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261화 아자토스 (3)
대규는 케이른의 거처를 나서며 생각했다.
‘하긴, 이제 우리 부대 빼고 나머지 신들의 부대는 한시름 놓고 있겠지. 막상 앞으로 닥쳐 올 전투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케이른도 항상 전시 상황에 있을 때의 긴장을 벗어나 다시 애인도 만나고 저렇게 데이트도 할 수 있다.
‘평화롭구나.’
특히 이곳 켄타로우스의 부락은 더욱 평온했다.
이제 켄타로우스들은 아무도 갑옷을 입거나 무기를 허리춤에 차고 돌아다니지 않았다.
세계수 쪽으로 향하다가 만난 켄타로우스들은 한가롭게 플루트나 리라를 불거나 작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저번에 세계수 탐사를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군.’
어쩌면 이런 평화로운 모습이 평소의 판테온의 모습이 아닐까?
대규가 처음 판테온에 왔을 때, 아니 애초에 안내인 여자에게 영웅 후보자로 뽑혀서 차원의 틈으로 들어오게 됐을 때부터 이미 이곳은 전시 상황이었다.
‘평화로운 판테온의 모습이란 건 어떤 것일까?’
아마 다들 전쟁 때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갑자기 대규의 머릿속엔 항상 전시 상황에서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아테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쟁이 끝나면 그녀는 뭘 하면서 지내게 될까?’
그녀는 전쟁의 여신이었다. 전쟁의 여신은 전시 상황에서 더욱 빛나는 법일 터.
전쟁이 끝난 후의 아테나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녀도 저렇게 노래를 부르는 켄타로우스들처럼 평온한 삶을 살게 될까?
‘그것보다 나는 왜 그녀를 떠올리는 거지?’
그래도 아직은 전쟁이 끝난 게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은 곧 해치워야 할 외계인 부대가 하나 남아 있었다.
대규는 세계수로 향했다.
세계수에 도착한 대규는 잠깐 세계수의 외관을 감상했다.
지난번에 탐사를 왔을 때 봤던 바짝 비틀어진 세계수는 오간 데 없었다. 나무엔 아주 풍성하게 잎사귀들이 돋아나 있었다.
“히야.”
신록이 세계수에 다가간 대규는 거대한 밑동 부분에 케이른이 준 도구의 대롱을 꽂아 넣었다.
얼마 후 세계수의 투명한 수액이 대롱을 타고 죽죽 나와 대롱과 연결된 유리병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좋았어.”
대규는 얼마 후 유리병을 수액을 가득 채운 뒤 현자 센텐티아에게로 갔다.
이 세계수수액과 인어의 눈물들을 응축해 현자의 돌을 만들고 그걸로 엘릭서를 만들면 된다.
센텐티아가 살고 있는 거처는 세계수 나무 밑동에서 멀지 않았다.
센텐티아는 집 앞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눈을 감고 결가부좌를 튼 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몸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아주 미세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렸다.
‘플로우 상태에 진입했다 깨져 버린 것인가?’
대규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센텐티아가 감았던 눈을 뜬 뒤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에잇, 오늘도 실패로군! 이놈의 플로우 상태라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신들만이 오를 수 있는 경지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군.”
플로우 상태가 신들만 할 수 있는 거였구나.
하긴, 대규 자신도 맨 처음 플로우 상태에 진입했을 땐 신의 육체를 얻기 위한 시련 도중이었다.
‘그래도 세미데우스 육체를 지녔을 때잖아. 내가 대단한 것인가?’
대규는 새삼 자신의 능력에 감탄하며 센텐티아를 불렀다.
“센텐티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센텐티아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대규가 서 있는 걸 보고 그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 아니… 당신은!”
대규를 본 센텐티아의 눈에 다시 한 번 두려움의 빛이 감돌았다. 저번에 대규를 봤을 대도 그는 그런 눈빛을 했었다.
대규는 그런 그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자신을 겁에 질려 바라보는 센텐티아에게 대규는 이렇게 말했다.
“센텐티아가 수고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네?”
