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
255화 제우스의 선택 (1)
대규는 사실 아테나의 그런 표정을 예전에 그녀의 부대에 있을 때 드물지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표정은 대규가 아테나 부대 소속 영웅이었을 때 자신이 뛰어난, 혹은 예상치 못한 전공을 세우거나 하면 그녀가 보였던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테나 자신이 전공을 세워 제우스에게 보상을 받을 때도 저런 표정을 지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지금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인 것이다.
아테나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의 표정 역시 볼만했다.
특히나 아레스의 표정은 아주 죽상이었다.
그는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거리고 있었다. 불만에 찬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워낙 낮고 빠른 목소리라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불만스러운 표정 이면에는 몹시 낙담한 기색도 엿보였다.
그때 제우스가 신들이 앉아있는 원탁에 나타나며 입을 열었다.
“다들 모였는가.”
그 말에 원탁에 앉아 있던 신들은 다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제우스는 자신의 양옆에 앉아 있는 하데스와 포세이돈을 쓱 둘러본 뒤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대들을 급하게 부른 이유는… 이제 최후에 남은 한 외계인 부대만 섬멸하면 되는 시점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누가 섬멸하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각자 할당받은 외계인 부대와 펼친 전투들을 잘 지켜보았다.”
제우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누군가는 몹시 훌륭한 전투를 펼쳐 줬고, 누군가는 아주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전투를 펼쳤지.”
실망스러운 전투, 라는 말이 제우스의 입에서 나오자 아폴론은 움찔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두각을 보인 신이 두 명 있었다.”
두 명?
신들이 그 말에 고개를 들고 제우스를 바라봤다.
다들 두 명 안에 자신이 들어 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섬멸해야 할 외계인 부대는 하나. 따라서 두 명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이건 내 독단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여기 있는 하데스와 포세이돈과 상의를 해야 했기 때문이지.”
그 말을 들은 2세대 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긴장감과 기대감이 엿보였다.
제우스는 신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선, 그 첫 번째 후보는 바로… 아테나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아테나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다른 판테온의 신들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좀 전보다 더욱 상기된 표정이었다.
‘아마도 아테나는 자신이 후보에 뽑힐 줄 알고 있었을 거야.’
대규는 아테나를 바라보며 생각해다.
그걸 예상했으니 아까부터 상기된 표정을 지었던 거겠지.
신들을 돌아보는 그녀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제우스는 아테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테나여, 이번에 그대가 펼쳤던 전투는 아주 잘 보았다. 특히 내 형제인 포세이돈이 몹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포세이돈이 아테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테나, 그대의 전투는 정말 훌륭했다. 특히 두 번째 할당받은 외계인과의 수중전! 그대는 판테온 바다의 신인 나보다도 수중전에 더 능한 것 같더구나. 전쟁의 여신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형님, 형님은 정말 딸 하나는 잘 두셨습니다.”
제우스는 포세이돈의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니다. 아테나 저 애가 뛰어난 덕분이지.”
그리고 제우스는 아테나의 승전에 대해 칭찬하기 시작했다.
“수중전을 했던 두 번째 전투는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 심지어 적의 머릿수가 아군에 비해 10배는 많았는데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지. 게다가 무엇보다 매우 신속하게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게 돋보였다. 아테나, 그대의 신속한 전투 시간은 판테온의 전쟁 전투 역사상 신기록이었다.”
신기록!
그 말에 대규를 포함한 다른 신들은 모두 놀라 아테나를 바라보았다.
대규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생각했다.
‘대체 얼마나 빨리 해치운 거야? 나도 항상 빨리 전투를 끝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자신은 저런 칭찬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아테나의 표정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한편으로 대규는 그런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아테나는 지난번 대규, 헤르메스와 함께했던 전투에서 외계인 보스 몬스터였던 하스터에게 석화 공격을 당한 이후 전투에 두려움을 갖고 자신감도 많이 상실된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한 소리 했을 정도였지.’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저렇게 훌륭한 전투를 펼치는 걸로 보아 확실히 그녀는 전쟁의 여신이었다.
‘싸우는 것만 좋아하고 욱하면서 사고치는 아레스와는 다르다.’
아테나는 겸손한 목소리로 제우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두 번째 후보…….”
그는 말꼬리를 흐리며 대규를 바라보았다. 모두 대규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대규, 그대는 첫 번째로 할당된 외계인 몬스터와 그 부대를 제일 먼저 섬멸했었지. 그리고 이번 전투도 아주 잘 봤다. 본래라면 아폴론이 상대했어야 할 몬스터까지 그대가 완전히 해치웠지. 더군다나 그대 부대의 영웅들은 머릿수도 훨씬 적었는데 말이야.”
“감사합니다.”
제우스가 대규의 칭찬을 하는 동안 아폴론은 거의 죽상이었다.
이제 제우스는 아테나와 대규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의 전투는 너무 훌륭했다. 그래서 하데스와 나, 그리고 포세이돈은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방금 전 결국 결정을 내렸다. 최후의 외계인 부대를 섬멸할 자격을 얻은 신은…….”
두근두근.
대규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아테나 역시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살짝 긴장으로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제우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바로 대규다.”
대규의 이름이 호명된 순간 아테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제우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내 딸아, 너의 전투는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대규는 자신이 할당받은 몬스터들뿐만 아니라 아폴론이 할당받았던 몬스터까지 총 세 마리를 해치웠다. 그 점에 대해선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제우스의 너그러운 목소리에 아테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따라서 최후의 외계인 부대를 섬멸할 권리는 일단 대규가 갖는다.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예?”
