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
258화 제우스의 선택 (4)
확실히 양피지의 설명은 공략집보다 훨씬 모자랐다.
‘흐음, 잠깐만…….’
분명 양피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아자토스란 녀석은 외계인 몬스터들의 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다른 외계인들은 이 녀석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대규는 인피니투스 주머니 안에 있는 자신의 외계인 부대원 딥원들을 떠올렸다.
딥원들 역시 거인들의 지하 감옥 카르케르에 갇혀 있던 외계인 몬스터들이었다.
‘어쩌면 아자토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있을지도 모른다.’
대규는 딥원들에게 아자토스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인피니투스의 입구를 열어 딥원 부대의 대장 얀슬레이를 불렀다.
곧 얀슬레이가 인피니투스 안에서 나와 대규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그간 이 딥원 부대들을 전투에서 써먹은 적이 없었다. 신이 된 이후 부대를 창설해 영웅들을 모아 그들과 싸웠기에 이들을 불러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번 전투에선 이 녀석들과 함께 싸워볼까…….’
우선은 앞으로 상대할 최후의 외계인인 아자토스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대규는 얀슬레이에게 물었다.
“얀슬레이, 그대는 혹시 아자토스라는 외계인을 알고 있나?”
그러자 얀슬레이의 물고기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눈동자를 크게 끔벅거린 뒤 예의 중저음의 멋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자토스에 대해서 대규 님이 어떻게……?”
“내가 다음에 쓰러뜨려야 할 적이야. 그리고 최후로 남은 외계인 몬스터이기도 하지. 듣자 하니 외계인 몬스터들의 왕이라던데?”
그 말에 얀슬레이는 더더욱 놀라며 이렇게 물었다.
“최후로 남은 외계인 몬스터라구요? 그럼 나머지 외계인들이 전멸했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자토스란 녀석만 해치우면 끝이야.”
“그렇군요. 아자토스는 외계인 몬스터들의 정점에 존재하는 최고, 최강의 존재입니다.”
얀슬레이의 말에 대규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 얼마나 세지?”
그러자 얀슬레이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든 한계와 한도를 초월하고, 심지어 신조차 뛰어넘을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무지막지하고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신조차 뛰어넘는다고?
“예. 제 보스였던 다곤이나 다른 외계인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는 티탄신족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티탄 신족의 피!
그 말을 들은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얀슬레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저의 보스였던 다곤, 그리고 다른 외계인 보스들도 그를 추앙합니다. 외계인 보스들과 동급의 존재가 아니라 한 단계 상위의 존재이지요. 제 말을 못믿으시겠다면 대규 님의 반지에 저장된 외계인들을 불러내 물어보십시오.”
“아니다. 난 네 말을 믿어.”
그리고 대규는 양피지에 나와 있던 내용 중 아자토스가 앉아 있다는 우주의 암흑 옥좌에 대해 물어봤다.
“그 암흑 옥좌는 대체 뭐야?”
“아자토스가 앉아 있는 옥좌입니다. 우주 심연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아자토스의 궁전 내부에 위치한 옥좌이지요.”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분명 양피지의 설명에 따르면, 아자토스는 딱히 정해진 형체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옥좌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거지?
대규가 이에 대해 묻자 얀슬레이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아자토스는 딱히 정해진 형체는 없습니다. 인간들이나 몬스터처럼 사지가 달린 것도 아니고 다른 생명체들처럼 심장이나 장기들이 신체 내부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자토스는 혼돈, 즉 카오스(Chaos) 그 자체입니다. 뭐라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외관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은 저도 아자토스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예. 외계인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려드린 것뿐입니다. 아자토스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우주를 저절로 수축시키기도 하고 팽창시키기도 한답니다.”
이어진 얀슬레이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아자토스는 우주의 심연부 한가운데 존재하는 자신의 궁전 내부에 있는 암흑의 옥좌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그리고 그 궁전은 아자토스의 부하 몬스터인 아우터 갓(Outer god)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했다.
“아우터 갓들은 자신의 주인이자 보스인 아자토스를 위해 항상 음악을 연주합니다. 그 음악 소리는 정말이지 귀가 찢어질 것처럼 흉측하지요.”