“저는 엘릭서가 필요합니다.”
말을 마친 대규는 센텐티아 앞에 쿵, 소리 나게 세계수 수액이 잔뜩 든 유리병을 내려놨다. 그리고 보관함에서 여태껏 쌓아 둔 인어의 눈물들을 땅바닥에 쏟아냈다.
화르르-
“이, 이건…….”
“엘릭서 100병을 만들어 주세요.”
“100, 100병 말씀이십니까?”
그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대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번처럼 각각 유리병에 나눠서 담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요?”
“한 병에다가 몰아서 넣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전투 중에 복용하기 힘들 텐데…….”
대규는 센텐티아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링거처럼 신체에 연결해 계속해서 엘릭서를 투입할 수 있는 방법 말이다.
“이런 방법을 구상 중인데, 그렇게 해도 부작용이나 그런 건 없겠지요?”
대규가 묻자 센텐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복용해도 부작용은 없습니다. 다만… 혈관을 정확히 찾아서 연결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부탁을 하면 될 것이다.
대규는 센텐티아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어쨌든 100병을 만드는 건 가능하단 말이죠?”
그러자 그는 대규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예.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뭐라구요? 하지만 저는 당장 훈련에서 엘릭서가 필요한데요.”
“대규 님, 이건 10병이 아니라 자그마치 100병입니다! 엄청난 노동을 요하는 일이라구요.”
센텐티아는 절박한 얼굴로 사정하듯 말했다.
“알겠소, 알겠습니다. 일단 최대한 빨리 만들어 주시오.”
그는 전투 전까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대규는 알았다고 한 뒤 세계수 수액과 인어의 눈물들을 그에게 건넨 뒤 그의 거처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당장 내일부터 존을 데리고 빨리 염동력 훈련을 해야 했다.
이 훈련은 염동력 스킬을 계속 써야 하는 만큼 훈련 중에도 마나를 회복하게 해 주는 엘릭서는 필수적이었다.
‘흐음, 아무래도 판테온의 광장에 가서 마나 회복 포션을 대량으로 구입해야겠다.’
물론 마나 회복 포션의 경우 좋은 것이라고 해도 마나를 100 이상 올려 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쉬웠다.
마나 포션을 대량으로 구매해 존이 염동력 스킬을 연습하는 동안 마나가 떨어지면 옆에서 자신이 존에게 포션을 주어 마나를 회복시킨다. 그렇게 떨어져 가는 마나를 회복해 가며 스킬을 연습시키면 마나량이 유지가 될 것이다.
‘물론 옆에서 바쁘게 마나 회복 포션을 공급해 줘야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전투때는 엘릭서를 링거처럼 복용하게 하면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훈련 때만 좀 고생하자.’
대규는 그렇게 다짐을 한다.
그럼 이제 해야 할 일은 판테온의 광장에 가서 대량으로 마나 회복 포션을 구입하고 헤파이스토스 대장간의 파베르를 찾아가 엘릭서 링거 장치를 제작해 달라고 의뢰하는 것이다.
대규는 헤르메스의 장화를 이용해 판테온의 광장으로 날아갔다.
우선 대규는 고급 마나회복 포션을 100개 샀다. 포션 1개가 마나를 100 채워 주니 100개면 총 10,000을 채워 주는 양이었다.
‘물론 염동력 스킬을 연습하다 보면 얼마 못 갈 것이다.’
이젠 헤파이스토스 대장간의 파베르에게 의뢰를 하러 가야 했다.
의뢰를 하러 가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대장간에 도착하자 파베르는 대규를 발견하고는 깍듯이 인사를 했다. 대규는 그에게 엘릭서 링거 장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며 의뢰를 부탁했다.
장치에 대한 대규의 설명을 듣는 파베르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가 여태까지 제작해 왔던 무기, 장비들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눈을 빛내는 건 꼭 스승인 헤파이스토스와 아주 닮았군.’
설명을 열심히 들은 파베르는 대규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만들어 드리지요.”
“고마워요, 파베르.”
“그런데 대규 님…….”