아테나가 반문하자 제우스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만약 대규가 외계인 부대를 제대로 섬멸하지 못하면 그 뒤엔 아테나 네가 섬멸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굳었던 얼굴을 풀며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전쟁의 신 칭호를 가져갈 수도 있는 겁니까?”
제우스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대규는 지금 단지 외계인 부대를 섬멸할 권리를 너희 중에서 최우선으로 얻은 것뿐이다. 전쟁의 신 칭호는 최후의 외계인 부대를 섬멸하는 신이 가져가게 돼 있지.”
그 말에 아테나의 얼굴에 희망적인 빛이 일었다.
제우스는 이제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대규 그대는 이리 나와서 최후의 외계인 몬스터에 대한 양피지를 받아 가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대규는 양피지를 받자마자 궁금해서 펼쳐 보았다.
거기엔 마지막 외계인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아자토스(Azathoth)]
[우주의 혼돈의 중심에 놓인 외계인들의 왕. 우주의 암흑의 옥좌에 앉아 끊임없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모든 것을 갉아먹고 끝없이 굶주려 있는 혼돈자이며, 딱히 정해진 형체를 지니고 있지 않다.]
대망의 최후의 외계인 몬스터다.
‘그런데 외계인들의 왕이라고? 게다가 형체까지 지니고 있지 않다고?’
적어도 크투가나 주샤콘은 인간형은 아니더라도 불길, 혹은 돌풍의 형체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들보다 더욱 특이한 녀석인 것 같았다.
‘이 설명만으론 당최 어떤 녀석인지 모르겠다.’
대규는 일단 양피지를 잘 챙겼다. 그러자 제우스가 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외계인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신들에게 보상을 내려야겠지. 우선 대규와 아테나부터 보상을 받아 가도록 하라.”
대규와 아테나가 앞으로 나가자 제우스는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곧 백색의 상자 두 개가 눈앞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그대들의 보상이다. 잘 확인하도록 하라.”
분명 스킬일 것이다.
제우스가 여태까지 줬던 보상들은 다 스킬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떤 스킬일까?’
방어 결계 와이드 프로텍팅처럼 유용한 스킬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어 결계는 방어도 할 수 있지만, 공중 부양까지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특히 구르게스를 상대했던 이번 전투에선 존의 염동력과 함께 쓰이며 아주 활약을 했다.
그리고 아프로디테와 디오니소스, 헤르메스도 차례로 나와 보상을 받았다.
죽상인 아레스는 이번 전투에서도 죽을 쓴 것 같았다.
‘우습군. 전쟁의 신이란 녀석이.’
그리고 아폴론 역시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원탁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제우스는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실망과 냉대가 섞여 있었다.
특히 제우스는 아폴론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폴론, 그대의 전투는 아주 잘 보았다.”
잘, 이란 단어에서 몹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폴론은 제우스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몸을 움찔했다.
“죄, 죄송합니다.”
“나에게 죄송할 건 없다. 하지만 그대는 지난번 첫 번째 외계인 전투에서도 패배한 거로 알고 있다. 하지만 또 패배하다니. 게다가 전투를 하다가 패배한 아레스와 달리 바로 적에게 달려들다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하고 당해 버렸지. 신으로서의 자질이 아주 의심스러워지는구나.”
“그, 그건… 크윽…”
제우스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전투에 싸우러 갔던 신에게 형벌을 내리는 건 도리가 아니겠지. 대신 그대는 앞으로 당분간 출전을 금지한다. 그리고 영웅들의 훈련도 금한다.”
“하, 하지만…….”
아폴론이 뭐라 변명하려 했지만, 제우스는 칼처럼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편이 그대에게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최후의 외계인 부대 섬멸 이후엔 티탄 신족과의 최후의 전투만 남아 있다. 그대는 그동안 머리를 좀 식히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리고…….”
제우스는 더욱더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그동안 그대의 오만한 성정도 돌이켜 보는 게 좋겠지.”
“아, 알겠습니다, 제우스 님…….”
아폴론은 찍소리하지 못하고 고개를 다시 숙였다. 그 모습을 보니 아주 약간은 측은하게 느껴졌다.
‘물론 쌤통이라는 생각이 더 크지만 말이야.”
제우스는 이제 대규를 바라보며 이렇게 당부했다.
“그럼 그대는 꼭 최후의 외계인 부대를 섬멸하길 바란다.”
그러자 옆에서 포세이돈이 한 소리 했다.
“뭐, 꼭 섬멸할 필요는 없지. 우리 아테나에게도 기회를 주면 좋잖아. 하하하.”
소집은 끝났고, 대규는 중앙신전을 나섰다. 그런데 아테나가 대규를 불렀다.
“대규, 축하한다. 그대가 외계인 부대를 섬멸하길 빌겠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대규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미묘했다.
그리고 그녀는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고맙다.”
“응?”
“그대가 지난번 엄하게 말해 준 덕분에 나는 잘 싸울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대규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 난 또 뭐라고. 그래도 열심히 싸운 건 아테나 너잖아. 내가 암만 100번 말을 했어도 네가 실천하지 않았으면 별 의미가 없는 거지.”
“그래. 하지만…….”
“그보다 아테나, 너는 마음속으론 내가 외계인 부대 섬멸에 실패하길 바라는 거 아니야?”
대규는 웃으며 농담식으로 이렇게 던졌다. 하지만 그녀는 대규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글쎄… 다른 녀석이 아니고, 대규 그대가 전쟁의 신이 된다면 나는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편이 나로서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엔 씁쓸한 표정이 깃들었다.
“왜 그래?”