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256화 제우스의 선택 (2)
대규의 물음에 아테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전쟁이 끝나기 전에 한 번쯤은 그대와 함께 싸우고 싶었는데…….”
만약 마지막 외계인 부대를 섬멸하게 되면 이제 대규는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과 함께 티탄 신족과의 최후의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될지 몰랐다. 전쟁이 끝나면 앞으로 아테나와 같이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그녀와 한 전쟁터에서 함께 설 일은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좀 묘해졌다.
그래도 맨 처음 판테온에 와서 그녀의 부대에 소속돼 함께 싸워 왔었기 때문이다.
가슴 한구석이 안타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이런 기분에 휘말릴 때가 아니다.’
하지만 대규는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은 자신이 할당받은 최후의 외계인 아자토스를 해치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만에 하나 실수를 해 패배한다면 전쟁의 신 칭호는 물 건너간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추스르는데 아테나가 그에게 말했다.
“어쨌든 대규, 나는 그대가 외계인 부대와 전투를 해 이기길 빈다.”
그 말에 대규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정말이야? 만약 내가 섬멸하는 데 실패하면 아테나 너에게 기회가 오잖아.”
“괜찮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전쟁의 신이 되는 건 괜찮다. 아니, 나는…….”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실 마음속으론 네가 판테온의 전쟁의 신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린 뒤 새침한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물론, 나는 전쟁의 여신으로 계속 남아 있겠지만 말이야.”
그 말에 대규는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그게 뭐야. 전쟁의 신은 한 명이어야지. 하늘 아래 두 태양이 뜰 수는 없는 법이잖아.”
대규의 말을 들은 아테나는 잠깐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곧 피식 웃으면서 수긍했다.
“그것도 그렇군.”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생소한 모습이었다. 막상 보니 놀라웠다.
“어쨌든 대규, 나는 그대를 응원한다. 꼭 아자토스를 성공적으로 섬멸하길 바란다.”
“그래. 하지만 만만치 않을 것 같아. 형체가 없는 외계인이라니…….”
말을 마친 아테나는 자신의 주둔지로 이동해 버렸다.
대규는 일단 자신의 주둔지로 돌아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옵티뭄을 타고 주둔지로 단번에 돌아왔다.
지휘사령부 천막은 아무도 없어서 휑하니 비어 있었다. 영웅들은 이미 현실로 돌아가 버린 상태였으니 말이다.
천막 안엔 지난번 자신이 만들었던 불길 왕좌만이 외롭게 놓여 있었다.
대규는 불길 왕좌에 앉아 생각했다.
‘일단 제우스에게 받은 백색 상자의 보상을 확인해 보자.’
분명 스킬일 것이다.
여태까지 제우스가 줬던 보상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스킬이었다.
백색 상자를 열자 무지개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상자 속엔 스킬 비석이 2개나 들어 있었다.
‘뭐지? 아, 혹시 아폴론이 해치웠어야 했던 몬스터 이타콰까지 해치워서 2개를 받은 건가?’
그런 것 같았다.
대규는 우선 첫 번째 스킬 비석을 손에 쥐었다.
파아앗!
스킬 비석 안쪽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곧 비석은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두 번째 스킬 비석도 연이어 손에 쥐었다.
연달아서 두 개의 스킬을 익히려니 좀 힘들었다. 근육이 파르르 떨렸고,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버틸 만했다.
두 개의 스킬을 흡수한 대규는 보유 스킬란을 확인해 봤다.
가장 최근에 습득한 방어 결계 스킬 와이드 프로텍팅 밑에 두 가지의 스킬들이 새로 생성돼 있었다.
마나 폭렬-마나 한계량을 1분 동안 두 배로 높여주는 스킬. 체내에 흐르고 있는 마나의 흐름을 비정상적으로 변형시켜 가능케 한다. 마나의 한계량은 높아지지만 이 스킬 시전 시 그만큼 마나가 풀로 채워지진 않는다. 마나 소모 500.
희한한 스킬이었다.
‘마나 한계량을 늘려 준다고?’
그것도 마나를 사용해서 마나 한계량을 늘려 주는 스킬이다.
물론 마나 한계량이 두 배로 늘어나면 좋은 점이 있다.
현재 대규의 마나 한계량은 3,000남짓. 여기서 두 배로 늘어나면 한계량은 5,000을 훌쩍 넘는다.
