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
270화 아자토스 (12)
대규는 바로 네메시스의 방패를 들어 막았다.
곧 방패에 새겨진 아이기스가 주둥이를 벌렸다. 지난번처럼 주둥이를 벌려 상대방이 공격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무효화시키려는 것 같았다.
아이기스의 작은 블랙홀(?) 주둥이가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대규를 향해 발산된 핵융합 에너지는 아이기스의 입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좋았어!’
하지만 아이기스만으론 그 공격을 막아 내는 게 역부족이었다.
쩌억-
아이기스의 주둥이 근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핵융합 에너지를 빨아들인 아이기스의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안 돼!”
대규가 절규에 찬 비명을 질렀지만, 아이기스의 얼굴은 방패의 표면 위에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핵융합 에너지의 위력인가!
하지만 아이기스는 자신의 얼굴이 녹아내려 갔지만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해서 아자토스의 거성이 내뿜는 핵융합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얼마 후, 핵융합 방출이 사그라졌다. 하지만 방패 위의 아이기스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그의 입이 있던 곳에는 작게 패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대규가 서 있던 공간이 아까보다 더욱 줄어든 것 같았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아자토스의 외관도 변해 버렸다.
이제 아자토스의 먼지폭풍은 오간 데 없었다. 녀석은 완전히 거대한 운석이 돼 버렸다. 운석의 표면은 강력한 자기장들과 벼락이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빛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
그때 대규의 눈앞에 공략집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아자토스가 완전히 적색 거성의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먼지 폭풍에서 거성이라. 꼭 이 자식의 변화 과정은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탄생부터 죽음 과정과 동일했다.
별들 역시 먼지들과 탄소 등이 모여서 덩어리와 폭풍을 이루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열에너지를 방출했다. 그리고 거성이 된 뒤 빛을 뿜어내고 나중엔 초신성 폭발이란 하이라이트를 보여 준다.
‘분명 녀석의 보유 스킬에도 초신성 폭발이 있었다. 이 녀석은 그냥 별 자체로군.’
하지만 거성 형태의 아자토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은은했다. 거성이라고 해서 좀 긴장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눈이 부시진 않았다.
‘아무래도 아이기스가 녀석이 방출했던 핵융합 에너지를 어느 정도 흡수했기 때문이겠지.’
그때 대규의 귓가에 아자토스의 신음이 들려왔다.
크으으으…….
곧 녀석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본래대로라면 광휘를 내뿜는 완벽한 적색 거성이 돼야 했었는데… 네 녀석의 그 빌어먹을 방패 때문에 나의 몸집이 이렇게 줄어들다니. 용서할 수 없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규의 눈앞에 있는 것도 충분히 커다란 거성이었다.
그때 대규는 왜 아까 이곳의 공간이 좀 줄어든 것 같다고 느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거성이 된 지금도 아자토스는 이 공간을 끊임없이 잡아먹고 있었다.
거성의 가장자리를 경계로 공간들이 빨려들어 가듯 줄어들고 있었다.
우주를 포식한다는 게 이런 개념이었던 건가.
어쨌든 빨리 이 녀석을 해치워야 했다. 녀석이 단계마다 발휘하는 스킬들은 아주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대규의 아이기스의 방패조차도 그 꼴이 났다.
대규는 자신의 오른손에 쥐고 있는 방패를 바라보았다. 제우스의 벼락을 불러왔지만 방금 전 아자토스의 핵융합 에너지를 막느라 완전히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이 방패를 갖고 계속 녀석과 전투를 한다면 대규가 불리해질지도 몰랐다.
어쨌든 저 녀석은 계속해서 외관을 바꿔 가며 저 무시무시한 스킬들을 계속해서 쓸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내가 이 전투에서 유리한 건 저 녀석이 다음번엔 어떤 스킬을 발휘할지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도 문제가 있었다.
대규는 공략집에 적힌 녀석의 보유 스킬들 중 맨 마지막에 적혀 있는 스킬인 초신성 폭발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초신성 폭발-마지막 단계 최후의 스킬로 한 은하를 날려 버릴 정도의 강력한 폭발을 구사하며 폭발을 하면서 여태껏 포식했던 우주 공간을 도로 뱉어낸다. 그리고 다시 먼지 폭풍 단계로 돌아가 스킬을 구사한다.]
