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
265화 아자토스 (7)
그때 한 영웅이 대규에게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다.
“대규 님,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전투 이후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솔직한 마음으론 이번 최후의 전투가 끝나고도 똘똘 몽칠 수 있는 부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자신만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전투도 없는데 굳이 영웅들을 잡아 둘 필요가 있을까.
대규는 그 영웅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이 이후엔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이 없을 테니 부대에 모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각자의 생업에 집중해도 되구요. 저는 굳이 여러분을 붙잡거나 소집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 323명의 영웅을 둘러봤다.
영웅들의 눈빛 역시 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벌써 이 부대에 들어와 커다란 전투를 겪은 게 벌써 몇 번이었다. 그들은 이제 서로 깊은 유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영웅은 이곳에 오기 전, 다른 신의 부대에 있을 때보다도 더욱 부대원들에게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이 부대에 있었던 기간이 짧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특히나 라이펑 등 같은 본래 아폴론 부대 영웅이었던 자들이 더욱 그랬다. 그들은 그곳에 있을 때 인간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신에게 관심을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규의 부대에 와서 달라졌다.
물론 이곳에서 그들은 아폴론 부대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힘든 훈련을 하고 고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상관인 대규는 아폴론과 달리 그들에게 관심을 주고 잘 챙겨 줬다. 그리고 신이라도 거만하게 영웅들을 대하지도 않았다. 선을 그을 땐 확실하게 그었지만 웬만해선 영웅들을 동등하게 대해 주려고 노력했다.
‘어디 가서 이런 신의 부대에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이 대규 부대 영웅들이 지닌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벌써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이제 이 좋은 부대와도 안녕인 걸까?
심지어 대규 역시 그들에게 떠나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영웅들은 솔직히 이 부대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들 중 존이 용기를 내서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말했다.
“대규 님, 저는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전투 기간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곳에 주기적으로 소집돼 훈련하고 싶습니다.”
존이 먼저 말하자마자 나머지 영웅들도 용기를 얻은 것인지 하나둘 손을 들고 말하기 시작했다.
“저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규 님의 훈련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곧 323명의 영웅 모두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규는 그들을 모습을 보고 좀 놀랐다. 이 정도로 영웅들이 자신과 자신의 부대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얼떨떨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뜨거운 감정이 대규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랐다.
‘이런 감정은 거의 느껴 본 적이 없는데.’
물론 비슷한 감정은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최근 대규식품과 탕꼬가 미국 진출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와 비슷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치솟아 오르긴 했다.
하지만 지금의 감정은 그것과는 좀 달랐다.
미국 진출의 경우 자신의 사업에 관련된 일이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자신이 그동안 사업을 일궈냈고, 그에 따른 성공적 결과에 따라 생겨난 감정이었다.
따라서 그 감정은 오롯이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 부사장인 준섭이 같이 애써 줬고, 대규식품의 다른 사원들도 고생하긴 했지만, 그 감정엔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사업 성공에 따른 자부심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감정은 그것과 달리 323명의 영웅에게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 정말로 이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구나. 내 부대가 이정도로 이들 마음에 중요하게 차지하고 있구나.’
부대의 성공이라기보다 부대 영웅들과의 유대관계가 더 크게 느껴진 것이다.
대규는 영웅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가,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모두 그렇게 말해 주셔서 말입니다.”
그러자 이번엔 라이펑이 대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전투 이후에도 이곳에 모여 훈련을 계속하는 겁니까?”
확실히 영웅들에겐 이번 전투가 마지막이었다.
대규야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의 신 칭호를 받은 뒤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와 함께 싸우게 되지만 말이다.
대규는 라이펑을 비롯한 영웅들에게 말했다.
“어쨌든 여러분은 모두 판테온의 세계에 계속 남으실 수 있지요. 전투 후의 부대 활동에 대해선 모든 전투와 전쟁이 끝난 뒤 제가 제우스 님께 따로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아주 잘 알았습니다. 저도 여러분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대규는 영웅들을 향해 자신의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영웅들은 몹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신이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대장군인 지영 역시 너무 당황한 나머지 대규에게 다가가 말했다.
“대규 님, 어서 고개를 드세요.”
하지만 그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뒤 말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런 고마운 마음을 보여 준 것과 별개로 다음 전투는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둬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영웅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렇다면 오늘은 이만 현실 세계로 돌아가 보도록 하세요. 출전은 내일 시작될 겁니다.”
대규의 말이 끝나자 영웅들은 각자 현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나둘 돌아가고 라이펑도 돌아갔다. 이제 주둔지엔 지영과 대규만이 남아 있었다.
지영 역시 현실로 돌아가려는데 대규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지영 대장군… 아니 지영 씨.”
대규는 호칭을 고쳐서 그녀를 불렀다. 지영 씨는 그가 신이 되기 전에 그녀를 불렀던 호칭이었다. 차원의 틈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판테온의 세계에 들어와 아테나 여신 부대에서 함께 싸웠을 때 그녀를 그렇게 불러왔었다.
그 호칭에 지영이 놀라 대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규 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지금만큼은 저에게 존칭을 붙이지 마세요. 신과 대장군, 상관과 부하로서가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예……? 같은 인간이요?”