‘그 말인즉슨…….’
대규는 비야키의 꼬리로 인해 옵티뭄이 지니게 된 스킬을 생각했다.
‘쾌속 비행 스킬!’
[쾌속 비행-비행 속도를 급격하게 끌어 올려 광속으로 날아오르는 스킬. 도망에 요긴하며, 대기의 흐름을 엉망으로 만들어 적에게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공격을 가한다. 마나소모 5,000.]
쾌속 비행은 마나를 5,000이나 소모하지만, 빛의 속도로 날아다닐 수 있는 초강력 스킬이었다.
게다가 이 스킬은 단순히 빠르게 날 수 있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설명에 적힌 것처럼, 광속으로 날아가면서 대기의 흐름을 변형시켜 간접적으로 적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공격 스킬이었다.
‘대신 마나 폭렬 스킬은 한계량만 늘어나지, 마나량까지 늘어나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스킬을 쓴 뒤 엘릭서를 복용하든지 해서 마나량을 채워 놔야겠군.’
여하튼 마나 폭렬은 신기하고 특이한 스킬이었다.
그리고 대규는 다음 스킬을 확인해 봤다.
[신의 축복-자신이 원하는 상대에게 축복을 내린다. 자신보다 하위 등급 존재들에게만 내릴 수 있으며 축복을 받은 존재는 랜덤하게 능력이 상승한다. 전투에서 승리한 영웅들에게 보상으로 사용하면 효과가 아주 좋다. 마나 소모 700.]
‘이것은……!’
대규는 맨 처음 아테나 부대에 소속돼 싸웠던 전투를 떠올렸다.
분명 전투에서 승리를 하자 아테나는 부대의 모든 영웅에게 축복을 내려 줬었다.
‘그때 전투 감각이 처음으로 상승했었다.’
아테나뿐만 아니었다. 지난번 샤우그너 판과 전투만 해도 대규의 부대가 전투에서 승리하자 제우스의 별이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줬다.
‘그 축복을 내리는 것도 신이 지닌 스킬이었구나.’
이 스킬이라면 앞으로 영웅들에게 손쉽게 보상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나 소모량이 꽤 있긴 하겠지만, 그건 회복하면 되는 거고!’
대규는 이제 불길의 왕좌에서 일어났다.
제우스에게 보상으로 받은 스킬들도 확인했,고 이제 중요한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다음 전투에 관한 준비였다.
‘다음 전투를 위해선 더욱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대규는 이번 전투에서 외계인들을 쓰러뜨리고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들을 꺼내 봤다.
바로 돌풍의 조각과 얼음의 조각이었다.
그것들은 각각 주샤콘과 이타콰를 해치우고 얻은 보상이었다.
돌풍의 조각은 설명을 보니 주샤콘처럼 강렬한 돌풍을 불러일으키는 아티팩트였고, 얼음의 조각은 냉기를 뿜어내며 빙결 스킬을 지니고 있는 아티팩트였다.
대규는 그 두 아이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것들을 내가 갖고, 있는 무기나 장비에 장착하면 어떨까?’
특히 이 돌풍의 조각 같은 경우 자신이 지니고 있는 불카누스의 벼락검에 장착하면 매우 효과적일 것 같았다.
대규는 이번 전투에서 돌풍과 합쳐진 악마의 화염 위력을 아주 톡톡히 봤다.
‘무지하게 위협적이었지. 불과 돌풍의 조합은 정말 엄청났다.’
그리고 또한 이번 전투에서 확인했던 자신의 방패도 떠올렸다.
바로 괴물 뱀 아이기스가 입을 벌려 이타콰의 얼음송곳 공격을 방어해 냈던 모습이 떠올랐다.
‘꼭 작은 블랙홀이 방패에 달린 것 같았다. 그 방패에 이 얼음 속성을 지닌 얼음의 조각을 장착하면 어떨까?’
이미 지닌 불카누스의 벼락검은 강력한 화염 계열 속성의 무기였다. 돌풍의 조각을 장착하는 건 가능했지만, 화염 계열과 완전히 상반된 얼음 계열 아티팩트 얼음의 조각을 장착하는 건 무리였다.
