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257화 제우스의 선택 (3)
그것보다 이게 몬스터가 맞는 걸까?
대규는 세 명의 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백색의 대머리 몬스터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봐왔던 몬스터들과 확실히 달랐다. 여태까지 봐 왔던 몬스터들은 거인들이든, 외계인이든 외관을 떠나서 모두 어두침침한 기운, 사기(邪氣)를 뿜어내고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피규어들은 몬스터들이 지닌 기운마저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백색의 인간형 몬스터들은 달랐다.
자꾸 보고 있자니 뭔가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걸. 꼭 맨 처음 판테온의 신들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두려움과 경외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몬스터의 사기라기보단 신성한 기운에 가까웠다.
‘말도 안 돼. 괴물이 신성한 기운을 내뿜는다고?’
한편 대규의 반응을 본 헤파이스토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보고 있는 그들은 몬스터가 아닐세.”
“네?”
“그들은 티탄 신족들이야.”
그 말에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티탄 신족이라면 분명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와 함께할 최후의 전투에서 싸우게 된다는 종족이었다.
대규는 황당한 표정으로 헤파이스토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자네도 들어 본 적 있지 않은가? 제우스 님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도 그 티탄 신족의 일원 중 한 명이었지.”
대규는 다시 한 번 티탄 신족들의 피규어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몸집은 신들보다 몇 배는 거대했다.
“그들은 눈처럼 하얀 백색 피부에 민머리, 그리고 붉은 눈동자가 특징이지. 사기 대신 신성이 느껴지는 것도 맞아. 어쨌든 그들의 핏줄은 몬스터라기보단 신에 가까우니까 말이야.”
헤파이스토스는 계속해서 티탄 신족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은 판테온의 신들이 현재의 판테온을 지배하기 이전에 이곳을 지배했던 신들이었네.”
“그렇군요.”
“내가 알기론 그들 중에선 불한당 같은 존재들만 있는 건 아니었어. 물론 지금 기간토마키아 전쟁을 벌이는 수뇌부 크로노스를 포함한 신족들은 불한당 같은 존재들이지만 말이야…….”
크로노스에 대한 이야기는 대규 역시 신화 지식을 쌓아서 알고 있었다.
제우스의 아버지인 티탄 신족 크로노스는 그 옛날 태초의 하늘의 신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시켜 죽였다. 그러고는 판테온을 지배하는 왕이 됐다.
하지만 그 역시 미래에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몰아낼 것을 항상 두려워했다. 그 자신이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몰아낸 것처럼 말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 두려움에 크로노스는 아내가 자신의 자식들을 낳을 때마다 족족 잡아먹어 버렸다.
하지만 제우스는 운이 좋게 크로노스의 포식을 피해 몰래 키워졌고, 결국 제우스가 성인이 됐을 땐 크로노스의 두려움이 현실이 됐다.
제우스는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판테온 신들을 모아 티탄 신족과의 전투를 벌여 승리했다. 그리고 크로노스를 포함한 모든 티탄 신족들을 심연의 결계에 가둔 뒤 최종적으로 판테온을 지배하는 신들의 아버지가 됐다.
여기까지가 대규가 알고 있는 신화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간토마키아에서 그간 심연의 결계에 갇혀 있을 거라고 믿었던 크로노스가 다시 풀려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제우스와 하데스, 포세이돈은 대규를 포함한 2세대 신들이 크로노스의 수하들인 외계인 부대를 몰아내는 동안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 신족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전에 제우스가 한 말을 들어보니 최후의 전투엔 그의 아버지이자 이 모든 전쟁의 원흉인 크로노스도 참전하는 것 같았다.
대규는 헤파이스토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티탄 신족들은 대체 뭐 하는 종족들입니까? 좀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그러자 헤파이스토스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음… 그들은 판테온의 신과는 전혀 다른 육체를 지니고 있지. 정확히 말하면 몬스터와 신이 합쳐진 육체랄까…….”
“몬스터와 신이 합쳐졌다구요?”
“그러하네. 티탄이란 건 거인을 뜻하는 말이지. 자네도 거인 몬스터들 혹은 거인 대장 기간테스들을 상대해 봐서 알겠지만, 거인들은 몸집이 거대하고 피부 거죽이 두껍네. 티탄 신족들은 이 거인들의 육체가 지닌 강인함을 물려받았고, 동시에 신이기 때문에 신들처럼 신성을 지니고 있지.”