“네. 이곳 판테온의 세계에 떨어져서 살아남은 같은 인간으로서요.”
그 말을 들은 지영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대규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대규 역시 그랬다.
그는 맨 처음 그녀와 만났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차원의 틈에 처음 떨어졌을 때, 홍대입구 근처에서 미니 키클롭스들을 해치웠을 때였다.
양아치 최대호 녀석과 그 약골 대학생하고 같이 있었지. 대학생 이름은 원영이었던가?
웃음이 났다. 미니 키클롭스라니.
그때 미니 키클롭스를 겨우겨우 해치웠던 자신은 이제 신이 돼서 외계인 보스 몬스터와의 최후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그땐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군그래.’
대규는 눈앞에 서 있는 지영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세미데우스가 된 뒤 반신반인의 육체를 받아 차원의 틈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욱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 뒤에선 강인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이제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었다.
판테온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싸워 온 노련한 전사였다.
그들은 항상 함께해 왔다. 차원의 틈 시절부터, 그리고 판테온의 세계에 와선 아테나 여신의 부대에 소속됐다. 게다가 대규가 신이 된 이후에 그녀는 이 부대에 와서 대장군의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그녀와 함께하는 마지막 전투가 되겠구나.’
알 수 없는 감정이 대규의 가슴속에서 굼틀거렸다.
아쉬움인지, 고마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라니…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지영이 묻자 대규는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그냥,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예? 대체 무엇이……?”
당황하는 지영을 보며 대규는 자신의 마음을 추스른 뒤 말했다.
“아니, 제가 좀 감상적으로 됐나 봅니다.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해서요.”
그러자 그녀가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대규 님, 우리는 정말 중요한 전투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제가 대규 님께 하는 게 무례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까부터 대규 님은 평소 같지 않습니다. 저는 대규 님이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저야말로 항상 대규 님에게 감사했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대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
그때 지영의 입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판테온의 새로운 전쟁의 신이시여.”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들어 대규를 바라보았다. 그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몹시 고요했다.
꼭 잔물결이 하나 없는 푸른 호수 같았다.
그리고 그 눈빛은 아테나와도 닮아 있었다.
지영은 다시 한 번 대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판테온의 새로운 전쟁의 신이시여.”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대규는 그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래, 이것은 정말 중요한 전투다. 감성적으로 되지 말자. 그녀의 말이 옳다.’
대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정한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대장군, 내일 보도록 합시다.”
“네.”
지영은 꿇었던 무릎을 펴고 몸을 일으켜 현실로 돌아갔다.
다음 날, 대규와 323명의 영웅은 주둔지에 모여 출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웅들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전투는 그들에게 마지막 전투였고, 심지어 우주 공간에서의 전투였다.
게다가 그들은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평소엔 대규가 전투에서 상대할 적들을 미리 잡아 와 영웅들을 훈련시켰다. 그래서 영웅들이 전투 전에 느끼는 두려움은 덜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영웅들의 마음속에선 긴장감과 함께 두려움이 살짝 일었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본래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더욱 크게 느끼는 법이니까 말이다.
대규는 영웅들에게 전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적이 위치하고 있는 우주의 심연부, 아자토스의 궁전으로 향할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전에 설명한 것처럼 우주 공간의 장애물 구역을 지나가야 합니다.”
대규는 영웅들을 바라보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도 그 장애물 구역에 대해선 자세히 모릅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 보니 블랙홀, 소행성대 등 별의별 장애물이 있다고 하는군요. 모두 그 구역을 무사히 통과해야 합니다. 참, 그리고 존은 저와 함께 전방에서 옵티뭄을 타고 영웅들에게 염동력 스킬을 발휘해 주십시오. 대신 존은 제가 엄호하겠습니다.”
영웅들은 대규의 전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존, 이리로 나오세요.”
존이 앞으로 나오자 대규는 보관함에서 미리 만들어 둔 링거 장치를 꺼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존이 링거 장치를 보고 묻자 대규가 대답했다.
“생명력과 마나를 풀로 채워주는 영약 엘릭서를 담은 링거 장치입니다. 우주 공간에서도 계속 포션을 꺼내 마실 순 없는 일이니까요.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효율적으로 전투하기 위해서 제가 특별 제작한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팔뚝을 내밀어 주세요.”
존이 내민 팔의 안쪽에 대규는 능숙하게 링거의 바늘을 꽂았다.
곧 링거의 가느다란 관을 타고 엘릭서가 존의 팔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 오오!”
존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몸에 활력이 돋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 만도 하지. 엘릭서가 끊임없이 그의 몸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나도 처음에 링거 바늘을 꽂았을 때 그 기분을 느꼈지.’
대규는 자신이 타고 있는 옵티뭄의 뒤쪽, 즉 엉덩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존, 이곳에 올라타세요.”
예? 제가 감히 어떻게 대규 님과 함께…….”
“괜찮습니다. 자리는 넉넉해요.”
예전에 기절한 아폴론도 이곳에 태운 적이 있었다.
“사양하지 말고 타세요. 당신이 이곳에 타야 제가 당신을 엄호하기 쉬워집니다.”
“…알겠습니다.”
존은 매우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대규의 등 뒤에 올라탔다.
그의 표정은 꼭 사단장과 함께 차를 탄 이등병의 표정과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