대규가 항상 외계인들의 언어를 들을 때 느끼는 기분과 비슷한 것 같았다.
대규는 얀슬레이에게 물었다.
“그 아우터 갓이란 놈들이 녀석의 부하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일반 외계인 몬스터들과 다릅니다. 괜히 갓(god)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왕좌에 앉은 아자토스는 그곳에 앉아 아우터 갓의 호위를 받으며 끊임없이 우주의 공간을 갉아먹어 자신의 배와 몸집을 불립니다.”
“확실히 스케일이 다른 외계인 보스들과는 다른 것 같군.”
“그렇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아자토스의 궁전엔 한번 가면 아자토스를 해치우기 전까진 나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
“예. 아자토스를 해치우고 그가 앉아 있는 암흑의 왕좌를 새로이 탈취하기 전까진 궁전은 닫혀 있는 상태가 유지됩니다. 아자토스의 궁전은 그런 곳입니다.”
그 말에 대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얀슬레이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여태까지 쭉 해왔던 훈련을 하는 데 지장이 생겼다. 미리 적의 주둔지에 가서 외계인 한 마리를 죽여 소환의 반지에 저장해 온 뒤 그것으로 영웅들을 훈련하는 걸 할 수 없단 말이다.
흐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쨌든 알겠다. 고마워, 얀슬레이.”
대규가 감사 인사를 하자 얀슬레이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이런 날이 정말로 오는군요. 외계인 부대가 완전히 다 전멸하는 날이…….”
그의 물고기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오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얀슬레이를 비롯한 인피니투스 안의 딥원들은 지금은 대규의 부하라지만 본래는 외계인 부대 소속 몬스터들이었다.
그러자 대규는 그의 말에 반박하며 말했다.
“전멸이라고 하지 마라. 내 소환의 반지 안엔 몇몇 외계인 보스가 영원한 존재로 남아 있어. 그리고 그대를 포함한 딥원들도 전멸하지 않았잖아. 너희는 단지 마음씀씀이를 고쳤을 뿐인 거야.”
그 말을 들은 얀슬레이는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다시 인피니투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 대규는 새로운 훈련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흐음, 이거 평소보다 더 효과적인 훈련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얀슬레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전투는 꽤 힘든 전투가 될 것이다. 대규는 그렇다 치고, 부대의 영웅들이 과연 아우터 갓을 잘 제압할 수 있을까?
‘일단 그건 좀 생각을 해보자. 나도 이제 현실로 좀 돌아가자.’
대규는 생각을 마친 뒤 포탈을 열어 자신의 오피스텔로 돌아갔다.
오피스텔로 돌아왔지만, 시간은 판테온으로 떠날 때와 변한 것이 없었다.
‘그 엄청난 전투들을 치르고 왔는데도… 정말 돌아올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야.’
대규는 자신의 불카누스 벼락검과 방패를 바라보았다. 돌풍의 조각과 얼음의 조각을 각각 장착한 장비들은 꽤 멋있어 보였다.
‘좋았어.’
돌아왔지만 오늘의 훈련을 게을리할 순 없다.
대규는 오피스텔의 옥상으로 올라가 목검을 쥐고 플로우 참파 검법을 연습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돌풍의 조각을 단 불카누스 벼락검으로 한번 시전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이 오피스텔을 다 날려 버리고 말겠지. 가만있자.’
훈련하고 돌아와 잠깐 눈을 붙였다.
얼마 후 날이 밝았고, 대규는 자신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리고 미국 진출에 관한 자료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존과 존의 회사 드래곤 익스프레스와의 계약을 체결한 후 탕꼬와 대규식품의 미국 진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골치 아프게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존이 딱딱 알아서 일을 잘 진행해 준 덕분이었다.
역시 큰 규모로 사업을 펼치는 데엔 존의 경력이 대규보다 한 수 위였다.
지난번 훈련 기간 동안 존은 판테온의 세계에선 열심히 훈련하면서 현실에선 동시에 대규식품의 미국 진출 사업을 활발히 펼쳤다. 대규는 한국의 사무실에서 그와 관련해 존에게 브리핑만 받았다.