한 은하를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을 구사한단다.
그리고 초신성 폭발이라면 자신도 알고 있는 지식이 있었다.
초신성 폭발이란 별의 죽음에 해당하는 상태였다.
별은 초창기의 먼지 폭풍 덩어리 때부터 핵융합 에너지를 이용해 탄소, 산소, 규소 등 갖가지 원소를 만들거나 끌어당겨 내부에 차곡차곡 쌓는다.
‘물론 이 아자토스는 그 에너지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 가능하지만.’
이렇게 성장한 별은 나중에 퇴화의 단계에 이르면 평생 쌓아 온 그 모든 에너지를 한꺼번에 폭발하듯 방출해 초신성(Supernova)가 된다. 폭발을 하는 순간 별의 중심핵은 수축하여 아주 작은 중성자별, 혹은 먼지로 환원된다.
그리고 그 먼지들은 다시 우주 공간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 모여 새로운 먼지 폭풍 덩어리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결국 별의 탄생과 죽음은 한 번에 끝나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돌고 돌며 순환하는 영속적인 서클이었다.
‘그래서 이 아자토스 녀석도 절대 죽지 않겠지.’
게다가 별의 죽음이라는 대미를 장식하는 그 초신성 폭발은 한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 버린다.
녀석이 지닌 초신성 폭발 스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태까지 녀석을 관찰해 온 결과, 녀석의 형체 변환들과 스킬들의 모습은 별의 일생에서 보이는 모습과 비슷했으니까 말이다.
‘이 자식이 괜히 우주를 지배하는 지배자가 아니었어. 이 자식은 우주를 구성하는 별 그 자체인 녀석이야.’
아마 아자토스는 저 초신성 폭발 단계에 들어서면 폭발로 이 공간의 모든 걸 날려 버릴 것이다.
‘아니, 이 공간뿐만 아니라 자신의 궁전을 다 날려 버릴지도 몰라.’
게다가 그 정도의 폭발이라면 아무리 대규가 마법 저항력과 방어력들을 끌어모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초신성 폭발보다 훨씬 약한 스킬인 핵융합 에너지 방출만으로도 자신의 짱짱한 네메시스의 방패가 녹아 버릴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전략은 단 하나.’
녀석이 초신성 폭발 스킬을 발동하기 전에 약점을 공격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약점이라는 것은…….’
대규는 적색 거성이 된 아자토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토록 강력해 보이는 녀석에게도 분명 약점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녀석의 약점은 바로 저 거성 내부에 존재하는 핵이었다.
녀석의 핵은 먼지 폭풍 덩어리 단계부터 아주 작게 존재해 왔다. 그리고 거성이 된 지금은 저 단단한 표면 안에 안전하게 존재했다.
‘그 핵 때문에 저 녀석이 핵융합 에너지를 생성하고 방출할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그 핵은 너무나도 철저하게 숨겨져 있었다.
약점이니까 단단하게 보호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대규가 현재 직접 그 핵을 공격하는 건 쉽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아자토스가 발휘하는 스킬들을 막기에도 급급한 상태였다.
하지만 공략집에 따르면, 녀석의 핵을 공격할 수 있는 단 한 순간의 포인트가 존재했다.
<아자토스가 초신성 폭발을 하기 직전, 거성 내부의 핵이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때 그것을 정확하게 공격해 파괴하면 아자토스를 해치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쉽다.
핵이 드러난 후 초신성 폭발까지의 시간은 찰나의 순간, 정확히 0.013초였다. 그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리고 다시 새롭게 생명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 순간에 핵을 파괴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한다면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규는 이미 공략집의 영상으로 그 폭발의 위력을 실감했다.
폭발이 일어나면 그냥 모든 것이 사라진다. 이곳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초신성 폭발 이후의 모습은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라는 관용구가 딱 맞는 상황이었다.
