규에게 말했다.
“대규, 그대에게 아레스가 지니고 있었던 전쟁의 신 칭호를 새로이 내리겠다.”
제우스가 허공에서 자신의 두 팔을 휘두르자 원탁에 앉아 있던 아레스의 몸에서 하얀 빛덩이가 불쑥 빠져나왔다.
“허억!”
아레스가 급하게 숨을 들이키며 신음소리를 냈다. 하얀 빛덩이가 빠져나가자 그의 얼굴엔 허탈함과 절망적인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나온 하얀 빛덩이는 대규의 갑옷 한가운데, 가슴팍 안쪽으로 들어갔다.
곧 대규가 입고 있는 갑옷의 가슴팍에 처음 보는 문양이 빛으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장검과 창이 서로 맞대고 있고 그 위에는 멋진 투구의 옆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제우스는 그것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건 전쟁의 신이 갖는 징표다.”
곧 빛의 문양은 대규의 가슴 안쪽으로 흡수돼 버렸다.
대규는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 봤다. 예상했던 대로 이름 옆에 칭호가 하나 더 늘어나 있었다.
김대규(초월자/외계인들의 왕/판테온 전쟁의 신)
Lv5. (32.00%)
생명력 9,999/9,999
마나 5,240/5,240
근력 524
민첩 510
지능 510
운 15(+5)
권위 53(+3)
외계인들의 왕 옆에 판테온 전쟁의 신이란 칭호가 새로 붙어 있었다.
제우스는 대규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그대가 최후의 외계인 부대를 쓰러뜨린 보상이자 전쟁의 신이 된 기념으로 주는 보상이다. 와서 받아가거라.”
그가 말을 마친 뒤 허공에 팔을 휘두르자 백색의 상자가 나타났다.
‘분명 스킬이 들어 있겠지.’
대규는 그 상자를 바로 열어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고대 문자가 새겨진 스킬 비석이 있었다.
비석을 집어들자 곧 문자들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대규는 새로운 스킬을 완벽하게 익혔다.
보유 스킬란을 확인하니 스킬이 추가돼 있었다.
[전쟁의 함성: 오직 판테온 전쟁의 신만이 쓸 수 있는 스킬. 전투 전에 거대한 함성을 일으켜 자신과 아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아군의 공격력은 5배로 상승하고 적군의 공격력은 5배로 줄어든다. 마나 소모 2,000.]
한마디로 버프계열 스킬이었다.
하지만 오직 공격력에 치중돼 있었다.
‘그런데 이 스킬을 내 부대 영웅들에게 쓸 일이 있을까?’
이제 남은 전투는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과 함께 하는 티탄 신족과 벌일 최후의 전투뿐이었다. 대규의 아군인 부대 영웅들은 그 전투에 참가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대는…….”
마침 제우스가 대규를 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을 겪은 건진 모르겠다만, 전에 비해 더욱 강해졌구나. 아니, 강해졌다는 말만으론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군.”
말을 마친 그는 대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규 역시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엔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론 제우스의 속마음을 읽기 시작했다.
확실히 제우스는 대규가 초월자의 육체를 얻은 경위에 대해 궁금해하고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분명 저자는 새로운 육체를 얻었다. 하지만 초월자의 육체를 얻으려면 특별한 힘이 있어야 한다. 인간 출신인 저 자는 그 심을 지닐 수 없었을 텐데…….’
특별한 힘이 있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제우스의 속마음을 들어보려 했지만, 귓가는 조용했다.
다시 제우스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한 것 같았다.
이제 그는 포세이돈과 하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생들이여, 나는 대규를 바로 티탄 신족과의 최후의 전투에 참전시키려고 한다. 그대들은 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자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몹시 당황한 얼굴로 제우스에게 말했다.
“잠깐, 제우스……. 그게 무슨… 아무리 전쟁의 신 칭호를 새롭게 받았다고 하지만 저분은 이제 막 전쟁의 신이 됐다. 티탄 신족과의 전투가 만만치 않다는 건 자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그래, 애초에 저분을 최후의 전투에 참가하게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일정 기간의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건 제우스 자네였어.”
하지만 당황하는 포세이돈과 하데스에게 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랬지.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어. 저자의 모습을 보게.”
대규는 눈짓으로 대규를 가리켰다.
하지만 제우스와 달리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대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제우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그는 대규의 비약적인 성장을 그리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았다. 그 정도 성장세야 능력이 뛰어나면 가능한 범주라고 생각을 해왔고 여태까지의 대규의 능력은 아무리 뛰어나 봤자 판테온 신들의 왕인 자신만큼 뛰어나진 않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어디까지나 신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소유한 육체 간엔 넘을 수 없는 실력 차이가 있다. 따라서 그 어떤 신들도 초월자의 육체를 지닌 제우스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대규는 아자토스를 해치운 후 자신과 동등한 초월자의 육체를 얻어 이곳 중앙 신전에 나타났다.
‘초월자의 육체는 분명 티탄 신족의 힘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육체다. 나는 티탄 신족이었던 아버지 크로노스의 피를 직계로 물려받았기에 그 육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 저자는 인간 출신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 전에 보였던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랐던 대규의 성장세는 그냥 의구심만 가진 채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