애초에 존과 드래곤 익스프레스가 이 모든 걸 알아서 한다는 게 계약 조건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대규는 존이 잘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존의 사업 현황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판테온에서 전투를 마치고 사무실로 출근한 대규는 바로 존에게 화상 통화를 걸어 사업 진행 과정을 보고받았고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시범적으로 대규식품의 대표 프랜차이즈 식당인 탕수육 치킨 식당, 탕꼬 레스토랑이 입점할 가게 위치를 선정했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탕꼬 1호점이 설립될 위치!
대규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몹시 설렜다. 그래서 존에게 화상 통화로 다급하게 물었다.
“탕꼬는 어디에 입점하게 됩니까?”
혹시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광장 같은 곳에 가게가 나는 것은 아닐까?
나름 속으로 그런 기대를 했다.
타임스퀘어 광장이라면 미국에서도 최대의 번화가였다. 그곳 광장에 입점하지 못한다 해도 광고만 걸려도 대박이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한국 기업의 광고가 타임스퀘어 광장에 걸렸을 때 그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단순히 미국 내의 매출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광고로 인해 달성된 회사의 매출액도 매출액이라지만, 해외 광고 효과는 국내에서도 엄청났다.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에도 진출하다니!’
자국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애국심도 생겨서 오히려 국내에서의 매출 역시 더욱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어쩌면 탕꼬에도 그런 현상이 벌어질지 몰랐다.
심지어 이건 광고도 아니고 타임스퀘어 입점이니까!
대규는 기대감을 안고 존에게 물었다.
“맨해든 뉴욕 시티 같은 번화가에 탕꼬가 입점하게 되나요?”
하지만 존의 대답은 대규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아닙니다. 번화가보다는 주거 지역 근처의 대형 마트와 몰의 푸드 코트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주로 월마트의 푸드 코드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대부분 드래곤익스프레스가 있는 매장이지요.”
“뭐라구요?”
그 말에 대규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존은 그런 대규의 표정을 알아보고는 곧바로 이렇게 말했다.
“우선 대규 님, 맨해튼 같은 대도시 구역의 건물 임대료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세 규제 지역(rent-controll area)이 아니면 들어가기도 힘듭니다.”
“그래요?”
“네. 게다가 이 탕수육 치킨의 경우 메뉴 자체가 고가가 아니기 때문에 세를 충당할 럭셔리 전략을 쓸 수도 없습니다. 여러모로 지금 이 단계에서 탕꼬가 맨해튼에 진입하기엔 리스크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존은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었다.
“우선은 친숙한 입맛으로 전미 지역의 미국인들을 사로잡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마트의 푸드 코트로 들어가면 드래곤 익스프레스 계열의 식당이라고 홍보하는 것도 수월해지거든요. 참, 그리고 이것은 우리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미국식 탕꼬 메뉴입니다.”
“새로운 메뉴요? 현지 메뉴군요. 어디 봅시다!”
대규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후, 화상 통화 모니터에 한 음식의 모습이 띄워졌다.
그것은 한국에서 파는 탕수육 치킨보다 훨씬 크기가 컸다. 그리고 껍질 튀김 역시 한국 탕꼬보다 좀 더 바삭바삭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인들은 크리스피한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대신 소스는 대규 님이 주신 입소문 양념 소스를 베이스로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의 탕꼬 소스와 거의 차이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겁니다.”
존이 선보인 것은 사이드 메뉴였다.
“미국인들은 사이드 메뉴를 중시하거든요. 특히 치킨엔 감자튀김이란 공식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랍니다. 그래서 커다란 감자인 아이다호 감자를 썰어 웨지 감자튀김을 곁들였습니다. 감자튀김 소스 역시 사장님이 주신 입소문 양념 소스를 베이스로 해서 케첩과 섞어 보았습니다. 아주 중독적이더군요.”
“그래요?”
“네. 직원들이 이 소스 없이는 못 살 정도가 됐습니다. 꼭 마약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