“그럼 우리 판테온의 신들처럼 자가 치유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까?”
“그렇지.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기간테스와 판테온 신들이 합쳐진 형태라고 보면 돼.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헤파이스토스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들은 지능이 높아. 단순히 싸우는 것만 좋아하는 무식한 거인 대장 기간테스 녀석들과는 다르지. 어쨌든 옛날엔 판테온을 지배했던 신들이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대규가 자신에게 내민 돌풍의 조각과 얼음의 조각을 흘끗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이 두 개의 아티팩트들을 자네의 무기나 장비에 장착하면 티탄 신족들도 꽤 당황할 걸세. 초월자 등급 무기에 아티팩트까지 장착했으니 그들도 자네를 쉽게 이기진 못할 걸세. 어쩌면 동등한 능력을 낼 수 있을지도…….”
이렇게 말한 뒤 그는 껄껄 웃으며 덧붙였다.
“하하, 이거 전투도 하기 전에 내가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게 하는 건가? 자네는 그들과 싸우기 전에 우선 섬멸해야 할 외계인 부대가 남아 있지.”
“그렇습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게. 이 아티팩트들을 자네 무기들에 당장 장착해 줄 테니까 말이야.”
말을 마친 헤파이스토스는 그제야 자신의 작업대로 향했다.
작업대에 불카누스의 벼락검과 네메시스의 방패, 그리고 두 아티팩트를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기다란 집게를 이용해 돌풍의 조각을 살짝 건드렸다.
“뭘 하시는 겁니까?”
대규가 묻자 그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티팩트를 자네의 검에 장착하기 위해선 아티팩트의 닫혀있는 부분을 개방해야 해. 하지만 이건 엄청난 마력을 담고 있는 물건이라 맨손으로 만졌다간 큰일이 날 걸세.”
그 말을 들은 대규는 맨 처음 얼음의 조각을 멋도 모르고 맨손으로 만졌던 때를 떠올렸다.
‘맨손으로 만졌다가 손이 조각의 표면에 달라붙어 꽤 애를 먹었지.’
헤파이스토스가 집게 끝으로 돌풍의 조각을 건드리자마자 조각 표면에 강력한 돌풍이 일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돌풍은 이제 작업장 내부를 다 날려 버릴 정도로 세게 불었다. 그때 헤파이스토스가 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돌풍 주변에 강력한 방어 결계가 쳐졌고, 돌풍은 그 결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헤파이스토스는 돌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휴… 꽤나 강력한 돌풍이군. 역시 진귀한 아티팩트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는 이제 다른 도구들을 이용해 돌풍의 조각을 현란하게 건드렸다.
그 모습은 꼭 메스를 붙잡고 신속하게 수술을 집도하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다.
물론 그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고 헤파이스토스는 무기를 제작하는 대장장이였지만 말이다.
헤파이스토스가 온갖 도구들로 돌풍의 조각 표면을 건드리자 얼마 후 돌풍은 알맞은 강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는 돌풍의 조각을 대규의 불카누스 벼락검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화염이 나오는 곳은 사슬검의 검신 끝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검신 끝에 이 조각을 넣어야겠군.”
그는 돌풍의 조각을 사슬 검날의 끝으로 가져갔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과정이지. 흐으읍!”
헤파이스토스는 나즈막한 기합을 내지른 뒤 오른손에 든 망치를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사슬검날 끝에 놓인 돌풍의 조각을 향해 있는 힘껏 망치질했다.
까아앙!
파사삭-
“어엇!”
대규는 깜짝 놀라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돌풍의 조각이 망치 한 번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놀라서 물었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놀라지 말게.”
완전히 산산이 조각난 돌풍의 조각 가루들이 사슬 검날의 끝부분에 녹아들듯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돌풍의 조각 주변에서 휘잉, 거리며 불었던 돌풍들도 서서히 검신에 흡수됐다.
휘이잉-
얼마 후 작은 돌풍들이 벼락검의 검날 주변에 불기 시작했다.
헤파이스토스는 벼락검을 대규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다 됐네. 한번 시험해 보게.”