오히려 화염과 얼음의 상충되는 성질 때문에 본래 지니고 있는 무기의 강력함이 반감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방패엔 가능하다. 어쩌면 아이기스가 앞으로 얼음 숨결 같은 걸 내뿜으며 방어할지도 모르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대규는 이 조각들을 장비에 장착하기 위해 헤파이스토스를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이 정도 아티팩트를 장비에 장착할 수 있는 대장장이는 현재 판테온에서 헤파이스토스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자신이 지니고 있는 벼락검은 초월자 등급의 무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무기를 다룰 줄 아는 건 헤파이스토스밖에 없다.’
대규는 헤르메스의 장화를 이용해 그의 작업 대장간으로 향했다.
오늘도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대규가 움집 대장간의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헤파이스토스는 그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망치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장간에 있는 피규어들의 개수는 점점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우와, 이거 짱인데…….”
작업장에 놓인 수많은 피규어 중 한 피규어가 대규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것은 제우스의 피규어였다.
정확히는 제우스와 하데스, 그리고 포세이돈 3형제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제우스의 모습이 퀄리티가 좋았고, 가장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3형제가 싸우고 있는 적의 모습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게 대체 뭐지?’
그들과 싸우고 있는 적들은 상당히 괴상하게 생긴 생명체였다.
분명 사지가 달린 인간형 몬스터였는데, 온몸의 피부가 백색이었고 머리는 털 한 오라기 없는 대머리였다. 꼭 달걀처럼 반질반질했다.
하지만 눈동자는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녀석들의 홍채와 동공은 피처럼 붉었다.
그 점을 빼면 인간, 혹은 판테온의 신들과 똑같이 생겼다.
판테온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세 명의 신인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백색의 대머리 몬스터들은 만만치 않은 적일 것이다.
그때 마침 헤파이스토스가 대규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어이, 대규. 자네였군. 언제 왔는가?”
“아까부터 있었습니다.”
헤파이스토스의 얼굴엔 땀방울이 그득하게 맺혀 있었다.
그는 대규를 향해 다가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축하하네. 소식은 들었어. 자네가 아테나를 제치고 최후의 외계인 부대를 섬멸할 권리를 얻었다지? 이거 잘하면 판테온에 새로운 전쟁의 신이 탄생하겠군.”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대규는 겸손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지?”
헤파이스토스의 물음에 그는 돌풍의 조각과 얼음의 조각을 내밀며 말했다.
“제 검과 방패에 이것들을 장착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대규가 내민 돌풍의 조각과 얼음의 조각을 본 헤파이스토스는 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 오오… 이건!”
감탄하며 놀라고 있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대규는 친절히 설명해 줬다.
“외계인들을 해치우니 나온 보상입니다. 이것들을 무기에 장착하는 게 가능합니까?”
그러자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물론이지! 하지만 이 조각들은 꽤 정교한 원리로 만들어진 아티팩트로군. 역시 외계인들은 알 수 없는 존재야. 아마 단순한 장착이라면 한 시간이면 될 거야. 그동안 여기서 기다리겠나?”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헤파이스토스는 대규의 대답을 들은 뒤 다시 한 번 두 아이템을 바라보며 말했다.
“딱 보니까, 돌풍의 조각은 자네 벼락검에 달면 좋겠군.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돌풍과 화염의 위력이 합쳐지면 배로 세지니까 말이야. 그런데 이 얼음의 조각은……?”
대규는 그의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
“방패에 달려고 합니다. 헤파이스토스 님이 지난번에 합쳐 주신 방패 말입니다.”
“흐음… 그 방패에 이 얼음의 조각을 장착한다고? 어떤 효과를 지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흥미로운 조합이 될 것 같군. 그럼 조금만 기다리게.”
“감사합니다!”
대규는 허리를 숙여 공손히 그에게 인사했다.
헤파이스토스는 이제 두 개의 조각들과 대규의 벼락검, 방패를 들고 자신의 작업대로 향했다.
대규는 방금 전 자신이 봤던 피규어를 다시 보며 그에게 물었다.
“헤파이스토스 님,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이 피규어는 대체 무엇입니까?”
대규가 피규어를 가리키며 묻자 헤파이스토스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마음에 드는가? 이번에 새로 제작한 것이지. 제우스 님에게 헌정하려고 만든 것이네.”
“그렇군요. 그런데 세 분의 신께서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는 대체 뭡니까? 이런 몬스터는 여태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