폭발로 인해 상처를 입고 생명력이 얼마나 줄어들고… 등의 문제들은 모조리 무의미해진다.
그냥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아자토스 저 녀석은 다시 조그마한 먼지 상태로 환원돼 몸집을 불려 나가면서 우주 공간을 새로이 포식하지만 아자토스와 전투를 벌이는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공략집의 영상을 본 대규는 오랜만에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꼈다. 솔직히 초신성 폭발이란 스킬은 두려움을 넘어서서 경외감마저 드는 스킬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서 녀석의 핵을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아자토스가 초신성 폭발 단계에 이르기 전에 남아 있는 스킬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바로 거성의 빛 스킬.
설명에 따르면, 거성의 형태를 띤 아자토스가 엄청나게 밝은 빛으로 상대방의 육체와 의식을 마비시키는 스킬이라 한다.
그리도 아무래도 이제 녀석은 그 스킬을 서서히 발휘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적색 거성의 표면에서 은은하게 빛나던 빛들이 서서히 진해지고 있었다.
빛은 점점 강해지며 대규의 눈에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빌어먹을!’
눈을 뜨고 있자니 시력이 순식간에 상실되는 것 같았다.
녹아내린 아이기스의 방패로 막아보려 했지만, 확실히 그 전에 비해 방어 효과는 반감됐다. 대규는 일단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은 상태였지만 저 빛이 눈꺼풀을 뚫고 침투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눈을 감으면 캄캄한 암흑뿐이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눈앞이 환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곧 대규의 의식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젠장, 저 빛에 마약이라도 뿌려놨나… 정신 똑바로 차리자!’
저 빛이 눈을 멀어버리게 하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만, 의식까지 저 외계인 녀석에게 지배당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규는 우선 와이드 프로텍팅으로 자신의 주변에 방어 결계를 쳤다.
그러자 빛의 효과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규가 타고 있는 옵티뭄은 안타깝게도 빛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 같았다.
“히이잉-!”
옵티뭄이 힘없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곧 옵티뭄의 몸은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대규는 옵티뭄을 향해 외쳤다.
비록 육체는 마비될지라도 정신은 마비될 수 없었다.
두 눈을 감고 벼락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곧 머릿속에 아자토스의 비웃음이 울려 퍼졌다.
‘크하하! 다 소용없을 것이다!’
대규는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녀석의 목소리를 무시하려 애쓰며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빛에 정신을 빼앗기고 지배당할 순 없다.
이 거대한 빛을 베어 주겠다.
눈을 감은 채 집중을 하자 어느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빛으로 인해 팔의 근육이 수축하고 굳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 불편한 느낌이 든다, 그뿐이었다.
어느새 대규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의 생각만이 지배했다.
‘눈앞에 있는 저 빛을 베어 버리겠다.’
대규는 어느새 단단히 마비된 옵티뭄의 등 위에 두 발을 딛고 섰다.
그리고 벼락검을 든 뒤 빛을 발하고 있는 적색 거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익-
쉬이이익! 서걱!
휘이잉!
벼락검은 미친 듯이 거성의 빛을 베어 버렸다.
대규가 몇 날 며칠이고 끊임없이 수련한 플로우 참파 검법이었다.
그리고 검이 벤 곳에서 돌풍의 조각으로 인해 일어난 마나 화염 돌풍이 살벌하게 일었다.
그래도 거성의 빛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잡념이 들어오려고 했지만 이렇게 외쳤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잡념이 물밀듯이 밀려났고, 대규는 다시 한 번 빛을 향해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머릿속엔 이 빛을 산산조각 내겠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검법은 효과가 있었다.
빛이 어느 순간부터 유리조각 부서지듯 금이 가면서 몇십 갈래로 갈라졌다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대규의 몸 역시 거성의 빛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몸의 이곳저곳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근육의 대부분이 마비된 상태였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것은 아자토스의 적색 거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규는 일단 엘릭서를 마셨다. 곧 상태 이상과 닳았던 생명력이 풀로 차올랐다.
그리고 곧 그것을 직감했다.
‘이제 초신성 폭발이 다가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