대규는 불카누스의 벼락검을 오른손에 쥐었다.
돌풍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검을 시험 삼아 한번 휘둘러 봤다.
휘이잉-
화르륵!
“으앗!”
벼락검 끝에서 불기둥 돌풍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헤파이스토스가 적절한 타이밍에 방어마법을 펼치지 않았다면 그의 움집 대장간은 흔적도 없이 타 버렸을 것이다.
‘엄청나군!’
꼭 주샤콘의 돌풍과 자신이 지닌 악마의 화염을 합쳤을 때와 비슷한 위력이었다.
그럼 이젠 얼음의 조각을 방패에 장착할 차례였다.
이번에도 헤파이스토스는 집게로 얼음의 조각을 날렵하게 건드렸다.
얼음의 조각 표면에선 냉기가 뿜어져 나왔고, 곧 작업대 주변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게를 움직여 얼음의 조각을 방패에 장착하기 적당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방패 표면에 새겨진, 괴물뱀 아이기스의 얼굴에 얼음의 조각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망치를 들어 있는 힘껏 얼음의 조각을 내리쳤다.
콰아앙!
파지직!
얼음의 조각이 단 한 번의 망치질에 산산이 조각났고, 곧 방패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아이기스의 얼굴로 스며들었다.
이제 아이기스의 얼굴은 꼭 이타콰의 빙결 스킬이라도 맞은 것처럼 하얗게 얼어 버렸다.
“키에엑!”
얼굴이 얼어 버린 아이기스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몹시 만족한 표정으로 망치를 내린 뒤 방패를 내밀며 대규에게 말했다.
“됐네. 이제 이 방패는 앞으로 화염 계열 공격에 효과적으로 반응할 거야. 그리고 자네를 향해 날아오는 모든 물리적인 공격들을 얼게 만들어 버리지.”
“어떻게 말입니까?”
대규가 묻자 그는 다시 방패를 자신이 가져간 뒤 들어 보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방패를 들고 있을 테니 자네가 한번 자네의 벼락검으로 화염 벼락을 날려 보게나. 그럼 방패의 성능을 시험해 볼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대규는 돌풍의 조각이 장착된 자신의 벼락검을 들은 뒤 헤파이스토스를 향해 세차게 휘둘렀다.
휘이잉-
콰지직!
불길 돌풍과 함께 화염 벼락이 사슬검 끝에서 날아갔다.
화염 벼락이 헤파이스토스를 향해 날아가자 그 순간 방패에 새겨진 아이기스가 눈을 번쩍 떴다.
쩌억-
녀석이 입을 벌리자 그 안에서 거센 눈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꼭 이타콰의 빙결 스킬 같았다.
아이기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눈보라는 대규가 날린 화염 벼락을 얼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전히 다 얼리진 못했다.
그래도 화염 벼락의 위력은 꽤 많이 감소됐다.
그리고 아이기스는 입을 다시 벌려 블랙홀 같은 입속으로 위력이 감소된 화염 벼락을 쑥 흡수해 버렸다.
“우와! 엄청나군요.”
대규가 감탄을 하자 헤파이스토스는 껄껄 웃은 뒤 이렇게 말했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닐세.”
“예?”
“이 아이기스의 방패는 본래 제우스 님의 벼락을 소환할 수 있는 장비 아니었나? 저번에 업그레이드하면서 붉은 벼락을 칠 수 있게 된 거로 아네만. 이제 이 얼음의 조각을 장착했기 때문에 냉기를 품은 벼락까지 불러올 수 있게 됐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대규가 고개를 90도 숙여 감사 인사를 하자 헤파이스토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야말로 재밌었어. 이런 유의 무기 제작은 항상 가슴이 설렌단 말이야. 대규, 나는 자네가 외계인 부대를 섬멸했으면 좋겠네. 그래야 내가…….”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이 만든 피규어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의 뛰어난 전투들에 영감을 받아서 다른 멋진 작품들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겠군요. 어쨌든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대규는 정중하게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자신의 주둔지로 돌아왔다.
무기들도 업그레이드했겠다, 이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제는 아자토스와의 전투를 준비하면 된다.’
하지만 이 외계인 녀석은 대체 어떤 녀석일까?
양피지의 설명만으론 충분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