파베르는 대규가 지니고 있는 불카누스의 벼락검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응?”
“그거, 최근에 스승님이 손을 댄 무기로군요.”
“그래요. 이번에 돌풍의 조각이란 아티팩트를 장착시켰죠. 헤파이스토스 님이 직접 장착시켜 주셨습니다.”
“오, 오… 제가 한번 감히 봐도 되겠습니까?”
헤파이스토스가 아티팩트를 장착했다는 말에 그는 극존칭을 써가면서 대규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해요.”
대규는 선뜻 승낙하며 그에게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건넸다.
벼락검을 받아 든 파베르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검을 돌려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이 망치질! 완벽한 처리로군. 나는 수천 번을 두들겨도 이렇게 완벽하게 장착시키지 못할 텐데…….”
“헤파이스토스 님은 단 한 번의 망치질로 장착하던데요.”
“예엣? 단 한 번의 망치질로요?”
“그렇습니다.”
대규의 말에 파베르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역시 나와 헤파이스토스 님의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구나…….”
대규는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파베르로부터 자신의 벼락검을 돌려받은 뒤 대장간을 나섰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을 해야 될 때였다.
우선은 영웅들에게 전투 훈련을 시키기에 앞서 존을 불러와 염동력 스킬부터 연습시킬 예정이었다.
아무리 전투를 잘해도 우주 공간에서 호흡을 못 한다면 모든 게 말짱 꽝이다.
존이 염동력으로 중력을 능숙하게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스킬을 연습시켜야 했다.
바로 다음 날 대규는 323명의 영웅을 주둔지로 불러 모았다.
영웅들은 새로운 훈련이 시작된다는 말에 이번에도 대규의 반지에서 새로운 몬스터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훈련은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됐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규의 반지가 잠잠한 걸 보고 좀 놀랐다.
대규는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우선 이번 훈련에선 몬스터들과의 전투는 없습니다. 대신 제일 먼저 급하게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전투에서 우주 공간에서 싸우게 될 겁니다.”
그러자 지영이 대규에게 물었다.
“지난번 샤우그너 판의 전투 때처럼 우주의 한 혹성에서 싸우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때처럼 특정한 혹성에서의 전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우주 공간에서 싸우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주 공간엔 중력이 없어서 자력으로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영웅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라고, 우주 공간?”
“숨을 못 쉬는데 어떻게 전투를 한다는 거지?”
“그래도 우리들… 반신반인이잖아. 괜찮지 않을까?”
대규는 영웅들의 술렁임을 잠재운 뒤 말을 이었다.
“물론 제가 지닌 신의 육체는 우주 공간에서 1시간 동안 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미데우스인 여러분은 10분이 한계라고 합니다. 아무리 공격력이 높고 지영 대장군의 버프 스킬로 능력들이 향상됐다 해도 숨을 쉬지 못하면 전투는 말짱 꽝이겠지요.”
그러자 한 영웅이 대규에게 물었다.
“그럼 대규 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규는 영웅 중 맨 앞줄에 서 있는 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주에서 호흡하기 위해 우리는 존의 염동력 스킬을 이용할 겁니다. 그리고 이번 훈련을 통해 그 스킬을 개발할 거구요.”
한편 존은 자신의 이름이 대규의 입에서 나오자 깜짝 놀란 듯했다.
“대규 님, 제 스킬이 대체……?”
“존, 당신의 염동력 스킬을 이용해 중력을 조작하면 우주에서 호흡할 수 있습니다.”
“중력을 조작한다구요? 제가 지닌 스킬로 그런 게 가능합니까?”
존은 경악한 표정으로 대규를 보며 물었다.
그는 자신이 지닌 염동력 스킬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처음 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 염동력 스킬로 해 왔던 것들은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이나 사람을 둥둥 뜨게 만들었을 뿐이다.
존 자신도 염동력 스킬을 고작 ‘공중 부양 능력 스킬’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염동력 스킬은 그보다도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존이 이제 그 능력을 개방해야 할 때였다.
물론 개방을 하기 위해선 존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가 과연 훈련을 잘 버텨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